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를 대표하는 가수 조성모를 볼 수 있는 때는 1년 중 9월 한 달이다. 올해로 만 3년 활동한 그는 지금까지 네 장의 창작 독집을 모두 9월에 발표했다.
이 기간에 다른 가수들은 철저하게 조성모를 피해간다. 괜히 신보를 발표했다가 ‘조성모 효과’에 눌려 앨범 판매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9월은 조성모를 위한 달로 비워두어야 한다. 시즌 내내 힘을 못 쓰던 과거 미국 프로야구 선수 레지 잭슨이 유독 10월 월드시리즈에서는 방망이가 불붙어 ‘미스터 옥토버(Mr. October)’로 불렸던 것을 응용한다면, 조성모는 ‘미스터 셉템버(Mr. September)’다.
조성모가 ‘9월의 사나이’임을 여실히 증명한 때는 지난해였다. 2000년 9월은 바로 4년간 미국에 체류하던 서태지가 컴백했던 때다. 신문은 온통 돌아온 서태지 얘기뿐이었다. 온 일간지와 방송이 그의 컴백을 비중 있게 다루는 통에 ‘이제 서태지는 가수가 아니라 사회 명사’라는 말까지 나왔다.
어떤 가수도 그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조성모는 이를 비켜가지 않았다. 서태지가 컴백하던 그때 용감하게 신보를 발표해 정면으로 서태지와 붙었다. 사회적 파급력에서 서태지 컴백 임팩트가 우세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조금은 위험한 승부였다.
나중에 발표된 연말 판매량 집계에서 서태지는 110만장에 그친 반면, 조성모는 210만장에 달했다. 앨범 판매만 놓고 볼 때 조성모는 완벽하게 승리했다. 바로 뒤에 나온 H.O.T.도 조성모를 이기지 못했다. 이른바 ‘빅3’ 대결에서 조성모가 당당히 챔피언에 오른 것이다. 서태지도 H.O.T.도 깨지 못한 조성모의 9월 아성이었다.
조성모를 얘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대목은 아마도 음반판매량일 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단연 기록의 사나이다. 그는 1998년 데뷔앨범 ‘투 헤븐’으로 18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발라드 가수의 데뷔작이 100만장을 넘긴 최초의 사례였다. 다음 두 번째 앨범 ‘슬픈 영혼식’은 240만장이 팔렸다. 일각에서는 264만장으로 한국 기네스북에 오른 김건모의 앨범보다 더 많이 나갔다고 주장하지만 공식화되지는 않았다.
조성모의 가창력 논란
이어서 겨울에 낸 리메이크 앨범에서는 ‘가시나무’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175만장이 팔렸다. 서태지마저 물리친 ‘아시나요’가 수록된 3집 ‘렛 미 러브’가 210만장이었으니 앨범 네 장이 내리 150만장을 넘긴 것이다. 다 합치면 800만장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수치다. 데뷔한 지 2년 반이 채 안 된 가수가 거둔 실적이라서 더 경이롭게 느껴진다. 그리고 올해 9월 다시 조성모의 신보 ‘노 모어 러브’가 발표되었다.
놀라운 것은 선주문이 120만장을 넘겼다는 사실이다. 조성모측도 이에 맞춰 발매 첫날에 100만장을 시장에 풀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관심사는 시시한(?) 100만장 수준이 아니라, 200만장을 넘겨 개인 통산 1000만장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있다. 아직 판가름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판매 그래프 추이로 볼 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조성모는 100만장 신화를 만들어낸 이전의 블록버스터들, 그러니까 신승훈 서태지 김건모 룰라 H.O.T. 등과 견줄 때 데뷔가 가장 늦었음에도 최단기에 가장 많은 앨범판매고를 수립하면서 그들을 거뜬히 추월했다.
다른 가수들은 밀리언셀러로 시장을 호령하는데 시간이 걸렸거나 중간에 약간은 저조한 실적의 앨범이 끼어 있는 반면, 조성모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슬럼프도 없었다. 가공할 행진이며 급작스럽고 스피디한 성공이다. 가히 조성모 현상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러한 엄청난 성공에도, 그 현상에 대한 확실한 진단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조성모의 무서운 행진을 알면서도 왜 그렇게 인기가 높은지에 대해 전문가들조차 확실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의 신승훈 서태지 김건모는 명백한 인기의 원동력이 있었다. 신승훈은 발군의 가창력이 있었고, 서태지 신드롬엔 그때나 지금이나 신세대를 담보하는 의식이 바탕에 자리하며, 김건모는 토털 엔터테이너의 자질을 갖고 팬들에게 어필했다. 또한 H.O.T.는 신승훈 서태지 김건모 이후 가요계를 점령한 10대들의 욕구와 희망을 견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조성모는 그들처럼 분명한 뭔가가 없다. 아니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얼마 전 한 중앙일간지 기자에게 조성모 현상에 대한 분석을 요구한 적이 있다. “글쎄요, 애매하죠”라는 게 그 기자의 첫마디였다. “왜 사람들이 조성모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서태지처럼 의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H.O.T처럼 누가 뭐래도 환호를 보내는 10대 팬들을 거느린 것도 아니고…. 김건모는 흑인음악시대를 이끌었고 신승훈이야 노래를 잘했습니다. 그런데 조성모는 솔직히 최고 스타다운 가창력을 갖춘 게 아니잖아요?”
조성모의 가창력에 관한 한 이런저런 상충되는 얘기들이 존재한다. 먼저 사람들로 하여금 애절함을 느끼게 하는 음색을 갖춘 것은 분명하다. 그 음색으로 그림을 그리는 듯 감정을 토해낸다. 음색이 호소력을 갖는 것이다.
팬들은 죽은 애인과 결혼식을 올린다는 내용의 노래 ‘슬픈 영혼식’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조성모표’ 비가(悲歌)라느니 최루성 발라드라는 말은 모두 감상(感傷)적 청춘을 자극하는 그의 음색에서 나온 것이다.
사실 대중음악에서는 음의 높낮이나 음정보다 음색이 더 중요하다. 음역이 높지 않아 노래를 잘한다는 평가를 받지 못했으면서도 대중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음색으로 한시대를 풍미한 가수로는 남진이 있다.
서태지 역시 가창력의 소유자는 아니다. 팬들은 곡에 맞는 최적의 목소리라고 강변하지만, 그렇다고 노래솜씨가 빼어나다는 점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서태지가 구사하는 음악은 가창력만으로 결정되는 스타일은 아니다.
반면 조성모에게 가창력은 절대적이다. 발라드 가수이기 때문이다. 그는 감정표현이 중요한 발라드 음악을 가슴으로 전하는 독특한 음색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음은 견고하지 못하다. 이 점에서 감정을 잘 조절하면서도 탄탄한 소리를 들려주었던 신승훈과 차이가 난다.
조성모는 라이브나 녹음된 CD에서 더러 음이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원로 음악평론가 이백천씨는 조성모의 노래를 두고 “내공이 느껴지지 않는다. 더욱 공력을 다져 소리를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충고한다. 조성모의 매력적인 소화력보다는 부족한 노래솜씨 쪽에 비중을 두는 음악관계자들이 확실히 더 많다.
전문가들은 조성모가 성공한 이유를 가수 본연의 가창력보다는 다른 데서 찾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치밀한 홍보와 마케팅 전략, 즉 ‘작전의 승리’라는 것이다. 1998년 데뷔 당시 그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투 헤븐’이 라디오에서 호응을 얻고 있는데도 텔레비전에 출연하지 않았다. 물론 의도적이었다.
가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미디어, 즉 뮤직비디오에서도 그를 볼 수 없었다. 스토리를 내세운 ‘투 헤븐’ 뮤직비디오에는 이병헌 김하늘 정웅인 허준호 등 배우들만 나왔다. 이 비디오에서 자동차가 불타는 마지막 장면은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면서 장안에 화제를 몰고 왔다.
노래와 뮤직비디오가 뜨고 있는데 가수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잘못하면 치명적일 수 있다. 하지만 조성모측은 가수에 대한 일반의 호기심을 증폭시키기 위하여 가요순위 1위에 오를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노출을 삼갔다. 이른바 숨바꼭질을 통한 신비주의 전략이었다.
숨바꼭질 놀이에서 가장 보고 싶은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상대의 얼굴이다. 그런데 얼굴을 숨기고 있으니 사람들은 애가 탈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당연히 과거 ‘불씨’와 ‘유리벽’의 신형원이 그랬듯 얼굴이 못생겨서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느니, 신상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느니 하는 추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곧 조성모는 얼굴을 드러냈다. 뚜껑을 열어본 결과 그는 결코 못생겨서 출연을 기피한 게 아니었다. 평범하지만 서글서글하고 도리어 매력적인 인상이었으며 예상보다 키도 컸다.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천진한 모습, 말 군데군데 나타나는 약간의 애교는 여성들의 모성애를 자극했다. 기획사의 전략인 줄 알면서도 팬들은 걷잡을 수 없이 조성모의 매력에 빠져 들어갔다.
조성모가 뜨자 곧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의 그룹 ‘스카이’, 그리고 ‘하루’의 김범수, ‘오빠’의 왁스, 그리고 ‘벌써 1년’의 ‘브라운 아이스’가 잇따라 ‘얼굴 없는 가수’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은 모두 성공했다. 모두 다 조성모에 빚을 진 셈이다.
요즘 가수들의 과다노출 풍조에 시청자가 약간은 질려 있는 상황이라서 앞으로도 ‘얼굴 없는 가수’ 전략이 통할 소지가 높은 것으로 음악관계자들은 내다본다.
발라드는 전통적인 음악으로 승부를 거는 장르이기 때문에 트렌드와는 거리가 있다. 발라드 가수들은 새로운 장치가 아니라 재래식 노래부르기가 생명이다. 신승훈이 새로운 유행을 창조하지 않고도 서태지나 김건모와 팽팽하게 맞섰던 사실이 웅변해준다.
그러나 조성모는 발라드를 부르면서도 새로웠고, 드물게 트렌드를 낳은 인물이다. 조성모 이후 많은 발라드 가수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조성모가 공식화된 발라드가 아닌 ‘가시나무’로 리메이크 열풍을 주도하며, 발라드 물결을 확산시켰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심지어 이 곡의 오리지널 그룹인 듀엣 시인과 촌장이 14년 만에 재회하여 신보를 냈을 정도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조성모가 하나의 물결을 만들어낸 것은 얼굴 없는 가수 전략으로 시장을 관통하게 해준 바로 뮤직비디오였다. 이전에도 뮤직비디오의 중요성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었으나 조성모에 와서는 CD제작 이상으로 비중이 높아졌다. 백마부대 마크를 단 국군이 월맹군에 게 몰살당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아시나요’ 뮤직비디오에 대해 월남참전전우회가 문제를 삼았는데, 결과적으로 그 사건은 뮤직비디오의 힘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보여주는 실례일 것이다.
뮤직비디오냐 비디오뮤직이냐
과거의 뮤직비디오는 대부분 노래를 살리는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사실 뮤직비디오란 음악을 영상으로 전달하는 매체다. 중심은 엄연히 음악이다. 그러나 조성모의 뮤직비디오는 반대였다. 노래보다 영상에 더 액센트가 있었다.
무엇보다 유명 배우들이 출연했다. ‘투 헤븐’의 이병헌 김하늘 정웅인에 이어 ‘슬픈 영혼식’에는 신현준 최지우 정준호가 나왔다. 이런 톱스타들이 나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더욱이 ‘슬픈 영혼식’은 2억원을 들여 홍콩에서 촬영했다. 한 편의 영화나 다름없었다.
‘가시나무’ 역시 이영애 김석훈 황인영 구본승 등 유명배우가 연기를 맡았으며 ‘아시나요’에는 모델 출신의 신민아가 출연해 단숨에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스타동원 전략은 이번에도 어김이 없어 배용준과 이나영을 ‘잘 가요 내 사랑’ 뮤직비디오의 주연으로 출연시켰다.
제작비는 외부에 알려지기로 자그마치 7억원. 음반에 보통 1억원의 제작비가 든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음반 7장을 만들 수 있는 엄청난 물량공세다. 모든 뮤직비디오는 조성모 전문감독으로 이미지를 굳힌 김세훈 프로듀서가 지휘했다. 조성모 덕분에 그는 현재 뮤직비디오업계 최고의 실력자로 군림하고 있다.
돈도 돈이지만 쟁쟁한 배우가 나온다는 사실은 곧 뮤직비디오가 영상연기에 중점을 둔다는 것을 가리킨다. 영상이 스토리 구조를 취한 하나의 드라마나 영화형식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실제로 대부분 그의 뮤직비디오 내용은 노래의 가사와 어울리지 않고 따로 놀았다.
하지만 기승전결이 있는 드라마에다 얼굴이 널리 알려진 연기자가 나온다면, 보는 사람은 당연히 눈길을 둘 수밖에 없다. 조성모 비디오가 히트를 친 이유는 이 같은 영상세대를 겨냥한 스타배우 전략 때문이었다.
비판도 만만치 않다. 뮤직비디오란 엄연히 음악이 영상을 받쳐주는 것인데 도리어 영상이 음악을 짓누른다는 것이었다. 뮤직비디오가 아니라 ‘비디오뮤직’ 아니냐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더 많은 팬들은 “조성모와 함께 비로소 흥미롭게 뮤직비디오를 보게 됐다”며 그러한 원칙론에 개의치 않았다.
이런 볼거리 위주의 뮤직비디오가 잇따라 만들어지면서 뮤직비디오를 방송하는 국내 유선방송 M.net과 KMTV의 시청률도 하루가 다르게 상승했다. 단순히 음악을 치장하는 건조한 영상 수준이 아니라 조성모를 스타트로 드라마 형식을 갖춘(dramatized) 재미있는 뮤직비디오가 쏟아진 데 따른 결과였다.
지금도 음반제작자들은 뮤직비디오를 만들면서 노래하는 스타일의 뮤직비디오를 만드느냐 아니면 드라마 형식으로 가느냐는 갈림길에 선다. 그만큼 ‘드라마타이즈드 뮤직비디오’가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조성모가 주도한 트렌드다. 하지만 유명배우를 쓰고 해외촬영까지 하려면 막대한 돈이 들어 주머니가 얇은 제작자들은 괴롭기 짝이 없다.
조성모는 뮤직비디오를 통해서 슬쩍 또 하나의 재능을 선보였다. ‘슬픈 영혼식’을 본 사람들은 우선 조성모가 얼굴을 드러낸 것에 놀랐고, 게다가 신현준 최지우 정준호에 못지않은 연기솜씨를 보인 것에 혀를 내둘렀다. 가수들은 대개 연기가 본업이 아닌지라 배우들 사이에 끼면 자기도 모르게 위축된다.
그러나 당시 데뷔한 지 1년이 겨우 넘은 조성모는 능란하게 배역을 소화했다. “노래가 괜찮네”에 이어 “얼굴도 괜찮네” 하며 놀란 팬들은 거기에 또 하나의 반응을 추가했다. “연기도 잘하네!”
팬들은 조성모의 노래가 가슴을 찌르고 얼굴도 마음에 들고 연기도 잘하는 것에 흡족해했지만 그것으로 조성모의 매력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조성모는 하나씩 자신의 진면목을 풀어나갔다. 이번에는 춤으로 일반의 예상을 깼다. 발라드 가수는 보통 춤과 무관하다. 발라드 시장을 개척한 이문세 이래 최성수 변진섭 김민우 그리고 신승훈에 이르기까지 발라드는 댄스와 벽을 쌓았다.
하지만 조성모는 발라드 가수가 빠른 댄스음악도 얼마든지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의 데뷔앨범에서 ‘투 헤븐’ ‘불멸의 사랑’ 등 발라드가 연속 히트하고 나서 그 뒤를 이은 곡은 댄스 풍 ‘후회’였다. 이 곡이 세번째로 호응을 얻으면서 앨범의 수명이 길어졌고 마침내 신인으로 마의 100만장 선을 돌파할 수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문제는 이 곡을 가지고 춤을 추는 모습이었다. 대개 발라드 가수가 빠른 댄스 풍 곡을 부를 때는 가볍게 상체를 흔드는 것이 전형인 데 반해 그의 춤은 나름의 독특한 동선(動線)을 지니고 있었다. 흔들다가 살짝 한쪽 손을 드는 순간의 제스처는 청중의 넋을 빼앗았다.
이 무렵 조성모는 거의 모든 대학에서 ‘축제에 가장 초청하고 싶은 가수’로 뽑힐 만큼 인기가 치솟았다. 조성모가 대학축제에 출연해 춤을 추면 여성 팬들은 괴성을 질러댔다. 흥분한 그들의 입에서는 “춤도 잘 춰!” 하는 소리가 이구동성으로 터져 나왔다.
가슴 저미는 발라드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연기 춤 등 여러 방면에 재주가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그를 오늘의 슈퍼스타로 비상시킨 원동력이다. 사람들은 한 우물만 파는 장인정신을 섬기기도 하지만, 연예인에 관한 한 갈수록 전천후 엔터테이너를 선호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김건모 이후 이런 경향이 더 노골화되었다. 하지만 조성모는 김건모가 댄스음악으로 다채로움을 보인 데 반해 발라드 가수로서 ‘듣는 음악’에 머물지 않고 영상세대에 부합한 ‘보고 즐기는 가수’의 위치를 굳혔다는 점이 이채로웠다.
아마도 조성모의 동적 이미지를 결정지은 것은 KBS TV ‘슈퍼 TV! 일요일은 즐거워’의 ‘출발 드림팀’이었을 것이다. 일반인 팀과 연예인 드림팀이 경기력을 다툰 이 코너에 드림팀의 일원으로 출연한 조성모는 ‘뜀틀’ 경기에서 발군의 실력을 뽐냈다. 다들 뜀틀에 걸려 넘어졌지만, 그만은 사뿐히 뜀틀을 넘으며 기록을 경신했다.
그가 뜀틀을 넘는 모습은 프로선수를 방불할 만큼 날렵했다. 시청자들은 조성모의 타고난 운동신경에 놀랐으며 한동안 줄기차게 젊은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운동을 잘하는 모습은 일반대중에게 친화력을 불어넣는 데 제1의 요소로 작용했다. 신세대뿐 아니라 어른들도 조성모를 ‘재주 많은 젊은이’로 떠올리게 되었다. 조성모가 마침내 전세대를 포괄하는 진정한 대중스타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조성모와 인기의 평행선을 그은 지오디(god)를 보면 한층 명확해진다. 지오디도 ‘어머님께’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거짓말’ 등 쉬운 선율의 힙합 곡으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그들이 이른바 국민그룹으로 떠오른 것은 MBC TV ‘목표달성! 토요일’의 ‘지오디의 육아일기’였다. 이 프로그램에서 돌 되기 전의 아기 재민이를 키우는 그들의 모습은 호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즉 지오디가 그런 이미지로 틴에이저 그룹을 탈피하고 신구노소를 막론한 올스타가 된 것처럼, 조성모도 드림팀에서의 활약으로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세대가수라는 뜀틀을 넘어 국민가수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과연 미래의 가요역사는 조성모를 어떻게 쓸 것인가. 확실히 그는 서태지와 같은 위치에 있지는 않다. 서태지보다 음반판매량이 앞선다고 해서 그의 위상이 서태지에 비교우위를 점하는 것은 아니다.
통상적으로 장기간 그리고 여러 세대에 호소력을 발휘하는 발라드 가수지만, 한편으로 그 팬들이 서태지처럼 ‘적극적 지지층’이라고 보기에는 곤란하다. 서태지는 기존 가치에 덤벼든 메시지와 행위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마니아들을 거느리고 있다. 언론 방송 그리고 음반산업 등 가요계 제반의 그룹성원들이 이른바 태지마니아의 주장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조성모나 그의 팬들이 강하다는 인상은 없다. 그의 노래에서는 서태지와 직결되는 사회성이 발견되지 않는다. 오로지 가슴 아픈 사랑과 이별뿐이다. 팬들은 그의 음악에서 정겨움을 느끼지만, 애정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는다.
음반산업이 주조해낸 스타
물론 20∼30대 팬들도 있지만 여전히 그의 주된 팬층은 서태지의 팬보다는 평균연령이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조성모는 서태지가 부담스럽고 댄스음악도 싫은 중간지대의 사람들, 이른바 음악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이른바 ‘음악적 부동층’을 흡수했다는 주장이 일면 설득력 있게 들린다.
확실히 그는 음악을 사회현상화하고 대중문화를 하나의 담론으로 끌어올린 서태지와는 여러 측면에서 분리선을 긋는다. 조성모 현상이 신문 1면이나 방송 뉴스로 취급되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그의 인기가 사회적 의미로 확대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조성모 현상을 어떻게 풀이할 것인가. 그는 한마디로 음악의 중심이 음악예술에서 음악산업으로 이동하는 타이밍에 알맞게 출현해 다수의 음악소비자를 포획하는 데 성공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음악산업이 치밀하게 만든 스타다. 기획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태지는 모든 것이 그로 시작해서 그로 끝난다. 서태지에 따라붙는 주변인물은 없다.
하지만 조성모는 항상 그의 소속사인 GM기획이 함께 거론된다. 그도 중요하지만 그를 키워낸 기획제작자가 더 중요하다. 김광수 사장이 이끄는 GM은 그말고도 문차일드 이미연이 속해 있는 굴지의 음반기획사다.
김광수 사장은 1980년대 가수 김완선 인순이 매니저로 시작해 ‘사랑일 뿐야’의 김민우 김종찬 윤상 노영심 구본승을 발굴해낸 탁월한 시장감각의 소유자로 업계에 평판이 자자하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음반판매량이 뚝 떨어진 지난해 대박을 터뜨린 컴필레이션 앨범 ‘연가’(표지 이미연)를 기획해낸 인물도 바로 그다.
그의 전략적 사고는 영상세대가 대중문화의 주류로 부각한 변화를 짚어내면서 구체화했다. 음악도 이제는 동영상 개념을 갖추지 않으면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늘 ‘팬들의 기준에서 생각하라’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조성모의 뮤직비디오를 통한 얼굴 감추기와 스타동원 방식은 대중문화의 흐름을 잘 읽은 전략모델로서 전적으로 그의 아이디어였다. 따라서 조성모를 김사장으로부터 떼어내 독립적으로 규정하기는 불가능하다.
때마침 국내 음악계는 IMF 한파와 음반시장 불황으로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차단되었고 가수의 예술성보다는 제작자의 기획과 마케팅에 의해 시장을 인위적으로 꾸려가는 것이 중요해졌다. 정부가 나서서 음악을 산업적으로 사고하려는 흐름이 자리하면서 전보다 판매량이 갖는 의미가 커졌다. 조성모의 등장과 부상 시점은 그런 변화와 딱 맞물렸다.
MBC 라디오의 한 간부는 이렇게 설명한다.
“조성모는 잘 만들어진 스타다. 면밀하게 기획하고 홍보전략을 잘 짜서 만들어낸 케이스다. 스스로 자기영역을 개척한 서태지와는 다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만들어진 스타’도 결국 스타다. 기획의 결과물이라고 해서 그 의미를 애써 깎아내리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나온 조성모 음반을 보면 ‘팬들의 기준에서 생각하라’는 김광수 사장의 철학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김사장은 조성모가 부동층의 팬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고 보는 듯하다. 한번 그렇게 형성된 팬들은 쉽게 떠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좀처럼 성공방정식을 바꾸지 않고 있다. 발라드를 대형 뮤직비디오와 함께 홍보하는 것은 1집부터 지금의 신보까지 똑같다.
발라드 히트곡인 ‘투 헤븐’ ‘슬픈 영혼식’ ‘아시나요’ 그리고 이번의 ‘잘 가요 내 사랑’의 선율패턴이나 노래말 전개방식이 모두 유사하다. 그도 그럴 것이 히트곡을 전부 이경섭이 작곡하고 강은경이 작사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일단 고정 팬들을 염두에 두고 유사한 패턴의 노래를 주문한 것으로 보인다.
발라드 다음 곡으로 ‘후회’가 부상한 전례를 중시해 2집에서도 빠른 템포의 노래 ‘상처’를 후속곡으로 밀었고 2000년 앨범에서 ‘아시나요’ 다음으로 역시 유사한 패턴의 댄스리듬을 내세운 ‘다짐’을 선보였다. 이번에도 ‘잘 가요 내 사랑’ 다음 곡은 단박에 이전의 노래를 연상시키는 ‘진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광수 사장은 조성모를 통해 ‘음반 소비자들도 상당기간 소비패턴을 반복한다’는 그의 지론을 실행하고 있는 셈이다.
조성모를 음반산업이 빚어낸 상품이라고 한다면, 그를 ‘아티스트’라고 정의하는 것은 무리다. 아티스트란 자신의 의지로 음악세계를 구축하는 자세, 그리고 그것을 위해 자본과 투쟁하고 독립하는 것을 대전제로 한다.
조성모가 이번 신보에서 무려 여섯 곡이나 작사 작곡에 참여한 것은 자기영역을 확보하려는 욕구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티스트의 자격이 주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얼마 전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판매량은 큰 의미가 없다. 그것은 비즈니스일 뿐 나는 뮤지션이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그를 아티스트로 인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차후에 그가 어떤 길을 밟느냐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절대적이던 성공방정식도 언젠가는 약효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 방송사 PD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처음부터 줄기차게 이경섭의 곡으로 나온다는 것이 불안해 보인다. 나쁘게 말하면 ‘자기복제’가 좀 심하다. 앞으로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얼마 가지 않아 매력이 쇠퇴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송창식이나 조용필 서태지처럼 그가 역사에 자취를 새기려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지만, 그것은 노력한다고 해서 쉽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역사에 남는 아티스트?
대중음악은 시대의 반영물이다. 조성모의 성공도 분명 시대적인 의미가 있다. 현 시대는 아티스트의 창작 풍토가 지배하는 상황이 아니라, 제작자를 비롯한 음반산업이 시장 지휘력을 절대적으로 발휘하는 흐름이다.
아마도 훗날 대중음악사는 지금을 ‘음악산업의 위력이 음악예술을 완전히 추월해 조성모를 위시한 스타를 만들어낸 시기’로 규정할지 모른다. 그 앞에 붙는 ‘황금알을 낳은 거위’ ‘골든 보이’ ‘메가 히트 메이커’ ‘걸어다니는 작은 기업’ 등의 수식어는 산업적 가치의 맹위를 설명해주는 증거로 동원될 것이다.
현재 조성모의 히트 퍼레이드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는 수많은 걸림돌이 등장할 것이다. 그가 역사와 한판 승부를 벌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러기에는 대중음악의 포위망이 너무나 견고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