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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중국 팔로군 출신 기공 연구가 윤금선

“울며 태어났는데, 살며 울 일 많았는데, 갈 땐 울지 말아야지…”

  •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 사진·김성남 기자

중국 팔로군 출신 기공 연구가 윤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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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고픔을 면하려 남의 땅으로 간 열네 살 소녀는 두 오빠를 따라 팔로군이 되었다. 남의 나라 전쟁에 바친 꽃다운 청춘. 총탄 세례에도, 황하 도강에도 그는 모질게 살아남았다. 우리가 전장으로 보낸 소녀, 윤금선은 외려 마음의 평화를 얘기하며 조국에 돌아왔다.
중국 팔로군 출신 기공 연구가 윤금선
열네살 소녀가 제 땅을 떠나 만주로 갔다. 나라는 남의 손에 빼앗긴 지 오래, 배고픔이라도 면하고 싶었다. 만주에는 먼저 이주한 큰집이 살고 있었다. 땅이 너르고 비옥하다는 소문이었다.

그러나 꿈의 땅 만주는 소문과 달랐다. 풍요로운 고장이기는커녕 외려 영하 30℃가 넘는 강추위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가래침을 타악 뱉으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얼어버리는 땅, 추웠고 배고팠다. 거칠고 낯설었다. 살길을 찾아야 했다. 두 오라버니는 군에 입대했다. 배라도 곯지 않으려면 그 길뿐이었기에, 여동생도 따라 입대했다. 중국 군대, 팔로군(1937~45년 일본과 싸운 중국공산당의 주력부대, 1947년 ‘인민해방군’으로 이름이 바뀐다)이었다.

일본이 전쟁에 지고 조국은 해방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돌아갈 길은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어도 중국은 여전히 전쟁 중이었다. 장제스(蔣介石)의 국민군과 마오쩌둥(毛澤東)의 인민해방군, 양쪽이 치열하게 대치하는 선봉에 소녀가 배치됐다. 간호병이었다. ‘호리반(護理班)’이라고 불렀다. 12명이 한 반이고 세 반이 한 패인 조직에서 반장과 패장 노릇을 했다.

“반, 패, 련, 영, 단이 있고 그 위에 있는 게 사단이었어요. 반이 셋이면 패, 패가 셋이면 련, 련이 셋이면 영, 이런 식이었지. 난 선봉반 반장이고 강철패 패장이었어요.”

7년을 전쟁 속에서 살았다.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겼다. 꽃다운 나이에 죽음을 신물나게 경험했다. 남의 나라 전쟁이었다. 남의 땅이었다. 7년의 군 생활은 딴 사람의 일생보다 길었다. 삶을 보는 눈 자체가 달라졌다.

“그걸 말로 다 하라고?”

이제 일흔여섯이 된 그 소녀 윤금선(尹錦先)은 이야기를 들으려고 바짝 다가앉는 날 보며 어이없어했다. 그러나 나 또한 만만찮은 사람. 윤금선에게서 숱한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전에 단 한번도 말한 적 없다던 이야기, 차마 발설해서는 안 될 듯한 이야기, 지금 중국에 살고 있는 세 아들의 신상이 염려되는 이야기들이 윤금선의 입에서 술술술 흘러나왔다.

그를 세 번 만났다. 서울 방학동 네거리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도 가봤다. 어떤 독지가가 무료로 빌려준 너른 공간에서 윤금선은 중국에서 배워온 기공술을 가르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기공은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 수 있는 기술이라고 한다.

“피부 빛깔이 어떻든, 어떤 시대에 살든 동서고금 모든 사람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어요.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고 싶다는 소망이지요. 그 방법을 내 나라 사람들에게 선사하고 싶어요. 나는 내 눈물로 조그만 강도 만들 수 있고 조그만 산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고통을 겪으며 살아나온 사람이에요. 할머니들을 모아놓고 말해요. ‘노인의 눈물을 닦아주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이제까지는 고통을 겪으며 살아왔더라도 우리 지금부터는 재미있고 보람있게 삽시다. 내가 그 기술을 가르쳐드릴 게요’라고.”

인생에는 조양(朝陽) 오양(午陽) 석양(夕陽)이 있는데 자신의 석양을 남들에게 기공을 가르치면서 보람을 찾고 싶다는 게 지금 남은 윤금선의 꿈이다.

24시간 180리 행군

군에 입대한 건 1947년 봄이었다. 만주 옌지(延吉)에서였다. 큰아버지가 이웃마을의 나이 많은 남자에게 자기를 시집보내려 한다는 말을 올케에게 들었다. 마침 팔로군 선전대가 마을에 들어왔다. 가면 밥도 먹여주고 가난한 인민을 해방시키는 장한 일을 하게 된다고 했다. 1930년생이니 그의 나이 열여덟이었다. 엄마한테만 몰래 말하고 40리를 걸어갔다. 그 부대이름은 옌지 쌍하진 부대라 했다.

“폭탄소리 탄알소리를 겁 안 내고 잘 걸을 수 있니?”라고 물었다.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머리를 요렇게 땋았는데 가자 말자 다 깎아버리데. 그리고 허술한 군복을 줘. 남자처럼 헝겊으로 갑빵(그는 ‘각반’을 이렇게 발음했다)을 치고…. 이튿날부터 바로 전쟁판이었어. 교육받을 새도 없이 상병자(傷病者)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는데 말도 못하지. 피 닦아주고 붕대 감아주는 일만 해도 잠은커녕 변소 갈 틈도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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