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6년 만에 독주회를 연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이후 어떤 음악이 어느 때에 어울릴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하게 됐다. 현악3중주, 피아노4중주 같은 실내악곡은 분명 햇볕 따스한 오후 시간에 어울린다. 공부하거나 책 읽을 때는 바흐나 비발디 같은 바로크 시대 음악이, 운동할 때는 오페라 음악이, 잠이 잘 오지 않을 때는 라르고나 아다지오 빠르기의 곡들이 제법 적합하다고 생각해왔다.
라디오나 인터넷 음악방송을 들어보면 약속이라도 한 듯 아침엔 조금 활달한 곡들이, 한낮엔 무거운 교향곡이, 저녁엔 아늑하거나 처연한 곡이 주로 나온다. 오전 9시 KBS 1FM ‘장일범의 가정음악’처럼 특정 분위기의 곡에 한정하지 않고 풍성한 음악적 즐거움을 안겨주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그 나름의 자장(磁場)이 그 시간에 형성된다. 아침에 인터넷으로 영국 라디오 ‘클래식에프엠(Classic FM)’을 듣는 경우가 있는데 그 시각 영국은 깊은 밤이다. 추운 겨울 아침, 저녁 분위기의 잔잔한 곡들을 듣는 기분도 나쁘진 않다.
클래식 음악이 어느 때, 어느 곳에서 효과적인지에 대해선 제법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모차르트의 소나타 음악이 학습능력을 향상시킨다는 ‘모차르트 효과’뿐 아니다. 불가리아 심리학자 게오르기 로자노프는 1분에 60박자 정도의 패턴을 갖는 바로크 음악을 들으며 외국어를 공부할 때 큰 효과가 있다고 했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찰스 에머리 박사는 동맥경화증 환자가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며 운동할 경우 음악 없이 운동하는 것보다 말하는 능력이 두 배 이상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고교시절 그 친구는 클래식 음악이 어울리는 장소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던 듯하다. 사람들은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식당에서 그렇지 않은 곳에서보다 술과 음식을 더 많이 시켜 먹는다는 연구도 있다(노스 박사 등, 2003년). 음악 감상 자체에 대한 학습능력이 깊어지는 자리는 연주회장만한 곳이 없다. 훨씬 능동적인 감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예기치 않은 감동을 선사받을 때가 많다.
지난 연말(12월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복귀 무대에서였다. 그가 2005년 손가락 부상으로 무대를 떠난 뒤 6년 만의 공식 독주회였기 때문에 팬들의 기대도 커서 합창석까지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그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을 연주할 때였다. ‘바이올린의 여제’라는 별칭을 얻고 있는 그가 갑자기 사레들려 기침 때문에 2~3분간 연주를 중단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 돌연한 ‘사건’의 원인을 짐작할 만한 내용이 프로그램 팸플릿에 적혀 있었다.
“이 곡은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세 곡 중 가장 향수 어리고, 음악적으로 무르익고 아름다운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시던 작품이기도 합니다.”(정경화)
자신을 훌륭한 음악가로 키워준 어머니를 수개월 전에 여의고, 부상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았던 무대에서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곡을 연주하면서 그는 울컥했던 것일까. 이후 정경화는 6곡의 앙코르곡으로 기립박수를 이끌어내며 감동적인 무대를 선사했다.
클래식 음악을 때와 장소에 한정해서 그 어울림을 따지는 일은 주관적인 면이 강하다. 다만 클래식 음악이 인간에게 심미적으로뿐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분명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