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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그날 이후

기로에 선 부시 완승이냐 수렁이냐

  • 김민웅 < 정치평론가, 미국 뉴저지 길벗교회 목사 >

기로에 선 부시 완승이냐 수렁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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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날이 갈수록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반감과 적대감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일깨움이 막 여론의 주목을 받으려던 찰나였다. 테러 사건은 이러한 사태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그 절정에 달했을 때 발생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얼마만큼인지를 가장 야만적인 방식으로 표명했던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패권체제가 심각한 도전과 위기를 맞은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즈음해 미국은 국제정세 속에 패권체제가 도전에 처한 것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경제적 기반이 급격히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고 있었다. 휴가철인 지난 7월의 소비자지수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하락세에서 반전되지 않았다. 이렇게 되니 아무래도 투자회피현상이 점증하기 시작했다.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자본이 시장에서 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증시의 경우 다우지수가 1만 포인트 아래로 떨어졌는데, 그 동안 집중 투자대상으로서 신경제의 주력부대 노릇을 했던 첨단기술주가 하락증시를 선도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었다. 신경제가 투기성자본과 결합한 결과의 부담을 톡톡히 맛본 셈이었다. 경제라는 것은 성장에 시간이 걸리고 또 장기적인 자본순환과정에 적응해야 하는데, 단기성 수익에 길들여진 투기성 자본시장이 투자수익 회수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진 기술주를 외면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미국 경제의 금년도 2·4분기 성장률은 지난 8년간 최저를 기록했다. 부시정권은 세금감면으로 소비자 지출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가 그렇지 않은 결과에 직면하자 크게 당황했다. 세금감면으로 가용수입은 다소 늘어났지만, 불안한 경제적 미래 탓에 선뜻 돈을 쓸 만한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 연방중앙은행이 금년에 일곱 차례나 이자율을 내렸지만, 기업들의 자본경색을 풀고 투자를 자극하는 요소가 되지는 못했다는 결론이다.

지난 2~3년간 합병조처로 덩치를 키운 대기업들이 감원조처를 통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 것은 불황대비책이나 마찬가지다. 실업률 상승과 소비지수 하락, 그리고 경기침체의 가속화가 이어지고 있다. 실업률의 경우, 지난 8월 이미 5%에 육박해 올 겨울은 유난히 춥지 않겠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 경제가 세계적 불황 또는 공황의 요인이 될지 모른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아시아 경제 위기는 미국의 부메랑

‘뉴욕타임즈’에 경제문제를 연속 기고하고 있는 폴 쿠르그만(Paul Krugman)은 투기시장에 과도하게 의존해온 미국의 경제가 이제 그 대가를 뼈아프게 치르는 단계에 진입했다고 진단하고 있다. 사실 미국경제의 침체는 이미 2~3년 전부터 예견됐다. 폴 쿠르그만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우선 투기적 금융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커져 시장 자체의 안정성이 상당히 파괴돼 왔다. 즉 장기적 투자에 의존해 경제가 성장해온 것이 아니라, 치고 빠지는 식의 자본시장의 움직임이 건전한 투자와 장기적 경제성장의 진로를 교란시켜온 것이다.

또한, 대자본의 지배가 막강해지면서 노동시장에 문제가 생겼다. 임금투쟁을 벌이는 노동자들의 처지가 매우 어려워졌다. 이들의 수입이 인플레로 대표되는 비용상승의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자 자연 소비가 위축됐다. 그러다 보니, 금융시장의 상승세를 타고 투자에 집중했던 기업들이 투자과잉 상태에 직면했다. 더 이상 수익을 보장하기 어려운 위기상태, 즉 과잉생산(overproduction)과 과소비(under consumption) 문제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기업을 확장하고 물건을 잔뜩 만들어놓았으나 살 사람들의 여력이 없으니 수익이 하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연 침체국면이 전개됐다. 아시아 경제가 제대로 회복하지 못해 미국에 부메랑 식의 타격을 주는 것도 경기침체의 한 요인이다. 이는 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아시아 경제를 지나치게 압박한 결과다. 미국 기업들은 위기에 처한 나라들로 마구 몰려들어가 큰 이익을 취했지만, 그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 처할 경우 미국 경제의 마지막 돌파구는 언제나 전쟁경제의 가동이었다. 예를 들어 1930년대 대공황에 대한 미국의 위기대응 방식은 뉴딜 정책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정작 미국의 경제가 되살아난 것은 뉴딜 정책이 아니라 2차세계대전에 의한 전쟁경제 덕분이었다. 이후 미국은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을 통해 각 시기마다 경제적 침체의 고비에 이르는 위기국면을 헤쳐나갈 수 있었다. 부시정권의 군사주의 노선도 이러한 전쟁경제의 요구와 깊이 맞물려 있다. 같은 맥락에서 미사일 방어망 추진은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가 처한 위기를 돌파하는 고리인 셈이다.

그러니 이러한 때에 일어난 테러, 그것도 미국 본토의 중심부 뉴욕과 워싱턴에서 발생한 사건을 전쟁의 에너지로 삼아 나가는 일에 미국의 지배층이 주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비극적 참사이기는 하지만, 군산복합체를 비롯해 군사주의정책을 지지하는 세력에게는 천우신조(天佑神助)의 호재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말할 수 없이 참담한 비극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회생의 기회로 다가온 것이다.

테러의 배후로 오스마 빈 라덴을 지목하고 있긴 하지만, 명확한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전쟁을 선포하고 이러한 분위기를 정책으로 밀어부치고 있는 것은 일단 전쟁이라는 선택을 기정사실화하고 이를 통해 ‘전쟁경제’를 가동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미국의 군수산업문제 전문가 마이클 클래어(Michael T. Klare)는 보잉(Boeing), 록히드(Lockeed), 노스롭(Northrop) 등 군수산업의 움직임과 관련, 세계 분쟁의 배후에는 이들이 있다고 말한다. 이번 테러사태는 군수산업의 이익을 종합적으로 실현하려 했던 부시에게 군사주의노선의 정당성을 확고하게 마련해준 셈이다.

미국의 지배층과 군수산업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파헤쳐 온 리처드 바넷(Richard Barnet)도 전쟁선포는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전쟁경제의 강력하고도 현실적인 요구에 의해 결정된다고 갈파하고 있다. 다시 말해 테러 사건 이후 미국은 겉으로는 보복과 응징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배경에는 전쟁경제를 적극적으로 가동해 패권체계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시정권이 전쟁을 선포하자 유럽에서는 영국을 제외하고는 신중론이 만만찮다. ‘뉴욕 타임즈’도 다소 격렬했던 첫 반응과는 달리, 테러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미국의 대외정책 수정을 검토해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이밖에도 테러 행위 자체는 용납할 수 없으나, 테러행위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공한 책임은 미국에 있다는 세계 언론의 비판이 사건의 첫 충격이 가신 후 나타났다.

초강대국 미국의 대외정책이 강경 군사주의노선을 추구한 데 따른 역풍이 자국 국민의 생명을 소리 없이 겨냥하고 있었던 것을 인식한 결과라 하겠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도 전쟁 히스테리의 상황을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신문은 “지금 중요한 것은 차분하게 사태를 수습하고 희생자들과 부상자들의 문제를 처리하는 동시에, 이러한 상황이 전쟁으로 치닫지 않도록 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뉴욕과 워싱턴에 대한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에 맞대응해 전쟁을 준비하는 것은 찬성할 수 없으며, 더욱 절실한 것은 후속 테러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보능력을 키우고 테러 대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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