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기억하는 김광웅(59) 중앙인사위원회 위원장의 이미지는 전형적인 학자풍이다. 평생 연구만 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흔한 큰 머리하며, 위엄을 풍기는 크고 둥그런 안경하며, 무엇이든 분석대상으로 삼아버릴 듯한 총총한 눈빛하며, 온화함을 풍기는 둥글고 시원스러운 이마하며….
1997년 대선 당시 김광웅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대선 후보들을 초대한 TV토론에 패널로 참석했다. 그때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를 매섭게 몰아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로부터 약 1년 반이 지난 1999년 5월 그는 김대중 정부에 합류했다. 공무원 인사개혁을 위해 신설된 중앙인사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이 된 것이다. 장관급인 이 자리는 반평생을 대학에서 보낸 그의 첫 관직이기도 하다.
약속한 오후 2시가 되자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첫인상은 생각보다 배가 나왔다는 것. 배 나온 사람들은 대체로 성격이 원만하다고 하던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그가 농을 했다. “보내준 예상질의서를 보니 국정감사보다 더해요.” 기자는 예상질의서에 없는 질문부터 꺼내들었다.
―8월17일 대통령과 몇몇 장관이 참석한 청와대 오찬에서 세게 얘기하셨던데요. ‘우리나라 공무원의 문장 구사력, 논리력, 판단력이 떨어져 시장경쟁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다. 그런데 부처간 경쟁과 견제에만 매달려 국력을 낭비하고 있다’고요.
“교육인적자원부가 주관하는 회의였어요. 사실 그런 얘기를 대통령 앞에서 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지요. 그냥 마음먹고 했어요.”
표현력, 설득력 없는 공무원들
―어떤 취지로 말씀하신 겁니까?
“공무원 조직에는 사실 우수한 사람들이 들어와요. 그런데 일단 들어온 후엔 커다란 보호막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신분이 보장되고, 시장보다 경쟁력이 없어도 생존이 가능하니까. 그렇게 안주하다 보니 실력이 퇴보해요. 정부가 시장과 꼭 경쟁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시장하고 같이 가야 한다는 거지. 정부가 시장을 간섭하고 억압하는 시대는 지났잖아요. 어쨌든 보기 좋게 이야기하자면 정부가 시장과 경쟁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경쟁 상대가 시장이 아니고 다른 부처예요. 정부 안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어요. 그러니 시장이나 국민한테 전달되는 정부의 서비스가 줄어들죠. 안에서 힘을 빼니까. 정부 부처끼리 경쟁하고 때로는 쓸데없이 견제하면서 국력을 소비하고 있어요.
정부의 경쟁력은 공무원의 실력에서 비롯되는데, 이분들이 머리는 우수한데 표현능력이 없어요. 적절한 단어를 구사하는 능력이 없어요. 그러니 설득력이 없는 거예요. 그 속에 논리도 없고. 그래가지고 어떻게 시장과 경쟁하며, 어떻게 기자를 설득하며, 어떻게 국민을 설득하겠느냐, 어떻게 국회의원을 설득하겠느냐, 그런 얘기예요. 고시제도를 바꾸자는 얘기도 그래서 나오는 겁니다. 암기력 좋은 사람을 뽑으면 뭐 합니까. 언어 표현력이 있고 논리가 서고 자료를 해석하고 만들어낼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한 거지. 예상 답을 외워놓았다가 그대로 써내고 객관식 문항의 답을 잘 찍은 사람이 들어와선 안 되죠. 그런 뜻에서 고시제도를 처음에 오자마자 바꾸려 했던 겁니다.”
김위원장은 지론인 듯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고 얘기를 쏟아냈다. 그런데 부처간 경쟁이라니?
“이른바 개혁 부처들이 그런 짓을 하고 있어요. 개혁을 주도하는 부처가 기획예산처예요. 그렇지만 기획예산처만 개혁을 하는 건 아니고 각 부처가 다 하는 거예요. 그런데 어떤 때보면 과시욕이 지나쳐요. 서로 자기네가 한 일이라고 신문에 내요. 정작 일을 한 곳은 따로 있는데. 그게 무슨 짓들입니까. 일이 되는 게 중요하지, 과실을 따는 것이 급합니까. 그런 현상에 대해 작심하고 얘기했죠.”
중앙인사위원회의 주요 기능은 첫째, 인사행정에 관한 기본정책 수립이다. 인사·보수 등 인사관계법령의 제·개정을 심의한다. 둘째, 고위직 공무원 인사심사로 1∼3급 공무원의 채용 및 승진을 심사한다. 그 밖에 직종별 봉급과 제수당, 여비 등을 조정하는 공무원 처우개선, 인사감사도 주요 업무다.
현정부의 지역편중인사를 지적하자, 그는 스포일즈 시스템(spoils system: 엽관제(獵官制). 정권을 잡은 정당이 승리의 보수로서 관직과 이권을 당원에게 배분하는 일)을 들어 비판의 ‘공정성’을 문제 삼았다.
“민주주의가 잘 발달한 나라에서는 스포일즈 시스템이 정착돼 있어요. 경쟁에서 이긴 사람들이 정부의 주요 자리를 다 차지하게 돼 있어요. 대통령 선거에서 이겼다는 것은 ‘생각이 같고 손발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일정기간 정부를 이끌어가겠다’는 의사를 국민에게 물어 동의를 얻은 겁니다. 그래서 그 정당이 원하는 대로 인적 구도를 짜는 겁니다. 미국에서 대통령이 바뀌면 4000개의 자리가 바뀌는 것도 그 때문이죠.”
그에 따르면 이른바 핵심직에 호남 출신이 많다고 해서 그렇지, 전체 주요 공직자의 출신지 비율을 따져보면 지역편중인사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위원회는 지난 2년여 동안 고위공직자 채용·승진심사와 감사를 통해 인사질서를 꽤 바로잡았다고 자부하고 있어요. 장·차관을 포함한 정무직과 산하단체장 인사는 우리를 거치지 않아요. 지역 편중이다, 집권당 마음대로 한다, 공동정부가 나눠먹는다고 비난하는데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걸 옹호하거나 비호할 생각은 없어요. 그렇지만 다른 측면도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주요 공직을 조사해보니 오히려 역대 정부 중 지역편중인사가 가장 덜한 정부예요.”
중앙인사위원회는 출범 직후부터 ‘국가 인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오고 있다. 필요한 인물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기 위해서다. 현재 약 7만명을 확보한 상태다. 김위원장은 “인재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앞으로는 장관 후보도 대통령에게 세 사람만 올릴 것이 아니라 열 명씩 추천해 적격자를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잘못된 인사제도가 공무원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공무원 인사가 일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거예요. 순환보직이라고, 자리에 앉은 지 1년도 안 돼 사람을 돌려요. 건설교통부 2급 항공국장 자리에 누구나 갈 수 있어요. 계급만 같으면 박씨도 가고 이씨도 가고 김씨도 갑니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인사패턴이에요. 지난번 대통령께서도 강조하신 게 전문성 확보였습니다. ‘WTO 협상에 나가는 사람, 제발 그 자리에 오래 두라’는 말씀이었죠. 전문성을 갖추고 오래 일해야 할 자리는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잡아야 합니다.
또 하나, 우리는 퇴직 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요. 정부에서 평생 일하고 밖에 나간 사람들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20만명이나 되는 퇴직 공무원이 민생위원으로서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문성을 쌓지 못하게 하는 인사관행 탓에 아까운 인적 자원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계급제가 공무원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어요. 바꿔야 할 게 참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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