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史記에 길을 묻다

외교는 ‘자주적 예술’이다 上

칼춤이 노린 것은 ‘천하를 빼앗을 자’

  • 김영수 | 사학자, 중국 史記 전문가

외교는 ‘자주적 예술’이다 上

2/2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외교는 ‘자주적 예술’이다  上

‘홍문연’ 벽화. 항장과 항백의 검무를 그렸다. 오른쪽은 ‘홍문연’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번쾌.

식량 부족에 시달리던 항우는 유방이 보낸 후생의 유세를 받아들여 홍구를 경계로 천하를 양분하고 휴전에 들어가기로 약속한 뒤 태공과 여후를 돌려보냈다. 그러나 유방은 약속을 깨고 항우를 추격했다. 한신과 팽월에게 큰 보상을 약속해 그들의 군대를 끌어들였고, 그들은 항우를 몰아붙여 해하에까지 이르렀다.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몰린 항우는 애첩 우희(虞姬)와 이별하는 노래를 부른 다음 애마 추와 800여 기병만 거느리고 포위를 돌파했다(그 유명한 ‘패왕별희(霸王別姬)’, 즉 ‘패왕(항우)과 우희의 이별’ 장면이다). 몇 차례 추격하는 한의 군사를 악전고투 끝에 물리쳤지만 28기만 남았다. 오강에 이른 항우는 하늘이 자신을 망하게 한다며 원망한 뒤 정장의 재기 권유도 뿌리친 채 목을 그어 자결한다. 이로써 5년에 걸친 초한쟁패는 절대 열세이던 유방의 역전승으로 끝나고 천하는 다시 통일됐다.
이제 항우와 유방의 운명을 바꾼 기원전 206년 홍문지연의 그날로 되돌아가보자. 이 사건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알려면 1차적으로 ‘사기’의 ‘항우본기’를 읽어야 한다. 사마천은 이 사건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히 묘사했다. 사건의 발단은 막강한 전력을 지닌 항우의 군대보다 유방이 먼저 진나라 수도 함양에 입성하자 화가 난 항우가 유방을 공격하려고 벼르는 것에서 시작된다. 다음은 ‘사기’의 관련 대목이다.

(항우가) 이어서 진의 땅을 공략해 평정시키려 함곡관에 이르렀으나 수비병이 있어 들어가지 못했다. 게다가 패공(沛公, 유방)이 이미 함양을 깼다는 보고를 받자 항우는 크게 성이 나서 당양군 등을 보내 함곡관을 공격하게 했다. 항우가 마침내 함곡관에 들어가 희수 서쪽에 이르렀다.
패공은 패상에 주둔하고 있어서 항우와 서로 만나지 못했다. 패공의 좌사마 조무상이 항우에게 사람을 보내 “패공이 관중의 왕이 되어 자영을 재상으로 삼아 진귀한 보물을 모두 다 차지하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항우가 몹시 노하여 “내일 병사들을 잘 먹이고 패공의 군대를 격파하리라”라고 말했다. (…) 범증은 항우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패공이 산동에 있을 때는 재물을 탐내고 여자를 좋아했는데, 지금 입관해서는 재물에는 손도 대지 않고 여자도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이는 그 뜻이 작은 것에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제가 사람을 시켜 그 기세를 살피게 했더니 용과 호랑이처럼 오색이 찬란한 것이 천자의 기운이었습니다. 서둘러 쳐서 기회를 잃지 마십시오.”

함양에서 유방 일행이 보여준 일사불란한 행동과 민심 회유책에 두려움을 느낀 항우의 책사 범증은 두 군대의 전력차가 뚜렷한 지금 유방 진영을 철저히 와해시킬 것을 강력히 건의했다. 그런데 이런 기밀이 항우의 숙부 항백에 의해 누설되는 뜻밖의 사태가 벌어졌다. 과거 장량에게 신세를 진 항백이 장량을 찾아 기밀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당황한 유방은 항백을 붙들고 그를 형님으로 모시는 것은 물론 혼인관계까지 맺겠다며 도움을 청했다. 항백은 이를 받아들이며 내일 홍문으로 와서 항우를 만나 사죄하라고 했다. 그 사이 항백은 항우 진영으로 돌아와 항우에게 유방을 극구 변호했다. 유방이 함양을 함락시킨 것은 큰 공을 세운 것이지, 항우에게 대항하기 위한 게 아니라는 논리였다. 항우는 범증의 건의는 까맣게 잊은 듯 항백의 말에 넘어갔다. 다음 날 유방은 항백의 충고대로 항우를 만나러 왔다.



죽음의 劍舞

패공이 이튿날 아침 백여 기를 대동하고 항왕을 만나러 왔다. 홍문에 이르러 사죄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신은 장군과 더불어 죽을힘을 다해 진을 공격했습니다. 장군께서는 하북에서 싸우시고, 신은 하남에서 싸웠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먼저 관중에 들어와 진을 무찌르고 이곳에서 장군을 다시 뵐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소인배의 말 때문에 장군과 신의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항왕이 “이는 패공의 좌사마인 조무상의 말 때문이오. 그렇지 않았다면 이 항적이 왜 이렇게까지 했겠소이까”라고 말했다.
항왕은 이날 패공을 머무르게 해 함께 술을 마셨다. 항왕과 항백은 동쪽을 향해 앉고, 아보는 남쪽을 향해 앉았다. 아보는 범증이다. 패공은 북쪽을 향해 앉고, 장량은 서쪽을 향해 배석했다. 범증이 여러 차례 항왕에게 눈짓하며 차고 있던 옥결을 들어 보이길 세 차례, 항왕은 말없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범증이 일어나서 나가며 항장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군왕이 모질지 못한 사람이다. 들어가면 앞으로 나가 축수를 올려라. 축수가 끝나면 검무를 청해 틈을 보다가 앉은 자리에서 패공을 쳐 죽여라. 그렇게 하지 못하면 장차 모두가 그에게 잡히고 말 것이다.”



항장은 바로 들어가 축수를 올렸다. 그러고는 “군왕과 패공께서 술을 드시는데 군중에 즐길 거리가 없으니 검무라도 출까 합니다”라고 했다. 항왕이 “좋다”고 하자 항장은 검을 뽑아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에 항백도 검을 뽑아 춤을 추는데, 몸으로 계속 패공을 감싸는 바람에 항장이 공격할 수 없었다.
이에 장량은 군문으로 가서 번쾌(樊噲)를 만났다. 장량은 “아주 급하오. 지금 항장이 검을 뽑아들고 춤을 추는데 아무래도 그 의도가 패공에게 있는 것 같소”라고 답했다. 번쾌가 “이거 급박하게 됐군. 신이 들어가 목숨을 걸고 싸우겠소”라고 했다.
번쾌가 곧장 검을 차고 방패를 들고는 군문으로 들어갔다. 위병들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창으로 막자 번쾌는 방패 모서리로 쳐서 위병을 쓰러뜨렸다. 드디어 안으로 들어가 장막을 걷고 서쪽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항왕을 노려보는데, 머리카락은 하늘로 곤두서고 눈꼬리는 찢어질 것 같았다.
항왕이 검을 짚고 무릎을 세워 앉으면서 “그대는 뭣 하는 자인가”라고 물으니, 장량이 “패공의 참승 번쾌라는 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항왕이 “장사로다! 그에게 술을 내려라”라고 했다. 바로 큰 술잔에 술이 나왔고, 번쾌는 고맙다는 절과 함께 일어나 선 채로 다 마셨다. 항왕이 “장사, 더 마실 수 있겠는가”라고 물으니 번쾌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도 피하지 않는 신이 술 한 잔을 어찌 사양하겠소이까! (…) 지금 패공께서 먼저 진을 깨고 함양에 들어가셔서 추호도 물건에 손을 대지 않고 궁실을 단단히 봉쇄한 다음 패상으로 철군해 대왕께서 오시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일부러 장수를 보내 관문을 지키게 한 것은 도적들의 출입과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힘들게 높은 공을 세웠는데도 제후로 봉하는 상은 없을망정 소인배의 헛소리를 듣고 공을 세운 사람을 죽이려 하다니 이는 멸망한 진의 뒤를 잇는 짓이니 대왕께서 취할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천하를 빼앗을 자, 패공”

항왕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앉으라”고 했다.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패공이 측간에 간다며 일어나 번쾌를 밖으로 불러냈다. 패공이 나간 뒤 항왕은 도위 진평에게 패공을 불러오게 했다. 패공이 “바로 나오느라 작별 인사도 하지 않았는데 어찌 하면 좋겠는가”라고 하자 번쾌는 “큰 일에서는 자잘한 것은 따지지 않고, 큰 예의에서는 작은 나무람 정도는 겁내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저쪽은 칼과 도마이고 우리는 물고기 신세인데 무슨 작별 인사랍니까”라고 했다.
이에 그곳을 떠나면서 장량에게 남아서 사죄하게 했다. 장량이 “대왕께서 선물은 갖고 오셨습니까”라고 물었다. 패공은 “항왕에게 주려고 백벽 한 쌍과 아보에게 주려고 옥두 한 쌍을 가지고 왔는데 지금 그 성난 모습을 보고는 감히 올리지 못했지. 공이 나 대신 바치시오”라고 했다. 장량은 “삼가 받들지요”라고 했다.
이때 항왕의 군대는 홍문 아래에, 패공의 군대는 패상에 있어 서로 40리 떨어져 있었다. 패공은 수레와 말을 버려둔 채 몸만 빠져나와 혼자 말을 탔고, 번쾌·하후영·근강·기신 등 4명은 검과 방패를 지니고 걸어 여산을 내려와 지양의 샛길을 거쳐 왔다.
그에 앞서 패공은 장량에게 “이 길로 우리 군영까지는 20리에 지나지 않소. 내가 군중에 도착했다고 생각되면 공이 바로 들어가시오”라고 일러뒀다. 패공이 떠나고 샛길로 군중에 도착할 때가 되자 장량은 안으로 들어가 사죄하며 이렇게 말했다.

패공께서 술을 이기지 못하여 작별인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삼가 신 장량에게 백벽 한 쌍을 받들어 대왕 족하께 재배의 예를 올리며 바치게 하셨고, 옥두 한 쌍은 대장군 족하께 재배의 예를 올리며 바치게 하셨나이다.

항왕은 “패공은 어디에 계신가”라고 물었고, 장량은 “대왕께서 잘못을 나무라실 것 같다는 말을 듣고는 혼자 빠져 나가셨는데 군중에 이미 도착했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항왕은 바로 백벽을 받아 자리 위에 뒀지만, 아보는 옥두를 받아 바닥에 놓고는 검을 뽑아 그것을 깨부수며 “에잇, 어린애와 함께 일을 꾀하는 것이 아닌데…. 항왕의 천하를 빼앗을 자가 있다면 틀림없이 패공이다. 이제 우리는 모두 그의 포로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패공은 군영에 당도하자마자 즉시 조무상을 베어 죽였다. 〈다음 호에 하편이 이어짐〉




신동아 2016년 4월호

2/2
김영수 | 사학자, 중국 史記 전문가
목록 닫기

외교는 ‘자주적 예술’이다 上

댓글 창 닫기

2019/07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