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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출신 첫 교황 프란치스코

  • 글·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예수회 출신 첫 교황 프란치스코

‘청빈의 수도사’가 새 교황에 올랐다.

266대 교황 프란치스코(76)는 지구촌에서 가톨릭 신자가 가장 많은 남미 출신이다. 아르헨티나의 보수 가톨릭교회에서 희생과 봉사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며 교회의 대중화, 현대화를 견인한 선구자다. 그는 사상 최초의 예수회(Jesuits) 출신 교황이다. 가톨릭 수도회인 예수회는 1534년 창립 이후 바티칸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지만, 이제껏 교황을 배출하지는 못했다.

프란치스코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출신 철도노동자 가정의 5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났다. 1958년 예수회에 입문했다. 1963~1965년 성 요셉 신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사제 서품을 받은 것은 1969년 12월. 30대 때부터 수도사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1980년 산미겔 예수회 수도원의 원장으로 발탁됐으며 이후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에 올랐다. 2001년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자들의 아버지’ ‘청빈의 대명사’로 불리는 삶을 살아왔다. 가난한 이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온몸으로 복음을 실천해왔다는 평가를 듣는다. 대주교직을 수행하면서도 운전기사를 따로 두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관저를 마다하고 작은 아파트에서 생활한 일화도 유명하다.

3월 13일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성 베드로 성당의 발코니에서 군중을 향해 한 인사말에서 프란치스코의 품격이 드러났다는 평가다. 새 교황은 “여러분, 나의 형제 주교들이 로마 주교를 하필이면 지구상 맨 끝에 가서 뽑아왔다”면서 “전임 로마 주교 베네딕토 16세를 위해 기도하자”고 제안했다. 자신과 전임자를 전 세계 다른 교구의 주교와 동등한 위치의 ‘로마 주교’로 표현한 것. 앞으로도 낮은 삶을 살면서 새로운 교황상(像)을 정립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라는 해석이 따라붙었다.

프란치스코는 첫 아메리카 대륙 출신 교황이기도 하다. 가톨릭교회는 스페인 식민지배기에 중남미에 전파됐다. 중남미에서 가톨릭은 종교라기보다 생활에 가깝다. 중남미는 신자 수 감소로 골머리를 앓는 바티칸의 보루 구실을 하고 있다. 세계 가톨릭 신자 11억6800만 명의 41.3%인 4억8300만 명이 이 지역에 살고 있다(2010년 기준).

프란치스코는 동성애, 낙태, 여성 사제 임명 등에 대해 가톨릭교회의 전통에 충실한 의견을 견지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군사정권 시절 예수회를 이끌면서 “비(非)정치화를 견지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에 대해선 비판을 듣기도 한다. 독재정권에 눈을 감았다는 것. 교회의 진보적 인사들은 그가 남미에서 발원한 좌파 성향의 해방신학에 거리를 뒀던 점을 꼬집기도 한다.

교황이 선택한 즉위명 ‘프란치스코’는 중세에 활동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모범으로 삼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13세기 이탈리아 아시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향락을 좇으며 방탕하게 살다 20세 때 회개해 수도자의 길을 걸었다. 청빈하게 살기로 결심한 뒤 모든 사유재산을 내다버렸다. 1209년 제자 11명을 거느리고 청빈을 목표로 한 ‘작은 형제들의 모임’이라는 최초의 수도회를 설립했다.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에게 권유해 여수도회(클라라수녀회)를 설립하게 했다. 프란치스코는 800년 동안 ‘청빈’ ‘소박’ ‘박애’를 상징하는 성인으로 추앙받았다.

신동아 2013년 4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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