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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상 기자의 클래식 속으로 ③

가을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정현상 기자│doppelg@donga.com

가을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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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이 9월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를 연주하고 있다.

9월11일 방송된 MBC ‘나가수(우리들의 일밤-서바이벌 나는 가수다)’를 보다가 숨어 있는 클래식 곡을 우연히 발견했다. 가수 윤민수가 류재현과 편곡해 부른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중간에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 제1주제가 삽입돼 있었다. 윤민수의 노래는 절창이었지만 양희은의 원곡과 브람스 교향곡의 만남은 그다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양희은의 곡은 그 곡대로, 브람스의 곡은 또 그대로 맛과 향이 전혀 다른데, 그것을 중간에 변형 없이 덜컥 이어놓은 것이다.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은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곡이다. 포코 알레그레토(Poco allegretto·조금씩 조금 빠르게)가 지시하고 있듯 간절히 호소하는 듯한 첼로 선율이 곡을 이끌어가면 바이올린, 플루트가 그 주제를 이어받고 전체 오케스트라가 끝간 데 없는 깊이로 휘몰아간다. 이 곡을 들으면 낙엽 지는 숲 속의 호수, 나무 사이로 비쳐드는 햇빛, 개울을 흐르는 맑은 물, 산을 휘감아 도는 강, 서해의 석양, 천년이 넘은 함양 상림, 굽이치는 언덕과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 잉글랜드 요크셔데일이 떠오른다.

회의하고 고뇌하는 영웅

3악장은 오래전 개봉된 영화 ‘이수(離愁·1961년 제작)’의 주제곡으로도 쓰였다. 잉그리드 버그만, 이브 몽탕, 앤터니 퍼킨스가 주연한 이 영화의 원제는 ‘Goodbye Again’. 프랑스의 천재적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쓴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Aimez-vous Brahms?)’를 영화화한 것이다. 서른아홉 살의 성공한 실내장식가 폴(버그만 역)과 그녀를 사랑하는 스물다섯 살 청년 시몽(퍼킨스), 폴과 연인관계이면서도 다른 여자에 관심이 많은 로제(몽탕)가 엮어가는 사랑 이야기다. 영화에선 시몽의 열정과 고독이 잘 그려져 있다. 시몽은 브람스 같다. 스승인 슈만의 부인이자 자신보다 열네 살이나 많은 피아니스트 클라라를 평생 흠모하며 지켜준 브람스. 시몽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물음이 담긴 편지를 폴에게 보내며 데이트를 신청한다.

영화 속에서 3악장은 피아노곡으로 편곡돼 영화 분위기를 이끈다. 이브 몽탕이 여기에 ‘그대 내 곁에서 잠들 때(Quand tu dors pres de moi)’라는 가사를 붙여 부른 곡은 큰 인기를 얻었다. 이브 몽탕의 중후한 목소리가 상념에 젖게 하는 가을 느낌이다. 몽탕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가수 달리다(Dalida)는 이 곡을 좀 더 흥겨우면서도 허무한 느낌으로 불러 묘한 매력을 안겨준다. 윤민수도 원곡의 주제를 살리면서도 독창적인 편곡 실력을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클래식 연주회를 찾아다닌 지 스물 몇 해. 브람스 교향곡 3번을 오케스트라의 실황연주로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의 다른 교향곡들과 달리 유난히 이 곡은 잘 연주되지 않았다. 드물게 이 곡이 공연돼도 어떤 날은 일에 쫓겨서, 또 어떤 날은 표를 구하지 못해 가지 못했다. 그러다 9월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처음 실황을 접했다.

음악 칼럼니스트 최은규씨는 이번 연주회 팸플릿에 ‘브람스의 교향곡 4곡 가운데 유일하게 (이 곡의) 4악장이 고요하게 마무리되는데, 그런 까닭인지 가장 덜 연주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하, 그게 하나의 이유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공연장에서도 고요하고 아름답고, 가슴을 후벼 파듯 잔잔하게 마무리되는 곡들은 관객의 호응이 적다. 마무리가 화려하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듯 강렬한 곡일수록 뜨거운 박수를 받는다. 조금 비약해본다. 교향곡 한 곡을 사람의 일생이라고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언제 끝나는지도 모르게 조용히 일생을 마무리하는 것(이를테면 브람스 교향곡 3번)보다 죽는 날까지 화려하게 살다(브람스 교향곡 1,2,4번) 가고 싶은 것 아닐까.

브람스가 살아 있던 당대엔 교향곡 3번이 그의 다른 교향곡들보다 더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음악평론가 한슬리크의 평을 요약하면 이렇다.

“많은 음악애호가는 거대한 교향곡 제1번의 힘을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향곡 제3번은 예술적인 완벽함으로 내게 충격을 주었다. 오케스트레이션은 더 풍부하며 새롭고 매혹적이다. 브람스가 매우 능숙하게 구사했던 상반된 리듬의 조합은 자유롭게 구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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