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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노회찬의 동지’ 주대환이 말하는 新혁명론

“민주노총·전교조는 상위 10% 기득권… 노동·연금개혁으로 이중구조 깨뜨려야”

  •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노회찬의 동지’ 주대환이 말하는 新혁명론

  • ● 자영업자·청년·하도급 노동자 ‘현대판 소작농’
    ● 최저임금 인상? 소작료 올려준 격
    ● 지주-소작제 혁파로 번영 이뤄낸 대한민국
    ● 1987년 체제 무너뜨리는 혁명 필요해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주대환(64)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노회찬의 동지’다. 주대환은 1987년 노회찬(향년 62· 7월 23일 작고)과 함께 인천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을 결성해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혁명을 꿈꿨다. 주대환, 황광우가 지도부를 구성했고 노회찬은 조직부장을 맡았다. 인민노련은 당시 노동운동 최대 지하조직이다.


“동지들과 안타까움 나눴다. 편안하시라!”

노회찬이 현장의 리더라면 주대환은 이론가다. 주대환은 1987년 전후 ‘김철순’이라는 가명으로 혁명을 선동하는 글을 썼다. 1992년 한국노동당 창당준비위원장, 2004년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을 지냈다. 노회찬과 주대환은 사회주의가 몰락하자 ‘노동자 혁명’에서 ‘선거 혁명’으로 노선을 전환했다. 주대환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성과와 소련 붕괴를 근거로 합법 정당 노선을 주창하면서 이론적 갈등의 한복판에 섰다. 노회찬은 주대환과 같은 길을 걸었다. 

주대환은 1954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마산고·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1979년 부마항쟁을 비롯한 다수 사건으로 투옥됐다. 1987년 6월에는 ‘살인·강간·고문 정권 타도를 위한 인천노동자투쟁위원회’를 조직해 활동했다.


조봉암의 길

주대환은 노회찬보다 두 살 위다. 

“인민노련 시절에는 나이도, 이름도,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도 몰랐습니다. 지하조직이니 모두 가명을 썼죠. 잡혀가 고문당해도 얼굴 생김새 외엔 털어놓을 게 없었습니다. 1986년부터 1992년까지 6~7년간 노회찬과 함께 생활했죠.” 

1990년대 진정추(진보정당추진위원회) 활동도 함께 했습니다. 

“그렇죠. 늘 같은 조직에 속했습니다. 2008년부터 다른 길을 걸었으니 20년 가까이 함께했네요. 상가에 옛 동지가 다 모였습니다. 지방에서 누가 온다고 하니 그다음 날에도 갔고, 그다음 날에도 또 갔습니다. 상주 노릇 비슷하게 4일을 지냈습니다.” 

주대환은 주사파 혹은 NL계열이 당권을 좌지우지하는 것 등에 환멸을 느껴 2008년 진보정당을 떠났다. 노회찬과 주대환은 그때부터 ‘옛 동지’가 됐다. 

노회찬이 세상을 떠난 후 ‘조봉암을 닮은 사람’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주대환은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좌·우파 양쪽에서 죽산을 오해합니다. 한쪽에서 친북으로 몰아 조봉암을 죽였습니다. 친북이 아니면 불편하니 지금도 빨갱이라고 억지를 부리고요. 다른 쪽에서는 친북이니까 좋아해요.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좌·우파 양쪽의 오해와 다르게 조봉암은 반공을 기본으로 한 좌파예요. 6·25전쟁이 나자마자 군대를 파견한 미국 정부가 좌파입니까? 우파입니까?”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이죠. 

“맞아요. 민주당이 미국 좌파잖아요. 프랭클린 루스벨트부터 트루먼으로 이어지는 시기가 미국 역사에서 가장 진보적인 정부가 들어선 때입니다. 힘이 예전 같지는 않았으나 영국이 전승국의 핵심이었습니다. 영국 협조 없이 미국이 맘대로 결정하던 시절이 아닙니다. 6·25 참전국 상당수가 영연방 국가였죠. 그런데 영국도 좌파 정부였어요. 총리가 노동당의 클레멘트 애틀리였죠. 애틀리 정부는 노동계급의 이해를 대변했습니다. 이 같은 맥락에 서 있는 사람이 죽산 조봉암이라는 것을 한국의 좌·우파가 모릅니다.” 

루스벨트는 국가 주도 대규모 경기 부양책인 뉴딜정책과 블루칼라·서민을 위한 복지·노동친화적 정책을 대대적으로 도입했다. 애틀리는 국민에게 무료로 의료복지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정착시키고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표현으로 상징되는 노령보험·실업보험 등 국민보험을 강화했다.


“86세대 아직도 ‘해전사’ 프레임서 못 벗어나”

“조봉암이 살아 있을 적 날마다 한 얘기가 영국 노동당이었어요. 더욱 흥미로운 게 뭔지 아세요? 미(美)군정 지원을 받아 정치한 사람이 죽산입니다. 미국으로부터 돈을 받아 정치를 했다는 얘기예요. 친북과 좌파를 구분해야 하는데 그게 뒤섞이다 보니 친북이 조봉암을 동지로 생각하는 겁니다. 심지어 북한은 애국열사릉에 죽산의 가묘(假墓)까지 만들어놓았어요. 어이없는 일이죠.” 

주대환은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을 건국 원년으로 보는 문재인 대통령과 다르게 1948년 정부 수립을 건국이라고 본다. 대한민국은 성공적 토지 개혁을 통해 유례없이 평등한 자영농의 나라로 출발했으며 전근대적 신분 질서의 잔재도 청소됐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긍정하는 자신의 사관을 ‘뉴레프트’라고 칭한다. 

그는 우남, 인촌, 죽산, 해공을 ‘건국의 아버지들’로 본다. ‘공산당에서 전향한’ 죽산, ‘임시정부계 2인자’ 해공, ‘당대의 조정자’ 인촌이 힘을 모아 건국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이다. 토지개혁을 주관하는 농림부 장관을 죽산에게 맡긴 우남 이승만, 소작농이 유상분배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유리한 조건을 설계하고 지주에게는 국채를 받도록 한 죽산 조봉암, 농지개혁을 대세로 받아들여 중소 지주까지 따르게 한 인촌 김성수, 임시정부계를 떠난 해공 신익희가 오늘날 번영한 대한민국의 초석을 닦았다는 주장이다. 

그는 민주화 운동 프레임을 ‘독립파’와 ‘의존파’로 나눈다. 문재인 정권의 중추가 된 이들은 의존파다. 무엇으로부터의 독립, 의존인가. 북한으로부터의 독립과 의존을 말하는 것이다. 1980년대 운동권에서 활동한 절대 다수가 주사파, 친북반미 민족주의, NL(민족해방) 성향으로 가면서 민주화 운동 주류가 됐다는 게 그의 견해다. 의존파는 때도 묻고, 변화도 하고, 성숙도 했으나 후진국 시절 민족주의를 재구성한 ‘해방전후사의 인식’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강조한다.


“87년 체제로부터의 탈각이 새로운 혁명”

“30년 노동운동의 결과가 어떻게 됐습니까. 노동운동이 불평등을 심화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우리가 잘 몰랐어요. 서양 사람들이 쓴 책을 읽고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했는데 한국 사회의 특성을 간과했습니다. 선진국의 노동운동은 근로조건의 표준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우리 노동조합에 속한 사람들만 챙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심화했습니다. 밑바닥 노동자들이 수탈당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는 민주노총·공무원노조·전교조를 계층적으로 상위 10%에 속하는 기득권 집단으로 본다. 

“영국 보수당을 모델로 한 보수 정당이 대한민국에서 성공할 수 없듯 노동당도 성공할 수 없어요. 왜냐고요? 한국에는 귀족도, 노동자 계급도 없습니다. 계급이 없는 사회예요. 우리는 노동자 계급이 없는데 노동자 정당을 만들려고 한 겁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려면 핵심 지지층인 민주노총·공무원노조·전교조를 배반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하는 동시에 연공서열 보수 체계를 성과 중심으로 전환하는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여긴다. ‘87년 체제로부터의 탈각’이라는 ‘새로운 혁명’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최근 70년간 한국은 농업국에서 세계 유수의 산업국이 됐으나 현재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70년 전 소작제와 같습니다. 국민을 둘로 나눴다는 점에서 똑같은 것입니다. 87년 체제는 수명을 다했습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깨뜨리고 외국인 노동자의 숫자를 조절해 하층 주변부 노동자에 대한 수탈을 막고,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을 국민연금으로 통합하고, 호봉제를 혁파해 세대 간 수탈을 막는 새로운 혁명이 필요합니다. 교사를 예로 들어봅시다. 전교조 활동하는 사람은 소수지만 기득권 집단입니다. 현직에 있을 때 급여는 물론이고 퇴직 후에도 연금을 엄청나게 받습니다. 공무원도 교사와 똑같고요. 열심히 일하는 청년 노동자보다 퇴직한 교사와 공무원이 더 많은 돈을 받는 게 현실입니다. 이렇듯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칩니다. 청년들이 그 나름대로 열심히 일해 받는 월급과 퇴직한 사람이 받는 연금이 비슷하거나 연금이 더 많은 게 정의롭습니까.”


“후진국형 진보 일신해야”

주대환(왼쪽)과 노회찬. 2013년 사진이다.

주대환(왼쪽)과 노회찬. 2013년 사진이다.

그는 후진국형 진보를 일신하고 선진국형 진보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한민국이 그간 선망만 하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기에 실제로 좌파를 할 수 있고, 좌파를 해야 하는 때가 왔다고 여긴다. 그는 중소기업 직원, 하도급 노동자, 자영업자, 청년을 하위 80%로 규정하며 ‘소작농’에 비유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구조를 그대로 두고 소작료를 올려준 것이지요. 임금은 시장 경쟁에 따라 오르내리는 거예요. 건설노동자는 일이 고되니 사람들이 안 하려 하기에 임금이 올라가야 정상인데 외국인 노동자를 통해 해결합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줄이면 시장에 의해 임금이 올라갈 수밖에 없죠. 기득권 10%를 보호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그대로 둔 채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게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한 현 정부의 정책입니다. 촛불혁명 운운하는데 밑바닥 사람들 생활에 아무런 변화가 없어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깨는 것은 소작제도를 없앤 농지개혁과 같은 일이라고 봅니다. 87년 체제를 깨뜨려 사회·경제 체제를 바꿔놓는 혁명이 필요합니다.” 

정의당이 집권하면 바뀔까요. 

“전혀. 정의당은 민주노총과 똑같아요. 민주노총과 정의당의 주류가 같습니다. 정의당의 핵심인 인천연합은 이석기의 경기동부연합보다 더 치밀하고 집요합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살아남아 당권을 쥐고 있죠. 정의당 내 최대 세력인 인천연합의 이정미가 당대표를 맡고 있는데, 노회찬계, 천호선계가 아무리 노력해도 당권을 잡지 못해요. 박근혜 정부에서 노동개혁·연금개혁을 조금 하려고 나서니까 민주노총, 정의당은 물론이고 민주당도 반대했습니다. 박근혜 정권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무너진 데는 노동개혁에 대한 반발도 영향을 미쳤다고 봐요. 노동개혁,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탄생시킨 문재인 정권에 크게 기대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거대한 실험

그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이뤄내는 게 혁명”이라고 했다. 

“1947~1950년 이뤄진 농지개혁이 70년이 돼갑니다. 대한민국은 거대한 실험실과 같았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이렇게 토지개혁을 하면 결과가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사회과학 실험이 벌어진 것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아주 드문 일이었습니다. 우남, 인촌, 해공, 죽산이 손잡고 그 일을 함께 했습니다. 우남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지만 나라를 위해서는 누구와도 손잡은 게 ‘조봉암 정신’입니다. 토지개혁 이후 70년이 지나면서 굉장히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 생겨난 문제가 노동시장 이중구조예요. 죽산의 시대에 지주-소작제 혁파가 필요했다면 지금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깨는 혁명을 해야 합니다. 87년 체제를 무너뜨려야 합니다.”


신동아 2018년 9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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