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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만들어 우리 정서와 통했어요”

화제의 다큐 ‘남극의 눈물’ 김진만 PD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만들어 우리 정서와 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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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 섭외 끝에 남극 대륙에 상륙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만들어 우리 정서와 통했어요”
그때부터 ‘남극의 눈물’ 팀은 10개월을 공들여 가까스로 호주기지를 섭외했다. 대신 촬영팀이 아닌 대원으로 받아주겠다는 조건이 붙었다. 호주기지는 숙식을 해결하고 황제펭귄 서식지까지 접근성이 좋아 여러모로 안성맞춤이었다. 김 PD와 송인혁 촬영감독, 방보현 조연출까지 세 명은 통과의례인 갖가지 훈련과 영어테스트까지 마치고 당당히 대원이 됐다. 이들은 황제펭귄을 촬영할 땐 호주기지와 서식지 사이에 있는 대피소에서 지냈고, 기지로 복귀하면 대원의 소임을 다했다. 고단한 나날의 연속이었을 텐데도 김 PD는 “그 덕에 시간이 잘 갔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대원으로서 참석해야 할 행사와 허드렛일이 많았어요. 영어가 안 되니까 청소, 설거지, 주방보조 같은 일을 맡았거든요. 감자와 양파를 하루에 50~100개씩 깎았더니 이제 한 손으로도 깎을 수 있을 정도예요(웃음).”

이렇게 해서 이들은 남극 대륙에서 월동(越冬)한 최초의 한국인으로 기록됐다. 한국이 남극에 짓고 있는 장보고 기지는 대륙에 있다. 김 PD는 촬영을 준비하며 남극 대륙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을 목격했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이 대륙에 기지를 세워 주요 지역을 선점한 것이다.

“심지어는 자국민을 데려다 마을을 이룬 곳도 있었어요. 아직 정확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남극에는 엄청난 양의 자원이 매장돼 있다고 하는데 훗날 영유권 문제가 불거지면 기지 주변이 그 나라 땅이 되지 않겠어요. 우리도 국민의 혈세로 짓는 기지이니만큼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기지 식구들은 모두 각방을 썼지만 옆방의 통화 내용까지 들릴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 그래도 대피소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대피소 실내 온도는 영하 5~10도였다. 살 떨리는 추위를 잊을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식사시간이었다. 기지에서 만든 냉동상태의 음식과 한국에서 풍족하게 가져간 라면이 촬영 팀의 양식이었다. 방송에서 이들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을 먹는 모습은 절로 야식 생각이 간절해질 만큼 맛있어 보였다. 그 얘기를 했더니 김 PD는 웃으며 비화를 공개했다.

“조연출이 머리가 있으면 종류별로 가져갔을 텐데 ‘신라면’과 ‘짜파게티’를 500개씩 준비한 거예요. 나중에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아무리 라면을 좋아해도 신라면 500개는 정말 질리더라고요. 그래서 3분 미역, 3분 북어, 주방장 몰래 훔쳐간 새우랑 소고기까지 다 섞어 먹어봤는데 북어랑 가장 잘 맞았어요. 인혁이 형이 맛을 보더니 ‘황제면’이라고 이름 붙이면 대박날 것 같다더라고요(웃음).”

▼ 호주 대원들도 라면을 좋아하던가요.

“되게 좋아했어요. 먹으면 몸이 뜨거워지고 소변을 시원하게 볼 수 있으니까. 개중에는 중독된 대원도 있어요. 올 때 남은 건 다 주고 왔어요.”

▼ 여러 분비에 관한 욕구를 어떻게 해결했나요.

“기지엔 샤워실과 화장실이 있어서 괜찮았고 대피소에서는 소변을 밖에서 봤어요. 여름에 다 녹으니까 그건 허용했어요. 대변은 까만 봉지에 싸서 들고 오고요. 1분 만에 다 얼어버리니까 냄새도 전혀 안 나요. 근데 인혁이 형은 과민성 대장 증상이라 고생을 많이 했어요. 성적인 욕구는 생존이 달려 있으면 전혀 생각이 안 나요. 대화의 80%는 성적인 농담이었지만 씨를 퍼뜨려야겠다, 이런 욕구는 안 생기더라고요(웃음).”

“술에 중독된 사람도 있었어요”

기지에서 가장 큰 고충은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가 한국에서 한 달간 배운 호주영어로는 소용이 없었다. 그때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공부하고 온 조연출이 통역을 맡았다. 촬영 팀은 허드렛일을 마친 뒤에도 호주 대원들과 어울리며 친분을 다졌다. 기지에서 대피소까지 차를 운전하고 발전기를 돌리고 충전도 하려면 그들의 도움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호주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환경교육을 잘 받아서 저희를 많이 힘들게 했죠. 처음엔 서식지에서 70m 떨어진 곳에 금을 딱 그어줘요. 여기를 넘지 말라는 거죠. 그러다 새끼들의 몸집이 커지면 차츰 50, 30, 20m로 줄여주더라고요. 밖에 못나갈 땐 주로 술 마시고 놀더라고요. 호주에서 원료를 가져와 기지에서 술도 담가 마시고 담배도 만들어 피우는데 술에 중독된 사람도 있었어요. 전 술자리는 웬만하면 피했어요. 영어로 말하는 게 힘들어서요(웃음).”

남극에서 펭귄의 존재를 처음 발견한 건 18세기에 물개를 잡던 선원들이었다. 이들은 다양한 종류의 펭귄이 사는 남극 대륙 근처의 사우스조지아 섬에 갔다가 엄청나게 큰 펭귄을 보고 킹펭귄이라 불렀다. 그러다 대륙으로 들어가 보니 더 큰 놈들이 있었다. 모든 면에서 킹펭귄을 능가하는 외모에 어울릴 만한 수식어는 ‘황제’밖에 없었다. 황제펭귄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 김 PD는 “여느 펭귄과 달리 색깔도 품격도 우아해 압도될 수밖에 없다”며 기억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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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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