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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박병재 전 부회장이 밝힌 현대차 ‘쾌속 질주’ 비화

캐나다에서 덤핑 제소당했을 때 딜러 동원해 당국에 편지공세

  • 송홍근 기자│carrot@donga.com

박병재 전 부회장이 밝힌 현대차 ‘쾌속 질주’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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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창업 초기 정상영 회장과 함께 채권 회수 해결사 노릇
  • ● 수시로 날아온 정주영 회장의 재떨이
  • ● 위기 느낀 GM, 포드의 덤핑 제소
  • ● 1만명 구조조정으로 외환위기 벗어나
  • ● 제대로 된 현대차는 ‘아토즈’ 이후
  • ● 베이징시 택시를 현대차로 바꿔라
박병재  전 부회장이 밝힌 현대차 ‘쾌속 질주’ 비화

● 1941년 경북 문경 출생
● 문경고, 연세대 졸
● 1968년 현대자동차 입사
● 1985년 현대자동차 전무이사
● 1996년 현대자동차 사장
● 1998~2003년 현대자동차 부회장
● 2006~2009년 영창악기 대표이사 부회장

성취한 남자에게서만 풍기는 향기가 난다. 1941년 10월9일생(음력). 1968년 7월~2003년 1월 현대자동차에서 일했다. 고(故) 정주영(1915~2001) 회장, 고 정세영 (1928~2005) 회장, 정몽구(73) 회장을 도왔다. 현대차에서 잔뼈가 굵은 김방신(52) 효성기전PU 대표는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맺은 분”이라고 그를 기억한다. 2002년 12월 정몽구 회장이 그를 불렀다. 부회장으로서 현대차 중국 진출을 총괄한 직후다.

정몽구 회장이 “수고했어요”라고 말한 후 이렇게 덧붙였다.

“이젠 다 이뤘잖아.”

그는 서운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떠나겠습니다.”

정몽구 회장이 고문직을 제의했다.

“맡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몽구 회장이 되받았다.

“당신 같은 사람은 처음 본다.”

박병재(70) 전 현대차 부회장은 경기 동두천시에서 소나무를 키우면서 산다. 매년 100그루씩 나무를 심는다.

“채마밭도 해요. 고추, 상추, 토마토를 키워 먹어요.”

그는 개발연대를 온몸으로 버텨낸, 한국 자동차 산업 개척자다.

“현대차, 삼성전자 같은 회사도 긴장해야 해요. 수성을 고민해야 하는 때입니다. 그동안 이룬 걸 한 방에 잃을 수도 있어요.”

그는 ‘우리 회사’라는 말로 현대차를 표현했다. 8월 초 현대차가 도요타를 제치고 올 상반기 세계 자동차 글로벌 톱4에 ‘일시적으로’ 올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하던 곳이 날로 좋아지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대리 행복을 느낀다고나 할까. 정몽구 회장이 경영을 잘해요. 사람 사는 게 운칠기삼(運七技三)이거든요. 최선을 다해야만, 기삼을 이뤄내야만 운칠이 와요. 전적으로 좋아지는 건 운이지만, 운을 맞으려면 기를 써야 해요. 도요타가 미국에서 그 꼴 당할지 누가 알았겠어요.”

“당신 같은 사람 내가 찾아”

1968년 봄 청년 박병재는 삼호무역에서 밥을 벌었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

“무역회사 가운데 삼호가 가장 컸어요. 비서실에서 일했는데, 직원 뒷조사를 시키더군요. 뭐 이런 회사가 있나 싶었어요. 그래서 정세영 현대차 사장을 찾아갔습니다.”

현대차는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 앞 현대건설 사옥을 빌려 썼다. 그가 이력서를 내밀면서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세영 회장이 말했다.

“당신 같은 사람 내가 찾아.”

정식 발령을 받아 10명 남짓한 사람이 일하는 현대차로 첫 출근한 때가 1968년 7월1일. 현대차에서 2003년 1월까지 일했으니 ‘자동차 밥’을 35년간 먹은 것이다.

“연세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어요. 경영학 경제학 상학이 서로 구분이 없을 때예요. 학교에서 배운 게 포드 시스템이거든요.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해 대량생산하는 건데, 이 분야는 우리가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자동차 회사에 취직한 겁니다.”

1910년께 헨리 포드(1863~1947)는 모터 조립을 84개 부분으로 나누고 컨베이어를 도입해 조립시간을 10분의 1로 줄였다. 대당 1000달러 넘던 자동차 가격은 300달러로 떨어졌다. 판매량이 폭증했고, 노동자 임금도 두 배로 뛰었다. 포드 시스템은 다품종 동시생산을 내건 도요타 시스템에 자리를 내준다. 대학에서 포드 시스템을 배운 그에게 정세영 회장이 물었다.

“말단도 괜찮지?”

그는 말단이지만 중요한 일을 맡았다.

“부품업체를 선정하는 일을 했어요. 정세영 회장이 돈, 시설이 아닌 사람을 보고 정하라고 하더군요. 부엌, 안방에서 창업한 부품업체가 지금은 내로라하는 부품업체가 돼 있어요.”

현대차는 창업 초부터 위기를 겪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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