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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 ‘깜짝쇼’ 북한의 얼굴

‘도박사’ 김정일, 호랑이 등에 올라타다

  • 글: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대우 hoon@donga.com

‘도박사’ 김정일, 호랑이 등에 올라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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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부시 정부의 일관된 자세에 북한이 밀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켈리 차관보가 돌아간 후인 10월7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북한 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이렇게 미국을 비난했다.

“특사는 그 무슨 ‘우려사항’이라는 것을 내들면서, 핵·미사일·상용무력·인권문제 등에 대한 요구를 우리가 먼저 해결해야, 조-미관계는 물론 조-일관계와 북-남관계도 순조롭게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심히 압력적이고 오만하게 나왔다. …부시 행정부가 일방적인 강경 적대시 정책에 계속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 확증된 이상, 우리도 특사에게 우리의 원칙적 립장을 똑똑히 밝혀 보냈다. 미국의 변함없는 조선 압살정책은 우리로 하여금 선군(先軍)정치에 따라 필요한 모든 대응조치를 다 취하도록 떠밀어 주는 것으로 되고 있다.”

외무성 대변인의 대답은 매우 강경한 것 같지만, 그 속뜻을 헤아려 보면 북한은 미국의 태도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처지임을 보여준다. 1990년대 초반의 북한은 이렇지 않았다. 강석주(姜錫柱) 외교부 부부장을 전면에 내세운 북한은 동해로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 위협적인 태도로 밀어붙여, 어느 정도까지는 미국을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나갔다. 그 산물이 지금 함경남도 신포에 건설중인 KEDO의 원자로이다. 그러나 지금의 북한에서는 그때 그 시절의 패기가 보이지 않는다.

북한판 햇볕정책

북한은 왜 이런 지경이 되었는가. 그 이유를 경제적인 측면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엘리트 탈북자들이 지적하는 북한의 가장 큰 문제점은 10년이 넘도록 계속돼온 북한의 경제위기다. 서방세계 의 관점에서 말하면 북한은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한 파산국가가 된 지 오래다. 인민군 장교 출신인 귀순자는 이렇게 말했다.



“인민군 중에서 가장 경제사정이 좋은 것은 황해도와 경기도에 포진한 전방부대다. 그런데 이 부대마저도 요 몇 년 사이는 부대에서 지은 농산물을 장마당에 내다 팔아, 필요한 부식과 물품을 조달하고 있다. 당에서 주는 것은 소량의 무기와 탄약, 그리고 약간의 식량뿐이다. 부식이나 생필품은 인민군대가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북한에서 가장 대우가 좋다는 군대, 그중에서 가장 보급 사정이 낫다는 서부전선의 최전방부대가 이 지경이라면 다른 부대의 사정은 살펴볼 것도 없다.

김정일 정권을 떠받치고 있는 양대 축인 군과 당의 조직이 ‘품을 팔아야’ 유지될 지경이라면, 북한의 경제사정은 최악에 최악을 더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는 안보를 지탱하고 안보는 경제를 보호한다. 허약한 경제로는 거대한 군대를 지탱할 수가 없다. 중앙대 이상만 교수는 7월1일 시행된 북한의 경제개혁과 관련된 북한 내부 문건을 입수해 언론에 공개했다.

이교수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북한은 7·1 경제개혁으로 ▲사실상 붕괴된 배급제를 폐지하고 새로운 가격체제를 도입해 국영상점의 유통망을 복구한다. 이에 따라 배급가격 기준으로 ㎏당 8전 하던 쌀값이 46원으로 인상되는 등 생필품 가격이 20배 이상 올랐다. ▲이러한 물가 상승에 적응할 수 있게 탄광노동자 한 달 임금을 200원 선에서 6000원 선으로 올려주었다고 한다. 물가와 임금을 20∼30배 올려주는 조치를 취한 것, 이것이 7·1 개혁의 요체다.

왜 북한은 물가와 임금을 동시에 올리는 조치를 취한 것일까.

한 엘리트 귀순자는 “북한 경제가 사그라드는 원인은 돈이 돌지 않는 데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은 약간의 용돈만 지갑에 넣어두고, 목돈은 금융기관에 맡겨 놓고 생활한다. 또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여러 개의 금융기관에 계좌를 개설해놓고 있다.

은행과 현금인출기가 없다면 실생활이 크게 불편해질 정도로 한국인의 일상 생활은 금융기관과 밀착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정한 돈’을 받았다든가 하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집에 돈을 쌓아놓고 사는 사람이 없다.

많은 사람이 은행에 돈을 맡기고 생활하다 보니, 은행에서는 적잖은 ‘파생통화’가 발생한다. 100원을 은행에 맡기면, 은행은 20% 내외의 지불준비금을 제외한 돈은 대출한다. 대출된 돈은 다시 은행에 들어오는데, 은행은 여기서 지불준비금을 제외한 돈을 또 다시 대출한다. 이런 식으로 대출이 반복되면 사회에는 100원에서 비롯된 상당한 파생통화가 창출된다.

파생통화는 허구에 불과한 ‘거품’이지만, 이 거품 때문에 한국 경제는 활기차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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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대우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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