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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의 조선사회 뒷마당 ②

조폭 날뛰고 포주 설쳤다

劍契와 왈자

  • 글: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 hkmk@pusan.ac.kr

조폭 날뛰고 포주 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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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사회에도 사회악은 있었다.
  • 검계(劍契)와 왈자(曰字)로 불리던 문제집단이 그들.
  • 군사조직에 가까운 조직과 규율을 갖췄던 검계, 사실상 기방의 운영자였던 왈자. 이들 때문에 조선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조폭 날뛰고 포주 설쳤다
한국을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말한 것은 누구던가? 지금 한국을 홍보하는 말로까지 쓰이는 이 센텐스가 나는 자못 불만스럽다. 조용한 아침이라니, 조용하지 않은 아침도 있는가? 딴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조용한 아침 운운하는 말이 어딘가 맥빠진 한국 역사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물론 조용한 아침 운운 탓은 아니지만, 역사가들이 그려낸 한국사에서 인간들이 북적대며 살아가는 정경을 상상하기는 실로 어렵다. 어딘가 조용하다. 뭔가 소리가 난다면 그것은 왕실과 사대부에서다. 권력을 두고 죽고 죽였으니 그들의 세계에 얼마나 많은 곡소리가 났을 것인가? 그래서 그들만 늘 TV연속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리라.

역사란 단일한 실체가 아니다. 역사는 묘사하는 바에 따라 달리 그려지기 마련이다. 활기찬 역사를 그리고자 한다면 그것은 그대로 그려질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조선의 깡패에 해당하는 인간 부류를 묘사해 보려고 한다. 양반님네들이 장죽을 물고 느릿느릿 팔자걸음을 걷는 점잖은 조선시대에 웬 깡패인가.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은 시대를 막론하고 비슷하지 않으랴? 먼저 숙종 때의 기록을 보자.

대신(大臣)과 비국(備局)의 신하들을 인견(引見)하였다. 좌의정 민정중(閔鼎重)이 말하기를,

“도하(都下)의 무뢰배(無賴輩)가 검계(劍契)를 만들어 사사로이 서로 습진(習陣)합니다. 여리(閭里)가 때문에 더욱 소요하여 장래 대처하기 어려운 걱정이 외구(外寇)보다 심할 듯하니, 포청(捕廳)을 시켜 정탐하여 잡아서 원배(遠配)하거나 효시(梟示)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하니, 임금이 신여철(申汝哲)에게 명하여 각별히 살펴 잡게 하였다(숙종실록 10년 2월12일).

서울 시내의 무뢰배가 결성한 검계(劍契)가 습진을 하여 서울 시민에게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으니 처벌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습진이란 진법을 익히는 훈련이다. 군사훈련인 것이다. 정식 군사가 아닌 무뢰배의 조직이 군사훈련을 하니 일반 시민들이 불안해 할 것은 당연한 이치다. 더욱이 이 시기 민간인이 불안해할 만한 정황이 조성되어 있었다.

도대체 이 기록에 등장하는 문제의 검계란 무엇인가? 검계에 관해서는 이 자료와 연속된 숙종실록의 자료가 셋이 더 있다. 관변의 공식 자료가 아닌 것으로는 ‘조야회통(朝野會通)’이 있고, 이것이 ‘연려실기술’에 다시 인용되어 있다. 또 하나는 홍명희가 인용한 ‘화해휘편(華海彙編)’에 있다. 이 자료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언급할 것이다.

자해는 조폭문화

좌의정의 보고가 있고 난 뒤 임금의 명으로 포도청에서 검계의 도당을 체포한다. 그 결과를 2월18일 다시 민정중이 보고하는데, 포도청에 갇힌 검계 도당 10여 명 가운데 ‘가장 패악(悖惡)한 자’는 칼로 살을 깎고 가슴을 베기까지 하는 등 그지없이 흉악한 짓을 한다. 자해는 아마도 조폭문화(?)의 특징이 아닌가 하는데, 예컨대 영화 ‘투캅스’에서 조서를 받던 깡패가 자해소동을 벌이는 것을 상기해 보라. 민정중은 느슨히 다스릴 경우 그 무리가 불어날 것이고 그 결과 이루 말할 수 없는 걱정이 있을 것이라면서 우두머리는 중법(重法)으로 처결하고, 붙좇은 무리는 차등을 두어 처벌할 것을 건의하고 있다.

민정중은 2월25일 다시 검계에 대해 보고하는데, 이 보고에 의하면 검계는 원래 향도계(香徒契)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향도계란 장례를 치르기 위한 계를 말한다. 장례에는 비용이 많이 들게 되므로 이에 대비하기 위해 계를 구성하여 평소 얼마간의 금전을 염출하고, 구성원 중에 누가 상을 당했을 경우 평소 염출한 금전에 얼마를 더하여 비용을 마련해 주는 그런 계였을 것이다. 이 계는 원래 한국민의 독특한 풍습인 계와 다를 것이 없다. 민정중의 보고에 의하면 이 계는 서울 시내 백성들, 즉 일반 민중들 것이었으며 사대부가나 궁가에서도 가입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이것과 검계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민정중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무리를 모을 때에 그 사람이 착하고 악한 것을 묻지 않고 다 거두어 들였으므로, 여느 때에는 형세에 의지하여 폐단을 일으키고 상여를 맬 때에는 소란을 피우면서 다투고 때리며 못하는 짓이 없으며, 또 도가(都家)라 하여 매우 비밀하게 맺어서 망명(亡命)한 자를 불러 모으는 곳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계의 관리조직인 도가 내부에 존재하는 검계다. 도가란 어떤 조직이건 조직의 중추를 이루는 관리 센터를 말한다. 향도계의 도가는 망명하는 자, 곧 죄를 지어 법망을 피하려는 자들을 거두어 숨겨주는 곳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도가 내부의 비밀 조직이 바로 검계였다.

숙종은 한성부(漢城府)에서 향도(香徒)를 뽑아 군정(軍丁)에 채우고 조례를 세워 폐습(弊習)을 고쳐달라고 청하자 그대로 따른다(숙종실록 10년 3월 22일).

이상에서 소개한 것이 유명한 검계 사건이다. 이 사건은 정석종 교수에 의해 비상하게 주목받은 바 있다. 즉 민중 저항 운동의 일환으로 해석했던 것이다(정석종, ‘조선후기 사회변동 연구’, 일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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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 hkmk@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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