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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그날 이후

한국 경제 불확실성과의 전쟁 시작됐다

  • 김방희 < 경제 칼럼니스트 >

한국 경제 불확실성과의 전쟁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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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확실한 것은, 이번 사건의 경제적 영향은 단기적으로 보느냐 장기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차이가 크다는 점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부정적 영향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초기의 충격이 클 뿐, 거기서 벗어나면 우리 경제도 서서히 정상화할 것이다. 악몽은 점차 잊혀지고 사람들은 다시 비행기를 타기 시작한다. 소비를 시작하고, 투자를 집행한다.

1990년 걸프전이 좋은 예다. 걸프전 발발 초기에는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미국 증시가 폭락하는 바람에 우리 경제에 대한 우려도 컸다. 그러나 걸프전이 조기에 미국의 승리로 끝나자 상황은 달라졌다. 국내 건설업계에선 심지어 이라크의 종전(終戰) 복구 수요에 대한 기대가 커지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걸프전이 우리 경제에 끼친 부정적 영향은 예상만큼 크지 않았다.

미국 언론은 이번 사건을 제 2의 진주만 사건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이번 테러를 전쟁 행위로 규정한 부시 정부의 태도에 비춰볼 때 이는 적절한 비유다. 만약 보복 공격이 걸프전보다 더 큰 규모로, 장기에 걸쳐 이뤄진다면? 비록 최악의 시나리오지만, 이런 확전(擴戰) 시나리오도 우리 경제에 치명적이지만은 않다. 실제로 태평양 전쟁 초기 충격을 입은 미국 경제는 시간이 흘러 군수 물자 동원 체제로 인한 특수(特需)로 호황을 누렸다. 이번에도 미국의 수요 확대로 인한 수혜를 예상해 볼 수 있다.

이번 사건이 우리 경제에 끼칠 영향을 이해하자면, 현 상태를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 우리 경제는 세계 경제가 동시에 침체할 기미를 보이면서 회복 시기가 당초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 기업과 금융기관 구조 조정 역시 미뤄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현재 크게 고조된 상태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번 사건은 우리 경제로서도 최악의 타이밍에 벌어졌다고 할 만하다.

외환 위기는 극복했지만 경제의 체질 개선에는 실패한 마당에 벌어진 예기치 않은 이 사건으로, 우리 경제의 변동성(vo latility)은 크게 증가했다. 사실 이 점을 빼놓고는 사건 이후 3일간 우리 주식 시장에서 벌어졌던 ‘이상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다. 3일간 우리 증시는 세계 최고의 등락폭을 기록했다. 사건 후 첫 거래일에는 최악의 폭락을, 반면 이튿날에는 가장 두드러진 반등을 보였다. 보복 공격의 우려감이 짙어진 그 다음날은 다시 크게 떨어졌다.



그렇다면 왜 우리 주식 시장은 사건과 동시에 세계 증시의 평균 낙폭인 6%의 두 배 가까운 폭락세를 보인 걸까. 미국 및 세계 경제에 대한 의존도로만 설명하기는 힘들다. 어느 모로 보나 우리의 상황이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미(對美) 의존도라면 멕시코와 캐나다, 대외 의존도라면 싱가포르나 대만이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다.

어쩌면 가장 큰 원인은 우리 주식시장만의 ‘특수한 상황’인지도 모른다. 우리 주식시장은 8월 한 달 가까이 세계 증시 동조화의 움직임에서 벗어나 있었다. 동시 불황에 대한 우려로 세계 증시가 급락하는 가운데서도 우리만은 유독 밀리지 않았다. 이는 대형 부실기업의 처리가 임박하면서, 외국 투자가들이 상대적으로 우리 경제를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테러 사건으로 다급해진 외국인 투자가들은 사건 소식을 접하자마자 1천억원 이상의 순매도에 나섰다. 이것이 우리 주식 시장의 낙폭을 크게 한 결정적 요인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그러나 이 역시 우리 금융 시장과 경제 전반의 변동성이 커진 것을 입증하는 한 예에 불과할 따름이다. 수술중인 환자는 조그만 외부의 충격에도 크게 움츠려 들거나 외마디 비명을 지르게 마련 아닌가. 흔히 경제를 흐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경제는 어떤 계기를 통해 크게 출렁인다. 이 때문에 한 나라의 경제 모델에서 외부 충격(external shock)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고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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