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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 분석

WTO 등에 업은 곡물메이저들의 실체

거미줄 정보망에 정부도 ‘쥐락펴락’, 세계 농민 목조르는 ‘보이지 않는 손’

  • 윤석원 중앙대 교수·농업경제학 sukwon@cau.ac.kr

WTO 등에 업은 곡물메이저들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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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길, ADM 등의 곡물메이저들은 현재 진행중인 WTO의 DDA 농업협상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정부는 ‘DDA 협상은 정부간 협상’이라는 평면적 시각에서 벗어나 이 다국적 곡물메이저들의 전략 전술을 파악해 다각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WTO 등에 업은 곡물메이저들의 실체

다국적 곡물메이저가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WTO 농업협상 결과 제3세계 국가와 농민 계층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온 국민의 관심을 모은 쌀 재협상에서 우리나라의 쌀 재고가 크게 늘어나 문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부각됐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우리 식량의 해외 의존도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양곡 자급률이 사료용 곡물까지 포함해 26.9%에 불과하며 그나마 쌀을 제외한 양곡 자급률은 5% 미만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 곡물시장에서 콩의 자급률은 6.9%, 옥수수는 0.8%, 그리고 밀은 0.1%에 불과하다. 주식인 쌀만 겨우 자급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아래 올해부터 어떤 형태로든 쌀 시장이 개방된다면 주요 곡물의 자급률은 더욱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식량의 해외의존율이 높더라도 국제시장에서 수입할 수만 있다면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현재 세계 식량 사정과 국제 곡물시장 구조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우리 국민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식량위기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 인식의 핵심에는 ‘WTO 체제’와 ‘다국적 곡물메이저’가 자리잡고 있다.

사실 식량, 원유, 원자재와 같은 자원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곡물메이저들이 맹활약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는 근본적 배경에는 WTO 체제, 즉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에 입각한 세계화가 있다. WTO 체제는 시장지향적 자유무역을 통한 인류의 후생 증대, 농산물시장의 개방과 자유화를 통한 식량문제의 해결, 기아와 빈곤의 퇴치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를 내걸고 WTO 체제가 출범한 지도 벌써 10여년이 지났다. 그러나 WTO 체제는 많은 학자와 운동가들로부터 강하게 비판받고 있다.

폴라리스 연구소 토니 클라크 의장은 “WTO는 민족국가의 인민주권으로부터 전지구적 다국적기업의 인민주권으로의 이행을 가속화하고 확장하는 메커니즘”이라고 강조했고, 제3세계 네트워크 대표인 마틴 코어는 “WTO는 남반구의 후진 개발도상국을 지배하기 위한 도구”라고 주장했다. 인도의 환경사상가인 반다나 시바는 “WTO 규정은 산수와 난해한 용어로 포장된 강도질 규칙”이며 식량과 농업의 전지구적인 자유화야말로 “최대의 난민을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WTO에 가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세계 각국이 처한 현실이다. 미국 프린스턴대 피터 싱어 교수는 “일단 어느 정부가 WTO에 가입하면 그 정부와 차기 정부는 회원으로 남아 있으라는 상당한 압력을 받는다”고 말한다.

자유무역에 기반을 둔 수출산업이 수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데, 만약 WTO의 규정을 어기면 그 나라의 수출산업이 파괴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WTO 체제를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고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보조금에 의존하는 선진국 농업

그러나 WTO 체제는 결국 국가간, 지역간, 산업간, 계층간 불균형을 더욱 확대 조장할 뿐이다. 즉 한 국가 내에서 이른바 경쟁력 있는 특정산업은 발달할 가능성이 있고 이 분야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소득은 증가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산업은 축소되거나 사라져 이 부문 종사자의 소득은 하락하게 된다. 이는 산업간 소득격차를 유발하고, 나아가 빈부격차를 초래하며 사회구성원간의 갈등으로 나타날 위험성이 크다. 이러한 논리는 국가에도 적용돼 국가간 빈부격차를 확대한다.

최근 세계은행은 선진국들의 과다한 농업 보조금과 농산물 수입관세가 개발도상국 농촌지역의 빈곤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발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들은 2000~2001년 자국 농업 보호를 위해 총 농업생산의 46%에 달하는 2300억달러를 썼는데, 이중 37%는 직접 보조금 형태로, 나머지 63%는 외국 농산물에 대한 수입관세로 부과돼 국산품 가격을 낮게 유지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개도국들의 농산품은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프랑수와 부르기뇽은 “개도국 빈곤층의 70% 가량이 농촌지역에 살기 때문에 농업 부문의 개혁이 이들의 삶의 질 향상에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선진국들이 시행하는 강력한 농업보호 정책이 이들을 강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영국의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도 지난주 “선진국들은 농업보조금으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 인구 6억1900만명의 총소득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불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업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첨단산업과는 경쟁이 되지 않는 산업이어서 WTO 체제 아래에서는 국내적으로도 불리할 뿐 아니라 보조금에 의해 유지하고 있는 선진국 농업과도 경쟁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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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교수·농업경제학 sukwon@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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