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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교수가 쓰는 ‘시대정신과 지식인’ ⑩

유신독재에 맞선 민주화운동의 구심점 함석헌, 참여민주주의와 생명운동의 기수 장일순

함석헌과 장일순

  •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kimhoki@yonsei.ac.kr

유신독재에 맞선 민주화운동의 구심점 함석헌, 참여민주주의와 생명운동의 기수 장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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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석헌과 장일순은 1970년대 재야 지식인의 전형이다.
  • 두 사람 다 제도권 밖에서 활동한 들사람(野人)이다. 기독교를 넘어선 동서양 사상의 융합을 추구했다. 씨알 사상을 주창한 함석헌은 민주화를 향한 실천적 투쟁에 앞장섰다. 민주투사에서 생명사상가로 변신한 장일순은 지역 공동체운동에 헌신했다.
유신독재에 맞선 민주화운동의 구심점 함석헌, 참여민주주의와 생명운동의 기수 장일순
이기획의 이름은 시대정신과 지식인이다. 지식인이란 말 그대로 지식 생산 및 유통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런 지식인과 유사한 우리말이 있다. 지성인, 학인(學人), 사상가 등이 그것이다.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사전적 의미에서 지식인은 지성인 및 학인과 매우 유사하다. 지성인이 지식인보다는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다소 강조한다면(영어로는 intellectuals로 같은 말이다), 학인은 전문적 직업성을 강조한다.

이에 비해 사상가는 사뭇 다르다. 사상가 역시 지식 탐구와 생산에 주력한다. 하지만 사상가라는 말이 함의하는 바는 지식인보다 포괄적이다. 여기서 ‘포괄적’이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사상가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사고와 생각을 펼치는 이들을 지칭하는데, 여기서 사고와 생각은 지식보다는 넓은 의미를 갖는다. 둘째, 바로 그런 맥락에서 사상가를 전문화된 학문 분류체계에 가둬두기 어려우며, 이러한 특징은 사상가로 하여금 지식의 영역은 물론 경우에 따라선 종교 영역까지를 넘나드는 포괄성을 갖게 한다.

지식인이 아니라 사상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번 기획에서 다룰 두 사람의 정체성이 지식인의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함석헌과 장일순이 바로 그들이다. 두 사람은 지식인이라기보다 사상가였다. 대학에서 나름대로 전문적 교육을 받았지만, 이들은 대학사회 또는 전문적 지식사회에 속해 있지 않았다. 이들은 함석헌의 표현을 빌리면 ‘들사람(野人)’이었으며, 이들의 사상은 바로 그 들 한가운데서 씨앗이 뿌려지고 꽃을 피웠다.

들사람

비록 들 한가운데서 잉태된 사상이지만, 이들의 사상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자못 심원하다. 함석헌은 지난 20세기 우리 사회를 이끌어온 시대정신인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에 깊은 영향을 끼쳤으며, 장일순 역시 민주주의와 생명사상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했다. 두 사람의 시대정신은 ‘들사람’의 사상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면서도, 두 사람이 걸어온 삶의 경로는 적잖이 달랐다.

앞으로 세 번에 걸쳐 다루게 될 광복 이후의 지식인들은 이 기획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마음속에 뒀던 이들이다. 먼저 살펴보게 될 함석헌과 장일순은 광복 이후 우리 사회가 직면한 시대적 과제들을 진지하게 고민했고, 그 이론적 실천적 해법을 현실 한가운데서 열정적으로 모색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이뤄놓은 성취는 바로 우리의 현재를 구성하며, 이들의 한계는 다름 아닌 우리 미래의 과제가 될 것이다.

지난 2008년 한 잡지에 광복 이후 지식인 스무 명의 삶과 사상을 정리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함석헌과 장일순을 다루지 않았다. 다른 이유가 있던 게 아니라 당시에는 전문적 지식인들의 연구와 활동을 주목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기획에서 최인훈과 김수영, 김지하와 박완서 등의 작품과 활동을 예외적으로 다루기는 했지만, 대학교수로 분류될 수 있는 이들의 삶과 사상이 그 주요 분석 대상이었다.

한 걸음 물러서서 볼 때 광복 이후 우리 지식사회는 이중적 구조를 이뤄왔다. 전문적 지식인들이 주축을 이룬 제도적 지식사회가 있었다면, 대중적 지식인이 주로 활약한 비제도적 지식사회가 존재했다. 적어도 민주화 시대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비제도적 지식사회의 역할이 중요했다. 비제도적 지식사회는 우리 시민사회의 한 축을 이룬 이른바 ‘재야’와 중첩됐으며, 이들은 민주화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함석헌과 장일순은 바로 이러한 재야적 지식인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두 사람의 삶과 사상에 대한 탐구는 광복 이후 기독교의 위상과 의미를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우리 모더니티의 전개에서 기독교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모더니티가 서구적 세계와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면, 모더니티를 향한 시대정신의 탐구에서 기독교를 어떻게 볼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함석헌과 장일순은 동서양을 넘나든 사상가였지만, 동시에 기독교인이기도 했다. 함석헌은 안병무 등 개신교 신학자와 가까웠으며, 장일순은 지학순 등 천주교 신부와 함께 활동했다.

시대정신과 관련해 함석헌과 장일순 사상을 주목하는 것은, 모더니티의 중핵을 이루는 민주주의와 민족주의, 그리고 모더니티를 넘어서려는 생명사상에 대한 이들의 기여 때문이다. 함석헌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사상가이자 운동가였다. 민주화의 상징이라 할 만큼 함석헌의 사상과 실천은 거침없었으며, 특히 그의 씨알 사상은 동서양 사상이 융합된 이채로운 것이었다. 더욱이 함석헌은 민족주의를 중시하면서도 협애한 민족의식을 넘어서는 세계주의를 강조함으로써 민족주의가 가져야 할 보편성을 일찍이 부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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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장일순 역시 포괄적 의미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중앙과 국가가 아니라 지역과 공동체였으며, 이러한 관심은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선구적인 통찰로 평가할 수 있다. 더불어 그는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과 자연 및 생명에 대한 옹호에 기반을 둔 생태적 상상력을 강조했다. 이러한 장일순의 사상은 그의 사상적 적자(嫡子)라 할 수 있는 김지하와 김종철의 생명사상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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