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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대한민국 공무원의 경쟁력

잘못된 인사제도가 공무원 경쟁력 망쳤다

심층취재

  • 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mairso2@donga.com

잘못된 인사제도가 공무원 경쟁력 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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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 어업협상 과정, 항공안전등급 추락사태에서 드러난 한국 공무원의 허약한 경쟁력. 공무원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인사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과연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공무원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강화할 수 있을까.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만난 과학기술부 6급 공무원 임아무개씨는 공무원 인사제도와 관련해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계급제에서는 보직이 수시로 바뀔 수밖에 없다. 각각의 자리를 국장으로 가는 코스쯤으로 여길 뿐이다. 따라서 한 자리에 근무하는 기간이 아주 짧다. ‘이런 업무구나’ 하고 파악할 즈음이면 다른 자리로 옮기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대체로 1∼2년 근무하고 옮긴다. 3급 이상은 몇 달 만에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폐단은 대외협상에서 잘 드러난다. 상대국에서는 오랫동안 그 분야에 종사한 전문가가 협상자리에 나오는데, 우리 쪽에서는 1년 안팎 근무한 아마추어가 나간다. 협상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정부 경쟁력은 중·선진국 47개 국가 중 26위다. 1999년에 37위였던 점을 감안하면 점차 경쟁력이 좋아지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효율성과 위기관리능력 면에선 각각 40위, 42위로 여전히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정부 조직과 인사 개혁이 얼마나 시급한가를 잘 보여준다.

대외협상력이 떨어지는 이유

우리나라 공무원 인사의 특징으로는 잦은 순환보직, 연공서열 위주, 획일적인 보수제도, 만성적인 승진 적체 등이 꼽힌다. 앞서 공무원 임씨가 지적한 것은 바로 순환보직제의 문제점이다. 최근 자주 거론되는 공무원의 전문성 부족도 순환근무제에 따른 잦은 보직 변경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한 수석연구원은 “공무원의 경쟁력 문제는 곧 인사 시스템의 문제”라며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한·일 어업협상 당시엔 양국 협상 실무자의 근속연수와 전문성이 비교됐다. 일본측 실무자는 그 분야에서 오랫동안 잔뼈가 굵어 어업협상의 역사를 꿰고 있었다. 건설교통부장관 해임을 불러온 항공안전등급 추락사태 때는 주무국장의 잦은 교체가 입방아에 올랐다. 지난해 6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항공안전의 문제점을 지적한 이후 1년 사이에 항공국장이 무려 세 차례나 바뀐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자신의 직위를 걸고 사태해결에 나설 ‘지휘관’이 없었던 셈이다.

잦은 근무지 이동은 책임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사건이 벌어지면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남 탓하기 일쑤다. 책임의식과는 거리가 먼 근무환경이 조성되다 보니 징계 대상자 선별에 늘 잡음이 따른다. 의약분업 실패에 대한 인책론이 대두됐을 때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이 반발하고, 항공안전등급 추락의 책임을 따질 때 건설교통부 내에서 징계의 형평성 시비가 인 데는 그런 사정이 있다.

연세대 행정학과 김판석 교수도 공무원 인사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순환보직제를 꼽는다.

“우리나라 공무원의 자질은 우수한 편이다. 치열한 시험경쟁을 거쳐 우수한 인재가 선발되는 까닭이다. 그런데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지 5∼10년 지나면 경쟁력이 뚝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 그 이유는 지나친 전보에 있다. 업무 연속성과 상관없이 부서를 돌다 보니 전문성을 쌓을 시간이 없는 것이다. 1960∼70년대는 전문성이 없어도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그러나 국제화시대엔 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없으면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행정자치부 규정에 따르면, 감사 등 일부 직종에 예외가 있긴 하지만, 2급 이하 직업공무원은 한 부서에 최소한 1년 이상 근무해야 한다. 그 전에 부서를 옮길 경우 행자부와 협의하도록 함으로써 잦은 전보조치를 견제하고 있다.

그런데 실·국장급은 1년이 안 돼 바뀌는 것이 예사다. 중앙인사위원회에 따르면 중앙부처 실·국장급의 평균 재임기간은 1년2개월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평균 재임기간이 1년을 넘은 것은 별정직·특정직·계약직의 재임기간이 1년3개월∼1년9개월로 상대적으로 길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일반직 실·국장급만 따지면 11개월을 넘지 않는다.

이와 같은 현상은 장·차관의 잦은 교체와도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김호균씨의 박사논문 ‘장관의 역할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전두환 정부 시절 장관의 평균 재임기간은 17.8개월이다. 하지만 노태우 정부(13개월), 김영삼 정부(11.6개월), 김대중 정부(10.5개월)로 오면서 점점 짧아졌다.

고위직 인사가 발생하면 중간직·하위직에 연쇄인사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런 탓인지 과장급의 평균 재임기간도 실·국장에 못지 않다. 중앙인사위원회 분석에 따르면 과장들도 평균 1년3개월마다 자리를 옮겨다니고 있다. 재정경제부의 한 과장은 3년 동안 여섯 자리를 돌았다. 6개월에 한 번꼴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인사가 그다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심지어 모 경제부처의 총무과장 자리는 최근 3년4개월 동안 무려 9명이 거쳐갔다. 평균 4개월 보름 만에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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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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