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0월호

CEO 이름 석자가 최대경쟁력

안철수 연구소

  • 김소연 < 매경 이코노미 기자 >

    입력2005-04-04 1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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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스닥 등록과 함께 황제주로 등극한 안철수연구소. 매출액 130억원의 ‘소기업’에 이토록 많은 돈과 관심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경쟁사들은 “안철수 이름 석 자가 가장 무섭다”고 입을 모으는데. 기술력인가, CEO 브랜드인가. 안철수연구소의 경쟁력을 꼼꼼히 따져보았다.
    지난 9월13일 안철수연구소(이하 안연구소) 주식이 드디어 코스닥 시장에서 거래되기 시작했다. 8월 말 마감된 코스닥 등록을 위한 공모주 청약에서 총 1조4700억원의 투자자금이 몰려 평균 경쟁률 447.08 대 1을 기록하며 올 들어 가장 큰 청약 규모를 자랑한 만큼 안연구소 주가는 첫날부터 100% 상승(2만3000원→4만6000원)을 기록했다.

    주식시장이 ‘안연구소 신드롬’에 들떠 있다. 새로운 황제주의 탄생을 기대한 투자자들은 등록 이전 장외에서도 안연구소 주식을 구하느라 혈안이 됐다. 등록 후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사겠다는 사람은 부지기수인데 팔겠다는 사람이 없어 호가만 천정부지로 솟고 있는 실정이다. 기관투자가들도 이례적으로 등록 후 2개월간 물량을 내놓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뿐이랴. 안사장이 코스닥 등록 직전에 내놓은 책 ‘영혼이 있는 승부’(김영사)는 각종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 1위 자리에 올라 있다.

    매출액 130억원, 당기순이익 33억원. 안연구소가 지난해 거둔 실적은 솔직히 그리 대단하지 않다. 코스닥에 등록하는 올해 매출 목표도 350억원을 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안연구소를 대한민국 대표 벤처, 안철수 사장을 대한민국 대표 CEO 중 한 명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코스닥 황제주가 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것 같은 안연구소의 이러한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신뢰할 수 있는 기업’이란 이미지

    대신증권 강록희 애널리스트는 이렇게 설명한다.



    “벤처기업을 분석하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가 ‘제품이 확실한 시장 경쟁력을 갖고 있는가, 그 제품을 중심으로 확장해나갈 수 있는가’이다. 그 다음이 ‘CEO의 자질’이고, 마지막이 ‘재무구조와 캐시카우(cashcow:현금을 벌어들임) 구실을 하는 아이템이 있느냐’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주력 사업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무분별하게 투자해서 까먹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안연구소는 네 가지 요소 모두에서 훌륭하다. 우선 바이러스백신이라는 확실한 제품이 있고 이를 중심으로 통합보안회사로 변신할 수 있는 것이다. CEO의 자질은 말할 것도 없이 국내 최고 수준이다. 인터넷 관련 기업이지만 여타 닷컴기업과 달리 확실한 돈벌이 사업이 있고 재무구조도 탄탄하다. 또 안연구소는 자신이 그려놓은 밑그림에 따라 보안 관련 업체에만 투자하고 있다.”

    같은 질문을 안철수 사장에게 해봤다. 안사장은 “장기적인 시각에서 모든 사안을 결정해온 것과 이를 통해 구축된 신뢰가 회사의 최고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안사장은 좀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이를 보완했다.

    “1997년 안연구소 매출액이 10억 원에 불과할 때 맥아피사에서 1000만달러에 회사를 팔라고 제의했다. 당시 1000만달러(약 100억원)는 지금 수천억 원보다 더 커보였다. 그러나 나 자신도, 회사도 돈이 목적이 아닌 바에야 더 멀리 보고 회사를 키워가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 제의를 거절했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2000년을 앞두고 Y2K 바이러스에 대한 걱정이 한창일 때 우리는 ‘Y2K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발표했다. 당시 다른 업체들이 Y2K 바이러스를 부추기며 제품 판매에 몰두해 있을 때였다. 우리도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 매출을 올릴 수 있었지만 금세 밝혀질 일을 둘러대며 장사하고 싶진 않았다.

    코스닥 등록도 한참 붐일 때였다면 1000억원 정도 더 공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품이 한창일 때 등록하면 회사와 나는 돈을 벌지만 투자자와 우리사주를 받은 직원들은 손해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 시기를 늦췄다. 이런 얘기들이 알려지면서 ‘안연구소는 믿을 수 있는 기업’이란 인식이 형성됐고 그게 우리 회사를 이끌어가는 힘이 됐다.”

    그의 말대로 회사의 경쟁력이 ‘장기적인 안목과 여기서 비롯된 신뢰’에 있다면 이는 곧 분위기를 만들어온 안사장 개인에게서 경쟁력이 나온다는 말과 같다.

    안연구소의 가장 큰 경쟁력은 뭐니뭐니해도 CEO브랜드에 있다. 안연구소의 최대 경쟁자 중 하나인 하우리 권석철 사장은 “안철수라는 이름 석 자가 무섭다”는 얘기를 했다. 실무자들을 며칠씩 쫓아다니며 설득한 끝에 결국 하우리 제품을 사용하기로 결정돼도 임원 선에서 결정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는 것. 담당자가 결재받으러 가면 임원들이 “왜 이름도 못 들어본 하우리냐.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 실렸다는 안철수 사장 회사 제품으로 쓰자”며 결정을 뒤집는 일이 10번이면 7, 8번은 됐다. 권사장은 “최근엔 이런 일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안사장의 이름은 위력적”이라고 말했다.

    안연구소가 하면 다 至善?

    ‘안철수’라는 이름은 이제 한국 벤처업계에서 ‘도덕성과 신뢰’를 의미하는 고유명사처럼 통용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제 안사장이 얘기하는 것은 모두 옳고 안연구소가 하는 일도 모두 바른 기업이 나아가야 할 길로 인식될 정도다.

    예를 들면 이렇다. 안연구소는 최근 독특한 회계방법을 쓰는 것으로 화제를 모았다. 120억원어치의 제품을 판매하면 50%인 60억원만 매출액으로 계산하고 나머지 60억원은 12개월로 균등하게 나눠 매달 매출액으로 집계하는 것. 6월에 120억원의 매출이 일어났다면 먼저 60억원을 매출로 잡고 나머지는 7월 5억원, 8월 5억 원의 매출로 잡는다. 이런 방식에 따르면 120억원 중 90억 원만 그해 매출액으로 잡힌다. 30억원은 다음해 매출로 넘어가는 셈. 그렇다면 지난해 안연구소의 매출액이 130억원이었지만 실제 제품 판매액은 이보다 훨씬 크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런 회계방식을 적용한 이유에 대해 안사장은 “컴퓨터바이러스 백신업계의 특성상 이런 회계기법을 반영해야 기업가치가 부풀려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사실 외국의 많은 백신업체들이 이와 같은 회계방식을 적용한다. 물론 국내에서는 안연구소가 처음. 이후 하우리도 이 방식을 채택했다. 그러나 안연구소가 하는 일이면 무조건 다 좋은 것처럼 비치다 보니 이런 회계방식이 일반적인 게 아니라 특별한(굉장히 도덕적이고 획기적인) 개념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식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또 한 사례가 있다. 최근 출간된 안사장의 ‘영혼이 있는 기업’에는 CIH 바이러스와 관련된 얘기가 나온다. 1999년 한국을 강타한 CIH 바이러스는 보안업체, 특히 백신업체의 중요성을 널리 알렸다. 이때 스타가 된 기업이 바로 하우리다. CIH 바이러스 치료 백신을 국내 최초로 개발한 회사로 알려진 것. 안사장은 이에 대해 ‘실제로는 안연구소가 보름 정도 먼저 백신을 개발했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된 후 6개월이 지난 다음에야 백신의 안정성이 확인되므로 요란하게 알리는 게 적절치 않은 것 같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런데 보름 후 제품을 개발한 경쟁사가 최초 성공임을 강조하는 보도자료를 내면서 우리 회사의 기술 수준과 대응책이 뒤떨어지는 것으로 오해받게 됐다’고 적고 있다.

    이와 관련해 당사자인 하우리 권사장은 “사실이야 어쨌든 안사장이 그렇다고 하면 모두들 그렇다고 믿는 분위기에서 우리 회사만 이상한 회사가 돼버렸다. 앞으로 내가 아무리 사실이 그렇지 않다고 떠들어봐야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며 씁쓸함을 표현했다.

    하는 일, 하는 얘기마다 곧바로 진실이 돼버리는, 이렇게 무서운(?) CEO와 회사 이미지가 형성된 배경은 무엇일까. 서울대 의대 출신으로 안정적인 의대 교수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벤처기업을 차렸다는 것, 술수와 작전이 난무하는 벤처업계에서 묵묵히 정직하게 승부하는 안철수식 원칙의 승리 등으로만 설명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과연 안철수 사장은 알려진 그대로의 사람일까. 이미지 홍보가 너무 잘돼 실제보다 커 보이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안철수연구소는 홍보 잘하는 기업, 안철수 사장은 홍보 마인드가 탁월한 CEO로 소문나 있다. 때문에 안사장의 좋은 이미지는 상당 부분 뛰어난 홍보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안사장을 아는 사람들은 “안사장의 이미지에 어느 정도 거품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90%는 사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10년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흔치 않은 사람”이라고도 한다. 결국 ‘영혼이 있는 승부’를 계속해온 안사장의 지난날들이 쌓여 지금의 CEO 브랜드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안사장은 “누군가가 말했듯 한 사람은 평생 속일 수 있고, 많은 사람은 잠시 속일 수는 있지만 모든 사람을 평생 속일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이 이제 10년이 다 돼가는데 그 동안 자신에 대한 평가가 변함이 없었다면 진실로 믿어줘도 무방하지 않으냐는 얘기다.

    기자들 “가장 성실한 취재원”

    안사장의 사람됨을 보여주는 여러 사례가 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건 늘 깍듯하게 대하고 진지하게 얘기한다는 점이다. 필자 역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수많은 취재원을 만나봤지만 안사장처럼 명함을 건네는 사람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조용히 문을 밀고 들어오더니 두 발을 모으고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두 손으로 명함을 건네는 품이, 마치 유비가 제갈량을 찾아가 인사할 때 저랬을까 싶을 정도로 깍듯했다.

    안사장은 또 인터뷰할 때마다 반복되는 질문들에도 늘 성의껏 대답하는 CEO로도 유명하다. 이런 모습은 “잘 나가는 벤처기업 사장이 됐어도 사람은 변치 않았다”는 평판으로, 다시 “믿을만한 사람”이란 판단으로 연결되었다.

    안사장이 아직 손수 운전을 한다는 사실 역시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지는 대목이다. 안연구소의 기관투자가인 LG벤처투자 김영준 사장은 “안사장에게 6개월 동안 비서를 두라고 얘기한 끝에 안사장이 마지못해 따랐다”며 “그러나 운전기사를 두라는 얘기는 절대 안 듣고 있다”고 밝혔다. 김사장은 “CEO는 수많은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자리다. 그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져 순간적으로 교통사고를 당할 확률이 높다. 안사장이 병원에 가는 것은 안연구소가 병원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기사는 꼭 필요하다”고 직접 운전을 말린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안사장은 “앞으로도 운전은 내가 직접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직원들이 동료의식을 느낄 수 있는 CEO가 돼야 하는데 자기만 좋은 차에 운전사까지 둔다면 (직원들을) 볼 면목이 없다”는 것이다.

    돈에 연연해하지 않는 것도 자주 회자되는 이야기다. 예정된 코스닥 최고갑부인 안사장은 아직도 자기 집이 없다. 지난해 이전에 살던 집을 팔아 유상증자 대금으로 쓴 후 지금껏 전세를 살고 하고 있다. 안사장은 “돈이 없다”고 얘기했다. “모든 재산은 지분으로만 존재하고, 또 지분을 팔 생각이 없어 현금화하기도 어려우며 따라서 집 살 돈이 없다”는 설명이었다.

    낭중지추(囊中之錐). 안사장의 이런 모습은 절로 세상에 알려졌지만 그렇다고 모든 ‘알려짐’에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지난 9월11일 5시 수서역에 위치한 안철수연구소 회의실에 10여 명의 기자가 모였다. 안철수연구소의 정기 기자간담회가 있는 날. 두 달에 한 번씩 안연구소와 안연구소의 두세 개 관계사 대표들이 나와 기자들에게 사업 진행 정도를 보고하고 얘기를 나누는 자리다. 이 자리에 안사장은 빠지는 법이 거의 없다. 간담회를 끝낸 후 저녁식사와 영화 ‘무사’를 관람하는 자리에도 안사장은 동행했다. 물론 내내 기자들과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면서였다.

    벤처기업이 이처럼 정기간담회를 통해 기자들에게 회사 상황을 알리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안연구소는 벤처기업뿐 아니라 모든 기업을 통틀어 이런 정기간담회를 가장 열심히 하는 기업 중 하나다. 게다가 1분을 쪼개가며 쓰는 CEO, 특히 안사장만큼 이름이 나 있는 CEO가 이렇게 열심히 정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직접 회사 상황을 설명해주는 곳은 거의 없다. 게다가 저녁시간이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잠깐 행사를 치르는 것과 달리 저녁시간 모임은 길어진다. 그만큼 CEO가 투자해야 하는 시간도 늘어난다.

    이뿐 아니다. 안사장은 웬만해선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지 않는 CEO로도 유명하다.

    안사장에게 “원래 인터뷰하는 걸 좋아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안사장은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다. 그러나 기자를 만나는 일은 한 회사의 CEO로서 당연히 해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성격상 한번 책임이라고 생각한 일은 완벽하게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열심히 만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안연구소와 안사장이 홍보에 꽤 열심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안연구소 홍보 담당자는 “대표로서 결정해야 할 것이 많은데 인터뷰 등 홍보를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 아니냐는 내부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8월 초에 출간된 ‘영혼이 있는 승부’ 역시 기막힌 타이밍을 자랑하는 홍보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코스닥 등록을 앞둔 시점에 맞춰 책을 냈으니 당연히 고주가 형성에 도움이 됐으리라는 시선. 이에 대해 안사장은 “지난해 초 김영사에서 책을 내자고 제의했지만 시간이 없다고 계속 거절했다. 그러나 출판사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 동안 써놓은 것만 정리해도 되겠다 싶어 승낙했다. 원래는 지난해 말에 낼 생각이었는데 막상 정리하다 보니 새로 써야 할 부분이 많아 늦어졌다. 등록 후 책을 내면 오히려 모양새가 이상할 것 같아 등록 전에 내기 위해 서둘렀다”고 배경을 밝혔다.

    실제 모습이건, 홍보로 부풀린 모습이건 ‘도덕경영의 대명사, 대표 벤처주자’로 꼽히다 보니 안사장의 짐이 무거운 것도 사실이다. 자칫 자신의 이름값에 반하는 얘기가 나올까 봐 스스로 많은 조심하는 것.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재벌 2세와 이재웅 다음 사장 등 잘 나가는 벤처기업가 20명이 모여 각각 2억원씩 내 만든 회사가 있다. 벤처컨설팅과 투자를 한다고 표방한 V소사이어티. 지난해 V소사이어티 설립 당시 V소사이어티 이형승 사장은 주주 구성을 설명하면서 19명의 이름만 댔다. 나머지 한 명의 주주에 관해서는 “본인이 이름이 알려지기를 꺼려한다”는 이유로 끝내 밝히지 않았다. “재벌 2세와 대표 벤처기업가들의 모임에 주주로 참여했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좋지 않게 비칠 수 있으니 절대 이름을 알리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는 다름아닌 안철수 사장이었다.



    CEO 브랜드 다음으로 살펴봐야 할 부문은 기술력과 재무구조다. 아무리 CEO가 괜찮은 사람이라도 기술력이 따라주지 않고 재무구조가 건전하지 않다면 경쟁력 있는 기업이라 할 수 없다.

    안연구소가 바이러스백신 부문에서 국내 최고 기업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지난해 IDC(Internet Data Center: 세계적인 조사기관)에서 집계한 한국 바이러스백신 시장의 시장점유율 조사를 보면 안연구소가 62%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사실 62%라는 점유율은 안연구소의 명성에 비춰보면 그렇게 높은 수치는 아니다. 이는 기업용 서버 시장에서 안연구소가 상대적으로 열세이기 때문. 현재 안연구소의 기업용 서버 시장 비중은 40% 안팎이다. 외국계 기업들이 기업용 서버 시장에서 저가 공세를 무기로 적극적인 영업활동을 펴면서 안연구소의 입지가 좁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시장점유율이 높다고 꼭 기술력이 좋은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해 LG투자증권 오재원 애널리스트는 “사실 기술력은 대부분의 업체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인지도, 마케팅, 서비스가 관건인데 안연구소는 이 부분에서 국내 최고”라고 분석했다. 이대로라면 안연구소의 기술력과 시장성은 입증된 셈이다.

    재무구조도 탄탄하다. 지난해 안연구소의 매출액은 130억원, 순이익은 34억원을 기록했다. 보통의 탄탄한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그러하듯 안연구소 역시 순이익률이 30%에 육박한다. 또 안연구소는 설립 이후 한번도 차입한 적이 없다.

    CEO브랜드, 기술력, 재무구조 면에서 안연구소는 다른 벤처기업이 따라오기 어려울 정도의 경쟁력을 가진 것이 틀림없다. 이 시점에 주목해야 할 것은 현재의 경쟁력이 아니라 이러한 경쟁력을 향후 어떻게 더 발전시켜 나가느냐다. 안사장 역시 “안연구소의 진정한 경쟁력을 얘기하기 위해선 현재 그리고 있는 그림이 제대로여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고 얘기했다.

    그렇다면 안연구소가 그리고 있는 그림은 어떤 것일까. 안연구소가 올 초 선포한 “2005년 매출액 7500억원, 세계 10대 보안업체 도약”의 야심 찬 청사진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 통합보안회사, 글로벌기업으로의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 이는 안연구소의 미래를 위해 놓칠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최고지만 이제 성숙단계에 들어선 국내시장만 바라봐서는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 반 1등이 전교 1등을 노리는 것처럼 당연한 이치다.

    이를 위해 안연구소가 달성해야 할 과제는 두 가지. 수출을 매출액의 50%까지 늘리는 것과 현재 95%가 넘는 백신 매출액 비중을 줄이고 통합보안업체로서 재탄생하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발걸음은 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난해 일본을 시작으로 물꼬를 튼 수출은 올해 중국, 호주, 말레이시아, 브라질 등으로 범위가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30억원의 매출액 중 수출액은 5억원. 올해는 그 비중을 총매출의 10%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수출 비중을 높이는 것과 관련, 가장 큰 난제는 해외에서 브랜드 인지도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지난해 세계 보안업계 42위(매출액 기준)에 오르긴 했지만 “솔루션 시장에서는 1~5위 외에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 해외에서는 안연구소나 하우리나 다 비슷한 처지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안연구소측은 “인터넷을 통해 네티즌들이 직접 사용해보고 기술력을 평가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인지도보다 기술력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며 “세계 수준급으로 평가받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상황”이라는 반응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인가는 여전히 안연구소의 큰 고민거리다.

    외국계 보안업체 씨만텍의 최원식 사장은 다른 걸림돌을 지적했다.

    “앞으로 보안업계 최대 시장은 기업용 메인프레임(대형 컴퓨터)과 저장장치가 될 것이다. PC의 운영체계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어 윈도에 맞는 보안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 그만이지만, 메인프레임과 저장장치는 IBM, HP 등 제조업체마다 다른 운영체계를 쓰고 있으므로 이들 업체와의 유기적 연계 없이는 최적의 보안제품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우리 같은 다국적기업은 해당 업체 본사와 직접 접촉해 그에 맞는 보안프로그램을 개발하기가 용이하다. 그러나 안연구소는 다르다. 이 점에서 안연구소는 경쟁사인 다른 글로벌업체보다 훨씬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할 것이다.”



    “이제 ‘철수’는 잊어달라”

    통합보안회사로서의 변신을 의미하는 백신 이미지 벗기는 2년여 전부터 차근차근 진행돼왔다. ‘앤디’ 브랜드의 PC보안상품을 내놓는가 하면 컨설팅에도 발을 들여놨다. 고객들이 제품과 컨설팅을 원스톱 서비스 받기 원하는 상황에서는 당연한 선택. 그러나 아직 매출구조는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올 상반기 안연구소의 총매출액은 127억원. 이중 백신 판매액이 121억원이다. 이어 앤디 5억원, 컨설팅 1억원 순.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출자 행진 역시 통합보안회사 변신의 연장선상에 있다. 코코넛(보안관제서비스), IA시큐리티(무선단말기 보안솔루션), 아델리눅스(리눅스 보안), 한시큐어(보안컨설팅) 등 모두 8개사를 합작설립하거나 인수합병해 보안의 전 부분을 아우르려 하고 있다. 안연구소는 이들 8개 관계사를 묶어 수평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보안컨설팅부터 사후서비스를 한꺼번에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별도로 CEO에 대한 의존도 줄이기 작업도 한창이다. 실제로 ‘안연구소의 CEO 후광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삼성증권 박재석 애널리스트는 “안철수라는 이름 석 자가 가진 무게가 너무 크다 보니 회사가 실제보다 더 괜찮은 회사로 인식되고 결과적으로 거품이 일게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지적했다.

    안사장 역시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다. 그에 따라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전문 컨설팅을 받고 새로운 조직도 구축하고 있다. CEO가 없어도 시스템으로 굴러갈 수 있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다.

    안사장은 또 “회사 이름에 내 이름이 들어가 있다 보니 안철수가 곧 안연구소라는 등식이 굳어졌다. 하지만 안연구소는 외부에서 보는 것만큼 CEO의존도가 높은 회사가 아니다”고 주장한다. “내실은 없으면서 CEO 지명도만을 경쟁요소로 삼았다면 오래 전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란 이야기다.

    안사장은 그 대표적인 근거로 1995년 경영학 공부를 위해 유학길에 올랐을 때부터 자신은 V3 개발에 관여하지 않은 사실을 들었다. 개발의 큰 방향을 제시하고 그에 필요한 인력과 자금을 분배하는 조정자 노릇을 할 뿐, 실제로 일하는 것은 직원 몫이라는 것.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러브레터 바이러스가 창궐할 때도 자신은 일본 출장중이었으나 단기간 내 백신을 개발해 사태를 수습한 것을 그 예로 들기도 했다.

    그러나 외부에는 여전히 안철수 사장이 안연구소 경쟁력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것으로 비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안사장은 조만간 회사명을 바꿀 생각도 하고 있다. ‘안철수’ 석 자를 다 빼지는 못하더라도 ‘철수’ 두 글자만은 빼려고 한다고도 했다.

    그런데도 ‘한국 최고의 벤처기업’ 안철수연구소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식을 줄 모르는 건 역시 그, 안철수 사장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큰 까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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