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호

한승주 전 외무장관의 북핵 대응전략

“北, 이미 핵무장 스케줄 완성… 韓, 비핵화냐 평화냐 목표 정해야”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9-07-06 18: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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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내부문제·대미압박보다 핵 확보 자체가 목적
    • ‘유엔 대응 핑계로 핵실험 강행’복안 사전설정한 듯
    • 북미 양자협상 열려도 시간 끌기 전략 계속될 것
    • 상충하는 대북정책 목표, 우선순위 있어야 로드맵 나온다
    • 문제는 전략 비전 고민하려는 노력과 사람
    • PSI 논란, 전략적 판단 있었다면 피할 수 있었다
    • 정전협정 무효화 선언? 무력충돌 가능성 희박하다고 봐야
    • ‘한국의 북핵 둔감’ 우려하는 미국
    한승주 전 외무장관의 북핵 대응전략

    ● 1940년 서울 출생 <BR>●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박사(정치학) <BR>●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BR>● 외무부 장관(1993.2~1994.12) <BR>● 아태안보협력이사회(CSCAP) 공동의장, 고려대 총장서리 <BR>● 주미대사(2003.4~2005.2) <BR>● 現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강(强) 대 강. 4월5일 장거리 로켓 발사를 신호탄으로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어 가는 북한 핵 문제는 그 끝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응과 한국의 대량살상무기방지구상(PSI) 전면참여 선언, 북한의 2차 핵실험과 우라늄농축 선언. 서로가 서로의 수를 충분히 예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어지는 긴장의 에스컬레이션은 지난 십수년간 한반도 최대 이슈였던 북핵 문제가 그 정점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돌이켜 보면 테러지원국 해제와 영변 냉각탑 폭파로 낙관적 전망이 쏟아져 나오던 게 2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어느 때보다 뜨거운 2009년 초여름, 평양은 과연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최악의 국면을 맞이한 한국과 미국은 과연 돌파구를 만들 수 있을까.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지만, 또 누군가는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이기도 하다.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을 만나기로 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19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촉발된 1차 위기 때 외무장관으로 일하며 한국의 핵 외교를 진두지휘했고, 2002년 10월 북한의 우라늄 핵개발 의혹으로 불거진 2차 핵 위기 후에는 주미대사로서 정책조율 창구 구실을 했던 한 전 장관은, 북한의 행보와 한국·미국의 대응방향에 대해 최근 들어 어느 때보다도 분명한 어조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6월10일 서울 광화문의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 북한의 강경행보가 이어지는 배경이 무엇이냐를 두고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크게 보면 후계체제 구축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 등 북한 내부 상황 때문이라는 평가와 새로 들어선 미국 오바마 행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엇갈리는 형국입니다.

    “미국 쪽에서도 최근 상황이 북한의 권력 승계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가 공식적으로도, 또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승계에 힘을 실어주는 한편 미국에 북한의 존재를 알리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는 거죠. 분명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북한이 이미 핵과 미사일 기술 자체를 무기로서 완성시키기로 결정했다는 것이죠. 무엇을 위한 수단으로 핵실험을 강행했다기보다는, 이미 핵 확보를 위한 고유의 스케줄 설정을 끝낸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의 행보는 그 스케줄을 하나하나 밟아나가는 작업이라는 거죠.



    2007년 2월 이른바 2·13합의 이후 2년 동안 북한은 핵 시설을 동결하고 불능화 논의를 계속해왔습니다. 휴식 혹은 후퇴라고 할 수 있는 국면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단계에서 다시 핵 물질을 추가로 생산하고 핵 시설을 구축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핵과 미사일을 함께 현실화하겠다는 결정이죠. 그게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게 지난해 12월 검증 의정서 거부였고, 이후 장거리 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으로 이어졌습니다.

    로켓을 발사하면 유엔이 어떤 방식으로든 대응하리라는 것은 평양도 충분히 예견했다고 봅니다. 그걸 핑계 삼아 핵 활동을 재개하겠다는 복안이 있었을 겁니다. 2006년 1차 핵실험이 실패 혹은 부분적으로만 성공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추가 핵실험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한 것이겠죠. 북한 정도의 나라에서 핵실험을 하려면 최소 반년에서 1년가량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오바마 행정부의 등장이나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죠. 이미 자신들의 스케줄을 갖고 있고, 목표는 핵과 미사일 기술의 완성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겁니다.”

    ‘통 큰 협상’ 열린다 해도

    ▼ 최근 한 세미나에서 북한이 이를 통해 결국은 미국과의 ‘통 큰 협상(Grand Bargain)’을 노리고 있다고 언급하신 바 있습니다. 이렇게 보시는 근거는 무엇인지, 또 만약 이러한 협상이 진행된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군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북한은 미국을 직접 타격하는 능력을 갖추려고 하고 있습니다. 핵을 탄두화하고 미사일을 미국 본토로 날려 보낼 수 있게 됨으로써 미국에 대해 핵 억지력을 갖겠다는 거죠. 이와 더불어 핵무기 체계의 완성은 북한의 협상력을 크게 강화해줍니다.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는 데도 도움이 되고, 협상을 하더라도 비핵화 협상이 아닌 핵군축 협상을 요구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통 큰 협상’이라는 말은 사실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기 직전에 북한이 미국에 흘렸던 안입니다. 방북 인사들을 통해 미국과의 협상에 관심이 있다는 의사를 표시했던 거죠. 이를 통해 미국과의 관계를 기존과는 질적으로 다른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뜻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뭔가 극적인 돌파구가 열릴 듯한 기대를 줌으로써 빅딜(big deal)로 유인해보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승주 전 외무장관의 북핵 대응전략

    1994년 9월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왼쪽)이 앤터니 레이크 안보보좌관 사무실에서 한승주 외무장관(오른쪽)과 한승수 주미대사(오른쪽에서 두 번째)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양자 협상이 이뤄진다고 해도, 리비아 식으로 핵과 반대급부를 한번에 완전히 맞바꾸는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하려 하지는 않을 겁니다. 갖고 있는 카드를 잘게 쪼개 사용하는 예의 ‘살라미 전술’을 구사해가며 그때그때 보상을 받으면서, 시간을 끌어 핵 보유국의 지위를 기정사실화하는 방향으로 나갈 겁니다. 초반에는 가급적 사소한 조치만을 이행하고 큰 덩치는 뒤로 미루는 방식이 되겠죠. 시한도 가능한 한 길게 잡고요. 이를 위해서는 덩치를 키우는 게 중요합니다. 이왕이면 핵무기도 강력하게, 미사일도 대륙간탄도탄 수준으로 만들 필요가 있을 겁니다.”

    유엔 결의 핵심은 中 압박력 강화

    ▼ 최근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제재 결의 1874호를 의결했습니다. 2006년 1718호에 비해 진전된 디테일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실효성을 두고는 여전히 회의적인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최근 미국이 꺼내든 위조지폐 카드와 금융제재 논의는, 북한도 이를 충분히 예상하고 대비했다는 측면에서 방코델타아시아(BDA) 사태 때만큼 북한을 압박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있고요.

    “우선 1874호 결의는 유엔군 파병 같은 무력행사를 제외하고는 제가 이제까지 본 것 가운데 가장 강력한 제재입니다. 최소한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중국에 큰 지렛대를 부여했다는 점입니다. 한국 미국 일본이 결의안을 강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뜻을 반영해 다소 완화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공해상에서 선박 검색을 할 경우 그 소속국가의 승인을 받도록 한 부분이 대표적이죠. 이를 통해 중국이 북한에 생색을 낼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겁니다. 중국이 이를 무기로 이용하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더 강화할 수 있게 됩니다. 북한이 협력한다면 덜 철저하게 할 것이고 협력하지 않으면 원칙대로 이행할 거라고 압박할 힘을 부여해준(empower) 것이죠.

    이와 함께, 한미일 각국은 유엔 제재결의에 규정된 사항 외에도 추가로 제재조치를 취하려 할 겁니다. 유엔의 결의는 이러한 조치에 무게를 실어줍니다. 이것만으로 북한이 핵 혹은 미사일 프로그램을 중단하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는 없겠지만, 평양으로 하여금 강경행보의 대가가 만만치 않다는 인식은 심어줄 겁니다.

    이러한 추가제재 가운데 대표적인 게 미국이 검토 중인 위폐 문제에 대한 금융제재겠죠.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 취임 직후 북한과 대화하자는 입장을 내비치던 순간에도 위조지폐 문제나 농축우라늄(UEP)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심각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최소한 워싱턴 국내자(局內者)들 사이에서는 이런 인식이 있었죠. BDA 사건 이후 북한이 국제금융거래를 한 은행에 집중하지 않는 형태로 바꾸는 등 대비해온 게 사실이지만, 반대로 여전히 미국이 북한의 국제금융거래에 타격을 입히는 게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당장 상하 양원에서 이 문제를 검토하는 청문회가 열리고 있고요. 완료되지 않았던 입장 조율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겁니다.”

    ▼ 같은 이야기를 한국에 적용해보면, 5월4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칼럼에서 지적하신 부분이 떠오릅니다. 최근 우리 정부의 대응이 과연 한반도 및 동북아 혹은 세계 차원의 신질서 형성과정을 염두에 둔 큰 전략(grand strategy)을 갖고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지적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그러한 전략적 사고가 미비했다고 느끼신 계기나 대목이 있었을 텐데요.

    “전략이라는 건 우선 큰 그림을 봐야 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긴 시간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단기 대책은 장기 목표와 연계돼야 하는 거죠. 물론 그 구체적인 단계별 방법에서는 융통성이 있어야 하고 바꿔야 하는 걸 바꿀 수도 있어야 하지만, 목표를 설정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과정은 필수적입니다.

    목표의 상충

    문제는 한 나라의 목표들이 서로 상충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는 겁니다. 중국의 예를 들자면, 북한의 비핵화도 필요하지만 북한 정권이 계속 유지되는 것도 필요하고, 또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이 벌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북한 비핵화를 위해 압박의 강도를 높이자니 정권이 무너질 수도 있을 것 같단 말이죠. 거꾸로 정권 유지를 먼저 생각하면 핵 문제는 느슨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고요.

    우리도 비슷하다고 봅니다. 비핵화를 이루고 평화를 유지하고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가져가는 것이 모두 목표라고 할 수 있겠죠. 핵심은 이들 목표 간에 상충되는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아무래도 평화를 유지하는 부분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거기에만 집중하다 보니 북한이 우리를 얕보고 버릇이 나빠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거꾸로 비핵화에만 집중하면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고요. 이러한 정책목표 사이의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겠죠.

    더욱이 북핵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 한국과 미국, 한국과 중국이 함께 동북아의 미래에 대해 전략적인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과 러시아도 동참할 수 있고요. 한반도 평화 유지나 북한의 비핵화라는 목표에 대해서는 합의가 가능할 테니, 그 안에서 어떤 방법이 가장 적절하고 합리적인지 함께 도출해야 합니다.

    한승주 전 외무장관의 북핵 대응전략

    2003년 10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당시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왼쪽), 한승주 주미대사(가운데),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한미정상회담에 배석해 있다.

    특히 무조건 처음부터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 같은 방식을 추진해서는 안 될 겁니다. 부시 행정부가 첫 임기 동안 그렇게 방향을 잡았다가 실현도 못하고 오히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완성할 시간만 허락한 셈이 됐잖아요? 일단은 핵을 동결시키고 가능하면 불능화하는 식으로,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문제가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해나가는 방법밖에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 CVID를 포기할 수는 없지만, 그건 시간과 상황을 봐가며 인내심을 갖고 추진할 과제입니다. 이 정도 합의는 관계국들이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를 전제로 북핵 해결의 로드맵을 설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 그러나 최근 우리 정부는 그러한 장기비전이나 로드맵을 만드는 데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오히려 북한의 움직임에 지나치게 즉자적으로 대응하는 측면도 보이고요. 예를 들어 로켓 발사 이전에는 ‘단호하고 원칙 있는 대응’을 강조하던 정부가, 발사 이후에는 ‘유연한 대응’을 말하며 전향적 대북제안을 검토하는 식으로 분위기를 바꿨다가, 다시 핵실험이 터지니까 ‘단호한 대응’으로 돌아가는 식으로 말입니다.

    “대체로 정부가 다 그래요.(웃음) 문제는 장기 로드맵을 만드는 노력을 얼마나 하느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일 겁니다. 아시다시피 지난 1년 반 동안 한국과 미국에 모두 새 정부가 들어서지 않았습니까? 정권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장기 비전을 만들기도 어렵고 유지하기는 더 어렵죠. 언뜻 북한이 오히려 그런 부분에는 강해 보이고요. 그렇다고 민주주의가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나쁜 정책을 만들었을 때 민의를 반영해 수정할 수 있으니까요.

    로드맵이 있어도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돌발상황에 대응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 로드맵은 필요한 거겠죠. 빠르지만 위험한 길과 시간이 걸리지만 안전한 길이 있을 때 어느 걸 선택할지 결정하는 게 전략적 사고입니다. 최소한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확실해야 합니다. 북한이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구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도 있습니다. 일관된 정책을 추구하는 게 쉽지 않은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러한 여건 속에서도 얼마나 더 효과적으로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지가 정부의 역량이라고 봅니다.”

    PSI 논란, 전략적 사고 있었다면

    ▼ PSI에 관한 혼선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겁니다. 흔히 이 문제를 프레임(frame)의 실패라고 표현하더군요. PSI 참여 여부를 대북정책의 관점에서 사고하는 기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죠.

    “아시다시피 PSI에는 러시아를 포함해 94개국이 참여하고 있고, 오히려 대량살상무기 확산 문제에 직면한 한국이 그간 참여하지 않고 있었던 게 비정상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첫 단추가 잘못 끼워져 있었고, 참여 선언이 정상을 비정상으로 바꾸는 문제처럼 프레임이 짜인 측면이 있었습니다. 북한 인권문제와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봅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전면 참여하겠다는 식으로 직접 연계시켰던 것에는 분명 정부의 처리 과정에 문제가 있었죠. 공격의 빌미와 시간을 준 것이니까요. 전략이 잘못됐다기보다는 전략적 결정을 이행하는 방법의 정교함에 문제가 있었다고 봅니다. 다만 2차 핵실험 이후 핵 문제는 단순히 북한 문제가 아니라 대량살상무기 확산이라는 전세계적 이슈가 됐으니까, PSI 가입이 북한을 압박하는 조치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비판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 노무현 정부 시절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정부 출범 1년이 넘어선 후에도 여전히 독자적인 비전을 구축하기보다는 ‘이전 정부의 정책을 수정한다’는 인식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들고요. 고유의 정책비전이 아쉽다고 할까요.

    “그렇죠. 로켓 발사나 핵실험에 상관없이 PSI에 관한 전략적인 판단과 사고가 있었다면 그러한 혼란은 피할 수 있었겠죠.”

    ▼ 언론이 ‘정전협정 무효화’라고 해석한 5월27일 판문점 대표부 성명을 두고, 한 강연에서 실제로 북한이 무력도발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평가하신 적이 있습니다. 최근 정부의 분위기는 이러한 도발 의도가 기정사실이라고 보는 것에 가까운 듯한데요.

    “북한이 강경조치가 필요해 행동에 옮길 때는 그와 관련된 담화나 성명을 단어 하나까지 계산해서 목적의식을 갖고 발표하곤 합니다. 오늘 한 말이 몇 달 후의 행동과 연결되고, 또 이전에 이미 한 말과도 이어지는 식입니다.

    그 성명을 보면 정전협정을 무효화하는 데 몇 가지 전제가 달려있습니다. 그 성명으로 북한이 정전협정 무효화를 선언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말이죠. 무력행사 부분도 한국의 PSI 참여 발표와 관련해 언급했는데, 정확한 표현은 ‘우리의 선박에 어떤 사소한 적대행위도 즉시적이며 강력한 군사적 타격으로 대응할 것’이었습니다. 자기들 배에 올라타 실제로 검색을 하는 가상상황을 전제로 한 말입니다. 그렇지만 PSI가 일상적인 항해를 하는 일반 상선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그런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도 볼 수 있고요. 또 막상 왔을 때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니까요.”

    ▼ 앞에서 로드맵의 목적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북핵 문제에 있어 미국의 궁극적인 목표와 한국의 목표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우리 사회 일각에 있습니다. 북미 간 양자협상의 타협점이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장거리 미사일 능력에 초점을 맞춘 채 핵 능력에 대해서는 하염없이 지연되는 식으로 늘어질 수 있다는 거죠.

    “피상적으로 보자면 그렇게 느낄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북한의 핵이 다른 나라에 이전되는 것만 방지하고 장거리 미사일 기술만 제거하면 미국 입장에서 크게 위협을 느낄 만한 건 없지 않으냐는 거죠.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부터 핵 확산을 총력을 기울여 막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습니다. 더욱이 최근의 상황은 북한뿐 아니라 이란과도 연결돼 있기 때문에, 미국이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 보유를 사실상 묵인해왔다는 이유로 북한에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당장 북한을 놓치면 이란을 막기는 상당히 어려워지니까요.

    오히려 미국 내 일각에서는 한국에서 북핵에 대한 민감성이 줄어들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 같더군요. 그런 견해 차이가 양국 사이에 갈등의 소지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지난 몇 개월 사이 한미 양국의 공조는 긴밀했고,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고 봅니다.”

    두 정부의 차이

    ▼ 결국은 미국의 움직임과 정책 방향을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도록 끌어당기는 일이 관건일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오바마 행정부에 어필하고 설득할 수 있는 우리 정부의 태도나 논리의 구축이 중요할 테고요. 오랜 기간 한미 양국의 견해와 정책을 조율하는 일을 하면서 느끼신 바가 있었을 듯합니다.

    “지금 당장은 계속 상황이 벌어지고 있고, 북한이 우리를 쉴 수 없게 만드는 상황이죠. 오바마 정부는 현재까지 대북정책, 북핵 정책을 검토(review)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미국과의 협의나 공조는 늘 이뤄져야 하겠지만, 새 행정부가 정책을 검토하는 현재 시점이 미국의 사고에 우리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간이 상대적으로 큰 타이밍임은 분명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우리끼리 이게 한국의 이익에 맞는다고 결정짓고 난 다음 이를 미국에 설득하려 하는 자세보다는, 일차적으로는 미국, 혹은 중국 등 다른 나라들과 함께 의논해 아이디어를 정리하겠다는 자세가 적절하다고 봅니다.

    제가 지금까지 정부에서 두 번 일했는데, 1990년대에 일할 때는 미국과의 협의가 늘 브레인스토밍에 가까웠어요. 당면 과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놓고 공동으로 논의하는 식이었죠. 2000년대에 일할 때는 양국이 각각의 입장을 갖고 있어서 누가 누구를 설득하느냐, 누가 누구에게 이기느냐, 누가 누구에게 무슨 양보를 하고 어떤 반대급부를 얻어가느냐, 그런 식으로 논의가 진행되곤 했습니다. 물론 100% 그랬다고 말할 수는 없고 사안에 따라 달랐지만 그런 요소가 강했죠.

    또 1990년대에는 두 나라의 입장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았고, 훨씬 개방적인 자세였죠. 반면 2000년대에는 부시 행정부는 워낙 강경했고 노무현 정부는 정반대였습니다. 차이도 많고 사고방식도 달랐죠. 저 같은 경우는 늘 그 차이를 줄이려고 애썼는데, 1990년대에는 훨씬 쉬웠고 2000년대에는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한반도가 남북한 관계이기 때문에, 한국이 강경하고 미국이 융통성이 있을 때는 북한 관련 상황을 관리하기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한국이 온건하고 미국이 강경할 경우에는 우리 국민이 ‘우리는 좀 잘 지내려고 하는데 미국 사람들이 왜 저렇게 세게 나오느냐’고 생각하기 쉬우니까요.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아무래도 한미간의 입장 차이를 좁히기가 좀 더 어려워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전 장관은 요즘 그간 자신의 경험을 담은 회고록을 작성하고 있다. 벌써 작업을 시작한 지는 꽤 됐지만, 끊임없이 이슈가 터지는 한반도 상황이 그를 회고록 작업에 몰두하지 못하도록 하는 모양이다. 이어지는 강연과 인터뷰, 정부의 자문 요청 때문에, 공직을 떠난 지 4년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바쁜 스케줄을 이어가고 있었다. 50대 초반에 외무부 장관을 맡은 이래 핵 문제와 씨름한 것만 벌써 16년이 넘었다.

    기시감과 피로감

    ▼ 긴 시간 이 문제를 고민하시면서 가끔은 지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으십니까. 북한을 설득할 방법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오히려 전망이 더 어두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핵 문제를 취재한 지 7년 남짓 되는 저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니까요.

    “다들 그런 부분이 있겠지요. 저 개인 뿐 아니라 정부 혹은 국민도 마찬가지로 지쳐가고, 또 과거의 일들이 반복되는 것 같은 기시감(de′ja` vu)도 피로감을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손을 놓아버릴 수도 없는 게, 핵 문제가 워낙 중대한 이슈일뿐더러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단 말이죠. 1993년에는 북한이 NPT를 탈퇴한다는 것만으로도 난리가 났었는데, 지금은 핵실험을 두 차례나 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겠다고 나서도 주가가 꿈쩍 안 하잖아요. 물론 주가가 심각하게 내려가도 문제겠지만 이렇듯 둔감해지는 것은 분명 우려할 만한 부분입니다. 지치고 힘들더라도 모두가 계속 관심을 가져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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