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처럼 많은 이가 뛰어들고도 아무런 결실을 보지 못한 이슈가 또 있을까. 1990년대 초 불거진 북한의 핵 개발은 엄청난 자산과 인원을 동원한 각국 정보기관의 추적과 차단작업에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북한 전역을 손금 보듯 관찰하는 정찰위성과 휴전선을 넘나든 정보요원들의 활약도, 상상조차 어려운 방식으로 파키스탄과의 핵 커넥션을 구축한 평양의 행보를 저지하는 데는 실패했다.
북한 영변의 핵 단지 위성사진. 2007년 4월 촬영된 것이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금창리를 주목한 이유는 수일 전에 래크로스 정찰위성이 이곳에서 핵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의심이 가는 건물을 촬영했기 때문이다. 가시광선에 의존하는 키홀 위성과 달리 래크로스 위성은 합성개구면레이더(SAR)로 촬영하기 때문에 구름이 낀 날이나 밤에도 감시가 가능하다. 그렇지만 해상도가 1m에 불과해 대상물을 명확하게 식별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미국 국가안전국은 정확한 촬영을 위해 기상조건이 최적인 때를 맞춰 키홀 정찰위성을 평안북도 대관군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고정밀 센서가 탑재된 2.3m의 대구경 망원렌즈가 일대를 정밀촬영하기 시작했다. 촬영된 물체들은 미국 버지니아 포트벨보어의 지상기지 중계를 거쳐 NSA와 중앙정보부(CIA)의 사진해석센터에 실시간으로 전송돼 수분 내에 판독된다.
1997년 초여름. 네 사람이 어둠이 깔린 천마산 기슭을 조심스레 전진하고 있었다. 계절은 여름으로 접어들었지만 해가 진 천마산 골짜기는 등골이 시릴 정도로 서늘했다.
“저깁니다.”
앞장을 선 조선족 길잡이가 골짜기를 가리켰다. 접근해서 살피니 골짜기 사이에 상당히 큰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위치와 형태로 봐서 미국 정보당국이 지목한 건물이 틀림없었다. 과연 저 건물에서 미국이 의심하고 있는 대로 고폭실험이 준비되고 있을까. 세 명의 대한민국 정보기관원은 자세를 최대한 낮추고 관측에 들어갔다.
위성정찰 결과 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금창리 일대에서 고폭실험을 하고 있다고 의심했다. 확실한 정보를 수집하려면 요원을 직접 현장에 투입시켜서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미국은 한국 정보기관에 협조를 요청했고 그에 따라 전현직 정보장교들로 구성된 팀은 위험을 무릅쓰고 천마산에 잠입했다.
북한은 정말로 고폭실험을 하고 있을까. 사실이라면 북한은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기폭장치 제조기술이 상당 수준에 이르렀다는 뜻이기도 하다. 핵분열을 일으키려면 기폭장치가 꼭 필요한데 기폭장치 제조에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수십, 수백 차례의 고폭실험을 거치며 시행착오를 개선해나가야 비로소 제대로 된 기폭장치를 만들 수 있다. 고폭실험에는 핵을 장착하지 않는다. 일종의 공포탄 사격인 셈이다. 기폭장치가 완성되면 그때 핵을 장착하고 핵실험을 한다. 만약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면 이는 1994년 제네바합의 위반이고, 한반도에 다시 전쟁의 암운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세 명의 정보요원은 한참을 지켜봤지만 시설물을 출입하는 차량도 사람도 관측되지 않았다. 어쩌면 미국 정찰위성이 지나가는 시간을 고려해서 은폐공작을 펼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까지 지켜볼 수는 없었다. 주변 일대를 촬영한 요원들은 서둘러 나뭇잎을 줍고 주변의 흙을 퍼 담았다.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시든 나뭇잎들과 부근의 토양성분을 분석하면 고폭실험 여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미사일 팔아 핵을 사다
북한의 핵이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1989년 프랑스의 상업위성이 영변의 핵시설을 촬영하면서부터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영변에 5MW 규모의 원자로를 가동하고 있음을 진작부터 확인한 바 있고, 1984년부터 줄곧 정찰위성으로 이 일대를 감시하고 있었다. 영변의 5MW 원자로는 전력생산을 명분으로 북한이 소련에서 도입한 것이지만, 미국은 평양이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과정에서 핵폭탄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했을지 모른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흔히 핵을 비대칭무기라고 한다. 재래식 전력이 현저히 뒤지는 나라도 핵을 보유하면 강대국과 상대할 수 있다. 당연히 약소국은 핵 보유의 유혹을 느끼게 마련이다. 골골거리는 병자도 총만 있으면 얼마든지 건장한 사람과 일대일로 맞설 수 있다.
그렇지만 핵은 비대칭무기에 더해서 주변국으로 확산되는 속성도 있다. 한 나라가 핵을 보유하면 이웃 국가들도 덩달아 핵을 보유하게 된다. 핵을 가진 상대와 맞서려면 자기도 핵으로 무장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과 소련, 인도와 파키스탄이 경쟁하듯 핵을 개발한 것이 그 예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면 동북아 주변국들, 즉 대한민국과 일본, 대만도 앞 다투어 핵을 보유하려 할 것이다. 세계경찰을 자임하며 핵 확산을 적극적으로 저지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절대로 묵과할 수 없는 사안이다.
2006년 11월 공개된 파키스탄의 가우리 미사일.
북한은 소련의 권유에 따라 1985년에 NPT에 가입하면서 IAEA의 사찰을 받을 의무를 지게 됐다. 그러나 미국의 거듭된 요청에도 북한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사찰을 거부했다. 더 이상 미룰 까닭이 없다고 판단한 미국은 북한의 핵시설을 폭격할 계획을 세웠다. 1994년의 한반도 위기, 이른바 ‘1차 북핵 위기’는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1994년 10월 미국과 북한이 극적으로 제네바합의를 이끌어내면서 한반도는 가까스로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됐다. 합의 결과 북한은 플루토늄 제조가 가능한 기존의 흑연 원자로를 폐기하는 대신 재처리가 어려운 경수로 건설을 이해 당사국들로부터 지원받게 되었다. 경수로가 완성되는 동안에는 중유를 공급받는다는 조건이었다.
제네바합의는 결과적으로 NPT 의무를 불성실하게 이행한 나라에 큰 보상을 해준 꼴이 되고 말았다. 북한은 제네바합의를 통해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둬들였다. 특유의 장기인 벼랑 끝 전술이 빛을 발한 것이다. 전쟁의 먹구름은 걷혔지만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다.
이렇듯 제네바합의로 인해 북한은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없게 됐고, 플루토늄이 없으면 핵폭탄을 제조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 정보당국은 북한이 고폭실험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스러운 정황을 포착한 것이다. 그리고 의혹은 한국 정보기관에서 제공한 토양 분석을 통해서 사실로 확인되었다. 북한은 왜 고폭실험을 하는 걸까. 혹시 제네바합의 전에 핵폭탄 제조에 충분한 양의 플루토늄을 이미 확보해놓은 것일까. 그렇다면 이는 제네바합의의 허점을 교묘히 파고든 것이 된다. 제네바합의는 원자로 봉인 이전에 추출했을지 모르는 플루토늄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았다.
더욱이 제네바합의의 허점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미국이 금창리 시설을 놓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무렵인 1997년 12월, 파키스탄의 육군참모총장 제항기르 카라마트 장군이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과 파키스탄의 핵 커넥션이 시작된 것이다. 북한은 제네바합의에 또 하나의 허점이 있음을 놓치지 않았다.
핵폭탄은 탄두 이상으로 운반수단이 중요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B-29 폭격기에서 핵폭탄을 투하했지만, 현재로서는 신뢰하기 어려운 방법이 됐다. 탄두를 장착해 발사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이 중요해진 이유다.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을 정도로 경량화된 핵탄두와 장거리 미사일을 모두 갖고 있어야만 진정한 핵보유국으로 불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북한은 1993년에 소련제 스커드 미사일을 기반으로 하는 최대 사정거리 1500㎞급의 노동미사일을 자체개발하면서 미사일 강국으로 부상했다. 1500㎞라면 일본도 사정권에 들어가는 준중거리 미사일이다. 주변국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에 미사일은 무기일 뿐 아니라 효자 수출품목이기도 했다. 주요 고객은 이란과 파키스탄. 북한은 기술수출에도 적극적이어서 파키스탄의 가우리 미사일과 이란의 샤하브 미사일 개발에 적극 관여했다. 이란은 이라크와, 파키스탄은 인도와 날카롭게 대립하던 중이었으므로, 그들에게 장거리 미사일을 제공하는 북한은 든든한 후원자였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을 필요로 하는 파키스탄은 반대로 북한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갖고 있었다. 이미 파키스탄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평가받는 상태였기 때문. 사실상 보유국이란 말은 언제든지 핵 실험을 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미국이 강력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핵실험을 강행하지는 못했지만 파키스탄의 기술력은 이미 핵실험이 가능한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상대국 인도도 마찬가지였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을 보유하게 된 일련의 과정은 핵 확산의 속성을 명확하게 보여준 실례였다. 중국은 1960년대 소련과 갈등을 겪으면서 핵을 보유하게 됐다. 소련과 맞서려면 중국도 핵무장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중국이 핵을 보유하자 이번에는 중국과 국경분쟁을 벌이고 있던 인도가 핵 개발에 나섰다. 인도가 핵 개발에 나서자 카슈미르 지역에서 인도와 날카롭게 대립하던 파키스탄도 서둘러 핵 개발에 들어갔다.
‘온 국민이 풀뿌리를 먹고사는 한이 있어도 핵을 개발하겠다’고 선언한 베나지르 부토 파키스탄 총리는 해외의 인력들을 불러들였고, 총력을 기울인 결과 마침내 핵심기술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이전까지 핵은 강대국만이 보유하는 무기였다. 그들은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지 않는 한 핵을 쓸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을 보유하게 되면서 추상적인 위협으로 존재하던 핵이 실질적인 위협으로 변했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제3차 세계대전의 위협은 크게 줄었지만, 국지전에서도 핵이 쓰일 수 있다는 개연성은 오히려 커졌다. 핵의 공포는 사실상 확대된 것이다.
핵이 필요한 북한과 장거리 미사일을 원하는 파키스탄.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나눠 갖고 있던 두 나라는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공포의 확산
1998년 초, 오산 미 공군기지. 고공정찰기 U-2가 특징인 긴 날개를 활짝 펴고 활주로를 향해 하강하자 지원차량이 속도를 맞추며 뒤를 따랐다. U-2기는 이륙할 때 바퀴를 지상에 떨어뜨리기 때문에 착륙할 때는 지상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휴전선 지상 1만5000m의 고공을 날며 60㎞ 적진까지 감시할 수 있는 U-2기는 정보수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하고 있었다.
이 무렵 워싱턴과 한국의 정보당국은 주 관심사가 조금 달랐다. 워싱턴은 북한의 핵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지만 주한미군과 한국군 정보당국은 그보다는 북한의 장사정포가 더 큰 관심거리였다. 휴전선 최남단인 개성직할시 판문군에서 서울 광화문까지는 40㎞에 불과하다. 북한군은 1997년에 평안남도 덕천에 주둔하고 있던 제61포병여단과 제62포병여단을 임진강 부근으로 전진 배치한 것을 시작으로 계속 전방에 대규모 화력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새로 구축한 진봉산 진지의 170㎜ 자주포와 240㎜ 방사포는 서울을 직접 사정권에 두고 있었다. 전진 배치된 장사정포는 이런저런 논란이 이는 핵과 달리 직접적인 위협이었다.
“공사가 예상보다 빨리 진행되고 있는 것 같소.”
항공사진을 들여다보던 미군 정보여단 분석관이 어두운 표정으로 한국군 정보장교에게 사진을 넘겼다. 한국군 정보장교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U-2기에서 촬영한 사진은 북한군이 진봉산 북쪽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것을 확연히 보여주었다. 북한군은 240㎜ 방사포를 이쪽에서 타격하기 힘든 북쪽 사면에 배치했다.
분석 결과 진봉산 진지는 출입문이 20㎝ 두께의 강철로 된 것으로 판명됐다. 웬만한 포격에는 끄떡도 하지 않을 두께였다. 북한은 이 지역 일대에 170㎜ 자주포 100여 문과 240㎜ 방사포 200여 문을 배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서울은 불바다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군과 주한미군은 공격징후를 더욱 신속하게 포착하기 위해 대북감시를 강화했고, 방사포를 제압하기 위해 사정거리 40㎞의 다연장로켓(MLRS)을 전진 배치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도 북핵은 꾸준히 진보하고 있었다.
파키스탄은 1998년 4월6일 사정거리 1500㎞의 준중거리 미사일 가우리2호 발사에 성공했다. 건국 영웅의 이름을 딴 이 미사일로 파키스탄은 숙적 인도의 중심부를 강타할 수 있게 됐다. 파키스탄이 적극적으로 북한에 접근한 것은 인도에 비해서 지형적으로 불리했기 때문. 인도의 수도 뉴델리는 두 나라의 국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는 그렇지 못하다. 인도는 단거리 미사일을 가지고도 파키스탄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지만 파키스탄은 그게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의 노동미사일을 기반으로 한 가우리2호가 개발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이번에는 파키스탄의 든든한 후원자가 된 북한이 요구조건을 내세울 차례다. 북한-파키스탄의 핵 커넥션이 본격적으로 작동하면서 제네바합의로 한 고비를 넘겼던 북핵 위기는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핵 커넥션의 후풍풍은 인도 쪽에서 먼저 불어왔다. 파키스탄 미사일의 사정권에 들어간 인도는 즉각 핵 실험을 감행하고 나섰다. 더 이상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인도는 그해 5월11일에 라자스탄주 사막지대의 포크란에서 핵실험을 감행했고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인도 총리는 핵보유를 공식 선언했다. 아울러 신형 트리슐 미사일도 공개했다. 트리슐은 사정거리가 50㎞에 불과한 단거리 미사일이지만 국경에 배치해도 충분히 파키스탄의 중심부를 타격할 수 있다.
이번에는 파키스탄이 받아칠 차례였다. 파키스탄도 핵실험을 공언하고 나섰다. 우려했던 핵 확산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이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파키스탄 샤리프 총리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 핵 실험 준비를 중단하라고 요청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그 대가로 미국이 전략적으로 수출을 금지하고 있는 F-16 전투기를 파키스탄에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국가의 생존이 걸린 파키스탄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미국은 먼저 인도의 핵실험을 막았어야 한다.” 샤리프 총리는 클린턴 대통령의 요청을 매정하게 거절하고 5월29일 발루치스탄의 차가이 실험장에서 핵실험을 감행했다. 이렇게 인도는 지구상의 여섯 번째, 파키스탄은 일곱 번째 핵보유국이 됐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쿠바, 이스라엘과 더불어 NPT 미가입국이다. IAEA를 앞세운 제재에는 한계가 있다. NPT는 핵 확산 금지에는 효율적이지만 기왕에 핵을 보유한 국가들과 NPT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들에 대해서는 별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북한은 이 점을 결코 간과하지 않았다. 무슨 수를 쓰든 일단 핵을 보유하면 미국은 현실을 인정하고 제재 대신에 보상을 택한다는 사실을 똑똑히 목격한 것이다. 소련의 압력으로 어쩔 수 없이 NPT에 가입했던 북한에 NPT는 언제라도 버릴 수 있는 카드였다.
파키스탄이 필요했던 이유
장거리 미사일의 성공적인 발사와 핵 실험 성공은 파키스탄과 북한에 큰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북한이 미국과, 파키스탄이 인도와 갈등할수록 두 나라는 더욱 밀착했다. 사실 북한과 파키스탄은 핵 커넥션 이전부터 서로를 주목하고 있었다. 1994년 12월 파키스탄의 부토 총리가 평양을 방문했고, 이듬해 12월에는 북한 인민무력부장 최광이 이슬라마바드를 답방하며 두 나라는 우호관계를 유지해왔다. 당시만 해도 상황은 유동적이었고 각각의 미사일과 핵 능력은 아직 본궤도에 오르기 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북한은 제네바합의로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핵폭탄을 제조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고농축 우라늄 폭탄에 주목한 북한에 파키스탄의 도움은 절대적이었다. 북한은 파키스탄이 고농축 우라늄 핵폭탄 제조에 필요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핵폭탄에는 고농축 우라늄으로 만든 것과 플루토늄으로 만든 것 두 종류가 있다. 우라늄은 천연에 존재하지만 플루토늄은 우라늄을 재처리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인공물질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우라늄에는 질량수 235와 238의 두 종류 동위원소가 섞여 있는데 그중에 핵분열을 일으키는 것은 1% 미만에 불과한 우라늄 235다. 채굴된 우라늄 중에서 99%는 쓸모없는 것이다. 우라늄 238과 우라늄 235는 원심분리기를 통해 분리되는데 여기서부터 IAEA의 감시가 따른다. 저농축 우라늄은 원자력발전의 원료로 쓰이지만 고농축 우라늄은 핵폭탄의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NPT 가맹국들은 IAEA로부터 우라늄을 고농축하지 않았음을 검증 받아야 한다.
플루토늄 폭탄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플루토늄은 원자로에서 사용하고 남은 저농축 우라늄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면 얻을 수 있다. 핵 선진국들이 보유하고 있는 핵폭탄은 거의 전부가 플루토늄으로 만든 것이다. 핵분열에 필요한 고농축 우라늄을 얻기 위해서는 원심분리기 여러 대를 오랫동안 돌려야 하지만 플루토늄은 상대적으로 손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효율에서도 플루토늄 폭탄 쪽이 훨씬 앞선다. 우라늄 폭탄은 5%만이 에너지로 변하고 나머지는 허공으로 날아가지만 플루토늄 폭탄은 그보다 효율이 수십 배 높다.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북한의 흑연 원자로 폐기에만 주목한 채 서둘러 체결된 제네바합의는 두 가지 허점을 안고 있었다. 하나는 합의 전에 북한이 플루토늄을 이미 추출했을 경우다. 나중에 확인된 일이지만 북한은 제네바합의 이전에 핵폭탄 1~2개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이미 추출해놓았다. 다른 하나는 고농축 우라늄 핵폭탄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농축에 필요한 원심분리기 수출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던 미국이 통제체제를 지나치게 과신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빈틈을 놓치지 않았고, 제네바합의를 통해 챙길 것을 챙긴 뒤 미련 없이 우라늄 핵폭탄으로 방향을 틀었다.
북한이 필요하기는 파키스탄도 마찬가지였다. 개발에 성공한 장거리 미사일 가우리2호는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구형이어서 실전에서는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 액체연료는 부식성이 강해서 미리 넣어둘 수 없으므로 발사 직전에 연료를 주입해야 한다. 분초를 다투는 현대전에서는 결정적인 약점이다. 파키스탄은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신형 미사일을 원했다. 물론 북한은 그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위해 1997년 말 파키스탄 육군참모총장 제항기르 카라마트 장군은 은밀히 평양을 방문했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핵 커넥션이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네바합의 이전에 재처리를 끝낸 플루토늄과 핵 커넥션을 통해 얻게 된 고농축 우라늄. 양손에 떡을 쥔 북한이지만 아직 문제가 남아 있었다. 고농축 우라늄 폭탄은 비교적 간단한 기폭장치로도 폭발시킬 수 있지만 플루토늄 폭탄에 쓰이는 내폭형 기폭장치는 제조에 고도의 기술을 요한다. 제대로 작동하는 기폭장치를 완성하려면 수십, 수백 차례의 고폭실험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평북 구성시와 대관군 일대에 비밀 실험장을 만들고 고폭실험을 진행하던 차에 미군 정찰위성에 포착된 것이다.
칸 박사와의 회동
2009년 2월 5년간의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직후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드는 파키스탄의 핵 과학자 압둘 카디르 칸.
차가 멎고 승용차 문이 열리자 파키스탄 주재 북한대사관 경제참사관 겸 창광신용공사 파키스탄 주재원인 강태윤이 얼른 차에서 내렸다. 강태윤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쫓기듯 연구소 안으로 들어갔다. 창광신용공사는 북한 국방위원회 산하 제2경제위원회 제4기계산업국 소속으로 북한의 미사일 수출을 관장하는 곳이다. 강태윤은 파키스탄에 노동미사일을 수출하는 실무를 전담하고 있었다.
“어서 오시오.”
기다리고 있던 파키스탄 고위층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동석한 사람을 소개했다.
“연구소장 압둘 카디르 칸 박사입니다.”
“기다리고 있었소.”
칸 박사가 손을 내밀었다. 파키스탄 핵 개발의 주역인 그는 이후 10여 차례 북한을 방문하며 북한의 핵개발에 적극 관여한다.
“신형 미사일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강태윤이 웃으며 물었다.
“그렇소. 우리는 사정거리 2500㎞ 이상의 미사일을 원하고 있소.”
파키스탄 고위층이 탐색하듯 강태윤을 노려보았다. 그즈음 파키스탄은 인도의 심장부를 강타할 수 있는 가우리3호 미사일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만한 위력을 지닌 미사일을 보유한 나라라면 미국과 러시아를 우선 꼽아야겠지만, 두 나라는 모두 파키스탄에 대해 미사일 수출은 물론 개발기술 전수도 금하고 있었다. 그래서 파키스탄은 북한을 상대로 지목하고 조심스럽게 접근 중이었다.
“우리는 곧 신형 미사일을 실험 발사할 것입니다.”
강태윤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대답했다.
“우리는 고체형 연료를 원하고 있소.”
고위층은 조건을 확실히 했다.
“물론입니다.”
강태윤은 거침이 없었다. 이 무렵 북한은 사정거리 2000㎞가 넘는 대포동1호 미사일 개발을 완료하고 있었다.
“성능이 확인되면 미사일 12기를 기당 600만달러에 구입하겠소.”
파키스탄 고위층이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미사일 12기면 1개 여단을 무장할 수 있다.
“그리고 기술자도 파견해주어야 합니다.”
“평양에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강태윤은 일단 수락하고서 칸 박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제는 북한에서 요구조건을 내걸 차례다. 그만한 가격이면 나쁜 조건은 아니지만 정작 원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우리는 원심분리기를 원합니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원자로용으로 제작한 미사용 연료봉. 2009년 1월 촬영된 것이다.
“원심분리기는 미국이 수출금지품목으로 지정하고 엄중하게 감시하고 있어서 손에 넣는 게 쉽지 않소.”
고위층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P-2형 원심분리기입니다.”
강태윤이 북한의 정보력을 우습게보지 말라는 듯 두 사람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P-2형 가스 원심분리기는 오스트리아의 게르노트 지페 박사가 개발한 것으로, 미국의 원심분리기와 작동방식이 달라서 미국의 통제를 빠져나갈 여지가 많았다. 북한은 칸 연구소가 이미 1만4000여 대의 지페형 원심분리기를 확보하고 있음을 확인해둔 상태였다.
“그야…. 하지만 당신들도 잘 알고 있겠지만 지금 우리 연구소를 지켜보고 있는 눈이 한둘이 아니오.”
칸 박사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말대로 지금 CIA는 물론 인도 정보부도 칸 연구소를 불철주야 감시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모사드도 빼놓을 수 없다. 이란에 미사일을 수출하고 있는 북한은 모사드의 주요 감시대상이었다.
“그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설계도와 한두 대의 샘플입니다.”
핵폭탄 1개를 제조할 고농축우라늄을 얻으려면 원심분리기 100대를 5년 동안 돌려야 한다. 북한은 1000대를 보유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많은 양을 전부 수입할 수는 없다. 그래서 북한은 설계도와 샘플을 구해 자체 제작할 계획이었다. 원통형으로 생긴 원심분리기는 그리 크지 않아서 샘플 몇 대 정도는 감시의 눈을 피해 빼돌릴 수 있다. 강태윤은 이미 구체적인 계획까지 마련해놓고 있었다.
“설계도와 샘플이 있다고 누구나 원심분리기를 제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오. 제조에 꼭 필요한 머레이징 강철은 특수재료라서 쉽게 손에 넣을 수 없소.”
칸 박사가 고개를 저었다. 부식방지 처리가 돼 있는 머레이징 강철은 18~25%의 니켈이 포함된 강철합금으로 원심분리기 제조에 꼭 필요한 재료지만, 칸 박사의 지적대로 미국이 철저하게 수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손에 넣기가 쉽지 않았다. 칸 연구소는 카이로와 카사블랑카, 두바이, 그리고 콸라룸푸르 등지에 출장소를 두고 핵 개발에 필요한 재료를 수집하고 있었지만, 머레이징 강철만은 늘 골칫거리였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 부분은 우리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강태윤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더 이상 거부할 명분이 없다. 더구나 인도가 장거리 아그니 미사일 개발을 완료했다는 정보도 입수된 마당이다. 그에 대응하려면 사정거리 2000㎞ 이상의 미사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파키스탄은 북한의 요구를 거부할 처지가 못 됐다.
“상부에 보고하겠소.”
고위층이 대답했다. 실무 책임자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왔다는 것은 사실상 승낙을 의미한다.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친 강태윤은 흡족한 표정으로 연구소를 나섰고, 그를 태운 차는 이슬라마바드 시내를 향해 달렸다. 남은 문제는 원심분리기를 어떻게 북한으로 가져가느냐다.
미국 정보기관에서는 눈에 불을 켜고 감시를 하고 있다. 카라치와 남포를 오가는 화물선 구월산호로 운반하면 좋겠지만 구월산호는 인도의 칸들라 항을 경유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정보가 새어나가면 인도 첩보부대가 들이닥칠 것이다. 칸들라 항에 들르지 않는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 인도 해군이 공해상에서 배를 검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북한-파키스탄 핵 커넥션의 상대방은 미국과 인도다. 두 나라는 당연히 공조할 것이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미국의 감시를 따돌려야 한다.
한 발의 총성
강태윤이 고심하는 사이에 차는 외국인이 거주하는 고급 주택가에 들어섰고 강태윤의 관사 앞에 멈춰 섰다.
“지금 오세요?”
부인 김신애가 마중을 나왔다. 강태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집안으로 향했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저격용 라이플로 강태윤을 겨누고 있는 자가 있었다. 강태윤의 머리가 정확하게 조준선에 들어왔다. 저격수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갑자기 강태윤이 몸을 돌리더니 다시 차로 향했다. 놓고 온 게 있는 모양이었다. 저격 순간을 놓친 저격수는 상황을 관찰하기 위해 총에서 눈을 뗐다.
2010년 11월 북한이 공개한 원심분리기가 모방한 것으로 추정되는 네덜란드 알메로 원심분리기.
수일 뒤, 검은 양복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카라치 공항에 도열해 있었다. 북한 외교관들과 파키스탄 정부 관계자들이 평양으로 공수되는 김신애의 시신을 영결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김신애의 사망은 의외로 조용히 처리됐다. 범인은 끝내 체포되지 않았다. 파키스탄 당국은 정체불명의 괴한 소행으로 결론을 지었고 북한도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크게 떠들어댈 상황이 아니었다. 김신애의 시신이 담긴 관이 애도 속에 운구를 마치자 파키스탄 공군 소속의 C-130 수송기가 굉음을 내며 이륙했다. 목적지는 북한 순안비행장이었다.
P-1, P-2 원심분리기 20여 기가 북한으로 유출된 것은 훗날 페르베즈 무샤라프 전 파키스탄 대통령의 증언으로 확인됐다. 미국과 인도, 이스라엘의 정보기관까지 나서서 그토록 철저하게 감시를 했는데 어떻게 파키스탄을 빠져나갔을까. 미국 정보당국은 북한이 신형 원심분리기의 설계도와 필요한 샘플을 평양으로 운구된 김신애의 관 속에 숨겨 옮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 정보기관의 분석이 사실이라면 위기를 기회로 바꾼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발상인 셈이다. 저격은 인도 정보부에 의해 기도됐을 공산이 크다.
남은 문제는 원심분리기 제조에 반드시 필요한 머레이징 강철과 특수 알루미늄을 손에 넣는 것. 북한은 이들 재료를 입수하기 위해 집요하리만큼 매달렸다. 이 무렵 영국 세관은 모스크바의 한 연구소가 파키스탄 주재 북한대표부로 보내던 머레이징 강철을 경유지에서 압수한 바 있고, 프랑스 정부 역시 북한이 독일의 한 회사에서 구입한 22t의 특수 알루미늄을 프랑스 선적의 배로 운송하려는 것을 수에즈 운하에서 적발했다. 적발되지 않고 북한에 들어갔다면 원심분리기 400대를 만들 수 있는 양이었다. 얼마나 많은 양이 적발되지 않고 북한에 들어갔을지 가늠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Weapons of Mass Deceit
이렇게 시작된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은 2002년이 또 한 차례의 핵 위기를 한반도에 몰고왔다. 10월5일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부장이 평양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에게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하면서 수면으로 떠오른 위기였다.
흔히 핵을 ‘사용할 수 없는 무기’라고 한다. 핵을 사용하면 공멸이다. 따라서 핵은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인 동시에 대량공갈무기(Weapons of Mass Deceit)인 셈이다. 그렇다면 벼랑 끝 전술로는 최고의 수단이다.
제네바합의를 통해 벼랑 끝 전술의 실체를 파악한 미국이 압박의 수위를 높이자, 북한은 이번에는 플루토늄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IAEA의 감시하에 있던 폐연료봉 8000개를 재처리했다는 주장이었다. 이로써 제네바합의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고, 북한 핵문제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과 파키스탄의 관계다. 2001년 9·11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시작되자 미국과 파키스탄은 급격히 가까워졌고, 북한과 파키스탄의 핵 커넥션에도 변수가 생겼다. 커넥션을 주도했던 칸 박사가 가택연금 상태에 놓이면서 급격히 위세를 잃었고, 그간의 기술교류 상황은 낱낱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북한이 어떤 종류의 핵폭탄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북한은 필요에 따라 이를 은폐하기도 하고 과장하기도 한다. 다만 앞서 말했듯 핵에는 탄두 못지않게 운반수단도 중요한데 북한은 운반수단만큼은 감추지 않고 공개하고 있다.
북한이 1998년 8월31일 함경북도 무수단리에서 실험발사한 대포동1호 미사일은 사정거리가 2000㎞에 달한다. 2단 분리형에 부분 고체연료를 채용한 대포동1호 미사일은 일본 전역을 사정권에 두었다. 이내 일본 열도는 공포에 휩싸였고 미국도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북한이 향후 미국도 사정권에 들어가는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기 위해 나서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북한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1998년말 진행된 북미 간 미사일 협상에서 평양은 미사일 수출 중단을 요구하는 미국에 그 대가로 최소한 3년간 10억달러씩 보상할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미사일은 전략무기인 동시에 주요 수출품이고, 강력한 대미협상용 카드였다. 이후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과 핵을 동시에 협상의 주요카드로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 쪽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북한은 2006년 7월5일 무수단리에서 대포동 2호를, 그리고 강원도 안변군 깃대령에서 스커드B 계열 5발과 노동1호 미사일 1발 등 총 7발을 동시에 발사하며 무력시위에 나섰다. 백화점에 물건을 전시하듯 보유하고 있는 모든 종류의 미사일을 발사한 셈이다. 스커드 미사일은 한국을, 노동1호는 일본을, 대포동2호는 미국을 염두에 둔 것이다.
핵과 미사일,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세트로 묶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뜨리면서 주변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북한의 핵 시리즈는 그때마다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장거리 미사일로 주변국들을 긴장시킨 북한은 다시 카드를 바꿔 2006년 10월에는 함경북도 길주에서 지하 핵실험을 감행했다. 실험에 쓰인 폭탄은 플루토늄 폭탄인 것으로 알려졌다. 칸 박사는 1999년에 평양을 방문했을 때 3개의 핵장치(Nuclear Device)를 봤다고 증언한 바 있다. 제네바합의 이전에 추출해놓은 플루토늄으로 제조한 폭탄이 2006년 핵실험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북한은 핵과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할 시간을 벌었고, 상황은 점차 악화됐다. 2003년 시작된 6자회담은 2007년 2·13합의 등을 도출해냈지만 사안을 마무리 짓지 못했고, 오히려 북한의 추가 핵실험으로 이어졌다. 북한은 필요에 따라 핵 개발은 에너지용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공화국을 수호하기 위한 자위수단이라고 내세우기도 하며 협상의 줄을 밀고 당겼다.
폭주기관차의 종착역은
북핵은 정녕 합의로는 풀 수 없는 문제일까. 우선 ‘합의’라는 것에 대해서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합의는 말이 통하는 상대끼리 하는 것이다. 말이 통하려면 최소한의 상식을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내가 한발 물러서 양보하면 따라서 물러서는 상대가 있고, 양보를 유약의 신호로 받아들이고 올라타려는 상대가 있다.
‘햇볕정책’이라는 말이 이솝 우화에서 나온 것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솝 우화에는 햇볕과 나그네 이야기만 나오는 게 아니다. 거짓말하는 양치기 소년 이야기도 나온다. 양치기 소년은 결국 늑대에게 물려죽는다. 마을 사람들은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에 끌려 다니다 최악의 결과를 맞는다. 처음부터 소년을 호되게 꾸짖었다면 소년은 늑대에게 물려 죽지고 않았을 것이고, 소년의 부모는 자식을 잃는 비극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벼랑 끝 전술은 우유부단과 좌충우돌을 기반으로 한다. 신속하고 단호한 대처는 벼랑 끝 전술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강력한 무기다. 핵은 비대칭무기지만 쉽게 사용할 수 없는 무기다. 현실적으로는 무분별한 공포심과 내분이 오히려 더 경계해야 할 비대칭무기일 것이다.
제네바합의로도, 6자회담으로도 막지 못한 북핵은 여전히 무서운 속도로 레일 위를 달리는 폭주기관차다. 이렇듯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한민국의 해군 함정이 폭침되고 영토가 포격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남과 북은 휴전 이후 최고 수위의 긴장상태에 놓이게 됐다. 성급하게 ‘제2의 6·25전쟁’을 입에 담는 해외 언론이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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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서 세계가 놀라워하는 발전을 이룩하며 여기까지 왔다. 최빈국에서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최초로 원조를 받은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탈바꿈했다. 어렵게 이룩한 번영이 또다시 잿더미로 변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한반도가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서 번영을 이어갈 방도는 없는가. 역사는 의외로 간단히 답하고 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