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상 최장의 성장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번 경기상승 사이클은 폭과 지속성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다른 순환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 뚜렷해졌습니다. 이 같은 인상적인 성과는 노동생산성의 괄목할 만한 향상에 가속화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10년이나 20년 뒤 역사가들은 1990년대 후반을 미국 경제사의 전환기로 평가할 것입니다.”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지난해 3월 강연 가운데 한 대목이다. 미국 경제는 10년째 호황을 구가하고 있었다. 그린스펀은 이미 수년 전부터 정보기술이 가져온 새로운 혁명이 생산성의 비약적 향상을 낳으며 물가상승 없는 장기성장이라는 신기원을 열고 있다고 강조해온 터였다.
“미국 경제는 더 이상 기존 경제이론을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궤도로부터의 일탈이 아니라 새로운 경지를 열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학은 다시 쓰여져야 합니다.”
‘뉴 이코노미(신경제)’에 대한 자신감이 곳곳에 흘러 넘쳤다.
그렇게 장담하고 대다수가 믿어 의심치 않던 미국 경제의 장기 고성장 드라마가 막을 내렸다. 미국 경제는 지난해 3분기 활력을 잃는가 싶더니 점차 내리막을 타 급기야 지난 6월까지 2분기에는 거의 정체 상태에 머물렀다.
컴퓨터와 인터넷, 이동통신 등 정보기술(IT) 부문에서 내로라하던 기업들이 수익 격감 추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업은 수지를 맞추기 위해 생존을 걸고 감량을 감행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 심장부를 강타한 미증유의 테러가 세계금융시장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며 불안심리를 부추겼다. 경기가 하강하고 있는 가운데 던져진, ‘미국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는 충격은 미국 내 소비와 대미투자를 움츠러들게 할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미국 경제는 과연 잠시 슬럼프에 빠져 있을 뿐, 이르면 연말부터 회복이 가능한 걸까. 그렇다면 뉴욕 증시는 지금 반환점을 돌고 있는 것인가. 희망 섞인 전망과 달리 세계 최대 시장 미국이 침체에 돌입할 경우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불황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일각에서 여러 유사점을 들어 언급하는 바대로 1930년대 대공황 같은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정말 없는 것인가.
이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모색하려면 우선 1990년대 후반, 좁게는 1997년 이후 부추겨진 뉴 이코노미를 향한 기대와 전개과정을 해부해야 한다. 현 경기 사이클은 뉴 이코노미에서 비롯됐기에, 어떻게 진행될까 하는 전망의 실마리도 여기서 찾아야만 하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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