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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땅 밑을 보면 국민성이 보여요”

‘지하 인생’ 21년 양흥모 한국지중정보 사장

  • 글: 이계홍 언론인·용인대 겸임교수 khlee1947@hanmail.net

“땅 밑을 보면 국민성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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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본을 말하면서도 기본이 안 된 나라 한국. 그런 나라의 가장 밑바닥을 흐르는 하수구와 가스관을 뒤지며 전국을 누벼온 사람이 있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그가 돌아본 한국의 땅 밑, 그곳에서 본 한국인들의 국민성, 한국의 ‘기본’에 대한 생각들.
“땅 밑을 보면 국민성이 보여요”
(주)한국지중정보. 회사 이름만 듣고는 고개를 절로 갸웃하게 된다. ‘지중’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혹시 지중해와 관계된 일일까. ‘땅속’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서도 순간 망설여진다. 땅속에 무슨 정보가 있다는 걸까. 광맥이나 지질학과 관련된 회사일까. ‘땅속에 묻힌 하수관, 가스관 등 수많은 시설물을 점검하고 컴퓨터와 첨단 전자 탐지기로 땅속 지도를 그리는 회사’라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의문이 풀린다.

그러고 보니 묵묵히 발 밑을 뒤져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일이야말로 기본 중에 기본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관공서마다 ‘기본이 충실한 나라’라는 캠페인성 구호가 붙어 있는 나라, 탄탄한 바탕을 만들자는 게 정부의 공식 컨셉인데도 바로 그게 잘 안돼 헤매는 이 나라에 딱 맞는 작업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니나다를까 “바로 그런 생각으로 20년 넘는 세월동안 두더지처럼 묵묵히 땅속만 뒤져왔다”고 사람 좋아 보이는 사장님이 맞장구를 친다. 이 달의 주인공 한국지중정보 양흥모 사장(56)이다.

“청계산 입구에서 청소를 하는 봉사단체를 본 적이 있습니다. ‘산하를 내 몸과 같이’라는 구호가 선명한 어깨띠를 두르고 수십 명이 산책로 쓰레기들을 치우고 있더군요. 그런데 보고 있노라니까 주운 쓰레기를 모두 하수구에 처박아버리는 거예요. 아마 눈에 보이지 않으면 깨끗하다, 그런 생각이었겠지요. 답답하더군요. 그런 생각 때문에 우리 산하는 오히려 더 더러워지고 있는 거니까요.”

어설픈 시민정신과 환경관이 더 위험하고 불결하다는 것이 21년 동안 땅밑을 헤매고 돌아다닌 뒤 얻은 결론이라고 양사장은 말한다. 더러운 게 눈에 띄지 않는다고 안심한다면 덤불에 대가리를 박고 있는 꿩이나 무엇이 다르겠느냐는 반문이다.

“산업화 이후 지상의 위험물은 어느 정도 해결됐죠. 위험한 것은 모두 지하에 묻어버렸으니까요. 상·하수도를 비롯해 가스관, 송유관, 송배전 케이블이 모두 땅속에 있어요. 눈에 보이지 않으니 어지럽게 묻혀있든 말든 관이 녹슬든 말든 일단 안전하다고 느껴지겠지요.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 때문에 더 많은 위험이 생겨나는 겁니다.”

딴은 그렇다. 지난 90년대 서울 마포구 가스 대폭발 사고나 대구 가스 폭발사고나 안 보이는 땅밑에서 벌어진 사고로 수백명의 목숨이 사라지지 않았던가. 가스관을 잘못 건드려 일어나는 이런 참사가 지금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고 보면 정신이 번쩍 들지 않을 수 없다. 정말로 그런 상황이라면 서울의 1000만 시민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잠 못 이루는 서울의 밤’을 보내야 할 일 아닌가.

“그래서 기본을 닦자는 겁니다. 그러지 않으면 언제 도시폭발이라는 재앙이 닥칠지 모르니까요. 환경, 환경 백날 얘기해봐야 도시 지하를 정비하지 않고는 모두 헛소리입니다.”

딱 잘라 말하는 양사장 목소리가 서늘하다.

알고 보면 서울은 위험천만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 자리잡고 있는 ㈜한국지중정보의 자그마한 사무실. 실내로 들어서는 복도 한 켠에 금방 중국집에서 시켜 먹은 듯한 음식 그릇들이 신문지에 덮여 어지럽게 널려있다. 시계를 보니 오후 6시, 직원들이 일찌감치 저녁식사를 해치우고 야근에 들어간 모양이다. 3열 종대로 줄지은 책상에 직원들이 마네킹처럼 붙어 앉아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다. 대부분 20~30대인 젊은 직원들이 무엇인가 탐색하거나 그림을 그려나가는 일에 열중해 있어 쉽게 말을 붙일 수조차 없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 고개를 돌려보니 사무실 한 귀퉁이에 붙어있는 꾀죄죄한 사장실 소파에는 필자가 들어서기 전에 벌써 보따리장수가 들어와 앉아 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양사장은 백두산에서 캐왔다는 산삼을 소개하는 산삼장수 이야기를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듣고 있다.

“이 산삼으로 말할 것 같으면 사람 숨이 꼴까닥 넘어갈 때 한 뿌리만 달여먹어도 즉방으로 벌떡 일어난다는 인류의 보약 중에 보약 백두산 산삼입니다. 우국지사인 옌볜 동포에게 발견이 되어서 이처럼 대한민국에서 불철주야 산업발전에 이바지하시는 사장님을 위해 모셔온 것이니, 양기도 보호하고 나라 산업도 생각하셔서 애국하는 마음으로 한 뿌리 달여 잡숴보십시오.”

줄줄 이어지는 청산유수를 듣고 있노라니 웃음이 절로 난다. 그 정도 들었으면 적당히 끊고 내보낼 만도 하건만 양사장은 그저 조용히 웃고만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농부처럼 하염없이 느긋하기만한 표정에 슬슬 부아가 난다. 산삼장수도 안달이 나는 모양인지 결국 제풀에 지쳐 물러난다. 호통 한마디 없이 잡상인을 물리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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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계홍 언론인·용인대 겸임교수 khlee19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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