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20대 여성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얼굴이 못 알아볼 만큼 예뻐진다고 한다. 북한 당국은 정치적 목적으로 이들의 행복을 빼앗는 길로 나아가고 있다. 그동안 남북 간에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4만명에 조금 못 미친다.
“휴대전화가 신기한지 장소를 바꿀 때마다 걸더라.”
부메랑 된 대북지원
북한에 10년 넘게 인도적 지원을 해온 A씨는 “중국의 지원이 상당한 것 같다. 길이 막힌다는 건 휘발유가 충분하다는 거다”라면서 놀라워했다. 최근 평양에 다녀온 인사들은 하나같이 “신기하게도, 평양의 경제 사정이 개선됐다”고 말했다.
조봉현 기업은행경제연구소 연구위원(경제학박사)은 “‘ 뉴스위크’가 잘 분석해놓았던데 중국자본, 중동자본 등이 북한경제의 숨통을 터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6월8일자 ‘뉴스위크’는 “북한경제를 둘러싼 잘못된 통념이 있다”면서 이렇게 보도했다.
“북한 주민이 원시생활을 한 것도 아니고 공업이 쇠퇴한 것도 아니다. 중국의 도움으로 최근 몇 년간 인프라를 개선했으며, 1990년대 중반 대홍수로 타격받은 광산시설도 수리했다. 현재는 제철과 광업, 경공업을 중심으로 회복단계에서 성장단계로 나아가는 게 목표다. 북한의 천연자원,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려는 외국기업이 직접투자를 모색하면서 대외관계도 확대되고 있다.”
A씨 안내원의 손에 들린 휴대전화는 지난해 12월 이집트 오라스콤이 북한에서 개통한 WCDMA망을 사용한다. 지난해 3월부터 공사를 재개한 유경호텔(105층) 건설엔 이집트·아랍에미리트·프랑스·홍콩 기업이 참여했다. 프랑스의 라파즈는 상원시멘트의 지분을 갖고 있다.
한국이 북한에 지원한 자금은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노무현 정부는 역대 정부 중 북한에 가장 많은 자금을 지원했다. 북한에 지원한 현금이 핵과 미사일 개발, 체제 유지에 쓰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한국의 뒤통수를 쳤으며 막무가내식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4월5일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고, 5월25일엔 2차 핵실험을 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비확산 담당 관리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또 다른 핵실험을 준비하는 징후가 있다”고 전했다.
남북문제이면서 국제문제인 핵, 미사일을 제외하면 남북 간 현안은 개성공단 존폐와 Y씨 억류 사건이다. 평양은 터무니없는 수준으로 근로자 임금(3배)과 토지사용료(30배) 인상을 요구했다.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 연구교수는 “남측이 개성공단을 닫았다는 식의 명분을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복수의 북한 관료와 접촉한 C씨도 “북한이 개성공단을 폐쇄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안다”며 “Y씨 억류사건은 경색된 남북관계가 만든 비극”이라고 말했다.
억류자 Y씨 기소할 듯
“너 여기 살기 힘들지. 나하고 남조선 가서 살래?”
복수의 대북소식통은 북한 관료들이 Y씨가 개성공단 여성 근로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북한 관료들은 Y씨를 한국 당국의 ‘망(望)’으로 몰아세운다고 한다. A씨는 평양을 방문했을 때 “Y씨를 왜 억류하느냐”고 북측 인사들에게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고 한다.
“Y씨는 적대행위를 했으며, 여성을 상대로 범죄도 저질렀다. 증거도 갖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Y씨가 북한 여성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북한의 주장은 터무니없다. 개성공단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여성 근로자를 변질 타락시켜 탈북을 유도했다” “우리의 체제를 악의에 차서 헐뜯으면서 공화국의 자주권을 침해하고 해당 법에 저촉되는 엄중한 행위를 감행했다”는 게 북한 당국의 주장이다.
북한 관료들이 Y씨가 말했다고 주장하는 “너 여기 살기 힘들지. 나하고 남조선 가서 살래?” 란 말은 남북관계가 좋을 때는 ‘할 수 있는 수준의 농담’이었다고 한다. 더 심하거나 짓궂은 말도 오갔다고 한다. 개성공단 관련 기업의 한 관계자는 “쉬쉬하면서 넘어갔지만 실제로 남측 남성 근로자와 북측 여성 근로자가 사랑한 적도 있다”고 귀띔했다.
개성공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평양에서 내려온 국가안전보위부 인사가 3월30일 Y씨를 잡아갔다. Y씨를 조사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들이 3주 동안 평양과 개성을 분주하게 오갔다고 한다. 북한은 Y씨를 지남산여관(개성시 선죽동)에 억류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Y씨가 평양으로 이송됐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4월21일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 앞에 개성공단으로 향하는 화물차량들이 길게 줄지어 있다.
최승철의 오판
한국 정부의 억류자 문제 해결 노력은 헛바퀴를 돌고 있다. 문제는 Y씨 석방과 관련해서 북한과 대화할 라인이 ‘없다’는 것이다.
남북 간 대화 루트는 크게 셋으로 △공식-비공개(국가정보원-통일전선부) △공식-공개(통일부-통일전선부) △비선이 그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공식-비공개, 공식-공개라인을 16개월 동안 한 차례도 가동하지 못했다. ‘16개월의 대북 공백’은 비정상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남북관계가 도대체 왜 이 지경이 됐을까? 대선이 있었던 2007년으로 시곗바늘을 되돌려 보자.
2007년 3월7일 중국 선양(瀋陽)의 날씨는 사나웠다. 56년 만의 폭설. 이해찬 전 총리가 탄 평양행 비행기는 오후 2시30분 타오셴 공항을 이륙했다. 이 전 총리는 당시 방북을 계기로 최승철 전 통일전선부 부부장과 핫라인을 뚫었다.
최 전 부부장은 한국 정치인을 차례로 북한으로 초청했다. 김혁규 전 경남지사를 불렀으며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코가 비뚤어지게 폭탄주를 마시는 모습도 지켜봤다.
한나라당도 북한에 유화 제스처를 보냈다. 정형근 전 의원(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좌장으로 한나라당의 대북정책 패러다임을 재검토하는 태스크포스가 구성됐다. 한나라당의 새 대북정책인 ‘한반도 평화비전’을 발표한 정 전 의원은 2007년 7월 보수단체 회원에게 ‘페인트 달걀’을 맞았다. 정 전 의원은 A씨를 통해 북측에 방북의사를 전달했으나 평양은 초청장을 발급하지 않았다.
이명박 캠프도 간접적으로 북측과 접촉했다. 이명박 캠프에서 일하던 박영준 선대위 네트워크팀장은 북한 정보와 평양발(發) 메시지를 취합해 이 후보에게 전달했다. 2007년 10월 방북한 한나라당 인사는 북측에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남북관계가 더 잘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는 5월18일 대북소식통을 인용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오판과 남측의 햇볕정책이 북한 사회에 미친 영향 등에 대한 책임을 물어 최 전 부부장이 지난해 처형됐다”고 보도했다.
“최 전 부부장은 내부 강경파의 반대에도 남한과의 관계 진전을 강력히 밀어붙였고 10·4 남북정상회담 추진도 일선에서 지휘했으나 남한의 정권교체로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정책판단 실책 등 모든 책임을 뒤집어쓴 희생양이 됐다.”
김영남 방남 무산
처형설이 나도는 최 전 부부장은 대선 직전인 2007년 12월8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금강산 비로봉에 올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최 전 부부장은 자신감이 넘쳤다고 현대아산 관계자는 전한다.
A씨는 “최 전 부부장이 김 위원장에게 서울의 정권이 바뀐 뒤 남북관계가 더 좋아질 거라고 보고했다고 한다. 죄목은 개인비리지만 남측의 정세를 잘못 판단한 게 문제가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북소식통 C씨는 “북한이 정상회담에 나선 것은 차기 정권과의 경협을 겨냥한 측면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통일전선부는 지난해 초 단행된 숙정(肅正)으로 쑥대밭이 됐다. 개성공단에서 남측 기업, 관료, 정치인과 접촉하던 담당 일꾼도 걸려들었다. 수만달러를 챙긴 하위직은 물론 수백만달러의 뇌물을 받은 고위직도 드러났다.
일부 기업들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포용정책으로 해석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은 대선 직전 베이징에서 북측 인사를 만나 의향서와 초청장에 직접 서명했다. 항공산업(아시아나항공), 해주조력발전소(대우건설)와 관련한 것이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검토 수준에서 접근했다가 접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조선협력단지를 추진했으며, 포스코는 북한의 자원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한국기업이 북한과 추진하던 경협사업은 하나둘씩 무산됐다. 북한 처지에선 이명박 정부가 돈 벌 기회를 빼앗은 셈이다.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뒤 노무현 정부는 북한의 명목상 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답방을 추진했다. 북한이 물러날 정권의 요구를 들어줄 까닭은 없었다. 북한은 답방 카드를 이 대통령 취임식용으로 돌렸다. 북한은 복수의 루트를 통해 축하사절단을 보내겠다고 제안했다.
대통령직인수위 외교통일안보분과 자문위원이던 고려대 남성욱 교수(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는 “부총리급 이상의 고위 당국자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군불을 땠다. 이 대통령도 “북한에서 경축사절단이 온다면 언제나 환영한다”(지난해 1월17일 외신기자 회견)고 밝혔다.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은 북측 주요 인사들이 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할 수 있겠느냐며 당국자 간 회동을 제안했으나 “목적이 뚜렷하지 않다”며 이 대통령이 거절했다고 한다. 또 다른 관계자는 “북한의 제안을 받은 남측이 차일피일 답변을 미루다가 1월말에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 대통령 취임 후에도 남북 간 경제협력이 노무현 정부 때처럼 유지되기를 바라고 고위 인사의 취임식 참석을 타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 전 부부장은 이즈음 철직(撤職)된 것으로 알려진다. 남북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6월3일 ‘개성공단납치억류국민석방운동시민연대’ 회원들이 서울 청계광장에서 개성공단 근로자 Y씨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의 틀을 바로세우고자 했다. 대화 우선 정책으로 북한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 정책 결정자들도 통일·외교·안보정책 기조를 전임 정부의 잘못을 극복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ABR(Anything but Roh·모든 것을 노무현 정부와 반대로)이란 말이 관가에서 회자된 까닭이다. 이명박 정부는 6·15, 10·4 공동선언보다 남북기본합의서에 방점을 찍었다. 또 10·4 공동선언을 재검토해 ‘우선 할 것’ ‘나중에 할 것’ ‘못할 것’으로 구분해 접근하기로 했다. 북한은 이 대통령이 직접 6·15, 10·4 공동선언 대신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를 강조하는 언급을 하자 ‘물 불 안 가리고’ 공세에 나섰다.
서울의 빗나간 예측
북한은 6·15, 10·4 공동선언을 ‘장군님의 업적’이라고 여긴다. 북한 주민들은 공장, 농촌에서 단위별로 이뤄지는 생활총화(주민을 우민화하는 수단으로 알려져 있다) 때 ‘장군님이 이룬 성과’를 학습한다. 10·4 공동선언과 관련한 생활총화는 2007년 12월 이뤄졌다고 한다.
북한은 통일전선부 정비가 마무리된 3월말부터 남북 접촉면에서 긴장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대선 국면에선 입을 다물었던 ‘노동신문’은 이 대통령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임금인상 요구→태업→파업→남측기업 철수→통행금지→폐쇄로 이뤄진 ‘개성공단 폐쇄 시나리오’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비핵·개방3000 구상에 관여했으며 지금은 국책 연구기관의 장(長)으로 일하는 한 인사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
“북한과 갈등을 빚더라도 ‘주는 자’로서 갑(甲)의 지위를 확고히 해야 한다. 남북관계에서 지원을 받는 북한은 을(乙)이다. 북한이 ‘서울 길들이기’에 나서면 우리도 ‘평양 길들이기’로 대응할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런 과정을 거쳐야 남북관계가 정상화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의 뜻도 그렇다. 갑을이 뒤바뀐 남북관계를 정상화한 뒤 대북지원을 시작해야 한다. 북한의 전술에 말려들면 안 된다. 지금은 남북 간 ‘숨 고르기’ 국면으로 보면 된다. 북한의 태도가 바뀔 것이다. 쌀과 비료가 절박한 만큼 북한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길들이기 vs 길들이기 국면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7월11일엔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이 일어났다. 한국의 시민단체가 날려 보낸 삐라도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쳤다.
한 관계자는 “결국은 무산됐지만 지난해 12월~올해 1월 남북 간 움직임이 물길을 되돌릴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은 베이징도 좋고 평양도 무방하다면서 이 대통령과 가까우면서 이 대통령에게 직접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12월30일 청와대, 국정원 인사들이 비공개 모임을 가졌는데, 이 모임에선 한국경제와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는 남북경협사업을 정리했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1월 중순 관련 내용을 북한에 전달했으며, 북한도 이 사업과 관련해 내각에 검토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재오 전 의원은 1월17일부터 3월28일까지 베이징에 체류했다. 1월 임명된 정문헌 통일비서관도 남북을 오가는 인사들과 접촉한 것으로 확인된다.
“때깔이 달라진다”
평양은 더 이상 개성공단은 필요 없다는 투로 서울을 압박하고 있다. 개성공단에서 북한으로 넘어가는 돈은 월 400만달러에 조금 못 미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중국이 신의주특구와 관련해 북한에 차관 형식으로 지원하기로 한 금액은 7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조봉현 연구위원은 “조총련 고위 인사를 포함해 여러 경로로 크로스 체크한 정보에 따르면 중국이 동북3성과 북한지역에 투자하기로 한 자금이 한국 돈으로 200조원에 달한다. 200억달러가 아니라 200조원이다. 엄청난 돈이다. 물론 북한에 들어갈 자금은 장기간에 걸친 것이다”라고 전했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20대 여성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때깔’이 달라진다고 한다. 한 회사는 사원증을 발급한 지 1년 만에 여직원의 사진을 전부 새로 찍어야 했다. 얼굴이 못 알아볼 만큼 예뻐졌기 때문이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게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복지혜택이라고 한다.
북한 당국은 정치적 목적으로 이 여성들의 행복을 빼앗는 길로 나아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인간미가 결핍됐다는 소리를 듣는다. 계약→실행→이익분배의 경제행위를 닮았다. 길들이기 vs 길들이기 국면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인천항엔 인도적 지원단체가 북한에 지원하려고 준비한 모내기용 비닐이 쌓여있다. 정부가 반출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A씨는 “모내기용 비닐도 못 보내게 막는 건 난센스다”라고 말했다.
개성공단의 여성들은 올겨울 따뜻한 물로 샤워할 수 있을까? Y씨는 서울의 가을하늘을 볼 수 있을까? 10년 넘게 현장에서 북한을 들여다본 A씨는 “남북관계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