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11일 오전 8시45분(한국시간 11일 밤 9시45분), 승객 92명을 태운 보스턴 발 LA행 아메리칸항공 보잉 767기가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의 북쪽 건물을 들이받고 폭발했다. 이 어이없는 ‘사고’에 전세계가 어리둥절해 있을 무렵, 또 한 대의 여객기가 뉴욕시 상공을 가로질러 맨해튼에 접근해 왔다. 역시 보스턴에서 LA로 가던 유나이티드항공 175편이었다. 항공기는 맨해튼 상공을 저공비행으로 날아오더니 국제무역센터 남쪽 빌딩을 관통하듯 들이받았다.
미국의 부(富)를 상징하는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을 형체도 없이 사라지게 한 여객기 충돌 테러는 미국은 물론 전세계를 경악케 했다. 충격파는 태평양 건너 한국의 정치권에도 밀어닥쳤다. 민주당 한나라당 자민련 등 정당들은 즉각 테러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국내정치권에서 세계무역센터 테러 공격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청와대였다. 임기 말에 접어들면서 사실상 집권 마무리 구상을 실행하기 위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도 야심 차게 진행하던 정치일정을 전부 다시 짜야 할 처지에 놓였다.
사실 일반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지난 8월 이후 여권 내부에는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 믿겨지지 않지만 여권의 변화를 설명해줄 핵심 단어는 ‘자신감’, 더 정확히 말해 ‘기대감’이었다.
지난 4∼5월, 김대통령의 지지율이 20%를 밑돌던 시절 여권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4월26일 실시된 지자체 재보궐 선거 참패에다 국민건강보험 재정파탄, 안동수 법무장관 인사파동 등 온갖 악재가 겹쳤다고는 하나 대통령 지지율이 20% 이하로 떨어진 현실에 여권인사들은 말을 잊었다. 청와대와 민주당, 국정원까지 나서 민심회복을 위한 비상대책 수립에 착수했다. 그러나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여권 사람들은 절망했고 당사와 청와대 어디를 가나 한숨소리가 넘쳐났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