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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이슈

전쟁과 빈곤 속에 국보급 문화재 약탈·도굴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유적·유물 수난기

  •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저널리스트

전쟁과 빈곤 속에 국보급 문화재 약탈·도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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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유물을 손상한 주범은 미군이다. 이라크 전쟁 개전 초기 미군은 이라크에 고성능 미사일을 쏘았다. 많은 유적지가 훼손된 건 불문가지다. 이라크 고고학자 아샴 알 주부리는 “가는 곳마다 유물이 널려있는 이라크에 미사일을 쏘았다는 것은 어디서든 유적지가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 된다”고 말했다. 2009년에는 미군 관할 아래 있는 바빌론 유적이 훼손됐다는 유네스코 보고서가 나왔다. 유네스코는 ‘바빌론의 훼손 평가에 대한 최종 보고서’에서 “바빌론을 군사 기지로 사용함으로써 세계적인 고대 유적지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또 문화유적 파괴가 재발하는 걸 막기 위해 바빌론 유적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로 했다. 바빌론은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80㎞가량 떨어진 알-힐라에 위치한 유적지다. 고대 함무라비 왕(기원전 1792~1750)과 네부카드네자르 왕(기원전 604~562) 당시 수도로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이며 수많은 고대 바빌론 유적이 분포해 있다.

생각 없는 점령군

전쟁과 빈곤 속에 국보급 문화재 약탈·도굴

이집트의 스핑크스. 17세기 이곳을 지배한 오스만튀르크 병사들이 스핑크스 코를 향해 사격 연습을 하는 바람에 크게 훼손됐다.

미군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4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바빌론의 공중정원’ 자리에 군사기지 ‘알파’를 세우기도 했다. 기지 건설 과정에서 미군과 공사업자들은 불도저 등 중장비를 동원해 바빌론 유적지를 수백 m에 걸쳐 파헤쳤다. 이때 지반이 약한 바빌론 고대 도로가 훼손됐고, 특히 인류 최초의 포장도로로 평가받는 ‘프로세셔널 웨이’도 심각하게 망가졌다. 바빌론에서 탐사를 하던 독일고고학연구소 이라크 탐사반의 마르가레테 에스 반장은 “현지의 흙더미는 모두 유물 발굴지라는 걸 미군 병사들이 알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바빌론 시대의 귀중한 탑이 군 관측 포스트로 사용됐고 일부 병사는 조각품을 잘라내 기념으로 갖고 귀국하기도 했다. 고고학자들이 조심스럽게 체로 걸러가며 유물을 찾는 유적지 토양이 진지 모래주머니를 채우는 데 활용됐다.

또한 미군은 바빌론이 약탈당하는 것을 수수방관했다. 대영국박물관의 고대 및 극동지역 담당 고고학자로 5년 동안 바빌론 지역을 조사해온 존 커티스는 “바빌론 유적지의 훼손은 심각한 문제다. 2600년 전 만들어진 이슈타르 성문에서 나온 9개 용 문양 벽돌에서 이를 잘라내려 한 사람의 흔적이 발견됐다”고 했다. 바빌론 도서관과 함무라비 박물관, 네부카드네자르 박물관에서 유물이 약탈·파괴되기도 했다. 사라진 물건 중에는 기원전 2000년에 만들어진 원통형 돌도장과 수염을 기른 남자가 기도하는 모습을 담은 테라코타 부조 등이 포함돼 있다. 유네스코는 “바빌론에 군사기지를 만든 것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영국의 스톤헨지 주변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 주변에 군사기지를 세운 것과 같은 행위”라며 미군을 비난했다.

사람의 생명도 지키기 힘든 전쟁 중에 유물을 지키는 건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1954년 ‘전시문화재 보호에 관한 헤이그 협약’을 맺었다. 무력 충돌 시 문화유산 보호에 대해 규정한 이 협약에는 세계 103개국이 가입했지만 미국, 영국, 일본과 남·북한은 가입하지 않았다. 1977년 체결된 ‘문화·종교 유적지 보호를 위한 제네바 협약’에 대한 의정서도 미국과 영국은 승인하지 않았다. 이런 현실에서 이 협약이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지에 대해서는 많은 이가 의문을 제기한다.



전쟁 중에 문화재가 약탈당하고 유물이 훼손되는 것을 ‘반달리즘’이라고 한다. 5세기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이 로마를 침입해 유적을 파괴하고 유린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전쟁이 터질 때마다 반달리즘이 등장한다. 가장 유명한 예는 기원전 356년 그리스인 헤로스트라투스가 그리스 최초의 순대리석 신전인 아르테미스 신전을 불 지른 사건이다. 그는 후세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신전을 훼손했다. 그의 뜻대로 ‘헤로스트라투스’는 지금까지도 반달리즘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17세기 그리스를 침공한 오스만튀르크 군도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을 화약고로 썼으며 이집트를 침공했을 때는 스핑크스 코 부분을 목표물 삼아 사격 연습을 했다. 이때 스핑크스가 크게 훼손됐다.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는 1937년 에티오피아를 침공해 오벨리스크를 약탈한 뒤 로마 콜로세움 인근에 옮겨 세우고 에티오피아 유물을 본국으로 마구 날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은 폴란드와 프랑스에서 미술품과 조각품을 닥치는 대로 파괴하고 약탈했다. 1991년 유고 내전 때는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고 불리는 두브로브니크의 건축물이 폭격으로 훼손됐다. 크로아티아의 고대 도시인 두브로브니크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다. 이때의 폭격이 대규모 인종 학살에 버금가는 중대 범죄로 간주된 건 이 때문이다. 이처럼 반달리즘은 인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현대까지 끊이지 않고 되풀이됐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반달리즘의 재현

아프가니스탄은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 중동지역의 교차지점에 위치해 역사 유물이 풍부하다. 기원전 수세기 고대 인류 국가부터 아프간을 차지해온 수많은 민족, 페르시아인, 그리스인, 인도인, 터키인, 그리고 몽골인이 2500년간 수많은 유물을 남김으로써, 이곳은 오늘날 고대 문명의 전시장이 됐다. 종교 유물도 많다. 힌두교와 불교가 아프가니스탄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중국과 몽골 및 한반도까지 전파됐다. 고대의 조로아스터교부터 지금의 이슬람 문화까지 다양한 종교와 유물이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퍼져 있다. 기원전 2000~1800년 이 지역에서 형성된 박트리아 마르기아나 유적(BMAC)은 중앙아시아 청동기 문명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다. 아프가니스탄을 지나는 실크로드 덕분에 6세기 무렵부터 신라의 현각과 혜륜 등 우리나라의 고승이 이곳을 지나갔다. 8세기 초 혜초가 쓴 한국인 최초의 해외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에는 지금 미군의 군사기지로 쓰이는 아프가니스탄 북부 바그람이 계빈국이라고 적혀 있다.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아프가니스탄의 각종 문화유산이 오랜 내전과 소련의 침공, 그리고 탈레반에 의해 파괴된 건 안타까운 일이다. 카불 국립박물관 유물은 아프가니스탄 점령군이 바뀔 때마다 대거 약탈·파괴됐다. 기원전 6세기부터 사용된 금화와 은화는 이미 대부분 도둑맞았다. 1990년대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고 나자 그동안 소련군을 상대로 싸우던 게릴라가 사분오열됐다. 갑자기 공공의 적이 사라지자 내분이 난 것이다. 이들은 수도 카불에서 지방에 이르기까지 도처에서 총격전을 벌였고, 이 충돌은 내전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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