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호

법은 ‘정의’보다는 ‘출세 수단’이었다

[강준만의 회색지대] 민관합동으로 만든 법조공화국①

  •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입력2024-09-01 09: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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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영 이익이면 정의 구현, 반하면 검찰독재

    • ‘검찰 쿠데타’란 평가, 윤석열에겐 과분

    • 20대 대선 후보 6명, 모두 법대 출신

    • 법대 나온 의원, 22년간 국회 15~20% 차지

    • ‘검찰 가족’이라며 연대감 과시

    • 법조계 상층부 부족주의, 여전히 건재

    [Gettyimage]

    [Gettyimage]

    2019년 8월 27일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국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이후, 특히 검찰총장 출신의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된 제20대 대선(2022년 3월 9일) 이후, ‘검찰독재’라는 말이 많이 쓰이게 됐다. 이젠 아예 의심할 필요조차 없는 당연한 일상용어로 자리 잡았다는 느낌마저 준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검찰독재라는 말의 주요 근거 중 하나가 검찰이 행사하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이라면, 이 말은 검찰의 국정농단 수사가 시작된 2016년 12월 21일 이후부터 쓰였어야 했던 게 아닌가. 박근혜 정권 사람들에 대한 검찰의 무자비한 수사는 정의 구현이었지만, 검찰의 무자비한 조국 수사는 검찰독재라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똑같은 검찰이었거니와 보여준 행태 역시 거의 똑같았는데, 왜 그렇게 상반된 평가를 한 건가.

    물론 우리는 그 이유를 모르진 않는다. 문재인 정권과 진보 진영의 DNA였다고 해도 좋을 ‘내로남불’ 때문이었을 게다. 박근혜 정권을 내쫓고 문재인 정권을 창출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한 검찰이 진영의 이익에 충실할 때엔 정의 구현이지만, 진영의 이익에 반할 때엔 검찰독재 또는 그 전 단계인 검찰 쿠데타라는 게 민주당 진영의 인식이자 주장이었다. 그래서 조국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이후 검찰 쿠데타는 민주당 진영에서 매일 외쳐대는 일상용어가 됐다.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지난 5년간 ‘검찰 쿠데타’ ‘사법 쿠데타’ ‘연성 쿠데타’ ‘2단계 쿠데타’ ‘조용한 쿠데타’ ‘조폭 검사들의 쿠데타’ 등 다양한 용어로 윤석열을 쿠데타의 수괴로 매도하는 폭격을 퍼부었다.

    그런데 그건 혹 윤석열에 대한 과대평가는 아닌가. 그는 공적 마인드가 없는 부인을 자신의 우상으로 섬기면서 그 우상을 기쁘게 해주는 걸 국정 운영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해 온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의 참패를 불러온 동시에 야권의 끊임없는 ‘탄핵’ 공세에 시달리고 있잖은가.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에게 쿠데타를 획책할 정도의 주도면밀한 계략이 있었을 것 같진 않다는 말이다.

    ‘검찰독재’ ‘검찰 쿠데타’는 선전·선동 언어

    검찰독재니 검찰 쿠데타니 하는 말에선 일방적인 선전·선동의 기운만 강하게 느껴진다.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검찰의 문제라는 건 대부분 옳은 듯 보이지만 제시하는 사례들이 지극히 ‘선택적’이라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 똑같은 성격의 행위라도 자기편에 도움이 되면 선하고, 도움이 되지 않으면 악하다고 주장하는 후안무치(厚顔無恥)가 밥 먹듯이 저질러지고 있다는 뜻이다.

    또 그 문제의 대부분은 출세와 자기 가족밖에 모르는 한국 엘리트 계급의 공통된 이기적 특성이며, 같은 계급에 속하는 정치인들이 대체적으로 보아 검사들보다 더 낫다고 말하긴 어렵다. 제3자적 관점에서 보자면, 민주당 정권이 검찰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다가 그 도구로부터 역공을 당한 자업자득(自業自得)을 스스로 비난하는 ‘누워서 침 뱉기’를 할 수는 없어서 윤석열과 검찰에 필요 이상의 비난을 퍼붓는 ‘악마화’ 전략을 썼다고 평가하는 게 공정할 것이다.

    검찰독재나 검찰 쿠데타보다는 한결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검찰공화국’이라는 말도 공정한 개념은 아니다. 이 말이 정권이 검찰을 마음대로 부려먹을 때 그 정권 쪽에서 나온 거라면 깊이 새겨들을 가치가 있겠지만, 검찰을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없게 되고, 더 나아가 정권을 잃고 야당이 된 상황에서 갑자기 외쳐대는 게 무슨 설득력이 있겠는가. 비교적 가치중립적인 개념을 쓰자면, ‘검찰공화국’을 포괄하는 ‘법조공화국’으로 부르는 게 어떨까 싶다.

    법조(法曹) 또는 법조인(法曹人)은 일반적으로 법률 사무에 종사하는 사람, 특히 재판관·검찰관·변호사 따위의 법률 실무에 종사하는 사람을 이른다. 과거에 법조인은 판·검사만을 의미했지만, 오늘날엔 그 범위를 넓혀서 변호사, 법무사, 법대 교수,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까지 다 법조인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즉 ‘법을 다루는 전문가’ 또는 ‘법률 지식으로 먹고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한겨레, 2021년 6월 27일자).

    우리는 검찰공화국이나 법조공화국의 문제를 지적할 때 ‘공급’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게 해선 그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수요’도 동시에 보아야 한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이전에 판·검사와 변호사의 관문이었던 사법시험(또는 사법고시)이 한국인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먼저 따져보아야 한다. 사법시험 합격자를 가문과 학교와 지역의 영광으로 떠받들면서 우대하고 숭배하는 문화는 누가 만든 건가. 검찰공화국을 비난하는 정도를 넘어서 저주마저 퍼붓는 정당이 그간 선거를 앞두고 검사를 비롯해 법조 출신 인사를 많이 영입하려고 무진 애를 써온 정당이라는 건 어찌 이해해야 하는가.

    법조인 출신이 장악한 한국 정치판

    한국은 민관(民官)합동으로 세운 법조공화국이다. 대중의 일상적 삶에서 법조를 우대하고 동경하는 게 세계 최고 수준이며, 고소·고발과 ‘정치의 사법화’가 왕성하게 일어나 이 또한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나라가 아닌가. 2021년 중앙일보 대기자 양선희가 정말 옳은 말 했다. 그는 “사실 고소·고발이 먹히는 것도 세계에서 유례없이 고소·고발을 즐기는 우리 국민의 문화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인의 고소·고발 건수는 연평균 50만 건 안팎. 우리보다 두 배 넘는 인구를 가진 일본보다 건수로만 40배가 넘는다. 우리는 검찰의 정치화와 기소편의주의를 비난하며 개혁하라고 요구했다. 한데 툭하면 검찰로 달려가 고소·고발을 남발하며 그들을 편가르기 도구로 활용하는 것은 누구인가. 대선 철만 되면 유력 후보의 죄를 빨리 밝혀내라며 검찰을 닦달하는 건 또 누구인가.”

    20대 대선에 앞서 이뤄진 대통령 후보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이재명, 이낙연, 홍준표 등 법과대학 출신 정치인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동아DB]

    20대 대선에 앞서 이뤄진 대통령 후보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이재명, 이낙연, 홍준표 등 법과대학 출신 정치인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동아DB]

    ‌법을 사랑하지 않으면 대통령 되기도 힘들다. 2021년 6월 28일 중앙일보는 ‘법대 나와야 명함 내민다? 내년 3·9 대선 흥미로운 현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대통령 후보 여론조사의 상위권을 법과대학 출신 정치인이 싹쓸이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이재명·이낙연·홍준표·추미애·최재형이 그러하며, 이외에도 정세균·이광재·원희룡·황교안 등 죄다 법대 출신이라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어떤가. 제5공화국 시절 여당인 민주정의당은 육사 출신과 서울 법대 출신이 가장 많은 데다 야합했다는 의미에서 ‘육법당(陸法黨)’으로 불렸다. 2003년 동아일보 논설위원 임채청이 내놓은 해설이 흥미롭다. “성골인 육사 출신에게 진골인 율사 출신이 체제논리를 제공하면서 권력을 할애받은 것에 대한 야유였다. 물론 검사 출신이 큰 몫을 했다. 80년대 중반 한 검찰 고위간부의 얘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언론에서 검찰을 정권의 주구(走狗)라고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검찰도 정권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뉴시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뉴시스]

    ‌육사 출신의 전성시대는 갔지만, 서울 법대 출신을 비롯한 법조 권력은 더 강해졌다. 대부분 법대를 나온 법조인 출신은 당선 시점 기준으로 14대 국회(1992) 25명, 15대(1996) 41명, 16대(2000) 41명, 17대(2004) 54명, 18대(2008) 59명, 19대(2012) 42명, 20대(2016)·21대(2020)·22대(2024) 61명 등 대체적으로 전체 의원의 15~20%를 차지해 왔다. 너무 많지 않은가. 그럼에도 정당들이 인재 영입 시 법조인을 우대하는 걸 어이하랴. 더불어민주당이 2020년 2월 4·15 총선을 앞두고 외부 인사를 영입했을 때 전체의 약 30%가 법조인이었다.

    왜 법조인 출신이 정치판을 휩쓰는 걸까. 입법부라는 국회의 속성과 법조의 친화성, 전반적인 사회체제의 안정화(또는 보수화), 유권자의 학력·학벌 우대 풍토, 그리고 정치 진입·탈퇴 시 법조인이 누릴 수 있는 호구지책(糊口之策)의 비교우위를 들 수 있겠다. 현실적으론 이 마지막 이유가 가장 중요하다. 법조 출신 정치인은 공천에서 탈락하거나 선거에서 낙선해도 언제건 변호사로 돌아갈 수 있는 자유와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다른 전문 직종이나 직업을 가진 사람은 비교적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100여 년 전인 1919년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강연에서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두 가지 방식’에 대해 말하면서 지적했던 것이다. 그가 말한 두 가지 방식은 정치를 ‘위해’ 살거나 정치에 ‘의해’ 사는 것이다. 물론 이 둘은 상호 배타적인 건 아니다. 많은 정치인이 정치를 위해 사는 동시에 정치에 의해 살고 있다.

    정치를 위해 산다 함은 이기적 목적이건 이타적 목적이건 정신적 의미에서 ‘정치를 자신의 삶으로’ 삼는 걸 의미한다. 그렇다면 호구지책은 어떻게 할 것인가. 바로 이 측면, 즉 정치를 지속적 수입원으로 삼는 걸 정치에 의해 산다고 볼 수 있다. 대중은 정치인이 정치에 ‘의해’ 사는 측면에 대해 양극단의 자세를 취한다. 한 부류는 그걸 너무 인정하지 않아서 탈이고, 또 한 부류는 그걸 너무 인정해서 탈이다.

    많은 사람이 의원들에게 정치는 먹고사는 생계 수단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의원들이 생계수단을 놓치지 않기 위해 벌이는 일은 정치인을 저주해야 할 이유가 된다. 이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정치인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아예 논의 대상도 되질 않는다. 평소에 존경받던 운동권, 학계 인사들조차 정치판에 들어가기만 하면 변질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정치를 생계 수단으로 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생계 수단으로서의 정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중엔 정치를 직업으로 택할 뜻이 전혀 없는 사람이 많다. 인생의 황금기 중 10년 이상을 정치에 투자한 사람에게 어느날 갑자기 “너 나가라”라고 그러면 그 사람은 이후 무엇으로 먹고사나. 언제든 먹고살 길이 보장돼 있는 변호사들만 정치를 하라는 건가. 그런데 바로 이 ‘변호사 모델’이 한국 정치판에서 잘나가는 정치인의 모델이 됐다. 막스 베버도 자신의 강연에서 변호사가 직업정치인으로서 지배적인 역할을 해온 이유를 바로 그 점과 연결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 사법고시 더 인기

    법조공화국의 문제는 상당 부분 사법고시의 문제를 물려받았다.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가문의 영예’로 여기는 잔치판이 벌어지고, 자기가 살던 동네와 다닌 학교에 축하 현수막까지 나붙었다. 서울대는 거대한 고시학원이었다. 법대를 들어가면 바로 사시를 준비하고, 수업도 사시 과목만 들었다. 사법고시는 대학의 평판까지 좌우하기 때문에 대학 측도 고시 바람을 부채질했다.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도서관에 별도의 고시공부방을 두었으며, 일부 대학은 저명한 고시 전문 교수들을 초빙해 특강도 열어주고 사시 준비생에게 장학금 혜택까지 줬다. 일부 대학들은 합격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을 돈으로 스카우트까지 하고,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학교의 명예를 모든 교수·학생들이 만끽했다.

    법과 법조계를 존경해서였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법과 법치에 대한 불신이 높을수록 사법고시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2000년 6월 형사정책연구원이 실시한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80.9%가 “유전무죄(有錢無罪)·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말에 공감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법고시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완전히 대체한 해인 2017년 동아일보가 여론조사회사인 엠브레인과 함께 벌인 모바일 설문조사에선 한국은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통하는 사회라고 응답한 사람은 91%에 이르렀다. 바로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가족·친척 중에 판·검사나 변호사 하나 정도는 나오기를 간절히 바랐다(2006년 한국 사회학회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인맥으로 칠 법조인이 단 한 명도 없는 사람이 전체의 85.8%였다. 연구진이 핵심 중산층으로 분류한 집단에서는 법조인을 인맥으로 확보한 비율이 21.5%에 이르지만, 하층으로 분류된 집단은 그 비율이 5% 내외로 뚝 떨어졌다).

    믿을 수 없는 법에 대한 공포 때문에 법에 대한 사랑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법을 다룰 수 있는 면허는 권력과 부를 동시에 쟁취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영남대 법대 교수 박홍규는 ‘법은 무죄인가’(1997)에서 “사법시험은 단판 승부에 명예와 권력과 부가 따르는 복권과 같은 사행심리가 도사리고 있다”고 했다. 사행심리의 지배를 받긴 했지만 그 나름의 합리적 셈법도 작동했다. 사법고시생들의 이른바 ‘손익분기점’에 대해 35세니 40세니 하고 말이 많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35세 또는 40세 이전에만 고시에 붙으면 다른 대졸자들과 비교해 그간 희생한 청춘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뜻으로 자주 거론된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법은 정의보다는 출세와 특권의 수단으로 가치가 더 높았다. 1980년 10월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박원순은 2003년 사법연수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 판·검사 되고 싶지요? 그러나 저는 여러분이 판검사가 되더라도 축하해 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판·검사라는 지위에 도취돼 인생의 겸허함이 사라지는 모습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안락한 생활과 사회의 대접에 안주해 턱없는 자기기만에 빠지는 모습을 자주 접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어디 축하할 일입니까? 차라리 곡을 해주는 게 맞지요.”

    이건 자신의 경험담이기도 했다. 박원순은 젊은 나이에 잘나가는 변호사로 부자가 돼 있었다. 기사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탔고, 다른 사람들은 뭔지도 모르는 휴대전화를 사용했고, 제법 큰 단독주택에서 여유 있는 생활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깨닫고 보니 그 길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고 한다. “내 집을 키워가고 좋은 자동차를 타고 별장을 사고 은행에 두둑한 통장을 두는 것은 하나의 탐욕의 길이었습니다. 그것보다는 가난하고 억울하고 약한 사람들과 함께 그들을 부축하고 그들을 돕는 것이 훨씬 보람있고 재미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시민운동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박원순처럼 뒤늦게 무소유의 길을 걸은 사람은 거의 없었고, 그의 이런 증언마저 사법고시가 ‘코리안 드림’을 이룰 수 있는 최상의 속성 코스라는 걸 말해주는 ‘사회적 증거(social proof)’로 여겨졌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박원순에겐 물욕은 없었을망정 권력욕은 있었기에 나중에 서울시장이 됐고, 대권에 대한 꿈도 꾸지 않았던가. 물론 권력으로 공동체를 위한 좋은 일을 하려는 꿈이었겠지만, 정치인치고 그렇게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그 진정성을 판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사법고시에 합격해 ‘코리안 드림’을 이룰 수 있는 최상의 속성 코스를 내달리게 된 사람들의 내면세계를 지배하게 된 첫 번째 이데올로기는 특권의식이었다. 판·검사를 하더라도 겉에서 보는 것처럼 화려하지도 않거니와 보직에 따라선 중노동에 가까운 고달픈 혹사였지만, 세상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검찰공화국 주창자들이 자신들이 불만을 느끼는 극소수의 검사, 아무리 많이 잡아도 전체 검사의 겨우 몇 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검사들을 비난하기 위해 전체 검사를 비난하고 모욕하는 것과 비슷했다. 비난받을 만한 특권의식이 없는 검사가 다수일망정 누가 봐도 특권의식을 갖고 있고 그걸 실천하는 극소수 검사의 일탈적 행위가 검사의 전체 이미지를 대표하는 것, 이는 모든 권력자의 공통된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20대 중반에 갓 임관한 새파란 나이의 판사나 검사를 ‘영감님’이라고 부르며 치켜세우던 때가 있었다. 일부일망정 그렇게 길든 판사나 검사가 특권의식을 갖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 박원순처럼 1980년 10월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문재인이 30여 년 후에 출간한 ‘문재인의 운명’(2011)에서 털어놓은, 사법고시 합격자의 특권을 말해주는 흥미로운 에피소드 하나를 감상해 보자.

    문재인은 학생 시위로 인해 갇혀 있던 경찰서 유치장에서 사법고시 합격 소식을 들었다. 이는 경희대의 경사였던지라 경희대 학생처장, 법대 동창회장 같은 분들이 면회를 와서 축하를 해줬다. 경찰은 이들이 유치장 안에서 소주와 안주 등으로 조촐한 축하 파티를 벌일 수 있게끔 ‘특혜’를 베풀어주었다. 문재인의 말마따나, “경찰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사회가 버려놓는 사법고시 합격자

    2022년 10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임명장을 수여받은 신임 법관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뉴시스]

    2022년 10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임명장을 수여받은 신임 법관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뉴시스]

    1990년대 중반까지 연간 300명 선이었던 사법고시 선발 인원은 2001년부터 1000명으로 불어났다. 사시 정원 1000명 시대가 열리면서 다른 분야 전공자들도 시험 대열에 대거 끼어들었다. 2004년 사법시험 합격자 888명 가운데 서울대 출신은 334명이며, 이들 중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은 169명(50.6%)으로 법학 전공자 165명(49.4%)을 추월했다.

    이 자료를 제시한 열린우리당 의원 최재성은 “서울대 학생들이 전공을 불문하고 고시 준비에만 매달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서울대가 인재를 거의 독점하는 현실에서 서울대생들이 다양한 분야의 핵심 역량으로 성장하기보다 고시 준비에 뛰어드는 것은 국가 차원의 기회비용 손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잘못된 세상을 탓해야지, 어찌 서울대생들을 탓할 수 있으랴. 사법고시가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건 이미 충분히 입증된 사실인 데다, 이른바 ‘진보적’이라는 법조계 인사마저 고위 공직에 임명될 때마다 변호사 개업 시절 1년에 10억 이상 벌었다는 게 밝혀지곤 했는데, 어찌 사법고시를 외면할 수 있었으랴.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에 들어가는 순간, 사람들의 눈총을 받던 실업자에서 5급 공무원의 신분을 보장받게 된다. 사법연수원 1년을 마치고 2년차가 되면 직급이 다시 올라가 4급이 된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사무관이 4급 서기관이 되는 데 10여 년이 소요되는 것을 생각하면 파격적 승진이다. 그리고 연수원 수료와 동시에 3급이 되니, 사람 팔자 시간문제라는 건 이걸 두고 한 말은 아니었을까.

    제33회 사법시험(1991) 합격자이자 한동대 법대 교수(현재는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김두식이 2004년 6월에 출간한 ‘헌법의 풍경: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이라는 책을 보자. 그간 우리는 법조공화국을 법적·정치적으로는 많이 탐구해 왔지만, 문화사회학적 연구는 비교적 등한시해 왔다. 김두식은 이 책과 더불어 ‘불멸의 신성가족: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2009)을 통해 법조공화국에 대한 문화사회학적 연구를 본격적으로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두식은 ‘헌법의 풍경’에서 한국 사회가 사법고시 합격자를 어떻게 버려놓는지 그걸 실감 나게, 그리고 아주 재미있게 묘사했다. 고시 낙방 경험이 여러 차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바퀴벌레나 파리처럼 느껴진다는데, 그 시점에서 들려온 합격 소식은 이들의 정신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김두식은 “이전과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이전에 자신을 우습게 보던 주변 사람들은 ‘그 친구가 역시 뭐가 달라도 달랐어’라며 축하와 경의를 표합니다. 가족들은 선조의 묘소에 모여 만세를 부릅니다”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분이 수직으로 상승하는 이런 경험은 우리들의 정신세계에 충분히 나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날부터 습관적으로 ‘뭘요, 저는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라고 겸손한 척하는 법도 배우지만, 이미 시험 합격자의 내면에 ‘나는 남과 다르다’는 의식이 자리 잡은 후입니다. 스스로를 벌레처럼 느끼게 하던 심리 공간을 특권의식이 메워가게 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늘 겸손한 사람이지만 내면세계는 ‘땅값 상승으로 한몫 잡게 된 졸부들’의 그것과 갈수록 비슷해져 갑니다.”

    이때 나타나는 사람들이 바로 ‘마담뚜 아줌마’들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줌마들의 전화가 집으로 걸려오기 시작한다. 이들은 사법연수생의 어머니를 상대로 한번 만나 이야기나 들어보시라고 집요하게 조른다. 거듭된 거절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전화를 걸어 문안을 여쭙는 ‘프로’ 마담뚜 아줌마도 있다. 사법연수생들 사이에서는 누구는 빌딩 한 채를 제안받았다고 했고, 누구는 최소한 10억 원을 지참금으로 보낼 거라는 약속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오고 간다. 사법연수생들은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허리를 구부려가며 웃었다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이런 이야기를 듣는 동안 우리 머릿 속으로 알게 모르게 ‘우리는 얼마짜리’라는 생각이 자라나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에는 하나 둘, 신부감을 설명할 때 ‘신부가 어떤 사람인지’를 이야기하는 대신, 묻지도 않은 ‘신부 아버지의 신분과 직업’을 이야기하는 연수생들이 늘어갔습니다. … 주변의 총각들이 하나씩 여유 있는 집에 장가 가서 좋은 집과 자동차를 장만하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는 ‘그 친구가 그럴 줄 몰랐다’며 한탄했지만, 은연중에 ‘나도 그 정도는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식이 싹터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혐오 속에서 내면화되는 특권의식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법연수원은 법조인에게 특권의식과 더불어 부족주의를 키워주는 곳이기도 했다. 법조인들은 왜 그렇게 ‘가족’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걸까. 대법원장, 법원장, 검찰총장 등 법조계 지도자들은 ‘법원 가족’ ‘검찰 가족’ 등과 같은 표현을 즐겨 했으며, 심지어 ‘가족’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대한변호사협회장들마저 “우리는 공동운명체” 같은 말을 통해 연대감을 과시했다. 이에 대해 김두식은 “실제로도 법조계는 지금까지 일종의 가족이었고 공동운명체였습니다”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선 법률가들은 사법연수원이란 단 하나의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 법조인들은 모두 사법연수원 선후배 또는 동기라는 끈으로 연결됩니다. 거기다가 사법연수원의 다수를 차지해 온 몇몇 법대 출신이라는 끈이 추가되면 결속은 더욱 강화됩니다 … 그러나 권력의 통제 또는 국가권력의 괴물화를 방지해야 할 사명을 지닌 법률가들에게 이와 같은 ‘하나의 뿌리’는 거의 독약에 가깝습니다 … 우리처럼 인간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힌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절대로 가족적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법조계입니다.”

    그건 다 옛날이야기라는 반론도 가능하겠지만, 법조계 상층부의 부족주의는 여전히 건재하다. 법조계가 정치권의 진영 전쟁에 휘말려 들면서(또는 자진 참전하면서) 그 부족주의에 균열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 갈등의 추악함이라는 점에선 결코 반길 일은 아니었다. (다음 호에 계속)

    강준만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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