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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10년 변천사

신자유주의 지고 ‘울림’ 주는 책 뜨고

경쟁 → 위로 → 재미 → 이득 → ?

  • 김건희 | 객원기자 kkh4792@hanmail.net

신자유주의 지고 ‘울림’ 주는 책 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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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경쟁·성공 키워드 시들
  • ● ‘재미있는 스토리’ 많이 팔려
  • ● 위로·교양·대화법 등 인기
신자유주의 지고 ‘울림’ 주는 책 뜨고

서울의 한 대형서점 신간 소개 코너.

책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있다. 서점 가판대에 올라와 있는 책을 자주 들여다보는 사람이라면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뭔가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조명하는 책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10년 전인 2005년엔 ‘경쟁’과 ‘성공’을 강조한 책이 인기를 끌었다면 2010년 이후엔 ‘위로’와 ‘공감’을 내세운 책이 시장을 주도했다”며 “이제는 재미와 이득을 주는 책이 독자의 선택을 받는다”고 설명한다.

이런 현상은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2000년대 중후반 서점가를 휩쓴 베스트셀러의 특징은 ‘나만의 경쟁력을 키워 성공하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면 지금보다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게 책을 관통하는 핵심 줄기였다. 그 결과 성공학 도서가 2005~2008년 베스트셀러 순위를 장악했다. ‘자기계발 시대’가 열린 것이다. 성공학 도서는 개인의 극적인 성공을 강조한다. 각종 자기계발서와 재테크서가 그런 예다.

그러나 요즘 도서 시장은 사람들에게 ‘치열하게 살라’고 주문하지 않는다. 대신 재미있는 이야기로 즐거움을 선사한다. 혹은 현재의 삶에 도움이 되는 ‘꿀팁(유익한 정보)’을 제공한다. 10년 새 베스트셀러의 트렌드가 크게 달라졌다. 이런 관점에서 쓰인 책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고, 이를 통해 성공학 도서의 배경이던 ‘신자유주의’가 힘을 잃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신자유주의 재해석

신자유주의는 시장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삼기에 국가권력이 시장경제에 개입하는 것을 최대한 배제한다. 문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 만연한 신자유주의 체제의 문제점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인간의 끝없는 탐욕은 재앙을 불렀고, 사람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회의감을 품었다. 이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재해석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대안을 찾아보자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도 이 무렵.

베스트셀러 목록과 그 책들의 목차를 살펴보면 신자유주의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음을 한눈에 읽을 수 있다. 꼭 10년 전인 2005년 교보문고 종합 분야 베스트셀러 1위는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였다. 목차엔 ‘3주 계획으로 나쁜 습관 고치기’ ‘날마다 15분씩 책 읽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배우기’ ‘꿈을 설계하고 성취하기’ 등 자신의 능력을 믿고 성공하기 위한 방법론이 요약돼 있다.

이듬해인 2006년 종합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마시멜로 이야기’도 당시 트렌드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현실은 말할 수 없을 만큼 척박하지만 참고 노력하라는 게 이 책의 주된 내용. 이런 기조는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책에서도 나타난다. ‘여자생활백서’(14위),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17위) 등 제목만 봐도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도서들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한 권의 책이 2년 동안 종합 분야 베스트셀러 1위를 장식한 일도 있었다. 2007~2008년 도서 시장을 강타한 ‘시크릿’이다. 이 책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물리적인 세계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파한다. 2007년 베스트셀러 3위와 6위에 오른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노력하라’도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강조한다. 이 역시 신자유주의를 밑바탕에 깔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때부터 청년들을 위한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다. 한기호 소장은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자기계발서를 구입하는 연령대가 30~40대 직장인에서 20대로 내려갔다”며 “이는 경쟁의 논리, 신자유주의 논리가 중년층을 넘어 20대 청년층까지 전파됐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뭔가’를 주는 책

최근 베스트셀러 트렌드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2015년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한 책은 ‘미움받을 용기’다. 언뜻 ‘힐링 도서’처럼 보이지만 좀 다르다. 상처받은 사람을 위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매뉴얼이 신통하지 않다면 반짝 인기에 그칠 텐데, 딱히 그렇지도 않다. ‘미움받을 용기’는 올 3월부터 총 31주간(9월 30일 기준) 종합 분야 베스트셀러 순위 1위를 지켰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2위)은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등 인기 팟캐스트 방송 내용을 책으로 묶었다. 독자들 사이에선 ‘교양 입문서’로 불린다. 해당 분야를 전혀 모르는 초보자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썼기 때문. ‘하버드 새벽 4시 반’(4위),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현실너머 편’(7위), ‘7번 읽기 공부법’(10위) 등도 일상생활에 유익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런 책들의 공통점은 독자에게 ‘뭔가’를 준다는 것이다. 지친 사람에겐 용기와 희망(‘미움받을 용기’)을, 진솔한 대화에 목마른 이에겐 성공적인 대화법(‘대화의 신’)을, 식견이 필요한 독자에겐 교양(‘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쌓게 해준다. 독자들이 누군가로부터 동기를 부여받으려 하기보다 실용적인 자기계발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얘기다.

박정남 교보문고 MD(상품기획자)는 “2015년 상반기 종합 분야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성공을 강조하거나 경쟁을 주문하는 책은 한 권도 없다”며 “2000년대 중반과 비교할 때 신자유주의에 입각해 쓴 도서들의 영향력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분야별 베스트셀러 목록을 훑어보면 이런 현상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2005년 정치·사회 분야 베스트셀러는 사회 인사의 입을 빌려 개인의 각성을 촉구했다. ‘대화’(1위),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1편’(2위)이 대표적이다. 전자는 이 시대의 지식인으로 꼽히는 리영희 선생의 눈을 통해 한국의 문제점을 분석했고, 후자는 20여 년간 정치 현장에 몸담은 정치인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의 경험을 토대로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살폈다.

이런 기조는 2009년까지 이어졌다. 이후로는 개인보다는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는 책들이 독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2010년 정치·사회분야 베스트셀러 1위는 ‘정의란 무엇인가’였다. 이듬해인 2011년엔 장하준 교수의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진입하며 도서 시장에 파란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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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 객원기자 kkh479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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