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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카운트다운! ‘화폐혁명’

‘고액권’은 선택, 리디노미네이션은 필수

‘인플레이션 착시’는 일시적, 화폐 선진화가 급선무

  • 글: 황의각 고려대 교수·경제학

‘고액권’은 선택, 리디노미네이션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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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는 ‘화폐제도 개선기획단’을 구성해 리디노미네이션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국회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화폐기본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 한국은행은 신화폐 발행을 준비하고, 금융기관과 기업은 전산시스템 수정에 대비해야 한다.
  • 3∼4년 후 화폐제도를 개선하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고액권’은 선택, 리디노미네이션은 필수

화폐단위를 변경하면 현금자동입출금기(ATM)는 전면 교체해야 하므로 상당한 비용이 들지만 전산시스템의 경우 어차피 교체가 불가피하므로 추가 비용 부담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28일자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화폐의 단위당 가치가 낮은 나라가 지구상에서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면서, 터키가 새해(2005년) 1월1일 여섯 자리의 ‘0’을 없애는 화폐단위 변경을 단행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될 경우 1유로에 1400원인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면서도 유일하게 단위당 화폐가치가 낮은 ‘국제적으로 기이한 나라(international oddity)’로 남게 될 것이라면서 화폐단위를 변경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이러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일부 국회의원과 학계, 업계 등에서 일제히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에 대한 찬반 논의가 일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재정경제부 장관은 물론 2002년부터 중장기 연구과제의 하나로 화폐제도 개선방안을 연구해오던 한국은행 총재조차 이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으로 선회하는 바람에 많은 국민이 혼란에 빠져 있다.

공직 수장들이야 빨라야 3∼4년 후에나 실시될 정책보다는 재임 기간중 가시적 성과를 이루는 데에 급급할 수 있다. 자리에서 물러난 후의 일로 지금 골머리를 썩이고 싶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 경제의 선진화를 위해 필요한 장·단기 과제를 놓고 당장의 찬반논쟁에 휩싸이기 싫어서 일시적으로 덮어두려 한다면 이는 정책 입안자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앞으로 3∼4년 후에 리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하는 것이 우리 경제를 위해 필요한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이 그들의 책임이며 만약 필요하다면 지금부터 대책을 강구해야 마땅하다.

현행 화폐는 ‘후진 경제’ 산물

먼저 리디노미네이션이란 무엇이며, 왜 이것을 3∼4년 이내에 실시하기 위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가를 밝혀보기로 하자.

리디노미네이션이란 화폐의 가치 변동 없이 은행권 및 지폐의 액면을 동일한 비율의 낮은 숫자로 변경하는 것이다. 즉 현재 화폐단위의 1000분의 1 또는 100분의 1 비율로 표시하거나 이와 함께 새로운 통화단위로 화폐의 호칭을 변경하는 조치를 말한다. 예컨대 1000분의 1로 리디노미네이션하게 되면, 현행 만원권은 10원이 되고, 5000원권은 5원, 1000원권은 1원, 100원은 10전, 10원은 1전, 1원은 1푼이 된다.

아무런 정책적 제약 없이 실시되는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의 실질가치 변동 없이 단위숫자만을 낮추는 것이므로 원론적으로는 소득, 물가 등 국민경제의 실질 변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리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하면 일시적인 착시효과에 빠질 수 있다. 예를 들어 100만원을 예금한 사람은 화폐단위 변경 후 통장잔액이 1000원이 되어 실질자산 규모가 1000분의 1로 감소한 것처럼 느낄 수 있다. 그럴 경우 일시적으로 지출이 감소할 수 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화폐단위 변경에 따른 화폐교환 과정에서 자신의 재산보유 정보가 누출되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이 이 제도가 실시되기 전에 부동산을 사거나 외화로 바꾸어두려고 할 경우 일시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착시에 의한 반응은 초단기적이면서도 디플레적 요인과 인플레적 요인의 양방향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실질변수에는 대체적으로 중립적인 영향을 미칠 뿐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은 인플레이션의 진전 때문이든 실질 성장 때문이든, 한 나라의 확대된 경제와 거래규모를 화폐적으로 표현하는 숫자가 너무 커서 초래되는 국민들의 계산, 회계기장 또는 지급상의 불편을 해소할 목적으로 실시된다.

그러면 왜 가까운 미래에 화폐단위의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말인가.

그 이유는 현행 우리나라 화폐제도가 1960∼80년대 인플레이션 경제와 후진 경제시대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경제 선진화와 국제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묵은 화폐제도의 선진화를 위한 개혁을 단행해야 할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사람도 몸집이 커지면 헌 옷은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화폐제도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고액권 발행, 화폐 규격과 품질 선진화, 위조화폐 방지를 위한 최첨단 장치 도입, 화폐단위 변경(리디노미네이션) 등 세 가지 조치가 필수적이다.

경제규모 2000배 이상 증가

첫째, 고액권 발행의 필요성과 그 대응방향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현행 화폐는 1962년 6월, 당시 구권 10환을 신권 1원으로 바꾼 화폐개혁을 통해 도입된 것이다. 그 후 우리 경제는 고도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개발 인플레이션과 실질생산규모의 괄목할 만한 확대로 경제규모, 즉 명목 국민총생산액(GDP) 규모가 약 2130배나 증대되었고, 소비자물가는 48배 이상 상승했다.

나라의 경제규모가 커지고 거래단위가 늘어나면 화폐수량도 증가한다. 예컨대 경제규모가 10배 늘어나면 화폐금액도 10배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금액을 표시하는 돈의 크기는 결국 수량 증가나 수량 변경 없이 새로운 고액단위를 가지는 화폐의 발행을 통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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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의각 고려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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