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포커스

‘신경영’ 유물? 수평·자율·쌍방향 돼야

삼성 사내방송이 뭐길래…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신경영’ 유물? 수평·자율·쌍방향 돼야

1/2
  • ● “삼성, 구글에 한참 못 미친다” 사내방송 후폭풍
  • ● ‘신경영’ 촉발, 실천, 독려
  • ● “脫권위주의 시대…사내 커뮤니케이션 기법도 변해야”
‘신경영’ 유물? 수평·자율·쌍방향 돼야
‘삼성전자 소프트웨어(SW) 엔지니어가 구글 입사를 시도한다면 1,2%만 합격할 것이다.’

‘인스타그램은 4명이 6주 만에 개발했다. 삼성은 몇 백 명이 해도 1년은 걸릴 것이다.’

6월 21일 삼성그룹이 사내방송(SBC)으로 내보낸 특집 프로그램 ‘삼성 소프트웨어 경쟁력 백서’의 내용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삼성 안팎에 논란이 일었다.

이날 방송된 1부 ‘소프트웨어의 불편한 진실’은 외부 전문가들의 신랄한 비판을 통해 삼성 SW의 현주소를 짚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등장 이후 모바일 운영체제(OS) 경쟁에서 밀려 구글과 애플에 시장 주도권을 내줬다. 2013년 나온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운영체제 ‘타이젠’은 현재 시장점유율이 0.1%에 지나지 않는다. 미래 기술인 스마트카, 인공지능, 가상현실(VR) 분야에서도 삼성 SW의 저력은 잘 감지되지 않는다.



“왜 ‘직원 역량’만…”

삼성의 SW 경쟁력 현실을 통렬하게 다룬 이번 사내방송에 대해 상당수 언론은 ‘삼성의 냉철한 자기반성’이라고 평가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SBC는 삼성 내부의 문제를 고발하는 프로그램을 꾸준하게 내보내왔고 이번 특집도 그 일환”이라고 밝혔지만, 근래 들어 SW 분야 인수합병(M&A)이 잦고 직제를 단순화하는 등의 조직 개편과 맞물려서도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온다.

삼성 출신 한 인사는 “사내방송이 과거처럼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진 않지만, 직원들은 사내방송이 어떤 이슈를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그것을 회사가 던지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직원보다는 임원, 특히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일부 임원을 겨냥한 의도가 있지 않나 싶다”고 했다.

사내방송을 지켜본 전·현직 삼성 SW 인력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출신 한 인사는 “상부 보고와 연말 평가를 목숨처럼 중시하는 조직에서 소프트웨어 역량이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은 직원들 사이에서 늘상 해오던 얘기라 새로울 게 없다”고 꼬집었다. 임원 출신의 전직 ‘삼성맨’은 “창조와 혁신을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는 강압적인 톱다운(top-down)식 관리 문화인데, 그것은 언급하지 않고 직원 역량만 문제 삼아서 반발을 산 것 같다”고 말했다.

사내방송 2부 ‘우리의 민낯’은 7월 5일 방송됐는데, 1부가 야기한 논란을 의식했기 때문인지 방송 일정이 예정보다 일주일 늦춰진 것으로 알려졌다. 2부 역시 외부 전문가의 발언을 통해 ‘SW의 큰 그림을 그리는 아키텍처(architecture, 건축) 개념이 없어 설계가 엉망이다’ ‘사원은 상사가 만든 코드에 대해 ‘이게 문제다’라고 말할 수 없는 문화다’ ‘직급이 올라가면 조직관리 부담이 커 전문성을 키울 수 없다’는 등 조직문화의 문제를 거론했다. 최근 ‘열린 소통의 문화를 지향’하며 조직문화 혁신을 추구하는 삼성그룹의 방향과 맥이 닿아 있는 내용이다.

삼성 사내방송 SBC(Samsung Broadcast Center)의 역사는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국내 기업들은 재벌사를 중심으로 앞다퉈 사내방송을 도입했다. 1985년 5월 현대그룹을 시초로 이듬해 포항제철과 한국전력, 1987년 럭키금성(현 LG그룹), 1989년 삼성그룹이 각각 사내방송을 시작했다(손미나, ‘조직특성에 따른 사내방송의 통제요인에 관한 연구’, 2006).



‘신경영’ 전파 창구

‘신경영’ 유물? 수평·자율·쌍방향 돼야

세계 최대 게임 박람회 ‘E3 2016’에서 삼성전자 ‘갤럭시S7’과 ‘기어VR’로 스케이트보드 게임을 즐기는 관람객들. 갤럭시S는 구글, 기어VR은 페이스북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삼성전자 제공]

사내방송을 본사 위주로 내보내는 다른 기업들과 달리 삼성은 시작 단계부터 사내방송을 전국 사업장에 동시에 내보내고, 계열사마다 자체 방송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SBC 설립을 주도한 이영진 전 제일기획 전무는 “그룹 비서실에서는 전사 방송을, 각 계열사 홍보팀에서는 각사 방송을 제작하다가 외환위기 이후 효율성을 높이고자 사내방송 제작 기능이 제일기획 영상사업단으로 한데 모아졌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제일기획 SBC본부가 사내방송 제작을 담당한다.

SBC는 1992년 9월 다른 기업은 물론 국내 공중파 방송국보다 먼저 위성방송을 실시했다. 사전 제작한 비디오테이프를 각 계열사로 내려보낼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1993년 삼성그룹 시무식은 위성방송을 통해 전 사업장에 생중계됐다고 한다.

그러나 SBC의 위상은 무엇보다도 ‘삼성 신경영’의 촉매제이자 윤활유 역할을 했다는 점에 있다. 1993년 6월 초 이건희 회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던 중, 삼성의 세탁기 생산 라인에서 부품 규격이 맞지 않자 즉석에서 칼로 부품을 깎아내는 장면이 담긴 사내방송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큰 충격을 받는데, 이 일은 이 회장이 같은 달 7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하는 하나의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회장은 해외 출장 중에도 사내방송 비디오테이프를 챙겨 봤다고 한다.

이후 SBC는 신경영을 그룹 내에 설파하는 주요 도구 중 하나가 됐다. 이 회장은 프랑크푸르트에서 핵심 간부들을 모아놓고 8시간에 걸쳐 마라톤 회의를 했는데, 그 주요 내용을 40분짜리 영상 2개로 압축해 SBC로 이틀에 걸쳐 내보냈다. 당시 신문기사는 ‘삼성그룹 비서실은 23개 계열사들에 한 명도 빠짐없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도록 요청했다’고 전한다(매일경제, 1993년 6월 24일).

이영진 전 전무는 “프랑크푸르트 회의의 주요 내용을 전사에 내보낸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며 “당시 이 회장의 신경영 의지가 그만큼 강했다”고 회고했다. 1990년대 그룹 비서실에 재직했던 한 인사는 “사내방송팀은 비서실 내 다른 팀들보다 인력이 더 많았을 정도로 회장의 신임이 두터웠다”고 기억했다.


1/2
이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목록 닫기

‘신경영’ 유물? 수평·자율·쌍방향 돼야

댓글 창 닫기

2018/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