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0월호

이슬람 경전 ‘꾸르안’

지하드(聖戰)에서 무역거래까지

  • 정수일 박사

    입력2005-04-04 13: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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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 경전 ‘꾸르안’
    경전(經典)이란 원래는 불교의 경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 개념이 확대되어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의 두 가지로 쓰이고 있다. 넓은 의미의 경전은 교도들이 알고 지켜야 할 교리나 계율을 적은 글이나 책을 말한다. 즉 불경(佛經, the Sutras)은 물론, 기독교의 성경(聖經, the Bible)이나 이슬람교의 ‘꾸르안’(al-Qura- n, 영어명으로 코란)도 경전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좁은 의미의 경전은 불교의 교리나 계율을 적은 글이나 책을 일컫는다. 그 밖에 사서오경(四書五經) 처럼 성인이 지은 글이나 성인의 언행을 적은 글도 경전, 혹은 경(經)이라고 한다. 따라서 경전은 보통 글이나 책과는 달리 신성시되며 종교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규범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무엇을 교리나 계율의 연원(淵源)으로 삼는가에 따라 종교마다 경전을 구성하는 내용이 다르다. 불교에서는 경장(經藏)과 율장(律藏), 논장(論藏)의 3장을 경전이라고 하는데, 그 중 경장은 부처의 설교이고 율장은 계법을 기록한 것이며 논장은 주로 경장에 관한 불자들의 해석이 가해진 글들을 말한다.

    유아독존적인 경전

    기독교의 성경(총 66권)은 모세가 기록한 ‘모세5경’과 예수의 생활과 교훈 및 죽음과 부활을 기록한 ‘복음서’를 비롯해 여러 가지 ‘시가서’와 ‘역사서’, ‘편지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컨대 불경이나 성경은 부처와 모세, 예수 같은 성인이나 종교 창시자들이 직접 기록했거나 다른 사람들이 그들이나 그들이 기록한 경전에 관해 기술한 내용들을 집성(集成)한 것이다. 그러나 경전으로서의 ‘꾸르안’은 오로지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절대신에게서 받은 계시를 그대로 기록한 것이다. 여기에는 무함마드 자신이나 어느 3자도 개입한 바가 없다고 한다. 이것이 ‘꾸르안’의 특이한 점이다.

    이슬람에는 경전 ‘꾸르안’ 다음으로 인정되는 신앙적 규범서인 ‘하디스’(al-Hadith)가 있다. 여기에는 교조 무함마드가 평상시 취한 언행과 관행이 기록되어 있다. 무함마드는 알라가 파견한 성사(聖使, 라술 라)이기 때문에 그의 언행과 관행은 언제 어디서나 정확무오(正確無誤)이며, 따라서 그것을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하디스’는 불교나 기독교에서의 경전과 맞먹는 셈이다.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결코 경전으로 인정하지 않고 경전의 보충서나 이슬람법 법원(法源)의 하나로만 취급한다.



    이슬람은 경전에 관한 관점, 즉 경전관(經典觀)을 가지고 있다. 그 관점을 요약하면 우선 경전의 보편성을 인정한다. 즉 절대신은 모든 예언자(선지자)들에게 계시로서 경전을 내렸다고 본다. ‘꾸르안’에는 이러한 경전이 총 114부나 된다면서, 그 중 중요한 것으로 ‘모세5경’과 다비드의 ‘시편’, 예수의 ‘복음서’, 그리고 ‘꾸르안’의 4부를 들고 있다.

    다음으로 이슬람에서는 모든 경전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절대신의 언어로서 만들어진, 일종의 초인간적인 기적으로 간주된다. 그리하여 어떤 경전이든지 신임하고 존중한다(3:84; 17:88). 그렇지만 선행한 모든 경전들은 미완(未完)이며 오로지 ‘꾸르안’만이 가장 완벽한 마지막 경전이라는 것이다. 이슬람의 경전관에 따르면 원래 절대신 알라가 인간에게 내린 경전은 하나밖에 없는데, 그 유일 원본은 천상에 보관되어 있다. 그 원본과 일치하는 것이 ‘꾸르안’인 바, ‘꾸르안’이야말로 가장 완전무결한 경전이라는 것이다. 이슬람의 유아독존(唯我獨尊)적인 경전관이 아닐 수 없다.

    경전 ‘꾸르안’은 알라가 20여 년간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무함마드에게 내린 계시를 한데 묶은 책이다. 이 계시들의 첫 마디가 “읽어라!”이기 때문에 경전명의 어원을 거기에 두고 있다. 즉 ‘꾸란’은 아랍어 ‘까라아’(‘읽다’)의 동명사 ‘꾸르안’(‘읽기’)에서 연유된 것이며, 이 동명사가 종교적으로 전의(轉意)되어 송독(誦讀)하는 이슬람의 경전명으로 승화되었다. 사실 아랍어의 정확한 표기는 ‘알 꾸르안’인데, ‘알’(al-)은 정관사이므로 발음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꾸르안’의 의미는 ‘읽기’

    그런데 오랫 동안 라틴어계통의 영향을 받아 ‘코란’(Koran)으로 발음하다가 근간에는 또 그 기원은 불명하나 ‘꾸란’으로 발음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두 가지는 모두 정확한 발음은 아니다. ‘코란’은 말할 나위 없거니와 ‘꾸란’도 정확한 발음인 ‘꾸르안’으로 바꾸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두 글자는 서로 다른 글자로써 ‘꾸란’에는 ‘읽는다’는 뜻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경전 ‘꾸르안’은 토막 계시들의 모음책, 즉 경문집(經文集)이다. 무함마드 생전에는 간헐적으로 내려진 경문들이 개별적인 추종자들, 특히 성문도반(聖門徒伴, 솨하바)들에 의해 양피지나 목간, 돌면 등에 기록되거나 암송되어 전해졌을 뿐 모아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무함마드 사후에 이 경문들을 수집·정리해 하나의 책으로 묶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이슬람의 부단한 확대와 더불어 이슬람공동체가 발전함에 따라 그 이념적 바탕이며 사회적 전범(典範)인 이슬람에 대한 통일적인 이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필요성 보다 더욱 절박했던 것은 경문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전사(戰死, 70여명의 성문도반)나 병사(病死)해 점차 사라져감에 따라 시급히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무함마드에 이어 이슬람의 수장(首長)이 된 초대 정통 할리파 아부 바크르(632 ~634)는 일찍이 무함마드 곁에서 계시들을 기록한 해방노예 출신인 자이드 븐 사비트에게 그것들을 수집·정리하여 책으로 엮으라고 명했다. 오늘날의 ‘꾸르안’ 남본(藍本)이 된 이 최초의 경문집은 아부 바크르와 2대 할리파 오마르(634~644)가 보관하고 있다가 무함마드의 미망인 하프솨(오마르의 딸)에게 넘겨졌다. 오마르시대는 대정복시대라서 손댈 겨를이 없었다.

    3대 할리파인 오스만(644~656)시대에 이르러 광활한 정복지를 포함해 이슬람세계 각지에서 떠도는 경문들은 독법이 제멋대로일 뿐만 아니라, 해석도 엇갈려서 종종 논쟁을 야기했다. 그러던 중 멀리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정복지에 나가 있는 후자이파가 할리파 오스만에게 널려있는 경문의 실태를 보고하면서 이를 한데 묶은 공식적인 경문집을 만들 것을 제의했다.

    오스만은 이 제의를 받아들여 자이드와 이븐 주바이르, 싸이드 븐 아쓰 등 경문 암송자(하피즈)들과 보관자들을 불러 전전대(前前代) 아부 바크르의 남본에 준해 통일적인 경전을 편집하도록 했다. 이 통일본을 이슬람군 주둔지와 주요 도시들에 보내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동시에 각지에 널려있는 초본들은 일체 폐기하도록 했다.

    이렇게 무함마드 사후 곧바로 수집·정리되기 시작하여 약 20년이 지난 오스만시대에 이르러 정식으로 편집된 경전을 이슬람사에서는 ‘이맘본’, 혹은 ‘오스만본’이라고 하며 그것을 정본(定本)으로 삼는다. 오늘날 통용되는 ‘꾸르안’은 모두가 이 정본을 원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초기에는 경전언어인 아랍어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독법이나 서법에서 일련의 혼란이 생겼다. 그리하여 이슬람문명의 전성기인 933년에 이르러 아랍어문법이 정립되자 ‘꾸르안’의 독법과 서법이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그것이 일자 불변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꾸르안’ 연구에서 가장 이견(異見)이 분분한 문제의 하나가 경문의 배열이다. 어떤 원칙에 준해 장절(章節) 순위와 그 내용이 배열되었는가 하는 문제다. ‘꾸르안’은 총 114장, 6000여 구절로 구성됐다. 매 장(쑤라)은 여러 개의 구절(아야)로 되어 있는데, 연구자에 따라 구절 획분법이 약간씩 다르기 때문에 구절의 총수는 6200여 개에서 6600여 개에 이르기까지 주장이 다양하다. 교조 무함마드의 생전활동은 크게 메카시대(610~622)와 메디나시대(622~632)로 구별되며, 이 두 시대에 내려진 계시의 내용도 성격상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 경문도 크게 메카편(86장)과 메디나편(28장)으로 나눈다. 그렇지만 경전 ‘꾸르안’의 장절은 시대별이나 계시 전달의 연대순에 따라 배열된 것도 아니고, 또 한 가지 내용으로 한 장을 꾸민 것도 아니며, 한 장 속에 메카편과 메디나편이 뒤섞여 있는 경우도 많다. 한마디로 ‘꾸르안’의 장절이나 내용 배열은 ‘불가사의’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문 배열의 원칙을 놓고 왈가왈부하게 된다. 일부에서는 그 배열이 알라에 의해 이미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논할 소지가 없다는 이른바 ‘예정론’(豫定論)을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는 계시를 받은 무함마드에 의해 배열된 것이 아니라, 후세들이 경문을 정리하여 편집하는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배열한 것이기 때문에 결코 ‘예정’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들은 경문의 장단(長短)에 따른 ‘기계적’인 배열이라고 설명하는데, 이것은 실제와 괴리가 있다. 즉 7절로 된 1장이나 8장, 9장, 15장, 16장 등은 이러한 기술적인 ‘장단원칙’에 어긋난다.

    이와 같이 ‘예정론’이나 ‘장단론’은 다같이 설득력이 없다. 이에 비해 시대적 요청이 반영되었다는 ‘상황론’에는 수긍이 간다. ‘꾸르안’이 정본으로 편집될 당시는 이슬람이 이미 아라비아반도 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러 지역에 비교적 순조롭게 착근하기 시작했다. 반면에 이슬람공동체 건설을 위한 정치사회적 변혁은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따라서 당면한 정치사회적 과제가 종교적 과제보다 더 긴요하게 제기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앙과 교리문제를 위주로 한 짤막짤막한 메카편보다 장수는 적지만 당면한 사회관계와 제도 및 율법을 기본으로 다룬 길고도 다방면적인 메디나편이 배열 순위에서 앞서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앞장의 분량이 많아지고 한 장 속에 두 편의 관련 내용을 뒤섞은 경우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 결과 앞 10장의 내용을 살펴보면 메카편과 메디나편이 1대 6 비율로 후자가 단연 많다. 이것은 유대교의 경전 ‘구약성서’의 경문 배열에서 율법내용을 수위에 놓은 경우와 이치가 같다고 할 수 있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중간 분량인 ‘꾸르안’의 내용은 대단히 풍부하고 취급한 문제도 광범위하다. 내용의 주종은 이슬람교의 기본교리다. 만물이 알라에 의해 창조되고 알라는 만유(萬有)의 주인이며, 따라서 인간은 알라에게 복종하고 귀의해야 한다는 알라의 유일성(唯一性)과 무함마드는 알라가 파견한 사람, 즉 성사(聖使)라는 이슬람의 근본교리와 이 교리에서 연유된 6가지 종교적 신앙과 5가지 종교적 의무, 이를테면 6신(信) 5주(柱)를 포함하고 있다.

    그밖에 선행(善行)을 기본으로 하는 종교적 윤리도덕도 다루고 있다. ‘꾸르안’은 같은 유일신교인 유대교나 기독교의 경전들에 비해 알라의 유일성을 보다 강조하고 여러 가지 우상숭배를 강도 높게 배격한다. 흡사 ‘구약성서’를 방불케 할 정도로 각종 종교적 계율도 엄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교리내용은 일시에 정립된 것이 아니라 메카시대에서 메디나시대로 옮겨가면서 그때그때의 요구에 따라 점진적으로 내려진 계시들이다. 이러한 점진성은 교조 무함마드의 지위 변화에도 나타난다. 초기에는 ‘경고자’나 ‘희소식 전달자’쯤으로 불리다가 후기에는 ‘예언자’(선지자)나 ‘성사’로, 심지어 ‘마지막 예언자’로까지 그 지위가 격상한다.

    ‘꾸르안’의 내용은 각종 사회문제의 해결책이다. 이슬람공동체 건설에서 당면 과제는 정복전을 치르는 것이기 때문에 전쟁문제가 부각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이른바 ‘성전’(聖戰, 지하드)을 알라에 대한 무슬림의 보은(報恩)으로 의무화하고 참전을 독려한다. 전리품과 전쟁포로의 처리, 참전 회피자에 대한 문책 등 전쟁과 관련된 일련의 대책들이 제시된다. 전쟁문제와 더불어 일련의 사회경제적 문제들도 널리 다루고 있다. 일부다처제를 비롯한 혼인문제와 유산의 계승, 고아의 부양, 빈자의 구제, 노예의 해방, 사회평등, 계약에 의한 공정한 무역거래, 개인재산의 침범 불허, 예배시의 장사 금지 등 실로 다양한 사회경제적 시책들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영향

    다음으로 주목되는 것은 무함마드의 포교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논쟁거리들이 ‘꾸르안’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점이다. 사실 무함마드의 포교과정은 각양각색의 반이슬람적 종교집단과의 투쟁을 통해 그들을 단속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른바 ‘광음파’(光陰派)는 경전에 나오는 창세설이나 사후의 부활 및 최후심판설을 반대하면서 인간의 생사는 천운(天運)이 아니라 오로지 ‘광음’, 즉 세월의 흐름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사후에 부활한다면 “어서 우리의 조상들을 부활시켜달라”(44:25)고 도전하고 나섰다. 그런가 하면 ‘위선적(僞善的) 예언자’들은 자신만이 진정한 예언자라면서 무함마드는 한낱 ‘광인’이나 ‘마술사’에 불과한 ‘가짜 예언자’라고 비방 중상했다. 그밖에 유대교도들과 기독교도들의 이슬람에 대한 공격 및 그들과의 논쟁, 그리고 각축 끝에 유대교도와의 제휴를 철회하고 그들을 메디나에서 축출한 사실 등도 상세히 전해주고 있다.

    그러나 한편, 이슬람교는 그 출현에서부터 교리의 정립에 이르는 과정에서 친연종교(親緣宗敎)인 유대교나 기독교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다. ‘꾸르안’에 실린 전설이나 이야기의 4분의 1은 이 두 종교의 성경에 나오는 동류의 전설이나 이야기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성경에 나오는 아담이나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등 24명에 관한 이야기가 그대로 이슬람경전에 전재되어 있다.

    아담과 노아 관련 이야기는 각각 5회와 8회 반복되고, 모세 관련 이야기는 모두 450절의 경문 속에 담겨 있으며, 유일전통의 맥을 강조하기 위해 아브라함의 이름은 무려 70여 회나 거명된다. 심지어 12장은 거의가 유대교에 관한 이야기여서 이슬람의 한 분파인 하와리즈파는 이 장은 계시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유대교나 기독교 관련 이야기들이 엉성하게 전재된 점으로 미루어 그 목적은 이야기를 소개하는 데 있지 않고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들을 빌어 이슬람의 전파에 교훈으로 활용하자는 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유대교나 기독교와의 관계에 관한 ‘꾸르안’의 기술은 종교사 연구에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꾸르안’을 구성하는 내용 중에는 맹세나 저주를 나타내는 표현들과 더불어 은유적인 내용이 있어서 그 함의(含意)를 놓고 연구자 간에 논의가 분분하다. 예컨대 95장의 첫 절은 “무화과와 올리브의 이름으로 맹세하나니”인데, 여기에서 ‘무화과와 올리브’는 알라로부터 축복 받은 주요한 양식이므로 그것을 두고 맹세하는 뜻이란 견해와 그 주요 생산지, 즉 무화과는 다마스쿠스, 올리브는 예루살렘을 두고 맹세하는 뜻이라는 서로 다른 견해가 있다. 103장은 “아스르의 이름으로 맹세하나니”로 시작되는데, 여기에서의 ‘아스르’의 의미를 놓고 인간의 나이를 헤아리는 ‘세월’, ‘흘러가는 시대’, 낮 동안의 ‘마지막 시간’, ‘저녁기도 시간’, ‘무함마드의 시대’ 등 여러 가지로 해석한다.

    ‘꾸르안’ 전편에는 은유적인 표현도 상당히 많다. 흔히 인용하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다’는 말은 알라의 말을 거역하는 불신자(不信者)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마치 비대한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비유에서 나온 말이다(7:40). 알라에게 재물을 희사하는 것을 한 알의 ‘밀알’에 비유한 것은 한 알에서 일곱 개의 이삭이 패고, 한 이삭에 백개의 낱알이 달려 풍성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알라는 희사하는 자에게 몇백배의 보상을 준다(2:261)는 뜻이다. 우상숭배자를 가장 허약한 ‘거미’에 비유(29:41)해 멸시한 것도 그 한 예다.

    이상의 여러 가지 내용을 갈무리하고 있는 ‘꾸르안’은 ‘읽기’라는 그 어원이 말해주듯이 단순히 종교적 신앙의 기록물이나 전거물이 아니라, 소리 내어 읽으면서 그 뜻을 새기는 송독물(誦讀物)이다. 송독을 강조하고 언제 어디서나 송독할 수 있도록 문장구조가 짜여진 것이 다른 경전과 다른 ‘꾸르안’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하루 다섯 번씩 근행하는 예배 때는 물론 수시로 하는 염송(念誦)이나 결혼식 및 장례식 같은 모든 행사에서는 으레 ‘꾸르안’의 관련 구절을 송독한다.

    동물을 도살할 때도 도살자가 ‘꾸르안’의 각장(9장 제외)의 시구어(始句語, 타쓰미야)인 “인자하시고 자애로우신 알라의 이름으로!”를 되뇌고서야 칼을 댄다. 이시구어를 뇌지 않고 잡은 동물 고기는 ‘금기물’(禁忌物, 하람)로서 먹을 수가 없다. 식전 식후를 비롯해 일상생활의 계기마다 무슬림들은 입버릇처럼 이 시구를 되뇐다. 뿐만 아니라 경문을 송독할 때는 ‘소리를 높이지 말되 너무 낮추어도 안되며 그 중간을 택하라’(17:110)고 송독방법까지 타이른다.

    자고로 아랍어는 문학어로 정평이 나있다. ‘꾸르안’은 특히 각운(脚韻)을 맞추어 송독할 수 있게 문장이 엮어져 있다. 그리하여 한편의 시문(詩文)을 연상케 할 정도로 글이 율동과 박력이 있고 아름다워 아랍어의 최고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널리 쓰이며 일정한 음율을 타고 읽어야 하는 복잡한 송독법을 규범화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독경학’(讀經學)이다.

    7세기 중엽 ‘꾸르안’정본이 확정될 때는 내용이나 통일했지 송독법은 미처 조율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아랍어 문법과 모음표기법이 규범화됨에 따라 9세기 전반에 이르러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그때까지 유행하고 있던 여러 가지 송독법을 7가지로 규합했다. 이 7가지 송독법의 창시자들을 ‘7대 송독가’라고 하며, 그 중 어느 한 가지를 택해도 합법으로 인정된다.

    이러한 ‘독경학’에 근거해 경문을 구성하고 있는 어휘와 장절 및 송독 단락을 규정하고 있다. 독경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해 경문의 자모 수(약 33만자)와 어휘 수(약 7만8000자)가 집계되기는 했지만 연구자에 따라 그 수효가 좀 다르다. 절(節, 아야)은 경문의 기본 단위인데, 지역본마다 그 숫자가 약간씩 달라 메디나본에는 6214개 절이 수록되어 있다. 여러 절을 묶어 하나의 경전내용을 이룬 단위가 장(章, 쑤라)인데, 장의 작명(作名) 유래는 내용과 연관성을 찾기가 힘들어 신기하기만 하다. 예를 들어 2장은 ‘암소의 장’이라고 부르는데, 암소에 관한 것은 몇 절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은 알라의 명에 따라 암소 한 마리를 잡아서 살인자를 찾아냈다는 기적을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몇 개장의 이름은 별로 뜻이 없는 순 아랍어 자모로 지어졌는데, 그것은 기적의 상징이라고도 하고, 혹은 무함마드가 의식이 몽롱한 상태에서 계시를 받다보니 생긴 일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장들의 길이는 3~286개 절로 크게 차이가 난다.

    ‘독경학’에는 송독의 방법도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꾸르안’에는 14곳에서 예배시 머리를 숙이는 고수배(叩首拜)와 무릎을 꿇는 궤배(拜)때 송독해야 할 구절을 구체적으로 지적해주고 있다. 그리고 기간과 계기에 알맞게 송독할 수 있도록 경문을 나누어 놓았다. 우선 금식월 기간 하루에 한 권씩 독파할 수 있도록 전 경문을 30권으로 분권했다. 또 송독의 편리를 위해 매 권을 4분의 1, 4분의 2, 4분의 3의 3종으로 세분하기도 한다. 다음으로 경문을 1주일 동안에 완독할 수 있도록 7등분하기도 하는데, 그 1부분을 ‘만질’이라고 한다. 그밖에 경문을 60등분하는 ‘단락’ 독송분법도 있는데, 지금은 별로 쓰지 않는다.

    ‘꾸르안’이 이슬람교의 경전으로 채택된 이후 시간이 흐르고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그 내용에 대한 정확한 해석과 파악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그리하여 하나의 학문연구 영역으로 나타난 것이 ‘주석학’(註釋學)이다. ‘주석학’은 ‘꾸르안’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학문으로서 오늘날도 여전히 중시되고 있다.

    주석학이 중요한 이유

    ‘꾸르안’에 대한 주석이 필요한 것은 우선 경문(계시)이 내려진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환경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계시는 메카시대와 메디나시대라는 서로 다른 시대에 내려졌을 뿐만 아니라, 계시가 내려진 구체적인 환경과 원인 및 경위도 서로 다르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환경에 대한 해석이 없이는 경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다음으로 주석이 필요한 것은 은유(隱喩)를 비롯해 난해하거나 모호한 경문내용을 정확히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경전도 그러하지만 ‘꾸르안’도 보통 인간의 작품이 아니고 신령스러운 성언(聖言)이므로 난해하거나 분명치 않은 내용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내용은 주석가의 해석이 없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설혹 한 가지를 두고 여러 해석이 엇갈린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가 내용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여러 교파들이나 학파들이 난립하면서 경문 내용에 대한 아전인수식 해석이 난무했는데, 이러한 경향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주석이 더욱 절실했던 것이다.

    경문에 대한 해석과 이해가 교파들이나 학파들 간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해 혼란을 야기하고 갈등을 심화시켰다. 그리하여 경문에 대한 통일적인 주석이 시급했다. 그밖에 경문의 편집과정에서 제기된 이른바 ‘정경’(停經), 즉 ‘경문의 정지’는 오로지 주석을 통해서만 그 불가피성이 해명될 수 있었다. 알라의 계시는 무함마드의 생전 20여 년 동안에 내려졌는데, 그 사이에 엄청난 사회적 변화가 발생하여 어떤 계시는 그 적응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부득이하게 어떤 경문은 ‘다른 절로 한 절을 대체’(16:101)하게 되었다. 이 ‘정경’ 문제를 놓고 주석가 사이에 해석이 엇갈리는데, 그들은 ‘경문이 정지’된 절 수를 적게는 5개, 많게는 500개 까지 보고 있다.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 나타난 ‘주석학’에는 3가지 형태가 있다. 그 첫째는 ‘전승주석학’(傳承註釋學)이다. 이것은 알라의 계시를 직접 받은 무함마드의 언행을 근거로 한 주석이다. 그런데 언행은 무함마드의 제자와 제자의 제자, 또 그 제자에 의해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는데, 이러한 전승에 근거해 엮어진 주석학이 바로 ‘전승주석학이다. 이것은 가장 신빙성 있고 권위 있는 주석학으로서 모든 주석의 원전으로 인정된다. 둘째 형태는 ‘의견주석학’(意見註釋學)이다. 이것은 주석자 개인의 견해와 이해를 서술한 주석학으로서 때로는 편견이나 오류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 ‘꾸르안’ 연구자들은 이런 유의 주석은 배격하고 있다.

    주석학의 셋째 형태는 소위 ‘이스라엘식 주석학’이다. 이것은 유대교나 기독교의 경전이나 전설에 근거해 주석을 가한 것이다. 근원적으로 이슬람교와 유대교, 기독교는 유일신적인 친연종교이기 때문에 ‘꾸르안’에는 유대교나 기독교의 전설과 이야기들이 그대로 전재되었을 뿐만 아니라, 교리도 상당한 근접성이 있다. 따라서 유대교나 기독교의 경전이나 전설에 근거해 ‘꾸르안’의 일부 경문을 해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꾸르안’ 연구사에서 대표적인 주석학자로는 쑨니파에서 톼바리(838~923)와 이븐 아라비(1165~1240), 쑤유티(1445~1505), 그리고 쉬아파에서는 사두끄( ~991)와 와지즈( ~1315) 등을 들 수 있다.

    모든 경전의 연구에서 역경(譯經)은 필수불가결하다. 그래서 불경이나 성경은 집성되기 바쁘게 여러 언어로 번역됐으며, 그 역출(譯出)과정이 곧 불교나 기독교의 전파과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꾸르안’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아랍어로 편집된 후 약 500년 동안은 다른 언어로의 번역이 불허됐다. 경문은 유일신 알라의 언어(아랍어)로 내려진 계시로서 다른 언어로는 그 본래의 뜻을 정확히 표현할 수 없어 왜곡하기 쉬우며, 또한 힘들더라도 원어(아랍어) 독해만이 알라에 대한 경건한 정성의 표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원어 독해를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경건한 정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이슬람은 주로 아랍어를 적통어(嫡統語)로 한 셈족이나, 아니면 아직은 온전한 민족어를 가지고 있지 못한 민족들 속에서 전파되고 있었으므로 아랍어로 밖에는 독해할 수가 없었으며, 게다가 이슬람에 대한 외계의 연구가 거의 없어서 역출이 필요 없었다는 데도 그 원인이 있다.

    그러나 10세기를 전후해 이슬람문명이 동서남북 각지로 크게 확산됨에 따라 이민족들이 이슬람에 귀의하고, 특히 중세 암흑기의 터널을 벗어나기 시작한 유럽에서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게 되자 ‘꾸르안’을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하고 출판하는 일은 불가피하게 됐다. 1143년 영국의 로버트와 독일의 헤르만이 최초로 ‘꾸르안’을 라틴어로 번역했다. 그러나 정식으로 출간하지 못하고 미루어 오다가 꼭 4세기가 지난 1543년에야 정식으로 출간되었다. 이어 이 역본의 이탈리아어와 독일어, 네덜란드어의 중역본(重譯本)이 나왔다.

    최초의 현행 유럽어 직역본은 1616년에 출간된 독일어 역본이며, 영역본은 1734년에 처음 나왔다. 그 사이에 동방 이슬람제국에서는 페르시아어와 터키어, 우르드어, 말레이어 역본이 속속 출간되었다. 13세기 원(元)제국 때에 이슬람교가 완전히 정착한 중국의 경우에는 17세기 초에 어느 부분만을 골라서 번역하는 초역(抄譯)이 시작되어 약 300년간 여러 형태의 역경이 돌다가 1927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일역본과 영역본을 대본으로 한 한역(漢譯) 완역본을 내놓았다. 명치(明治)시대 초기부터 이슬람세계에 관심을 돌려온 일본은 중국보다 좀 앞선 1920년에 영역본을 중역(重譯)한 일역 완역본을 선보였다. 오랜 단절기를 거쳐 지난 세기 50년대 이후에야 이슬람세계와의 관계를 회복한 우리 나라는 1981년 첫 한글 완역본을 내놓은 이래 지금까지 모두 3종의 한역본을 간행했으며 ‘꾸르안’에 관한 몇 편의 연구논문도 발표됐다.

    꾸르안을 보완하는 하디스

    이슬람의 신앙과 행동을 근본적으로 규제하는 경전은 ‘꾸르안’뿐이다. 그런데 이 경전을 해석하고 보완하는 ‘준경전’(準經典)식의 ‘하디스’가 따로 있다. ‘하디스’의 아랍어 어의는 ‘전문’(傳聞), ‘이야기’, ‘새로운’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이슬람사에서는 전승으로 알려진 무함마드의 언행록(言行錄)을 말한다. 한역(漢譯)으로는 ‘성훈’(聖訓)이라고 한다.

    이 ‘성훈’에는 생전에 무함마드가 계기마다 행한 말과 취한 행동뿐만 아니라, 남의 말이나 행동에 대한 입장(인정이나 거부, 묵과 등)까지 포함된다. 그리하여 ‘성훈’을 ‘언어성훈’과 ‘행위성훈’, ‘묵인성훈’의 3가지로 구분한다. ‘성훈’은 교조 무함마드의 언행록이기 때문에 불경이나 성경의 기준으로 보면 당연히 경전에 속한다. 그러나 이슬람교에서는 경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무리 알라가 보낸 사람이라도 무함마드의 언행은 신이 아닌 자연인의 언행으로써 절대신 알라의 직접적인 말이자 계시인 ‘꾸르안’과는 엄연히 구별되며 결코 동일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무함마드는 ‘완전무결한’ 인간으로서 그의 언행은 ‘정도’(正道)이기 때문에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훈’에 ‘준경전’격을 부여하고 이슬람법(샤리아)에서는 ‘꾸르안’에 버금가는 법원(法源)으로 공인한다. 어찌 보면 이율배반적인 논리인 성싶다.

    ‘성훈’은 무함마드의 언행을 곁에서 지켜본 제자들과 그 제자의 제자, 또 그 제자에 의해 구두나 기록으로 약 100년간 전승되다가 수집·정리된 이래 다시 약 100년이란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이븐 한발(780~855)이나 부하리(810~870) 같은 성훈학자들에 의해 정본(定本)으로 편집됐다. 진지한 성훈학자들은 전승되는 수많은 ‘성훈’들을 조목조목 진위(眞僞)를 가려가면서 진정한 무함마드의 언행만을 골라서 수록했다. 부하리는 평생 동안 이슬람세계의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60여만 조목의 성훈을 수집해 그 중 7000조목을 참 성훈으로 취록했다.

    ‘성훈’을 취록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참 성훈과 거짓 성훈을 가려내는 작업이다. 즉 200년 동안이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수많은 ‘성훈’ 가운데서 어느 것이 무함마드가 실제 한 ‘진훈’(眞訓)이고, 어느 것이 전하는 자들에 의해 자의로 꾸며지고 부풀어진 ‘위훈’(僞訓)인가를 판별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성훈학자들은 ‘이쓰나드’와 ‘마튼’이라는 두 가지 기준(원칙)을 제시하고, 그것을 잣대로 진위를 결정했다. ‘이쓰나드’란 아랍어로 ‘전거’(典據)나 ‘전승자’(傳承者)란 뜻인데, ‘성훈’을 전하는 연결고리가 믿을 수 있는지를 가려내는 것을 말한다.

    성훈집에 보면 수록자는 어떤 ‘성훈’을 누구에게서 전해 들었고, 또 그 누구는 누구에게서 전해 들었다는 식으로 몇 단계, 심지어 십여 단계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마지막에는 무함마드에게서 직접 들었다고 한다. 무함마드까지 종착하는 과정에서 ‘누구 누구’라는 중간 연결고리들의 정확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바로 ‘이쓰나드’다. 그런데 여기에서 2대 교파인 쑨니파와 쉬아파 간에는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전자는 연결고리의 종착을 무함마드로까지 하나, 후자는 제4대 정통 할리파이며 쉬아파의 개조인 알라로 주장한다.

    다음으로 ‘성훈’의 진위를 결정하는 기준의 하나인 ‘마튼’은 아랍어로 ‘주문’(主文)이나 ‘내용’이란 뜻인데, 전하는 ‘성훈’ 내용이 사리에 맞는가 여부를 가려내는 것을 말한다. ‘성훈’ 내용이 경전 내용과 일치하는가, 당시의 사회적 환경에 부합하는가, 행하게 된 이유가 합리적인가 등을 따져서 그 정확성의 여부를 결정한다.

    성훈학자들은 이러한 두 가지 기준에 따라 전해져 내려오는 ‘성훈’을 ‘건전한 것’(솨히흐)과 ‘양호한 것’(하싼), ‘미약한 것’(돠이프)의 3등급으로 나눈다. 믿을 만한 연결고리에 의해 전승자가 무함마드에까지 간단없이 연결되고 전승 내용이 정확하면 ‘건전한 성훈’ 판정을 받게 된다. 즉 ‘이쓰나드’와 ‘마튼’이 모두 완벽한 경우다. 두 가지 기준에서 약간의 하자가 있으면 ‘양호한 성훈’으로 밀려나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판정되면 ‘미약한 성훈’으로 낙인된다. 정통성훈집에 수록된 ‘성훈’은 1등급 판정을 받은 ‘건전한 성훈’들이다. 위에서 성훈학의 태두인 부하리가 수집한 60만 조목의 ‘성훈’ 중에서 골라잡은 7000 조목이 바로 이 ‘건전한 성훈’인 것이다. ‘양호한 것’은 참고로 이용되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미약한 것’과 함께 ‘성훈’으로 채택되지는 못한다. 요컨대 ‘건전한 것’은 진훈이고 ‘미약한 것’은 위훈에 속하며 ‘양호한 것’에는 위훈의 소지가 있다.

    경전 ‘꾸르안’에 버금가는 ‘성훈집’(하디스)의 편집은 장장 200년이란 긴 세월이 걸려서 완성됐다. 정통 쑨니파 계통의 성훈학자들이 정본으로 완성한 ‘성훈집’은 그 편성 방법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첫째 유형은 ‘이쓰나드’, 즉 전승자들의 연결고리를 따라 편성한 ‘성훈집’이다. 대표적인 것이 4대 정통 법학파의 하나인 ‘한발리야파’의 시조이자 성훈학자인 이븐 한발이 펴낸 ‘무쓰나드 성훈집’이다. 저자는 700여 명의 전승자들로부터 약 75만 조목의 ‘성훈’을 수집하여 그 중 약 3만 조목만을 이 성훈집에 올렸다.

    성훈집의 둘째 유형은 내용에 따라 부문별로 편성한 것이다. 쑨니파의 6대 성훈학자가 편집한 ‘6대 성훈집’이 바로 이 유형에 속한다. 그 중에서 부하리와 무슬림(817~875) 두 사람이 펴낸 성훈집을 ‘2대 진본(眞本)’이라고 한다. 이 두 가지 유형의 성훈집에서 대체로 후자의 권위가 인정되어 많이 이용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쉬아파는 주장을 달리 한다. 그들은 알리와 그 이후의 이맘들의 언행을 기본내용으로 성훈집을 편집하여 쑨니파에 대응해 왔다. 그들은 10~11세기에 편집된 이른바 ‘4대 성서(聖書)’를 자파의 성훈집으로 삼고 있다.

    쑨니파의 ‘6대 성훈집’이건 쉬아파의 ‘4대 성서’건 간에 내용의 이해를 위해 ‘꾸르안’처럼 여러 가지 주석본이 간행되었다. 성훈집을 펼쳐보면 내용이나 언어표현에서 난해하거나 모호한 점이 적지 않다. 그래서 자칫 오해할 소지가 있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후세의 성훈 연구가들이 다수의 주석본을 찬술했다. 예컨대 부하리의 ‘부하리 성훈실록’ 주석본은 무려 80여 종이나 된다. 종합적인 주석본과 함께 분야별로 간략하게 주석을 단 간략주석본도 있다. 원래 성훈집은 ‘꾸르안’과는 달리 송독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지역이나 교파에 따라 부분적으로 몇 조목씩 골라서 송독하는 경우가 있다.

    이상에서 이슬람의 경전 ‘꾸르안’에 관련된 제반 문제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준경전’격인 성훈에 관해서도 간단히 부언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여타 종교의 경전과는 다른 이슬람교 경전 고유의 몇 가지 특색을 발견할 수 있다.

    그 특색은 우선 신성관(神性觀)이 투철하다는 것이다. ‘구약성서’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모세5경’을 보면 ‘창세기’나 ‘출애급기’, ‘신명기’에서는 하나님(여호와)의 창조성이나 하나님과의 계약을 언급하고 있으나, ‘레위기’나 ‘민수기’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신봉자들이 지켜야 할 규정이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신약성서’ 27개 문서는 그 중 4개 ‘복음서’만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의 생활과 교훈, 죽음과 부활 등을 설교하고 있고, 나머지는 인간으로서의 제자들의 전도 기록과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의 편지를 편집하여 기록한 것이다.

    아랍어 문법의 최종전거

    이와 같이 이슬람교와 같은 유일신교인 유대교나 기독교의 경전은 그 일부가 절대신과의 계약을 기록함으로써 분명히 신성관을 가지고 있으나, 인간들의 말이나 활동을 기록한 내용도 포함함으로써 인성관(人性觀)도 아울러 겸유하고 있다. 양적으로 보면 인성관쪽이 더 많다. 요컨대 유대교나 기독교의 경전은 신성관과 인성관이 혼재되어 있다. 그러나 이슬람교의 경전 ‘꾸르안’은 자자구구(字字句句) 모두가 절대신 알라의 말씀과 계시다. 인간의 말이나 글은 전혀 개재되어 있지 않다. 철투철미 신성관 뿐이다. 그래서 자연인간인 교조 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한 ‘성훈’은 경전에 대한 보완으로 취급하지 결코 경전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그 특색은 시종 일관성(一貫性)이 보장된 경전이라는 것이다. 대소 36개 문서로 구성된 ‘구약성서’는 기원전 1000년부터 기원후 100년경까지 약 1100년 동안의 수집과 편집과정을 거쳐 정경화(正經化)되었다. 그 중 ‘모세5경’인 율법서는 기원전 444년경에, 예언서는 전·후기로 나누어 기원전 200년과 180년경에, 마지막으로 기원후 100년경에 얌니아(Jamnia)에서 열린 종교회의에서 성문서 11권을 경전으로 채택함으로써 드디어 경전으로서의 ‘구약성서’가 완성됐다. ‘신약성서’의 경우 초기에 유사문서들이 많이 나돌아 상당한 혼란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교회는 문서의 내용을 검토하고 취사선택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래서 예수의 십자가 죽음 후 근 400년이 지난 397년에 열린 카르타고 종교회의에서 최종적으로 현행 27권의 문서가 정전(正典)으로 공인됐다. 이를테면 처음부터 경전(성경)이 결정된 것이 아니라 논쟁과 선택과정을 거쳐 수백년 후에야 비로소 사람들에 의해 경전이 결정되었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결정되다 보니 경전 내용에 대한 논의와 변경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현존 4대 복음서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순으로 60~90년 사이를 두고 각각 완성됐으나 18세기 이후에는 요한을 제외한 3개 복음서는 내용이 서로 비슷하다고 하여 이른바 ‘공관(共觀)복음서’로 불리기도 한다. 교회의 성립과정을 기술한 ‘사도행전’은 내용에서 전·후반부가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저작자나 저작연대 등 역사성에서도 19세기 이래 논쟁이 이어져 왔다. 그밖에 세례를 받고자 하는 초신자들을 위해 성경을 쉽게 풀이한 교리집도 ‘공교요리’(카톨릭)니, ‘교리문답’(프로테스탄트)이니, ‘공회문답’(영국 성공회)이니 하는 등 교파에 따라 이름과 내용이 서로 다르다.

    불경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기본경전인 3장(藏) 중에서 석가의 교설을 기술한 문서인 경장(經藏, 현존 1500여 부)과 불교도들이 준수해야 할 규정이나 예법, 교단규약 같은 것을 기술한 율장(律藏, 분량은 경장과 비슷)은 원래 석존의 말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존의 것은 그러한 것이 별로 없고, 다만 석존의 말을 근본으로 하여 후세의 개인이나 교단이 기록·편집한 것이다. 더구나 논장(論藏, 분량은 경장의 5분의 2)은 여러 나라에서 각 시대의 불교도들이 경장과 율장을 해석하고 논술한 내용이다. 부처의 언행은 그가 입적한 1세기 반 후에 제자들이 기록하기 시작하여 수세기를 거쳐 경전으로 모아진 것인데, 무려 5000여 권에 달한다.

    이에 비해 ‘꾸르안’은 무함마드 사후 즉시 수집·정리하기 시작하여 약 20년 후에는 정본으로 정경화되었으며, 그 정본이 오로지 하나의 이름 하에 유일본으로 오늘날까지 1400여 년 동안 통일적으로 보존돼왔다. 전술한 바와 같이 ‘꾸르안’은 알라의 말이 누구(무함마드)에게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얼마만큼이나 전해졌다는 사실성(史實性)이 명백하다. 경전의 언어 면에서도 ‘꾸르안’의 일관성은 유례가 없다. 현행 불경이나 성서는 모두가 역서(譯書)로서 원어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나 ‘꾸르안’은 오늘날까지 처음 씌어진 원어(아랍어)가 그대로 보존되어 오고 있다.

    그 다음으로 ‘꾸르안’의 특색은 내용의 포괄성이다. 일반적으로 불경이나 성경을 비롯한 경전은 신앙이나 교리, 율법, 종교적 윤리도덕 같은 종교신학적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 그러나 ‘꾸르안’은 종교신학적 내용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윤리도덕 등 인간생활 전반에 관한 내용들을 다방면적으로 포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문학성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물론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모든 경전은 언사(言辭)를 다듬고 또 다듬었기 때문에 모두가 문학서라 일컬어도 큰 하자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꾸르안’은 그 중에서도 단연 빼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대체로 다른 경전들의 문체는 산문체이나 ‘꾸르안’의 문체는 준시어체(準詩語體)로서 절마다 각운이 뚜렷하다. 그래서 선율을 탄 송독이 가능한 것이다. 한편, ‘꾸르안’은 아랍어의 표준문법서이기도 하다. 아랍어 문법의 최종 전거는 이 경전에 의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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