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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한국경제 간판 CEO 열전|금강기획 채수삼 사장

“섬세한 터프가이가 광고쟁이로 성공한다”

  • 이형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섬세한 터프가이가 광고쟁이로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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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현대그룹은 금강기획 지분의 80%를 영국 코디언트그룹(CCG)에 매각했다. 이로써 금강기획은 현대 계열에서 벗어나 CCG 한국지사로 거듭났다. 매각협상 때 CCG 회장은 채사장이 계속 CEO를 맡아줄 것을 제안했고 채사장은 이를 받아들였다.

-국내 기업 CEO와 외국 기업 CEO를 다 경험하고 계신데, 어떤 차이를 느끼십니까.

“일장일단이 있지요. 제가 현대에 있을 때는 휴가 한 번 제대로 못 갔습니다. 회장님 앞에서 ‘저 가족 데리고 휴가 좀 다녀오겠습니다’고 할 수 있는 문화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여기서는 휴가를 가든 출장을 가든 ‘나 언제부터 언제까지 회사에 없다’고 하면 그만이에요. 정기적으로 그룹에 들어가서 보고하고 회의할 일도 없어요. CCG 본사에서 간부가 와도 마중 나가지 않습니다. 자기가 공항에서 택시 잡아타고 와요. 회사에 왔다가도 실무자만 만나고 돌아갑니다. 저야 속 편할 수 밖에요.

그렇지만 현대라는 버팀목이 없어져서 아쉬운 면도 있습니다. 가령 현대에 있을 때는 제가 ‘이곳에 투자하고 싶다’면 오너가 그 자리에서 OK했는데, 여기에선 사안마다 이사회를 거쳐야 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더욱이 본사에서 ‘가능하면 사업확장을 자제하라’는 지침을 내린 상태라, 투자 리스크는 낮겠지만 속전속결에 익숙한 저희들로선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금강기획은 CCG에 편입되면서 영화와 방송사업 부문을 정리했다. 광고사업에만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CCG의 방침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금강기획은 신문 잡지 TV 라디오 등 4대 매체 광고와 인터넷 기반의 뉴미디어 광고, 프로모션 활동 등의 마케팅 전략을 일관된 목표를 향해 펼칠 수 있게 됐다.



CCG는 세계 185개 지역에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전세계에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를 확보한 셈. 이 때문에 금강기획 직원들에게 연수기회를 갖게 하거나 현지 전문가를 한국으로 불러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등 시너지효과가 크다고 한다.

매출 직결돼야 좋은 광고

채수삼 사장의 승용차 트렁크에는 보해소주 ‘천년의 아침’, 삼양 수타면, 크라운제과 국희크래커 같은 먹을거리가 가득 들어 있다. 모두 금강기획이 광고를 대행하고 있는 회사 제품이다. 판촉활동을 위해서다. 가령 술집에 가서 ‘천년의 아침’을 달라고 주문했다가 “없다”고 하면 짐짓 목소리를 키워 “아, 소주 중에는 이게 물이 최고인데 왜 안 갖다놓느냐”고 너스레를 떤 뒤 차에서 소주 한 박스를 가져와 “손님들에게 한 병씩 돌리라”며 떠안기고 간다.

-‘광고주의 성공이 곧 우리의 성공’이라는 뜻에서겠지요?

“그래요. 오길비 앤 매더사를 세운 광고 선각자 데이비드 오길비가 쓴 책에 이런 대목이 나와요. ‘야, 이 광고 멋있다’는 반응을 끌어내기보다는 ‘어, 이런 제품도 있어? 이거 한번 사봐야 겠는데’라는 반응을 끌어내는 광고가 정말 좋은 광고라는. 요즘 광고 중에는 크리에이티브(창의력)만 너무 강조한 탓에 광고 본연의 의미를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어요. 좋은 광고는 시선을 끄는 것은 물론, 매출과 직결돼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 우리 광고주 회사의 제품을 쓰라고 늘 강조합니다.

몇 년 전 진로 ‘참나무통 맑은 소주’ 광고를 맡았을 때는 현대그룹 사장단과 계열사 총무부장들에게 소주티켓이 든 편지를 보내 애용해달라고 홍보했어요. 그걸 계기로 참통 소주 판매고가 급증하는 바람에 그해 광고대상에다 촌지까지 받았죠. 광고는 이렇듯 몸과 마음을 다 바쳐야 하는 겁니다. 광고쟁이는 대단히 피곤한 직업이에요.”

-광고회사 CEO라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유행과 취향, 젊은이들의 감각을 따라잡기 위해서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신문, 잡지를 많이읽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이는 강연회나 모임에 자주 참석합니다. 조찬 약속이 없으면 아침식사도 구내식당에서 젊은 직원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그런 자리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나 처음 보고 듣는 건 빠짐없이 메모합니다. 메모하는 습관은 정주영 명예회장을 모시면서 생활화됐어요. 지시사항이 수시로 떨어져 그때그때 받아적지 않고는 일처리가 불가능했거든요. 저는 상의 주머니에 수첩을 세 권 넣고 다닙니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건강관리입니다. 젊게 살려면 체력이 받쳐줘야 하니까요. 그래서 20년째 매일 새벽에 수영을 하고 출근합니다. 제가 정말 젊긴 젊은 것 같아요. 얼마 전엔 머리를 땋아서 물을 들인 남자직원을 봤는데, 그게 얼마나 이뻐 보이던지, 나도 한번 컬러 염색을 해볼까 싶더라니까요.”

그는 500명에 가까운 직원들의 얼굴과 이름을 다 기억하고 직원들의 생일이면 친필 축하카드를 보내준다. 광고회사에선 상명하복보다는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CEO와 직원들 사이의 ‘벽’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하루에 두 통만 써도 1년이면 7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카드를 보낼 수 있을 테니 그게 뭐 대단한가 싶겠지만 보통 정성이 아니면 어려운 일이다. 몇 통씩 밀리기라도 하면 집에까지 들고 가 써야 하고, 사장이 똑같은 내용을 쓴 게 아닐까 하고 서로 카드를 돌려보는 직원들도 있으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적절한 내용을 쓰려면 신상이며 가족관계를 웬만큼 꿰고 있어야 한다.

-CEO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입니까.

“이제는 CEO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어느 CEO가 어느 기업으로 옮기느냐에 따라 그 회사 주가가 급등하고 폭락합니다. CEO의 브랜드 시대가 열렸다고나 할까요. 그러니 이젠 CEO들도 스스로 브랜드 파워를 창출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잭 트라우트가 지은 ‘마케팅 불변의 법칙’에 다양한 마케팅 전략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 특히 인상적인 것이 특정기업의 CEO를 전면에 내세워 ‘성공한 경영자’를 기업과 제품의 이미지로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크라이슬러를 위기에서 구해낸 리 아이아코카의 경우 그의 자서전을 팔기 위해 낸 신문광고가 그대로 크라이슬러의 기업광고로 활용되기도 했어요.

브랜드 파워를 높이기 위해 CEO는 무엇보다 창의적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기존 전략과 구조, 시스템의 수준을 뛰어넘는 목표와 수단, 과정을 제시하고 그리고 이를 실천할 인적 자원을 경영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해 나가는 능력부터 배양해야 합니다.”

말단사원으로 출발해 CEO까지 오를 확률은 얼마나 될까. 1000분의 1? 1만분의 1? 채사장에게 그런 ‘바늘구멍’을 통과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물었다. 답은 재미없었다.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맡기든 최선을 다했습니다.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참 열심히 일했습니다. 일을 배우려고 언제나 남들보다 30분 일찍 출근해서 30분 늦게 퇴근했습니다. 머리가 나빠서 일요일에도 회사에 나와 책 읽으며 공부했습니다. 몸이 가벼워 궂은 심부름도 마다않고 날쌔게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나 상식은 아름답다.

신동아 200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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