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0일 오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낙연 전 대표가 서울 중구 소재 한 식당에서 만났다. 이날 양측은 견해차만 드러낸 채 55분 만에 헤어졌다. [뉴시스]
정국 분위기는 급반전했습니다. 당내 비주류 의원 모임인 ‘원칙과 상식’의 행보에는 제동이 걸렸습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도 신당 창당 코앞에서 기로에 섰습니다. 한때 이낙연 전 대표와의 연대설이 나돌던 이준석 개혁신당(가칭) 정강정책위원장 역시 3일 ‘이낙연 신당’에 관해 “쉽지 않을 것”(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이라고도 표현했고요.
1월 2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이재명 대표 피습 사건에 대한 긴급 최고위원회의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광주전라 27%만이 “이낙연 탈당 배경 공감”
MBC가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29~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5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응답률 10.4%), 조사자 중 신당 투표 의향을 밝힌 337명을 대상으로 지지 정당을 물었을 때 이준석 중심의 개혁신당 33%, 이낙연 중심 신당 14%, 용혜인 중심의 개혁연합신당 12%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광주전라에서 이낙연 신당은 10%를 얻는데 그쳐 이준석 신당(31%)은 물론 용혜인 신당(16%)에도 뒤졌습니다. 광주전라 조사 사례자 수가 45명으로 적긴 합니다만, 어찌됐건 체면이 서지 않는 결과입니다.다음으로 조선일보‧TV조선이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30~3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18명을 조사한 결과(응답률 13.9%)를 보겠습니다. 이준석 신당과 이낙연 신당을 모두 포함해 지지하는 정당을 묻자 국민의힘 28%, 민주당 25%, 이준석 신당 7%, 이낙연 신당 4%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광주전라의 경우 민주당 43%, 이준석 신당 6%, 이낙연 신당 6%, 국민의힘 3%로 집계됐습니다.
SBS가 입소스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29일~30일 전국 막 18세 이상 1001명을 조사한 결과(응답률 10.8%)도 소개합니다. 신당 출범 시 총선 투표 정당을 묻는 질문에 민주당 33%, 국민의힘 27%, 이준석 신당 12%, 이낙연 신당 8%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낙연 신당은 광주전라에서 18%로 2위였습니다. 다만 47%를 얻은 민주당과 격차가 컸습니다. ‘이낙연 신당 찬반’을 묻는 추가 질문에는 광주전라에서 27%만이 ‘탈당 배경에 공감해 찬성한다’를 택했고 63%는 ‘명분이 부족해 반대한다’고 답했고요.
호남 민심의 향배는 중요합니다. 이낙연 신당의 기반이 돼야할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선례가 있습니다. 2016년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등장한 국민의당입니다. 그해 4월 치러진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호남지역 24석 중 23석을 포함해 총 38석을 얻으며 ‘녹색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민주당으로서는 치욕적인 ‘호남 참패’였죠.
8년 전 이 맘 때에 해당하는 2016년 1월 1주차(1월 5일~7일) 한국갤럽 조사(응답률 23%)를 보죠. 아직 당명 확정 전이라 안철수 신당으로 조사가 이뤄졌는데요. 정당 지지율을 보면 새누리당 35%, 안철수 신당 21%, 민주당 19%였습니다. 광주전라에서는 안철수 신당 41%, 민주당 19%, 새누리당 10% 순이었습니다. 2024년 이낙연 신당이 얻는 성적표와는 다릅니다. 당시 국민의당에 비해 현재 이낙연 신당은 창당 속도에서도 더딘 편이고요.
(이하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12월 5일 오후 서울 용산역 고객접견실에서 광주를 방문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호남 거주자와 호남 출신자
8년 전 국민의당의 성공은 구조적 요인에 기인했습니다. 지병근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2016년 발표한 논문 ‘‘제3정당’에 대한 호남 유권자들의 선호와 투표결정’(아세아연구, 제59권 제4호)은 그런 의미에서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지 교수는 한국정치학회의 제20대 총선 후 여론조사를 활용해 거주지 및 출신지별로 응답자들이 친근감을 느끼는 정당과 선호하는 정당을 확인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호남 거주자들이 가장 친근감을 느끼는 정당은 국민의당(26.4%), 민주당(26.2%), 새누리당(3.8%) 순이었습니다. 선호하는 정당은 국민의당(56.4%), 민주당(56.0%), 정의당(41.4%)으로 나타났고요. 국민의당이 1위이긴 하나, 민주당과 격차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호남 출신자, 그러니까 고향이 호남이지만 지금은 호남에 살지 않는 유권자들은 기류가 다릅니다. 호남 출신자들이 가장 친근감을 느끼는 정당은 민주당(29.1%), 국민의당(17.0%), 새누리당(8.7%)이었습니다. 민주당을 택한 비율이 또렷하게 높죠.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정당은 민주당(55.7%), 국민의당(50.7%), 새누리당(39.4%) 순이었고요. 민주당과 국민의당 간 격차가 크지 않지만 호남 거주자들의 선호도와는 결이 다르긴 하죠.
이는 투표에도 반영됐습니다. 호남 거주자들은 지역구에서 국민의당 53.7%, 민주당 37.4%의 투표 양태를 보였습니다. 비례대표에서는 국민의당 50.9%, 민주당 35.0%로 나타났고요. 친근감이나 선호도에서 국민의당과 민주당을 비슷하게 바라보지만 막상 투표장에서는 국민의당 쪽으로 쏠린 겁니다. 반면 호남 출신자들은 지역구에서 민주당 49.3%, 국민의당 30.6%를 택했습니다. 비례대표에서도 민주당 44.1%, 국민의당 32.8% 순이었습니다. 지병근 교수는 호남 거주자들의 결정을 민주당에 대한 ‘항의투표’라 규정하며 이렇게 설명합니다.
“문재인에 대한 거부감과 지역경제발전 이슈를 해결할 수 있는 국민의당의 능력에 대한 기대가 국민의당에 대한 선호와 투표가능성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중략) 안철수와 국민의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는 과거 김대중과 같은 호남 출신 정치인들에 대한 애정에 바탕을 두고 형성되었던 유권자들의 강한 일체감과 일방적인 ‘지역주의적 투표’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중략) 따라서 국민의당에 대한 지지는 내재적(intrinsic)이기보다 외재적(extrinsic)이며…”
왜 호남 출신자에 비해 호남 거주자들은 지역경제발전 이슈에 민감할까요. 지방이 저발전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고향만 지방이되 현재는 서울 강남에 사는 엘리트와, 여전히 지방에 사는 사람 사이에는 원적지(原籍地)를 제외하곤 공통점이 없습니다. 결국 먹고사는 문제가 핵심입니다. 여기에 민주당 주류에 대한 거부감이 겹쳤습니다. 그러니 국민의당을 ‘도구’로 활용해 민주당을 혼내주려던 겁니다. 호남 다선 의원들이 ‘중진 인물론’을 내세워도 먹혀들만한 환경이 조성된 셈이죠.
실제로 국민의당의 호남 지역구 당선자 중에는 장관과 대선후보, 도지사, 고위 당직 등을 지낸 거물급이 많았습니다. 천정배, 정동영, 박지원, 박주선, 유성엽, 주승용, 박준영, 장병완 등이 대표적이죠. 이들도 호남 저발전에 대한 책임에서 온전히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다만 민주당 주류가 지원하는 신진보다는 지역에 도움이 되리라는 정서가 퍼졌죠. 새누리당 간판으로 각각 전북 전주을과 전남 순천에서 당선된 정운천, 이정현 역시 장관과 현직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자산이 있었고요.
즉 국민의당의 성공은 호사가들이 말하듯 단순히 ‘대선주자 안철수’에 대한 기대감에만 기대고 있지 않습니다. 저변에 흐르는 정서는 저발전에 대한 누적된 불만과,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지역패권 정당에 대한 항의였습니다. 마침 이러한 민심을 담을 그릇이 하나의 세력으로 존재하고 있었고요.
전남 국회의원 4선, 전남지사
렌즈를 2024년 이낙연 신당으로 바꿔보겠습니다. 먼저 대선주자 지지율에서도 이낙연은 8년 전 안철수에 비해 약세입니다. 현재 호남에 있는 ‘반이재명 정서’ 역시 8년 전 ‘반문재인 정서’에 비해 높아보이지는 않습니다. ‘이재명 당대표 특보’를 주요 경력으로 내세운 정치 신인들이 호남 지역구에 대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현역 의원들을 앞서고 있고요. 그런데 이는 공히 부차적 이슈에 불과합니다. 진짜 문제는 경제에 있으니까요.과연 지금의 호남 유권자들이 지역경제발전에 대한 기대감을 이낙연 신당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할까요. 무엇보다 호남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민주당 진영의 분당(分黨)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는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가 어렵습니다. 8년 전과 달리 다선 중진들의 탈당 행렬이 없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당시 ‘녹색 돌풍’의 주역 대부분이 지금은 민주당에 복당해 공천을 노리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정치인 이낙연은 전남에서 네 차례 연속(16~19대)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됐고 전남지사도 지냈습니다. 이를 발판으로 문재인 정부 들어 국무총리와 당대표로 승승장구했고요. 호남 저발전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는 이력입니다. 그렇다면 8년 전 국민의당처럼 중진들이 세력화해서 ‘그래도 우리가 낫다’는 정서를 자극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혈혈단신입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이낙연 신당이 마주한 가장 큰 딜레마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