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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색깔있는 문화이야기 ⑨

라블레, 민중의 삶 노래한 유쾌한 상대주의자

  • 글: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hkpark@ynucc.yu.ac.kr

라블레, 민중의 삶 노래한 유쾌한 상대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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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블레? 누구인가? 16세기 르네상스 기의 프랑스 작가라는 정도나 겨우 떠올릴 수 있는 인물 아닌가. 더군다나 그의 작품이 우리말로 번역되었다는 소식은 들은 바 없다. 프랑스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르되 그렇지 않은 일반인에게,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없는 그들에게 라블레에 대해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점에서 우리의 프랑스문학은 이상하다. 괴상한 문학작품들까지 현지에서 나오자마자 속속 번역되는 나라에서 거의 500년 동안 고전으로 남아 있는 ‘팡타그뤼엘’이나 ‘가르강튀아’를 읽을 수 없다니. 왜 그럴까? 아무리 간단한 프랑스 문학사에서도 가장 위대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의 작품을 우리는 읽을 수 없다.

어떤 책에 보면 우리말 번역이 있는 듯도 하나, 그런 책들에도 번역서 소개는 없고 원서만 인용되어 있다. 우리말로 된 라블레 연구서가 두 권, 번역된 연구서가 두 권 있으나 어디에도 라블레 작품의 번역서는 소개되어 있지 않다.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에서도 찾을 수 없긴 마찬가지다.

게다가 그 네 권 모두 내가 재직하는 대학도서관에는 없어 인터넷을 통해 어렵게 구해야 했다. 허나 읽어보니 너무 어려워 이 글을 쓰는 데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여하튼 불어불문학과가 있는 대학에 라블레에 관한 책이 한 권도 없다니! 한글 책도 단 한 권 없다니! 이러니 인문학이 위기일 수밖에! 적어도 우리 대학에는 라블레가 ‘없다!’

인문학자들은 신자유주의 때문에 인문학이 망했다고 야단법석이다. 신자유주의 교육에 의해 학과 선택의 자유가 넓어져 학생들이 인문학 쪽을 선택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신자유주의 교육이 그런 것이라면 그 자유를 허용한 면에 있어서만큼은 환영이다. 오히려 학생들이 즐겨 선택할 수 있도록 인문학이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인문학자가 아니지만 그런 취지에서, 인문학을 사랑하여 이 글을 쓴다.



원서로만 읽는 전문가 비밀주의 같은 것에 빠져있는 인문학을 누가 좋아할 수 있을까? 일반인이나 학생들이 라블레를 모르는 것은 라블레에 대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몇몇 사람이 그것을 독점하고 무슨 비밀처럼 연구하면서 일반인이 몰라준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왜 친절하고 알기 쉽게 인문학을 말하지 않는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이 사람을 떠나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최소한 도서관에 관련 서적이라도 비치하라!

까놓고 말해 인문학 까짓것 없어도 세상은 망하지 않는다. 인문학이 없어 세상이 요지경이 되었다고들 하지만 라블레에 대한 연구자가 몇 명 더 는다 해서 세상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라블레가, 우리의 라블레가 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라블레는 우리 인문학 연구자의 캐비닛 속에서 잠자고 있다.

하기야 라블레 뿐인가? 우리에게 그 이름만이 전설처럼 떠도는 세계의 고전은 수없이 많다. 물론 읽을 필요가 없다면 그만이다. 500년 전 프랑스 사람이 쓴 기괴한 거인 소설을 읽을 필요가 없다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읽을 필요가 있다면서도 읽을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것은 웃기는 짓이다.

이해받지 못한 대문호

무엇보다 라블레는 읽을 필요가 ‘없지 않다’. 특히 최근 대화주의 문학이론으로 각광 받고 있는 바흐친이, 민중문화의 입장에서 볼 때 라블레야말로 세계문학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을 생산한 작가라 재평가한 이래(바흐친의 그 책, 800쪽에 가까운 ‘프랑소와 라블레와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는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그가 모신 5대 대가, 즉 단테·괴테·셰익스피어·도스토예프스키·라블레 중 우리가 접근을 금지 당하고 있는 이는 라블레 뿐이다.

나머지 네 사람은 열심히 섬겨지고 있는데, 그 넷보다 더 중요하다고 평가받은 라블레는 제사를 지내기는커녕, 학회라는 이름의 사당은커녕, 부서진 비석 한 쪽은커녕, 그가 쓴 글 한 쪽조차 없는 현실. 그러면서도 바흐친의 책은 번역되고, 우리가 읽지도 못하는 라블레에 대한 바흐친의 논문은 물론, 그 바흐친에 대한 논문조차 쏟아져 나오고 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라블레는 없고, 그를 논한 바흐친만 있다. 코끼리는 없고, 그 다리를 만진 맹인들의 헛소리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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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hkpark@ynucc.y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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