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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유럽기행

태양과 정열의 땅 스페인 안달루시아

가톨릭 주춧돌 위에 펼쳐진 이슬람 문명의 기적

  •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태양과 정열의 땅 스페인 안달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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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과 정열의 땅 스페인 안달루시아

메스키타 내부에는 850개의 말발굽형 아치 기둥이 들어서 숲을 이루고 있다.

코르도바 메스키타는 과달키비르 강변에 서 있다. 아랍어로 큰 강이란 뜻의 과달키비르는 세비야를 거쳐 대서양으로 흘러간다. 그 위로 난 길이 225m의 로마교는 2000년의 모진 풍상을 용케 견뎌내고 지금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시민들의 산책로로 사랑받고 있다.

그 끝의 갈라호라 탑에 오르자 강과 다리는 물론 웅장한 메스키타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코르도바는 오직 메스키타를 위해 세워진 도시 같다. 메스키타의 건설이 시작된 게 785년이었으니 그렇게 생각해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메스키타 주변에는 흰 벽에 황토색 기와지붕을 인 가옥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그 속으로 들어가면 오랜 아랍 도시처럼 좁고 꼬불꼬불한 골목이 이리 얽히고 저리 설켜 미로를 방불케 한다. 이슬람이 이 땅을 떠난 지 500년이 지났건만 그 흔적은 지워지지 않고 아직도 이렇게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도피자 압두르라만의 한계

‘면죄의 문’을 통해 메스키타의 경내로 들어서자 오렌지 정원이 나타났다. 아름다운 꽃과 수목이 수없이 많은데 굳이 오렌지를 모스크의 안뜰에 심은 까닭은 무엇일까. 모르긴 해도 성스러움과 관계가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이곳 오렌지 정원의 크기가 메카에 있는 카바 성전의 평면 규모와 똑같다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녹색 잎사귀 사이로 노란 오렌지가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게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정원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예배소에 들어가기 전 손발을 씻도록 만든 것이다. 돌을 박은 바닥 아래 거미줄 같은 수로가 만들어져 나무마다 물이 공급되도록 했다는데 바로 이런 게 이슬람 문화의 핵심 아닌가 싶었다. 주어진 환경이 아무리 험해도 그걸 탓하고 체념할 게 아니라 알라의 뜻으로 순순히 받아들이고 보다 나은 환경으로 만들어가는 것 말이다. 그들이 말하는 오아시스란 현실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기보다는 그들 스스로의 손과 지혜로 만든 낙원을 뜻한다. 필자는 이런 예를 다마스쿠스에서, 그리고 이란의 이스파한에서 똑똑히 보았다.



‘종려나무의 문’으로 시작되는 메스키타 내부를 빈틈없이 채운 수많은 원기둥과 그것을 장식하는 말발굽형 아치에서 필자는 무어인의 또 다른 면모를 보았다. 말발굽은 이동과 공격의 상징이 아니던가. 무어인은 자신들의 기상과 특기를 말발굽으로 표현해놓았다. 빠르고 외향적인 기질을 가졌다면 지구력 면에서는 좀 떨어질 법도 한데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섬세함마저 갖췄다. 기둥에 새겨진 조각술이나 미흐랍을 장식한 아라베스크 문양의 정교함은 보는 이의 입이 벌어질 정도다.

메스키타를 짓기 위해 첫 삽을 떴던 압두르라만 1세는 다마스쿠스의 우마이야 왕조가 무너지자 몸을 피해 비옥한 과달키비르 강변의 코르도바로 건너와 수도를 세운 인물이다. 그는 코르도바를 다마스쿠스나 바그다드(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린 압바스 왕조의 수도)보다도 더 이슬람적이고 더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었다. 하지만 필자는 그에게서 비애를 느꼈다.

도피자인 까닭에 그에게는 정통성이 없었다. 압두르라만은 그 한계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부족한 정통성을 만회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도시를 꾸미고 모스크를 지었다. 일본의 역사도시 나라(奈良)에서 사라진 백제문화의 원형을 볼 수 있는 것이나, 공자의 고향 취푸(曲阜)의 사라진 문화재가 우리의 성균관에 잘 보존돼 있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다.

원조는 옛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도 원조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지만 후발주자는 옛 것(고전)을 버리는 순간 존재의 근거가 사라지기에 감히 버릴 생각을 못한다. 코르도바가 바로 그런 꼴이다. 정통성이 유일한 가치가 아닌데도, 정통성만을 내세운 지배자가 백성들을 허기지게 만든 예는 비일비재하다. 정통성이 삶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준다면 모르겠으나 현실세계에선 ‘입’만 키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입, 듣기에 좋은 말만 하는 입, 배를 허기지게 만드는 입 말이다. 제대로 되려면 정통성 못지않게 실용성도 갖춰야 한다.

다행히 코르도바는 후자의 길을 걸었다. 10세기 초 압두르라만 3세 때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코르도바의 주민은 50만명을 넘었고 20만호의 주택, 300개의 모스크, 50개의 병원, 500개의 공중 욕탕, 30개의 도서관이 있었다.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의 콘스탄티노플과 더불어 유럽 최대의 도시로 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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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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