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호

트렌드

외로움 관리산업 전성시대

‘혼자 먹는 쌍쌍바’로도 안 풀리는 외로움, 어쩌지?

  • 입력2018-09-09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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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체 가구 중 30% ‘나홀로’ 세대

    • ‘혼자는 좋지만 외로운 건 싫은’ 사람들

    • 상담 비중 늘린 정신과, 고민상담앱, 심리 카페 인기

    • 반려로봇, AI 스피커 등 아이디어 상품 전성시대

    소니의 반려로봇 ‘아이보’(왼쪽).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가 
로봇개와 산책하는 모습. [소니 제공, 제프 베이조스 트위터]

    소니의 반려로봇 ‘아이보’(왼쪽).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가 로봇개와 산책하는 모습. [소니 제공, 제프 베이조스 트위터]

    1979년 우리나라에 첫선을 보인 빙과 ‘쌍쌍바’는 아이스바 하나에 막대기 두 개를 꽂은 독특한 모양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포장지에 ‘정답게 둘이서 나누어 먹는 쌍쌍바’라고 쓰여 있을 만큼 ‘커플템’의 대명사로 통했다. 그 ‘쌍쌍바’가 올여름 ‘혼자 먹는 쌍쌍바’로 다시 태어났다. 여전히 스틱 두 개짜리 ‘쌍쌍바’가 판매되긴 하지만, 솔로용 ‘쌍쌍바’가 출시된 건 ‘달라진 세상’을 보여주는 한 가지 지표다. 

    온 가족이 같이 먹는 아이스크림의 고전 ‘투게더’ 또한 최근 1인용 제품을 내놓았다. ‘투게더 시그니처’라는 이름의 이 아이스크림은 용량이 일반 ‘투게더’의 8분의 1 수준이다. 식구들이 둘러앉아 ‘하나씩 벗겨 먹던’ 엑설런트 역시 2015년부터 컵에 담긴 개인용 제품 ‘엑설런트 바닐라의 꿈’을 판매 중이다. 

    한때 여럿이 나눠 먹는 제품으로 시장을 선도하던 빙과업체들이 앞다퉈 솔로 타깃 상품을 출시한 이유는 간단하다. 다수가 아이스크림을 같이 먹을 일이 점점 줄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가구 유형은 1인가구(27.9%)다. 1995년 12.7%에 불과하던 1인가구 비중은 꾸준히 증가세다. 통계청은 2045년이면 1인가구 비중이 36.3%로 전체 가구의 3분의 1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싱글슈머 전성시대

    에릭 클라이넨버그 미국 뉴욕대 사회학과 교수가 쓴 ‘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에 따르면 과거 사회에서 ‘솔로’는 불편한 존재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혼자로도 부족함이 없어서 남들과 나눌 필요가 없는 사람은 (중략) 필시 짐승이거나 신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싱글은 경제활동의 중심이다. 클라이넨버그 교수는 앞의 책에서 ‘2010년 미국 성인 싱글의 인당 연평균 소비액은 무자녀 및 유자녀 가족 부부의 인당 소비액보다 높다’ ‘고소득 싱글족이 증가하면 이들의 경제적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혼자(single) 소비하는 사람(consumer)을 뜻하는 이른바 ‘싱글슈머’ 대상 시장이 급성장 중인 건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1인가구 증가세가 앞으로도 꺾이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50세까지 한 번도 결혼한 적 없는 사람의 비율을 뜻하는 ‘생애미혼율’이 치솟고 있는 게 한 근거다. 2000년 이전 우리나라 생애미혼율은 남녀 모두 1% 안팎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 수치가 크게 높아졌다. 남성의 경우 2010년 5.8%, 2015년 10.9%였다. 2035년에는 29.3%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남성 3명 중 1명이 50세까지 한 번도 결혼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여성의 생애미혼율 또한 2035년에는 19.5%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통계청은 2037년부터 여성가구주 중 미혼자의 수가 배우자가 있는 사람 수보다 많아지기 시작하고, 2045년에는 그 비중이 각각 미혼(28.5%), 유배우자(25.5%), 사별(25.2%), 이혼(20.7%) 순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 2015년 이미 생애미혼율이 남성 23.4%, 여성 14.1%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사별, 이혼 등으로 홀로 살게 되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1인가구 수는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다. 

    급증하는 1인가구는 왕성한 소비력으로 경제성장을 이끌고, 부동산 시장 또한 떠받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1인가구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산업 트렌드를 분석한 책 ‘1코노미’를 펴낸 이준영 상명대 교수는 “1인가구는 이제 단순한 인구통계학적 현상에 머물지 않고 경제·사회·문화·정치 구조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1인가구 증가에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리서치에서 4월 18~20일 19세 이상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7%가 지난 한 달간 외로움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7%는 ‘거의 항상’, 19%는 ‘자주’, 51%는 ‘가끔’ 외로움을 느꼈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1인가구는 외로움을 느낀 비율이 더욱 높았다. 응답자 중 10%만 ‘외로움을 느끼지 못했다’고 답했고, 41%는 외로움을 ‘거의 항상’(11%) 또는 자주(30%)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롭지만 외로운 사람들

    정정엽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왼쪽)이 심리 문제를 상담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정정엽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왼쪽)이 심리 문제를 상담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연령대별로 보면 젊을수록 외로움을 호소하는 비율이 높았다. 20대 응답자의 40%는 항상(7%) 또는 자주(33%) 외로움을 느꼈다고 답했다. 30대(29%), 40대(24%), 50대(20%), 60대(17%)가 뒤를 이었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분석전문위원은 이에 대해 “이번 조사 결과 외로움은 근심, 무력감, 짜증, 분노 등을 수반해 행복감을 낮추고 결과적으로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고 고독사 문제도 심각한 만큼 더 늦기 전에 외로움 실태를 조사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 초 세계 최초로 외로움 담당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임명해 화제를 모은 영국은 실제로 이 수순을 밟아나가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영국 정부가 4월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다. 영국 16세 이상 인구 1만25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55%는 외로움을 거의(hardly ever) 또는 전혀(never) 느끼지 않는다고 답했다. 항상(always) 또는 자주(often) 외로움을 느낀다는 응답은 5%에 불과했다. 두 조사 결과를 단순 비교할 경우 우리나라 국민의 외로움 정도가 이 문제에 국가적 대응을 시작한 영국에 비해 훨씬 심각한 셈이다. 

    정정엽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정신과 전문의)은 “요즘 병원을 찾는 분 중 상당수가 ‘살아가는 데 아무 의미가 없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통을 호소한다. 겉으로는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으로 보이지만, 그 이유를 찾고자 상담해보면 마음속 깊은 곳에 외로움이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타인의 반응에 크게 영향을 받는 존재다. 자기가 아무리 잘해도 칭찬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삶의 의미를 잃게 된다. 최근 식이장애 환자가 늘어나는 배경에도 외로움이 있다. 혼자 사는 데 익숙해지면서 인간관계의 붕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이 또한 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서점가에서는 마음관리법을 다룬 책이 인기다.

    최근 서점가에서는 마음관리법을 다룬 책이 인기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1인가구로서의 자유로움은 누리면서 심리적 평화 또한 얻으려는 이들을 위한 ‘마음관리산업’이 크게 성장하는 분위기다. 미국 심리학자 피터 홀린스의 책 제목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포레스트북스)가 이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대변한다. 제목처럼 ‘혼자로서의 삶을 즐기되 외로움은 피하려면 어떤 마음자세를 가져야 할까’에 대해 알려주는 이 책은 3월 출간 후 오랫동안 각종 베스트셀러 순위 상위권을 지키며 화제를 모았다. 이후에도 서점가에는 유사한 스타일의 책이 잇달아 출간되고 있다. 

    6월 발간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흔)는 가벼운 정신질환을 앓게 된 저자가 정신과 전문의와 12주에 걸쳐 상담한 내용을 기록한 에세이다. 독립출판 형태로 출간된 이 책은 8월 초 유시민 작가의 ‘역사의 역사’(돌베개)를 제치고 각종 인터넷 서점 베스트셀러 종합 1위를 차지하며 인기몰이중이다. 

    자신을 ‘10년 넘게 기분부전장애(경도의 우울증)와 불안장애를 앓으며 정신과를 전전했고, 2017년 잘 맞는 병원을 찾아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병행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저자 백세희 씨는 이 책에서 정신과 의사를 만나 ‘혼자가 좋은데 혼자가 싫은 감정’은 왜 생기는지 묻는다. 이에 대한 의사의 답은 ‘당연한 감정’이라는 것. 의사는 백씨에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많은 이가 그런 감정을 느낀다.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지만 나만의 공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최근 우울감에 빠져 있다가 주위 추천으로 이 책을 읽었다는 직장인 김지영(42) 씨는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치료 기록을 내가 왜 읽어야 하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읽다 보니 내가 정신과 의사를 만난다면 묻고 싶었던 질문을 저자가 대신 해준 것처럼 느껴지는 대목이 많았다. 내가 겪는 감정이 보편적인 것임을 알게 되면서 마음이 다소 편안해졌다”고 털어놓았다. 

    정정엽 원장은 이것이 정신과 치료의 긍정적인 효과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병원에 가서 의사와 대화를 좀 나눈다고 내 마음의 고통이 줄어들 리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문가와의 대화를 통해 자기가 가진 고통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훨씬 편안해지는 걸 느끼게 된다”고 밝혔다. 정 원장이 2015년 동료들과 함께 ‘정신의학신문’(www.psychiatricnews.net)을 만든 건 이 때문이다. 현재 정신과 전문의 약 100명이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 사이트에는 새로운 글이 꾸준히 올라온다. ‘퇴근하면 모든 것이 귀찮은 자아 고갈 상태’ ‘우울증-의사의 언어 vs 환자의 언어’ 등 현장감 있고 구체적인 내용이 많다. 이에 따라 점점 입소문이 나면서 사이트 방문자 수가 수직 상승하고 있다는 게 정 원장의 설명이다.

    상담이 주는 위로

    익명으로 심리 상담을 해주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마인드카페’. [홈페이지 캡쳐]

    익명으로 심리 상담을 해주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마인드카페’. [홈페이지 캡쳐]

    최근에는 심리 문제를 가진 사람이 이 사이트 익명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 정신과 전문의가 답변을 달아주는 서비스도 시작했다. 정 원장은 “게시판 이용자에게 별도 비용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글을 쓰는 의사에게 원고료도 주지 않는다. 이 사이트에 참여하는 의사들은 정신과 문턱을 낮춰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질환을 편안하게 치료할 수 있도록 도우려는 취지에 공감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정신과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드는 경향이 보인다. 7월부터 정신과 진료비 수가 체계가 개편돼 환자 부담이 줄고 의사들은 좀 더 상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만큼, 정신적 고통을 겪는 분들이 좀 더 편한 마음으로 병원 문을 두드리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익명으로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도 인기다. 2016년 서비스를 시작한 ‘마인드카페’ 개발사 ‘아토머스’(김규태 대표)는 이 플랫폼을 “심리적 어려움을 가진 사람이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상담 전문 자격증 취득자 등 이 회사가 정한 기준을 충족한 상담사를 채용해 모바일 상담을 제공하는 이 애플리케이션의 가입자는 40만 명에 이른다. 서울 홍대 앞, 대학로 등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에서는 심리진단, 성격분석 등을 해주는 이른바 ‘심리 카페’도 유행이다.

    반려로봇과 함께하는 노후

    반려로봇 소니 아이보(왼쪽)와 서큘러스 파이보. [소니 제공, 인스타그램 캡쳐]

    반려로봇 소니 아이보(왼쪽)와 서큘러스 파이보. [소니 제공, 인스타그램 캡쳐]

    최근 성장 중인 외로움 관리 산업의 또 다른 분야는 ‘반려로봇’이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가 3월 SNS에 로봇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진을 올리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로봇은 소니가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 국제가전전시회(CES)에서 공개한 강아지형 로봇 ‘아이보(aibo)’다. 길이 30.5cm, 높이 29.3cm, 폭 18cm에 무게는 약 2.2kg으로 가정에서 키우는 반려견과 외견상 크게 다르지 않은 이 로봇은 등, 눈, 귀 등에 탑재된 센서를 이용해 사람과 교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등을 쓰다듬으면 꼬리를 흔들고, 공을 던지면 그 방향으로 아장아장 걸어가는 식이다. 아이보의 더욱 특별한 점은 음성과 공간 특징을 식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자신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 목소리에 우선적으로 반응하고, 집 안에서 장애물을 피해 돌아다닌다. 진짜 반려견과 다를 바 없이 행동하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트랙티카’는 인간과 교감하는 로봇을 비롯한 세계 개인 서비스용 로봇 시장이 연평균 20%씩 성장해 올해는 45억7000만 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의 주된 수요처는 급증하는 노인 1인가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말 펴낸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미래 가족 변화의 사회경제적 영향과 정책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그동안 젊은 층이 주도한 1인가구 증가세를 2020년부터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이끌어갈 전망이다. 2015년 현재 120만3000명인 ‘독거노인’ 수는 2065년이 되면 381만5000명으로 3배 이상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전체 1인가구의 절반 이상(53.6%)을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게 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인재근(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최근 5년간 65세 이상 1인 가구 현황자료’를 봐도 2017년 기준 전체 독거노인 수는 134만 명으로 5년 전(111만 명)보다 23만 명 많아졌다. 이는 우리나라를 넘어선 세계적 현상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스타트업 ‘서큘러스’가 만든 눈사람 모양 로봇 파이보, 영국 ‘콘스퀀셜 로보틱스’와 셰필드대가 함께 개발한 강아지형 로봇 ‘미로(MiRo)’ 등 다양한 반려로봇이 쏟아지고 있다. IoT 기술을 이용해 사람과 기초적인 수준의 대화를 나누는 인공지능(AI) 스피커도 꾸준히 출시된다. 바야흐로 기술이 인간을 위로하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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