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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금메달에 얽힌 비화

금메달을 강물에 던진 무하마드 알리, 사흘만에 금메달을 박탈당한 벤 존슨

금메달을 강물에 던진 무하마드 알리, 사흘만에 금메달을 박탈당한 벤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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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드니올림픽이 한창이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 근대올림픽이 열린 뒤부터 올림픽은 전세계 인류의 최대 축제였다. 올림픽의 꽃은 역시 금메달. 조국의 명예와 개인의 영광을 위해 선수들은 투지를 불사른다. 승자에게는 영광이, 패자에게는 눈물이 따른다. 금메달을 놓고 벌이는 대결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인간드라마일 것이다.》
올림픽 금메달은 감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올림픽 금메달은 문화적 가치라는 차원에서 보호되고 기록되기 때문이다.

올림픽 금메달은 그 분야에서 50억 인구 가운데 최고임을 증명하는 일종의 ‘마패’다. 이제 그 ‘황금마패’에 얽힌 100년 세월의 비화를 파헤쳐 보자.

60년 로마올림픽 복싱 라이트헤비급 금메달리스트 케시어스 클레이는 오하이오 강에 금메달을 집어던졌다. 표면적으로는 흑인 차별에 대한 항의였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발에 걸리는 것이 금메달리스트’라고 올림픽 우승을 폄하는 미국 사회를 향한 반발 시위였던 셈이다.

올림픽 금메달을 강물에 던졌던 케시어스 클레이는 프로로 전향해서 복싱 사상 가장 위대한 챔피언이 된다. 이제 케시어스 클레이와 나중에 개명한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은 프로복싱사에 ‘신화’로 남게 되었다.

알리는 금메달을 일부러 강물에 버린 경우지만 본의 아니게 금메달을 잃어버린 선수들도 있다.

금메달을 잃어버린 이바노프

소련의 비아체스라프 이바노프 선수는 56년 멜버른올림픽 조정 싱글스컬에서 금메달을 땄다. 기쁨에 넘친 그는 금메달을 하늘 높이 던져 올렸다. 그러나 그 소중한 금메달이 그만 조정 경기가 열렸던 웬도리 호수에 빠지고 말았다.

당황한 이바노프는 몇 시간 동안 물 속에 들어가 헤맸으나 찾지 못했다. 잠수부까지 동원했으나 허사였고 그 메달은 4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호수 바닥에서 잠자고 있다. 올림픽이 세계의 도시를 돌고 돌아 호주의 시드니로 돌아왔건만, 그의 금메달은 아직까지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바노프는 60년 로마, 64년 도쿄올림픽까지 싱글스컬을 3연패해서 2개의 금메달을 더 따냈다. 물론 다음부터는 호수 위에서 금메달을 던지는 장난을 절대 하지 않았다.

88서울올림픽 때도 금메달을 잃어버린 선수가 있다. 조정 쿼 드러블 스컬에서 금메달을 딴 이탈리아팀 선수들은 시상식 직후 금메달을 목에 건 채 미사리 조정경기장 물 속으로 다이빙을 했다. 그런데 다비드 디자노 선수의 금메달이 물 속에 빠져버렸다.

곧바로 안전담당 스킨스쿠버 요원이 투입돼 호수 바닥을 뒤졌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엔 금메달을 찾을 수 있었다. 금메달은 깊이 15cm의 진흙 속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비아체스라프가 금메달을 분실한 뒤 더욱 분발한 것과는 달리 다비드 디자노는 이후 벌어진 올림픽에서 한 개의 금메달도 따내지 못했다.

올림픽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 금메달의 쾌감을 맛 본 선수는 몇해 전 심장병으로 사망한 고(故) 장은경 씨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유도 라이트급에 출전한 장은경 선수는 결승전에서 쿠바의 헥토르 로드리게즈와 만났다. 처음에는 로드리게즈가 유효 3개를 빼앗으며 앞서 나갔다. 그러나 지구력이 강한 장은경은 맹렬하게 반격해 유효 2개에 버금가는 점수를 땄고 로드리게즈보다 더 공격적이었다.

이제 심판의 판정만 남았다. 주심은 장은경의 승리를 선언했고, 유도장은 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딴 코리아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그러나 3분이나 지났을까? 주심은 판정을 번복했다. 로드리게즈가 이겼는데 잘못 판정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장은경은 3분 동안 올림픽 금메달, 그것도 건국 이후 첫 금메달리스트의 황홀감을 맛보았다.

29년 만에 돌려받은 금메달

미국의 짐 토페 선수는 장은경보다 휠씬 긴 1년간 금메달리스트의 영예를 누렸다.

짐 토페는 1912년 스톡홀름올림픽 10종경기와 5종경기에서 금메달을 땄다. 짐 토페는 이후 미식축구와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도 맹활약했다.

짐 토페가 스톡홀름올림픽에서 2관왕이 된 지 1년 뒤,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발행되는 ‘텔리그림’이라는 잡지의 체육담당 기자가 ‘짐 토페는 올림픽에 출전하기 전인 1910년에 프로야구 선수였다’고 폭로했다.

짐 토페는 프로야구 선수였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보도는 사실이지만 나는 야구가 좋아서 노스 가디나(North Cardina)팀에서 야구를 한 것이지 돈(연봉 60달러) 때문에 하지 않았다”고 시인했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짐 토페가 돈을 벌 목적으로 야구를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프로는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다’는 규정상 어쩔 수 없이 금메달을 반환케 하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명단에서도 토페의 이름을 삭제했다.

지금도 1912년 스톡홀름올림픽 10종경기 금메달리스트는 당시 2위였던 스웨덴의 비스렌더, 5종경기 금메달리스트는 노르웨이의 페르디난드 선수로 남아 있다.

짐 토페가 금메달을 반환하자 미국 언론에서는 20여년 동안 꾸준히 명예회복을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까지 나서 당시 킬러닌 IOC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으나 허사로 돌아갔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토페가 죽은 지 29년 후인 1982년, IOC는 짐 토페의 아들 차도르 토페의 진정을 받아들여 올림픽 금메달을 돌려주었다.

캐나다의 벤 존슨 선수는 시간상으로 장은경과 짐 토페 선수의 중간쯤인 67시간 동안 금메달리스트의 영광을 누렸다.

1988년 9월24일 서울올림픽의 하이라이트인 남자 육상 100m 결승전이 열렸다. 캐나다의 벤 존슨은 숙적인 미국의 칼 루이스를 제치고 9초79의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벤 존슨은 두 차례에 걸친 도핑테스트에서 근육강화제인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는 판정을 받고 사흘(정확하게 67시간) 뒤 도망치듯 한국을 떠났다.

1988년 서울올림픽 남자 육상 100m 금메달은 2위로 들어온 미국의 칼 루이스(9초93) 선수가 차지했다. 칼 루이스는 이 금메달을 포함해서 모두9개의 금메달을 획득해 역시 미국의 육상 선수인 레이 어리(10개) 선수에 이어 역대 최다 금메달 2위에 올라 있다.

그 후 재기를 노리던 벤 존슨은 93년 또다시 약물복용이 적발돼 세계육상계에서 영구 제명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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