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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로 풀어쓴 현대사

저출산 · 고령화는 200년 전에도 고민거리

재정(財政)과 사회보험의 탄생

  • 조인직 | 대우증권 도쿄지점장

저출산 · 고령화는 200년 전에도 고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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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마그나카르타 800주년…의회정치 초석
  • ● 루이 16세 과세 강화에 ‘삼부회’로 맞선 귀족들
  • ● 1750년대 ‘콘솔 공채’ 등장…英 ‘재정혁명’ 이끌어
  • ● 佛, 1896년 ‘인구 증가 위한 국민연합’ 결성
저출산 · 고령화는 200년 전에도 고민거리
그리스가 최근 독일을 앞세운 유럽연합(EU) 채권단에 사실상 두 손을 들고 재정 회복을 위한 자구책 마련에 힘쓸 것을 공언했다. 당분간 연금도, 복지 혜택도 줄어드는 가혹한 긴축정책이 예견된다. 먹고사는 문제, 살림살이를 유지하는 문제는 이처럼 개인, 가정, 국가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해당되는 현안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일본도 ‘아베노믹스’ 영향으로 주가가 오르고 기업 실적이 개선됐지만, 일본은행이 국채 인수를 통해 양적완화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시각도 상존한다. 쉽게 말해, 지금 수중에 없는 돈을 미리 빌려서 풀어대는 형국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국내총생산(GDP)의 170%가 빚이다. 일본은 이보다 더해 240%가 빚이다. 재정의 규율이 무너지고 금리가 인상되기 시작하면, 보유 중인 국채 평가액이 크게 절하되고 이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금리와 채권 가격은 반비례). 결국 일본도 채권단에 생명줄이 잡혀 있는 지금의 그리스처럼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그런데 일본은 나라의 빚이라 할 수 있는 국채의 91%를 자국민이 들고 있으니 국민이 최대 채권자인 셈이다. 또한 지난해 말 기준 대외순자산(채권에서 채무를 차감)이 366조 엔으로 24년 연속 세계 최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빚도 많지만 빚을 갚고도 남을 충분한 자산이 있다는 점에서 그리스와 비교하기는 어렵다.

흑자재정 향한 오랜 번뇌

한국은 어떤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재정 상태가 가장 좋은 수준이라던 한국도 요즘은 가계부채 못지않게, ‘공기업 부채’로 포장된 사실상의 국가부채 규모가 만만치 않다. 당장은 GDP의 65% 수준으로 절대적인 수치는 나쁘지 않은 편이라지만, 악화되는 속도가 빠르다는 게 문제다.

국가가 개인, 가족의 확장판이라고 볼 때 안정적으로 벌이가 생겨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벌이 안에서 소비가 이뤄지는, 즉 규모에 맞는 살림살이가 유지돼야 ‘잘사는 나라’다. 멀게는 고대 로마제국 시대부터 시작된 균형재정, 흑자재정을 향한 번뇌는 대항해 시대, 제국주의 시대를 거쳐 최근까지 모든 나라의 위정자들을 속박하는 소재다. 20세기 들어서는 공공부조나 사회복지 문제까지 본격 대두하며 나라마다 살림살이가 더 팍팍해졌다. 이런 와중에 가장 기본적 재원(財源)이라 할 수 있는 노동력도 출산율 감소로 영향을 받고 있다.

로마제국 붕괴 이후 서유럽에선 왕정이 붕괴되고 귀족들의 권한은 점차 세졌다. 귀족은 장원(莊園)의 영주 자격으로 세금을 징수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왕으로부터 면세 특권을 인정받았다.

다만 영국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프랑스 귀족 출신인 노르만 공국의 윌리엄이 영국 귀족을 장악해 왕위를 얻으면서 보다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다. 정복자 윌리엄이 귀족의 토지를 몰수하는 대신,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자들을 선별해 군역을 맡기고 상으로 봉토(封土)를 수여했다. 그러다 존 왕 시대로 접어들면서 프랑스와의 전쟁에 필요한 물자 조달을 위해 귀족들을 대상으로 무리하게 세금을 징수했다. 전쟁에서 이겼다면 귀족들에게 납세에 대한 보상을 겸해 프랑스 영토를 봉토로 줬을 테지만 패전하면서 문제가 됐다.

불만이 커진 귀족들이 런던 시민들과 손을 잡고 존 왕의 정책에 반대해 관철한 것이 올해 6월로 800주년을 맞은 마그나카르타(대헌장)다. ‘왕은 관습법에 따라야 하며, 새로운 과세에 대해서는 귀족회의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것이 대헌장의 핵심이다. 귀족회의에는 시민대표도 참석을 보장받았는데, 돌이켜보면 과세권을 둘러싼 왕과 귀족의 대립 속에서 나온 것이 오늘날 의회정치의 초석이라 할 수 있다.

경제학, 재무장관 뜨다

15세기 대항해시대부터는 서유럽국과 식민지국 간의 무역 거래에서 현대적인 의미의 국가와 재정의 관계가 정립됐다. 국왕은 상공업자들에게 무역독점권을 주는 대신 그들로부터 세금을 받는, 중상주의(重商主義)로 포장된 카르텔이 형성됐다. 이 수입으로 왕들은 관료제도와 상비군 제도를 운영하며 절대왕정을 정착시켜갔다.

스페인이 먼저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채굴한 많은 양의 은화를 본국으로 들여왔다. 하지만 100년쯤 지나 은이 고갈되자 이미 불어난 군사비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은 나라가 영국과 프랑스다. 두 나라는 먼저 자국의 모직물 산업을 육성시킨 다음, 여기에서 생산한 상품을 식민지에 파는 방식으로 끌어모은 무역대금으로 국부를 쌓아갔다. 현대적 의미로 보면 안정적 재정 확충을 위해 역외무역 거래를 활성화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구, 경지면적, 생산량, 세수(稅收), 무역수지, 군사비 등에 대한 계량화와 관리가 필요했고, 이에 따라 이를 아우르는 경제학이 독립된 학문 분야로 발전했다. 국가 살림살이의 관리자인 재무장관이 최고 요직으로 급부상한 것도 이때다. 프랑스의 경우 ‘태양왕’으로 불리는 루이 14세(1643~1715) 시절 모직물 상인 출신의 콜베르를 재무장관으로 등용해 부르봉 왕조의 전성기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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