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호

집중분석

퇴화하는 대통령후보 말솜씨

  • 정해윤|시사평론가 kinstinct1@naver.com

    입력2017-04-19 14: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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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 ‘불통 좌파 대통령’ 자질 충분
    • 安 ‘루이 암스트롱’ 발성에 ‘냉무’
    • 洪 ‘스트롱’ 하지 않은 스트롱맨?
    서양엔 세련된 화술을 갖춘 대통령이나 총리가 적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가지도자급 정치인들의 말솜씨는 오히려 퇴보하는 것 같다. 이젠 장외집회에서 준비된 원고 없이 사자후를 토하던 김대중 같은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김종필처럼 인구에 회자될 유행어를 남기는 이도 없다. 말을 잘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언감생심이고 실언이나 하지 않기를 바라는 세태가 됐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이하 문재인)는 퇴화된 화술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우리 국민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통에 학을 뗐는데, 문재인은 ‘불통 좌파 대통령’이 될 충분한 자질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은 두 차례 유력 정당 대선 후보와 한 차례 당 대표를 역임한 중량감에 비해 화술이 너무 떨어진다는 평가다. 가끔 선거 캠프에서 말실수를 해 비상이 걸리기도 했는데 대통령후보가 된 후로는 구설을 자초한다. 그의 가장 큰 약점은 애드리브에 약하다는 것이다. 즉, 그는 사전에 써놓은 원고가 없으면 말실수를 자주 한다.

    3월 KBS TV ‘대선후보 경선토론’에서는 군 시절 표창을 받은 사실을 자랑하며 “전두환 장군”이라고 지칭해 호남 민심을 자극했다. 후보 선출 직후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극성 지지자들이 상대편 후보 진영에 보낸 문자폭탄을 “양념”이라고 표현했다. 당연히 경쟁 후보 측을 격분시켰다.



    ‘삼디프린터’와 홍길동이 무슨 상관?

    “3D프린터”를 문재인은 “삼디프린터”로 발언하기도 했다. 이 용어는 4차 산업혁명과 함께 널리 보도됐으며 “스리디프린터”로 불린다. 논란이 일자 문재인 캠프 측은 홍길동을 인용하는 해명을 내놓았는데, 몇몇 사람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정부기관 관계자는 “나도 3D프린터를 삼디프린터로 부르곤 했다. 나는 3D프린터의 개념조차 모르니까”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문재인이 3D프린터의 개념도 모르는 것 아니냐고 비꼰 것이다.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는 문재인의 삼디 발언에 대해 “대통령이 될 자질이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은 4월 11일 통신비 절감 공약을 발표하면서 5세대 이동통신인‘5G(Generation)’을 “오지”로 발음했다. 삼디에 이은 오지.

    “이쯤이면 실수로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유승민(바른정당 대통령후보)은 “제가 비서에게 ‘에이사(A4) 용지 좀 달라’고 했더니 못 알아듣네요”라고 촌평했다. 캠프에서도 이런 약점을 인식하는지 가능하면 준비된 원고만 읽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토론방식이 미국식 스탠딩 토론으로 바뀌는 등 그 자신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문재인 캠프를 격앙시킨 문재인 치매설도 그의 동문서답이 빌미를 준 측면이 있다.

    3월 여성의 날 행사에 참석했을 때는 한 장애인이 등장해 돌발 질문을 던졌다. 장애인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 폐지에 관한 후보들의 의견을 물었는데 이재명, 안철수, 심상정 후보 순으로 답변한 후 문재인이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생각할 시간이 가장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맥락과 상관없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해당 동영상이 인터넷에 떠돌며 댓글 창은 갑론을박으로 떠들썩했다. 

    원고 없는 상황에 대한 자신감 결여는 불통 논란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10월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 회고록이 문제가 됐을 때 그는 “기억이 안 난다”는 불성실한 해명으로 보수진영의 질타를 받았다. 한 기자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재차 질문했을 때 “그 질문은 안 하기로 했죠?”라고 말을 자르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이런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언론·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홍준표 과소평가됐다?

    홍준표(자유한국당 후보)가 대통령후보로 결정된 후 가장 많이 나오는 평가는 트럼프를 흉내 낸다는 것이다. 이는 그를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그의 어록을 보면 어쩌면 트럼프를 능가하는 막말을 해온 듯하다. 보수정당 남성 정치인 중 몇몇은 여성비하 발언으로 정치생명에 치명상을 입었다.

    홍준표가 아직 정치생명을 이어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2009년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향해 “일하기 싫으면 집에 가서 애나 보든지 배지를 떼라”고 했다. 2011년 대학생들과 만나서는 “이대 계집애들 싫어한다”고 했다.

    이런 전력을 가진 인물이 대통령후보로 나섰으니 독한 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의 독한 말은 득표엔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고 있다. 홍준표는 대선 초반 ‘양아치 친박’이라는 뜻으로 “양박”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춘향인 줄 알았는데 향단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정치 전문가들은 “극우든 친박이든 보수층을 결집해야 하는데 홍 후보가 자기 기분에 못 이겨 거꾸로 갔다. 지지율이 안 오르는 이유가 다 있다”고 분석한다. 홍 후보의 가벼운 말은 보수정당의 쇠락을 상징하는 것으로 비친다.   

    그러나 몇몇 정치권 인사는 홍 후보의 어투를 긍정적으로 평하기도 한다. “홍준표는 좌파진영을, 문재인을, 안철수를 촌철살인의 어투로 속 시원하게 공격한다. 보수층은 홍준표의 말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다시 ‘조곤’ 모드로


    첫 대선후보 토론이 4월 13일 열렸다.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 홍준표 두 후보와의 맞대결을 준비한 듯했다. 몇몇 질문에 미리 예상하고 있던 것처럼 답변했고 대체로 선방했다. 그러나 두 약소후보와의 토론에서 실수를 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질문에 문재인은 ‘이재용 부회장’을 ‘이재명 부회장’으로 잘못 지칭하면서도 실수를 깨닫지 못했다. 또한 유승민을 ‘유시민’이라고 부른 뒤에도 주변에서 정정해줄 때야 실수를 인지했다. 안철수는 루이 암스트롱 발성을 못하게 되자 다시 조곤거리는 모드로 돌아갔다. 문재인 후보에게 안철수를 지지하는 이들이 적폐 세력이냐는 질문을 던진 것은 이날 토론의 하이라이트였다.

    여기서 안철수는 문재인을 더 거세게 몰아붙였어야 함에도 오히려 밀렸다. 북한이 촛불집회를 우호적으로 보도하면 촛불집회가 북한과 가까우냐는 비유도 와 닿지 않았다. 그의 말에는 투지가 부족해 보였다. 홍준표는 스트롱맨 이전에 팩트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저격수였다.

    하지만 이날은 어느 쪽 이미지도 살리지 못했다. 문재인에게 “집권하면 북한 먼저 가겠다는 말을 취소하겠다는 거냐”고 묻자 문재인은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안 가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자 홍준표는 당황한 듯 뜸을 들였다. “민간이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 좌파 정권의 반기업 정서 때문이 아니냐”고 질문했다가 “차떼기 정당만 하겠느냐”는 반격을 받았다.

    홍준표는 우물쭈물 시간을 끌다 끝내고 말았다. 10분이면 문재인을 제압한다던 호언장담과 달리 수세에 몰렸다. 홍준표는 ‘스트롱하지 않은 스트롱맨 아니냐’는 의구심을 남은 대선 기간에 불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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