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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무관의 영웅’ 이규혁 선수

“올림픽 메달은 하늘이 정해주는 것. 행복했다. 심리학 공부하고 싶다”

  • 김성규│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kimsk@donga.com│

‘무관의 영웅’ 이규혁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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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정상급 선수인데 유독 올림픽에선 부진한 경우가 많던데요. 제러미 워더스푼도 올림픽에선 금메달을 못 땄잖아요.

“그 친구는 저보다 더 좋은 위치에서 도전을 많이 했죠. 세계 정상이라는 위치에서 받는 심리적 부담, 압박감은 분명 있는 것 같아요. 그 친구가 저보다 (실력이) 훨씬 나을 때 전 ‘저 친구가 왜 저러고 있나’ 하는 생각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번 올림픽을 치르면서 똑같은 상황에 처하니까 상황이 이해되더라고요. 그 친구가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시즌 마지막 시합을 하고 은퇴할 계획이었는데 올림픽 때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더라고요. 마지막 시합을 못하게 된 거죠. 저한테는 오랜 친구라 그 얘기 들었을 때 안타깝고 슬펐어요.”

캐나다 출신의 워더스푼(34)은 세계에서 역대 가장 뛰어난 스프린터로 꼽힌다. 1m90㎝의 키에 85㎏의 거구인 그는 현재 500m 세계기록 보유자이고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4차례 우승에 월드컵 시리즈 종합 우승을 13번이나 했다. 1998년 나가노올림픽부터 이번 밴쿠버올림픽까지 4차례 올림픽에 출전했으나 1998년 나가노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게 최고 성적. 끝내 올림픽 금메달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하지만 전통적인 빙상 강국인 캐나다에 비하면 한국의 여건은 비교하지 못할 만큼 열악하다. 빙상의 불모지에서 이규혁이란 인물이 혜성처럼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이규혁은 신사중학교 재학 시절인 13세 때 국가대표가 돼 성인들과 경쟁했다. 그야말로 ‘빙상 신동’이었다. 이규혁을 얘기할 때 그의 가족 얘기가 빠질 수 없다.

이규혁의 아버지는 왕년의 스피드스케이팅 대표 선수인 이익환(62)씨고, 어머니는 피겨 국가대표 출신으로 현재 ‘한국 피겨의 대모’로 통하는 이인숙(52)씨다. 동생 이규현(30)씨도 피겨스케이팅 코치로 활동 중이다. 외할아버지는 오래전부터 스케이트화를 만드는 사업을 해왔다. 이규혁의 어머니 이름을 따 외할아버지가 만든 ‘인숙 스케이트’ 브랜드는 10여 년 전만 해도 국내 엘리트 선수들이 신던 국내 최고의 브랜드였다. 그러니 이규혁에게 빙상인의 DNA가 흐를 수밖에 없다.



몸에 흐르는 빙상 DNA

▼ 빙상 가족의 일원인데, 자연스럽게 선수가 됐나요, 아니면 부모님이 끌어주셨나요.

“그냥 자연스러웠어요. 스케이트를 신기 시작한 게 서너 살 때부터라고 들었어요. 어머니가 제가 어릴 때부터 스케이트 코치를 하셨으니까 동생 규현이랑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가면 스케이트를 신고 놀았죠. 그러다가 빙상반이 있는 리라초등학교를 다녔죠. 클럽 활동반 중에서도 선수반이 있었어요. 거기서 선수처럼 스케이트화 신고 유니폼도 갖춰 입고 시합도 뛰었고요. 시합 나가서 메달도 곧잘 따니까 주위에서 선수 해라 그러고 어머니도 아버지에게 선수를 시키자는 말씀을 하셨던 것 같아요.”

다른 언론사와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얘기를 했다. 어릴 때는 동생이랑 같이 스피드스케이팅을 했는데 어느 날 시합에 나가서 이규혁이 1등을 하고 동생이 2등을 했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그걸 보시고 한 명은 피겨를 해라, 형제끼리 경쟁하는 건 안 좋다고 얘기하니 둘 다 피겨를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는 것이다. 이규혁은 “피겨는 상황 자체가 따뜻해 보였다. 엄마랑 항상 같이 다닐 수 있고 엄마 주위에 누나들이 있어 예쁨 받으면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어가면서 운동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 아버지가 굉장히 엄격하셨지요?

“저는 많이 맞았어요. 경기장에 저희 부모님은 잘 안 나오셨어요. 1인자 소리 듣고 올림픽 도전하기 시작할 때부터 나오셨거든요. 아버지는 가끔 나오셨는데 그때 성적이 안 좋으면 많이 맞았죠. 가끔 나오시는데 잘못하면 맞으니까 그때마다 많이 긴장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머니도 저에게 부담 안 주시려고 이번에 밴쿠버에도 안 오신 것 같고요. 어머니가 요즘엔 굉장히 챙기세요. 어릴 땐 안 그랬어요. 제가 엄마한테 우스갯소리로 ‘엄마는 이제 와서 날 마마보이로 만드느냐’ 그러죠. 그 정도로 어릴 땐 안 챙겨주셨어요.”

▼ 직업 선수로 스케이트를 타는구나 하는 생각은 언제 갖게 됐나요.

“초등학교 때부터 소개받을 때 ‘스케이트 선수 이규혁’이 자연스러웠어요. 중학교 때 국가대표까지 됐으니 스케이트가 아닌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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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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