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호

프리츠커 프로젝트

시간의 속살을 엿볼 수 있는 오래된 현재

서울시립대 선벽원(善甓苑)

  • 글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사진 · 조영철 기자 korea@donga.com 사진작가 · 신경섭

    입력2017-05-11 16:33: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장소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로 163
        개관  2013년 3월 11일
        수상  2013년 올해의 건축 Best 7, 서울시건축상 최우수상, 리모델링건축대전 우수상
        디자인총괄  이충기




    “너와 함께한 모든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드라마 ‘도깨비’ 속 도깨비의 이 대사가 가슴에 사무치는 이유는 무얼까. 본시 도깨비는 오래된 물건에 깃든 물성(物性)이 인격화한 존재다. 동아시아 영혼관에서 인간의 영(靈)은 탯줄을 타고 태아 몸속에 들어가 둘로 나뉜다. 정신을 주관하는 혼(魂)과 육신을 관장하는 백(魄)이다. 사람이 죽으면 혼은 바로 분리된다. 반면 백은 육신에 대한 애착으로 쉬 분리되지 못한다. 문제는 혼과 백이 합쳐져 다시 영이 돼야 귀천의 길이 열린다는 점. 그래서 혼은 백이 육신에서 분리될 때까지 무덤가를 떠도는 도깨비불로 출몰하고 백은 썩어가는 육신에 머물기에 흉측한 형상의 귀신으로 출현한다.

    도깨비는 백이다. 인간 육신이 아니라 오래된 사물에 깃든 백이다. 빗자루와 부지깽이, 절굿공이처럼 오랜 세월 사람의 손때 묻은 사물에 사람의 피가 묻어 도깨비가 된다는 말이 나온 이유다.



    백은 정이 깊다. 도깨비가 사람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사람에게 뜻밖의 선물을 안길 때가 많은 이유다. 이는 오래된 물건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애착의 반영이다. 따라서 도깨비의 저 대사는 모든 것을 무화시키는 시간의 법칙(물리학 용어로 ‘엔트로피의 법칙’이라 한다)을 이겨내고 우리 곁을 지켜온 ‘오래된 것들’에 대한 경의로 풀어낼 수 있다.

    근대화란 곧 엔트로피의 법칙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뭐든지 빨리 짓고 만들 듯 해체하고 폐기하는 속도와 양이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화와 더불어 오래된 것들에 깃들던 도깨비가 자취를 감춰버릴 수밖에.



    하지만 최근 들어 ‘오래된 것’을 낡고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것을 멈추고 귀하고 드문 것으로 바라보는 변화가 생기고 있다. 건축계에서 이런 변화는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확산되고 있다. 옛 건물을 허물고 그 위에 새 건물을 짓는 재건축이나 재개발이 아니라 그 공간에 머문 시간의 흔적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새 용도에 맞게 고쳐가는 것이다. 서울역 고가도로를 차도가 아니라 인도로 바꾸는 ‘서울역 7017 프로젝트’나 세운상가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현대적 공간으로 재창조하려는 ‘다시 세운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이런 재생의 건축미학을 선도적으로 보여준 건물이 서울시립대의 선벽원(善甓苑)이다. ‘착한 벽돌 동산’이란 뜻의 선벽원은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서울시립대 캠퍼스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 있다. 높고 육중한 현대적 건물 사이에 제법 높게 뻗은 자작나무와 소나무로 빙 둘러싸인 단층 구조의 붉은 벽돌 건축물 3채다.

    단아한 기품이 서린 이 건물들은 80년 전 서울시립대의 원형이 담긴 공간이다. 1937년 서울시립대의 전신인 경성공립농업학교 시절 본관(현재의 경농관)과 교실(현재의 박물관), 강당(현재 자작마루라는 이름의 강당)이었다. 일제강점기 목조 트러스트 구조에 단열재를 쓰지 않고 벽돌을 쌓아 세운 이 건물들은 오랜 세월과 싸우면서 점차 허물어지고 비틀어졌다.



    천장은 자체 무게뿐 아니라 당시에 없던 냉난방 및 조명 설비와 전시용 철제 가설물로 인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내부 공간은 벽돌벽 위에 시멘트벽을 덧세워 쓰다보니 비좁고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임시 보강공사에 한계를 느낀 대학당국은 사실상의 해체와 재건축 수순을 밟으려 했다.

    이때 이충기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가 나섰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목조 트러스트 벽돌주택 재생 프로젝트에 참여해온 이 교수는 시간의 때가 내려앉은 이들 건물 고유의 매력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안전성과 실용성을 부여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핵심은 나무와 벽돌을 최대한 부각하는 것이었다. 천장의 경우 각종 설비와 가설물, 그리고 목조 트러스트를 가리고 있던 석고보드까지 들어냈다. 자연 방습 및 방제 효능을 지닌 목조 트러스트 구조가 시원스럽게 드러나면서 천장이 훨씬 높아지는 효과가 발생했다. 또 외벽에 단열재를 덧대는 대신 내부의 시멘트벽을 허물고 붉은 벽돌로 이뤄진 속살을 한껏 드러냈다. 그 결과 고풍스러우면서도 온기가 감도는 실내 공간이 창출됐다.

    실제 시립대 캠퍼스에서 선벽원으로 들어서면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울창한 나무와 온갖 봄꽃으로 둘러싸인 그곳에서 100년 가까운 세월이 온축된 건물이 마치 숲의 시원지(始原地)와 같은 신비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날이 좋아 햇살 아래 눈부시고, 날이 좋지 않아 비바람을 막아주고, 날이 적당해 멋진 추억의 배경이 되어주는 이런 곳에서야말로 공유를 닮은 멋진 도깨비 하나 만날 날을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