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가스라이터’ 이재명과 강성 당원이 만든 ‘비명횡사 친명횡재’

[강준만의 회색지대] 정치 팬덤이 정당 먹어버린 민주당 비극①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입력2024-03-2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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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졸지에 ‘공천 전쟁’ 들러리 된 임혁백

    • 대선 패배 후 벌여온 이재명 ‘묘기 대행진’

    • ‘약한 정당과 강성 당원’ 정치 기현상

    • 이화영·검찰·혁신위까지 압박한 개딸들

    • 개딸 유튜버 지극정성으로 대하는 이재명

    • ‘저주 인증’ 광풍과 ‘민주주의 퇴행’

    2022년 1월 7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시 대선후보가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민심 속으로’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그는 선거 유세와 자신의 정치적 역량 강화에 각종 유튜브 채널과 유튜버들을 활용해 왔다. [이재명 후보 캠프]

    2022년 1월 7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시 대선후보가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민심 속으로’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그는 선거 유세와 자신의 정치적 역량 강화에 각종 유튜브 채널과 유튜버들을 활용해 왔다. [이재명 후보 캠프]

    2월 29일 아침 두 개의 칼럼이 내 눈길을 끌었다. 동아일보 칼럼니스트 김순덕이 쓴 ‘민주주의 석학 임혁백은 왜 ‘이재명의 망나니’가 됐나’, 조선일보 기자 김경필이 쓴 기자수첩 ‘‘비명횡사 공천’ 들러리 된 원로 정치학자’라는 제목의 칼럼이다. 둘 다 더불어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장인 고려대 명예교수 임혁백이 왜 자신의 소중한 명예를 스스로 훼손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과거에 그의 글을 애독했던 나 역시 그 점이 매우 궁금했다. ‘존경받던 원로 정치학자가 왜 그러지?’

    딱 2개월 전인 지난해 12월 29일 임혁백 임명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비명계는 그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의 정책자문그룹인 ‘세상을 바꾸는 정책 2022’에 이름을 올린 ‘친명 인사’라며 반발했다. 모든 비명계가 다 반발한 건 아니었다. 한 비명계 의원은 “임 교수는 우리 사회의 원로시고, 민주당 정부에 기여도 하셨던 분이기 때문에 당파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면서도 “학자 출신인데 복잡한 당내 갈등을 풀어갈 수 있을지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나 역시 두 번째 견해로 기울었다. 학자 출신이라 정무적 역할에 한계는 있을지언정 계파 간 갈등에서 공정과 중립만큼은 확실하게 지켜줄 거라고 믿었다. 사실 이때만 해도 민주당 내에선 “교수님은 워낙 강직한 분이라 이재명 대표 말조차 듣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독립적 공천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였는데, 나 역시 이재명이 총선 승리를 위해 통 크게 그런 정도의 상식과 양식은 보여줄 걸로 생각했다.

    임혁백 더불어민주당 공관위원장이 3월 1일 서울 영등포구 중앙당사에서 공천 심사 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임혁백 더불어민주당 공관위원장이 3월 1일 서울 영등포구 중앙당사에서 공천 심사 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공천관리위원회의 첫 회의가 열린 1월 12일 임혁백은 “민주당 공천에서 계파 배려는 없다”며 “친명도 없고, 비명도 없고, 반명도 없다”고 말했다. “오직 더불어민주계만 있다”고 했으니, 이 자신감 넘치는 말을 믿지 않을 이유가 없잖은가. 기자간담회에선 “실질적 심사는 내가 한다. 계파에 관계없이 시스템에 의해 공정하게 심사할 것”이라고 했으니, 감히 누가 끼어들어 장난을 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2월 들어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2월 6일 임혁백은 4·10 총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지역 1차 결과를 발표하면서 “(1차 심사 결과에 포함되지 않은) 선배 정치인들은 후배들을 위해 길을 터줄 수 있도록 책임 있는 결정을 해주길 부탁한다. 본의 아니게 ‘윤석열 검찰 정권’의 탄생 원인을 제공한 분들 역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이 발언은 ‘친문 책임론’으로 인식됐는데, 대선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후보, 즉 이재명에게 있다는 시각도 얼마든지 가능한 게 아닌가.



    민주당이 대선 패배 후 대대적 성찰을 하면서 책임 규명을 한 것도 아닌데, 이제 와서 그 책임을 묻겠다니 그로 인한 갈등과 혼란을 어찌할 것인가. 아니나 다를까 이후 실제로 벌어진 일은 비명을 배제하는 ‘시스템 공천’이었다. ‘시스템’이라는 말이 이런 식으로 오용될 수 있다는 게 기가 막힌 일이었지만, 이재명은 공천 파동 기간 내내 자기방어를 위해 ‘시스템’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다시피 했다.

    이재명에겐 가스라이팅 마력이라도 있나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3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홍 원내대표는 2월 23일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에게 실망감을 드러내며 “임 위원장이 대단한 권력을 쥔 것처럼 하는 게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뉴시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3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홍 원내대표는 2월 23일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에게 실망감을 드러내며 “임 위원장이 대단한 권력을 쥔 것처럼 하는 게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뉴시스]

    임명될 때는 “공천 전권을 위임받았다”고 했던 임혁백은 ‘비명횡사 친명횡재’의 실상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평가위원회로부터 의원들 점수·등수가 적힌 한 장(명단)만 받았다” “난 통보만 하는 것”이라고 후퇴했다. 현역 하위 10% 통보를 받은 박용진은 재심 신청을 했지만, 당 공관위는 회의도 열지 않은 채 기각했다. 이재명은 평가 결과 공개 요구와 관련해 “세부 점수를 공개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공관위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공관위엔 그런 자율성이 없거나 자율의 의지가 없었다.

    급기야 원내대표 홍익표까지 문제 제기와 비판에 가세했다. 그는 2월 23일 “임 위원장을 만나 현역 하위 평가 내용을 열람하게 해주겠다는 답변을 들었으나 임 위원장이 말을 손바닥 뒤집듯 했다”며 “참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그는 더 나아가 “임 위원장이 공천 관리를 잘못하는 것 같고 관리의 섬세함이나 배려가 전혀 없다”며 “대단한 권력을 쥔 것처럼 하는 게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홍익표는 3월 1일에도 친문 홍영표 공천 배제에 대해 “매우 부적절했다”며 “도대체 어떤 정무적 판단인지 모르겠다”고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임혁백은 이날 공천 결과를 발표하며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비판에 대해 당당하게, 그러나 동문서답으로 대응했다. 그는 “민주당의 일부 의원들이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자기희생을 하려 하지 않아 혁신 공천이 속도가 붙지 않았고 통합보다 분열의 조짐이 일어났다”고 했다. 그는 “계파 공천을 하지 않았다”며 “세간에서 국민의힘 공천은 무희생·무갈등·무감동의 3무 공천이고, 민주당 공천은 혁신을 위한 고통스러운 공천으로 평가한다”고 했다.

    민주당의 공천에 문제가 있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 국민의힘의 공천 문제를 지적하는 건 여야 정치인들이 상습적으로 써먹는 수법이 아닌가. 세간에서 “민주당 공천은 무원칙, 무통합, 무목표의 3무 공천”(경향신문 2월 29일자)이라는 지적이 있었는데, 민주당의 3무가 국민의힘의 3무보다는 낫다는 것인가. 한국갤럽이 2월 27~2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지지율 격차가 민주당의 공천 파동에 힘입어 7%포인트로 늘어났으며(국민의힘 40%, 민주당 33%), 특히 민주당의 호남 지지율이 일주일 만에 67%에서 53%로 14%포인트나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임혁백의 주장이 옳다면, 이 여론조사 결과는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나로선 임혁백이 왜 애초에 전권도 행사할 수 없는 이런 ‘공천 전쟁’에 들러리로 참여해 그런 수모를 당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의문은 이재명이 이렇게까지 민주당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이유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에선 이재명과 관련해 상식을 초월하는 일이 계속 벌어지지 않았던가. 대선에서 패배한 후보가 곧장 지역구 보궐선거에 출마해 의원이 되질 않나, 그걸로 모자라 당대표가 되고, 그 과정을 비롯해 이후 기존의 모든 규칙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묘기 대행진의 연속이 아니었던가.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민주당 의원들은 왜 그에게 굴종하기만 하는가. ‘비명횡사 친명횡재’ 공천으로 자신의 정치생명을 부당하게 위협하는데도 저렇게 얌전하게 당하고만 있는가. 친문 팬덤이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라고 외치며 기세등등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들은 다 어디로 갔기에 친문 정치인들이 당하는 수난을 잠자코 구경만 하고 있는 걸까. 그에겐 누구건 순식간에 가스라이팅을 할 수 있는 무슨 신비한 마력이라도 있는 건가. 이거야말로 정치학자들이 나서서 집중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일인데, 유명 원로 정치학자마저 그의 ‘비명횡사 친명횡재’ 공천을 거드는 역할을 맡고 나섰으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백낙청 “팬덤으로 민주당 장악하라” 조언

    미국 언론인 에즈라 클라인의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라는 책에 이 모든 걸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가 있다. 2016년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경쟁자들이 도널드 트럼프를 향해 퍼부었던 비난 몇 마디를 감상해 보자. “병적인 거짓말쟁이” “극단적으로 비도덕적인 인물”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수준의 나르시시스트”. 그럼에도 트럼프는 대권을 거머쥐었다.

    클라인은 50년 전이라면 공화당 엘리트들이 트럼프를 막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젠 왜 그게 불가능해졌단 말인가. 그는 당파성은 강해졌지만 정당은 약해졌기 때문이라는 답을 제시한다. ‘약한 정당과 강성 당원’으로 인해 선동가가 정치판을 장악하고 휘두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좌우를 막론하고 강성 당원이 홍위병이 돼 정당을 지배할 여지가 커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여기엔 소셜미디어와 유튜브로 대변되는 디지털혁명이라는 변화가 있었다.

    한국이 아무리 친미국가라곤 하지만, 어쩌자고 이런 것까지 미국 정치를 꼭 닮아가는지 모르겠다. ‘약한 정당과 강성 당원’ 현상은 한국에서 미국을 능가할 정도로 극심하게 나타나고 있으니 말이다. 민주당에서 벌어진 ‘공천 파동’은 정당이 약한 정도를 넘어서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강력한 ‘정치 팬덤’을 거느린 계파의 수장이 곧 정당이 돼버린 현실을 웅변해 주고 있다. 그게 바로 ‘이재명의 민주당’이다.

    이재명의 전 정치 생애에 걸쳐서 다른 정치인들과 비교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강력하고 전투적인 팬덤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인가. 민주당 진영의 대표 지식인 서울대 명예교수 백낙청은 대선 1주일 후인 2022년 3월 16일 유튜브 채널 오마이TV ‘오연호가 묻다’에 출연해 “민주당을 장악하자!”고 호소했다. “권리당원들이 훨씬 더 많이 (민주당에) 들어가서 그분들이 이재명 당대표를 요구하면 될 수도 있는 거고. 그러면 이재명 씨는 처음으로 민주당이라는 곳을 장악해서 해볼 기회도 생기는 것이고. 이재명 후보가 판단할 거고, 시민들 반응에 달려 있습니다.”

    이재명은 자신의 팬덤을 ‘개딸’ 체제로 재편성해 이전보다 더욱 강한 전투성을 갖도록 유도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선 패배 후 매일 수백수천 통씩 쏟아지는 압박성 문자메시지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개딸’을 비롯한 이재명 강성 지지층은 이른바 ‘문자 총공(총공격)’, 즉 스마트폰 예약문자 기능을 활용해 특정 시각에 민주당 의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뿌리며 집단 의사를 표시했다. 한 호남권 재선의원은 “지난 일주일 사이 받은 문자메시지가 1만 개는 족히 넘는다.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고 말했다.

    이후 이재명의 팬덤은 그런 식의 집단 활동을 통해 백낙청이 요청한 것처럼 이재명이 민주당을 장악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나는 그런 활동에 대한 기록을 남겨놓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신동아’에 5개월에 걸쳐(2023년 5~9월호) 이재명의 ‘정치 팬덤’ 관리술을 분석하는 글을 연재했다. 여기에서 그 내용을 반복해 말할 필요는 없을 게다. 당시에 지면의 한계 때문에 포함하지 못했던 사건들과 기고 이후에 벌어진 일들만 추가하면서 논의를 진행해 보자.

    팬덤 활용이 정치를 대체한 민주당의 비극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이 2023년 5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공부 모임인 ‘국민공감’에 참석해 ‘한국 정치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뉴시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이 2023년 5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공부 모임인 ‘국민공감’에 참석해 ‘한국 정치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뉴시스]

    민주당 원로인 유인태는 2023년 7월 19일 ‘3040’ 원외 정치인들로 구성된 초당적 포럼 ‘새로운 질서’가 초청한 ‘정치 교체와 정치 복원’을 주제로 연 세미나에서 “강성 지지층에 끌려다니는 정당은 망한다. 21대(총선 때) 황교안(당시 미래통합당 대표)이 강성(지지층)에 끌려다니다가 패했다”며 “국민의힘은 태극기부대에 끌려간다고 비치지 않는다. 이쪽(민주당)은 ‘개딸’이니 뭐니, 강성 지지층에 많이 휘둘린다. 훨씬 위험하다”라고 했다. 팬덤 활용이 정치를 대체한 민주당의 비극을 잘 지적한 말이었다.

    7월 20일부터 이재명 지지자들이 주로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야권 성향 글을 주로 써온 소셜미디어 계정 등에는 ‘힘내라 이화영’이라는 게시물이 확산했다. 쌍방울그룹의 대북송금 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 전 경기도부지사 이화영이 ‘경기도는 관여한 바 없다’는 기존 태도를 뒤집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시작된 움직임으로, 이는 이재명 지지자들이 이화영에게 회유·압박 전략을 펴는 것으로 해석됐다.

    해당 게시물에는 이화영이 수감된 수원구치소에 편지를 보낼 주소와 인터넷 서신을 보내는 방법, 영치금을 보낼 수 있는 은행 계좌번호까지 담겼다. 해당 게시물을 올린 이들은 “함께 지키고 응원하자”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했다. 게시물에는 “얼마 안 되지만 바로 영치금 넣었다. 많이 고통스럽겠지만 버텨달라” “꼭 정치검사들 천벌 받을 날이 올 것” 등의 댓글이 달렸다.

    당시 민주당 비명계 의원 이원욱은 7월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제의식을 갖고 민주당다운 민주당을 만들자고 말하는 의원들은 개딸들에게 ‘수박 깨기’의 대상이 됐다”고 개탄했다. 이어 그는 “의원 4명(박범계 주철현 김승원 민형배)은 수원지검을 찾아 ‘검찰이 이화영 전 부지사를 회유 압박하고 있다’고 항의했다”며 “이는 개딸 등 정치 훌리건들에겐 사랑받을 행동이었겠지만 국민도 잘했다고 박수칠까, 당 지지도가 무서울 정도로 빠지고 있는 것이 아직도 느껴지지 않는 것인가 걱정”이라고 했다.

    7월 30일 민주당 당내 조직인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가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사건을 맡은 수원지검장·2차장·형사6부장·부부장 등 검사 4명의 실명을 공개했다. 민주당은 2022년 말에도 이재명 관련 사건 수사 검사들의 실명과 사진을 공개해 물의를 빚었었다. 당시 검사 16명의 이름과 소속, 얼굴 사진이 담긴 게시물에는 ‘악마집단 같은 검찰·정치검찰 뿌리 뽑자’ 같은 공격적 댓글이 달렸다. 온라인에는 이미 해당 검사의 실명을 거론하며 ‘피의자 봐주기·조작 검사 탄핵하라’는 인신공격성 글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에 중앙일보는 수사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한 것은 수사에 영향을 미치려는 또 하나의 ‘좌표찍기’나 다름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좌표찍기에는 반민주적 전체주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 있다. 중국 문화대혁명 때 마오쩌둥이 홍위병의 ‘표적’ 공격을 부추기려고 내세운 조반유리(造反有理·이유 없는 반항은 없다는 선동 구호)식 접근은 합리적 토론과 민주적 절차, 법치를 봉쇄하고 사회를 혐오와 극한 대립으로 몰아갈 뿐이다. 이 같은 좌표찍기는 근본적으로 반법치주의·반헌법적이다.”

    2023년 8월 8일부터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는 ‘[긴급] 혁신위원 응원 문자 캠페인’이라는 제목의 문자메시지가 돌았다. 문자메시지는 “신뢰! 응원! 과감한 혁신안! 기득권 타파! 물러서지 마시라!”라며 “당원이 주인이 되는 민주당, 당원에게 감동을 주는 민주당, 그래서 총선 승리로 정권 탈환의 기반을 만들기 위해 ‘김은경 혁신위원회’를 응원하는 문자 보내기를 제안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이재명과 이재명 팬덤이 간절히 원해 온 대의원 권한 축소를 당 혁신위원회(위원장 김은경)가 활동 종료를 앞두고 발표할 것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벌어진 응원 캠페인이었다. 문자메시지에는 혁신위원 9명의 휴대전화 연락처가 담겨 있었다.

    실제로 8월 10일 혁신위는 국회 기자회견에서 당대표 및 최고위원을 뽑는 전당대회를 권리당원 투표 70%와 여론조사 30%를 합쳐 선출할 것을 제안하는 등 개딸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한 혁신안을 발표했다. 이는 현행 당헌(권리당원 40%, 대의원 30%, 여론조사 25%, 일반당원 5%)에서 대의원 투표를 아예 없애고, 권리당원 비중을 두 배 가까이 높인 것이다. 그간 “대의원제 폐지”를 주장해 왔던 민주당 강성 지지층은 이날 ‘재명이네 마을’ 등 커뮤니티에서 “혁신위가 해냈다”며 환호했다.

    이재명=SNS 대통령=유튜브 대통령

    8월 15일 이재명이 네 번째 검찰 출석을 이틀 앞두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당원 동지 여러분”에게 출석 날짜와 시간, 장소를 명시한 웹자보를 올렸다. 지지자들은 당장 집결 장소를 알리며 “이 대표를 경호하고, 외로이 조사받지 않게 하자”고 독려했다. 사실상 좌표를 찍어 ‘개딸 소집령’을 내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 덕분에 이재명의 검찰 출석은 마치 선거 출정식이라도 치르는 것 같았다. 청사 인근 법원 삼거리에 간이 단상과 스탠드 마이크까지 차려놓고, 어느 때보다 목소리를 높여 일장 연설을 했다. 그는 연설 후 손을 흔들어 인사한 뒤 지지자들의 연호를 받으며 차에 올라 검찰청사 로비에 도착했다. 참으로 희한한 피의자 소환 풍경이었다.

    8월 22일 비명계 의원 윤영찬은 개딸로부터 잇따라 봉변을 당한 영상과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하면서 “이것이 과연 민주당인지 판단해 달라”고 말했다. 그가 게시한 영상에 따르면 이재명 캠프 대변인을 지낸 현근택의 지지자라는 한 여성이 성남시 중원구의 한 아파트 단지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윤영찬에게 “나가라”며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해당 여성은 윤영찬을 향해 “너 배신했잖아. 여기 이재명이 지은 데야, 어디 이재명 뒤통수에 칼을 꽂고 나서 어딜 와”라고 외치기도 했다.

    난동을 피운 여성은 간담회장 밖에서 유튜브 카메라를 향해 “(영상을) 우리 방에 올렸어? 중원구를 점령하라고 올렸냐고. 올리려면 빨리 올려. ‘방장 누님의 울부짖음’. 하하하.”라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이 장면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팬덤과 친명계 정치인, 유튜버가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고 논평했다.

    윤영찬은 같은 날 오후 자신의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열린 ‘수박 윤영찬 규탄 집회’ 사진도 첨부했다. 그는 “이런 일은 요즘 저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라며 “설훈, 이원욱, 전해철 의원 등 다른 의원의 일정 현장과 지역구, 심지어 집 앞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의견이 다르다고 소리 지르고 위협하는 이런 행위가, 민주당 대표를 앞세워 저질러지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개탄했다.

    이재명은 ‘SNS 대통령’인 동시에 ‘유튜브 대통령’이다. 그의 개인 유튜브 채널은 2023년 8월 기준 구독자가 79만7000여 명으로 윤석열 대통령 개인 채널 구독자(59만6000여 명)보다 20만 명이 많았다. 이재명을 추종하는 정치 유튜브도 ‘새날’(81만 명), ‘김용민TV’(67만 명), ‘이동형TV’(58만 명) 등 여럿이며, 소규모 채널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이재명이 유튜버를 대하는 자세는 지극정성이었다. 그는 인천 계양을 재보궐 선거운동 첫날(2022년 5월 19일)에도 차량의 창문을 내린 뒤 자신을 촬영하는 유튜버 카메라를 향해 “슈퍼챗 부탁합니다!”라고 외쳤다. 그는 “유튜버들은 저렇게 한마디씩 하면 좋아하신다. 일종의 놀이가 됐다”고 말했다. 당대표가 된 뒤인 2023년 2월엔 당이 주최하는 ‘당원존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다가 ‘잼잼자봉단TV’ 운영자를 카메라 안으로 불러들인 뒤 “오늘 잼잼자봉단 돌날”이라며 “생일 축하드린다”고 홍보해 주기도 했다.(중앙일보 2023년 8월 24일자)

    9월 18일 검찰이 경기 성남시 백현동 개발 특혜 관련 200억 원의 배임 혐의와 쌍방울의 800만 달러 대북송금에 따른 제3자 뇌물 혐의로 이재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체포동의안 표결은 무기명 비밀투표로 진행되지만, 개딸들은 민주당 의원 전원에게 부결·가결 여부를 묻는 질문을 한 뒤 답변 받은 문자를 온라인에 공개적으로 올리면서 압박을 가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런 식이면 답변을 안 한 의원들은 체포동의안에 가결했다고 좌표가 찍혀 개딸들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부 의원들은 당원들에게 “부결 찍겠다” “끝까지 싸우겠다”는 릴레이 인증을 벌였다.

    친명계에선 공개적으로 “가결표 던지는 의원 색출하겠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원외 친명 인사인 강위원은 19일 야권 성향 유튜브인 ‘새날’에 출연해 “이번에 가결표 던지는 의원들은 끝까지 추적, 색출해서 당원들이 그들의 정치적 생명을 끊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장단을 맞추겠다는 듯 ‘체포안 부결’ 의사를 밝힌 의원들의 명단을 사진 및 그들의 ‘맹세’와 함께 증거로 남기는 사이트가 등장했다. 민주당 지지자 모임인 ‘민민운(민주당의 민주화 운동)’이 만든 인터넷 사이트 ‘당원킹’이었다.

    국회는 21일 오후 본회의를 열어 이재명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당원킹’에는 21일 오전 5시 기준 모두 103명 의원의 실명과 사진이 ‘부결 지지’ 명단에 올랐다. 동아일보(2023년 9월 21일자)는 “개딸들의 색출 작업이 결국 내년 총선 공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며 계파색이 옅은 한 수도권 의원의 말을 소개했다. “이 대표가 지지자들의 문자메시지와 응원 글을 일일이 다 살펴보는 것으로 유명하지 않으냐. 결국 이 명단을 기초로 ‘공천 칼질’을 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왜 없겠느냐.”

    민주당 원로 유인태는 21일 아침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부결을 예상하는 다수의 생각과는 달리 가결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그는 이재명이 전날 SNS를 통해 “체포동의안 가결은 정치검찰의 공작 수사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라며 사실상 부결을 호소한 것에 대한 역풍이 생각보다 상당하다고 했다.

    그는 “지난번(6월) 대표 연설 때 원고에도 없던 즉석 발언으로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고 해 그 진정성을 다 믿었다”며 “당연히 이번에 체포동의안 오면 가결 호소할 것으로 봤고 심지어 친명인 척하는 친구 중엔 이 대표 쪽에 ‘당신도 살고 나도 산다’며 가결 호소 얘기를 한 사람도 꽤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런 상황에서 ‘부결해 달라’고 이재명이 직접 나서는 바람에 “‘아이고, 더는 당을 같이 못 하겠다’는 이런 심한 얘기들도 하더라”며 지금 민주당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고 했다.

    체포동의안 가결 복수극

    유인태가 옳았다. 이재명 체포동의안은 찬성 149표, 반대 136표, 기권 6표, 무효 4표로 통과됐으니 말이다. 의결에 필요한 출석의원(295명)의 과반(148명)을 가까스로 넘긴 박빙의 가결이었다. 언론은 민주당에서 최소 29명이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추산했다. 앞서 동아일보에 소개된 한 민주당 의원의 우려도 옳았다. 무기명 투표였음에도 짐작으로 때려 맞히는 방식으로 비명 의원들에 대한 ‘공천 칼질’의 복수극을 방불케 하는 ‘비명횡사 친명횡재’ 공천이 정확히 5개월 후에 자행됐으니 말이다.

    결국 “부결 찍겠다”는 릴레이 인증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민주당엔 새로운 릴레이 인증 시합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그건 바로 ‘배신자 처단’을 외치는 ‘저주 인증’ 광풍이다. 누가 더 말을 독하게, 잔인하게 하느냐는 경쟁을 하겠다는 뜻은 아니었겠지만, 이후 온갖 독설과 욕설이 난무하는 등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운 ‘민주주의 퇴행’의 풍경이 전개됐다.

    이재명이 구속됐더라면 5개월 후의 복수극은 일어나지 않았거나 그 양상이 크게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재명은 유창훈(영장전담 판사)이라는 뜻밖의 구원자를 만나 구속을 면함으로써 다시 한번 자신의 정치생명을 건 투쟁의 기회를 얻게 된다. 그에겐 행운이었겠지만, 민주당에선 정치 팬덤이 정당을 먹어버리는 갈등이 극한대로 고조되는 비극이 일어나게 된다. (*다음 호에 계속)

    강준만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現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外




    신동아 4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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