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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스토리

아테네 장애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허명숙

‘된장찌개 투혼’, 희망의 과녁 꿰뚫다

  •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아테네 장애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허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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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섯 살에 소아마비를 앓고 휠체어 신세를 진 후 어둠과 절망 속에 살던 그에게 사격은 한 줄기 햇살과 같았다. 제12회 아테네 장애인올림픽에서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허명숙 선수. 제대로 훈련조차 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금빛 과녁을 명중시킨 그는 금메달을 목에 걸고 한참을 울었다.
아테네 장애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허명숙

사격은 그에게 처음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준 아주 특별한 선물이었다.

지난 9월20일 그리스 마르코풀로 사격센터. 제12회 아테네 장애인올림픽 여자 50m 소총3자세 결선에 오른 허명숙(48) 선수는 일순 호흡을 멈추었다. 과녁을 향해 총구를 조준한 채 마지막 방아쇠를 당겼다.

잠시 뒤 이관춘 대표팀 감독이 상기된 표정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그 앞에 나타났다. ‘해냈구나!’ 하는 생각이 섬광처럼 스쳤다. 가난과 장애를 딛고 마침내 금빛 과녁을 향해 축포를 쏘아올린 순간이었다.

제12회 아테네 장애인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13개 종목에 120여명의 선수단을 파견해 금11, 은11, 동6 등 총 28개의 메달을 건져 올리며 종합순위 16위를 기록했다. 허 선수는 금메달뿐 아니라 여자 10m 공기소총에서도 은메달을 목에 거는 쾌거를 이룩했다.

허 선수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서울 성북구 상월곡동 아파트 단지 입구에는 ‘올림픽 메달 획득’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높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집 안으로 들어서자 ‘과연 금메달리스트의 집일까’ 싶을 정도로 초라했다. 10여평 남짓한 공간에 작은 방 한 칸, 싱크대가 딸린 거실과 욕실이 전부였다. 보증금 1000만원에 매달 14만원의 월세를 내는 ‘거주기간 10년’의 임대아파트였다.

“결선 10발 중 7발을 쏘고 나니 금메달에 대한 감이 왔습니다. 그 순간 흥분되고 떨렸지만 가까스로 마음을 눌렀습니다. 더도 덜도 말고 지금까지 한 것처럼만 하자고 다짐했죠. 마지막 세 발을 쏠 때는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습니다.”

마음이 흐트러질까봐 시합 내내 자신의 점수가 기록되는 전광판을 쳐다도 보지 않았다는 허 선수. 지난 12년간의 선수생활 중 금메달을 향한 ‘마지막 세 발’을 남겨놓았을 때가 가장 고통스러웠다. 실수할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한 달 앞서 열린 아테네올림픽에서 옆 선수의 표적지를 쏘아 실격당한 선수가 있지 않았습니까. 표적지 간격이 너무 좁기 때문에 ‘아차’ 하는 순간 벌어질 수 있는 일이죠. 일반인은 ‘뭐 저런 사격선수가 있나’ 하겠지만 국제대회에서 가끔 일어나는 사고예요. 그래서 저도 마지막 세 발을 쏠 때 제발 내 표적지에만 명중시키자 하는 간절한 심정이었습니다.”

메달 소식이 연이어 전해지자 아테네 현지로 노무현 대통령의 축전이 날아들었다. 그동안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 등에서 아쉽게 2, 3위에 머물렀던 허 선수로서는 처음 받아보는 ‘대통령 축전’이었다.

“예전에 다른 선수들이 대통령 축전을 받는 걸 옆에서 지켜보며 무척 부러워했어요. 그런데 이번 대회에서는 저도 두 번이나 받아 너무나 기쁘고 좋았어요. 나도 ‘우리나라 최고 윗분한테 이런 걸 받을 수 있구나’ 싶어 가슴이 뿌듯했죠.”

금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 벅찬 마음을 주체할 수 없던 허 선수는 이 감독과 함께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그 순간 성치 못한 딸 걱정만 하다 5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났다고 한다.

“아테네 선수촌에 도착한 첫날 어머니 꿈을 꾸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한 번도 꿈속에 나타나지 않았는데, 그날따라 초라한 모습의 어머니가 애틋한 눈빛으로 절 바라보시는 거예요. 꿈에서 깨고 난 뒤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일까’ ‘아테네에 도착한 첫날 왜 하필 뜬금없이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셨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금메달을 따자마자 제일 먼저 어머니가 생각났던 겁니다.”

기뻐서 울고 슬퍼서 울고

이날 허 선수의 눈물은 환희와 감격 뒤에 가려진 쓰라린 가슴의 응어리를 함께 토해낸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외톨이로 쓸쓸하게 지내며 모진 삶을 살다 보니 맺힌 한이 많았습니다. 금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 그동안 꽁꽁 눌러두었던 가슴속 응어리가 둑 터지듯 한꺼번에 폭발했죠. 정말 난생 처음으로 맘 놓고 울어버렸습니다. 기뻐서 울고 슬퍼서 울었습니다.”

허 선수는 강원도 원주에서 땅 한 평 없는 품팔이 농군의 8남매 중 셋째딸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지난 42년간 두 다리를 휠체어에 의지하며 살아왔다. 아주 어릴 적 동네에 서커스단이 왔을 때 식구들 손을 잡고 ‘걸어서’ 구경 갔던 일이 두 발을 땅에 딛고 걸은 유일한 기억이다.

“제 다리가 정상이 아니라고 느낀 건 아마 7∼8세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어느 날 동네 아이들이 책을 보자기에 싸서 허리에 두르고 학교 가는 모습을 봤는데 그게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방안에서 혼자 보자기를 등에 둘러메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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