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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은행, 보험을 먹는다

카운트다운! 금융권 빅뱅

  • 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공룡은행, 보험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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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국내 은행 중에는 비은행업 자회사를 거느린 경우가 적지 않다. 겉으로는 이들도 자회사를 통해 겸업하고 있다는 점에서 복합 금융그룹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자회사들은 대부분 업역 확대 외의 목적으로 설립되거나 인수됐다. 한국경제연구원 금융·재정연구센터 이인실 소장은 “상당수의 투자신탁회사는 정부가 산업자본의 진입을 막기 위해 은행에게 출자하게 한 것이며, 일부 증권사나 상호신용금고는 은행이 차입금 상환이 어려운 기업집단의 대출을 정리하는 과정에 기업집단이 가진 지분을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됐다. 이런 배경 때문에 복합 금융그룹 차원에서 상품과 마케팅, 시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경영전략 아래 은행과 자회사가 밀접한 관련을 갖는 형태로 발전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진정한 의미의 겸업화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법적 규제도 겸업의 활성화를 가로막았다. 현재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의 업무범위는 개별법령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고유업무 외의 업무를 하고자 할 때는 당국에 신고하거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특히 은행과 보험의 겸업형태인 방카슈랑스(넓게는 은행, 증권, 보험 등의 업무를 직접 겸영 또는 자회사업무제휴 방식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영위하는 ‘유니버설 뱅킹’의 의미로 사용된다)는 보험법 시행규칙에 따라 2003년 8월까지 유보돼 있다. 이는 은행업계와 보험업계가 첨예한 갈등을 보이자 중재에 나선 정부가 마련한 절충안 격이었다.

이처럼 금융권별로 가능한 업무만 열거해 규정하는 현행 포지티브 시스템은 규제 범위가 매우 넓다. 금융기업이 포지티브 시스템에서 허용하는 업무 리스트에 올라 있지 않은 상품을 개발하려면 복잡한 약관심사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상품 시판이 지연되고 신상품 개발의욕이 떨어진다.

한국금융연구원 이재연 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금융규제 완화방안’ 보고서에서 “대형 합병은행과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를 통한 겸업화를 활성화해 금융혁신을 앞당기려면 겸업을 금지하는 특정 업무만 법령에 명시하고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업무는 별도의 인허가 없이 자유롭게 겸영케 하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권간 장벽을 없애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전세계적으로 금융 관련 규제가 완화되고 경쟁이 격화되면서 금융기업들의 인수·합병,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한 방카슈랑스가 확대되고 있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1980년대부터 방카슈랑스를 본격화했으며, 1930년대의 대공황 이후 분업주의를 고수해온 미국도 1999년 은행과 보험, 증권을 갈라놓았던 글래스 스티걸 법을 폐지하고 업종간 상호진출을 허용하는 금융서비스현대화법을 제정했다.

글래스 스티걸 법은 은행들이 증권업에 진출한 것이 대공황을 초래했다는 판단에 따라 만들어졌는데, 이런 규제를 지속하면 겸업이 자유로운 유럽 금융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미국 금융기업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일본도 1997년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허용하면서 방카슈랑스를 도입했다.

정부도 이와 같은 추세를 감안, 방카슈랑스를 유보 시한인 2003년 8월 이전에 앞당겨 도입할 방침이다.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지난 5월 “금융산업의 급격한 변화에 맞춰 방카슈랑스를 조기에 도입하는 등 금융상품에 대한 규제를 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8월에는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도 “겸업, 대형화와 외국 보험사들의 투자촉진, 비용절감을 위해 방카슈랑스가 필요하다”며 “재정경제부와 함께 조기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거들었다.

하지만 보험업계가 방카슈랑스 조기 도입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내년에 치러질 두 차례의 선거에 부담을 느낄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최근 이근영 위원장은 “조기에 도입하더라도 정형화된 상품부터 단계적으로 허용해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줄이겠다”며 한 발 물러났다.

고비용·저효율의 전형

보험업계는 은행에 보험상품 판매를 허용할 경우 은행의 높은 접근성, 편리성, 신뢰도로 인해 보험사 고객들이 무더기로 이탈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저금리 추세가 지속되면서 보험 가입자에게 주기로 약속한 이율보다 자산을 운용해 얻는 이율이 훨씬 낮아져 금리 역마진 사태에 허덕이는 마당에 막강한 자금력과 지점망, 고객 기반을 갖춘 은행이 보험업에 뛰어들면 과열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소 보험사의 연쇄 도산과 보험사 직원 및 30만명에 달하는 보험설계사의 대량 실직이 불보듯하다는 것.

그 결과 경영난에 빠진 보험사들을 구제하거나 퇴출시키는 과정에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등 경제 전반에 부담을 줄 것이라는 주장이다. 20여 년 전부터 방카슈랑스가 본격 도입된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경우 은행계 보험사의 생명보험시장 점유율이 50%를 상회하며, 호주 보험업계 1위였던 AMP는 방카슈랑스가 도입된 지 4년 만에 시장점유율이 17% 하락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국내 보험사들은 영업방식이나 경영여건이 고비용·저효율의 전형이라 할 만큼 낙후돼 있어 은행의 경쟁력을 당해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은행의 영업형태는 찾아오는 고객을 상대하는 ‘풀(pull)형’인 데 비해 보험은 공급자가 고객에게 달려가는 ‘푸시(push)형’이다. 기본적으로 소요되는 인력과 시간, 비용이 그 만큼 많다.

또한 일부 대형 보험사 외에는 지점망과 인력이 태부족이다. 특히 신설 보험사가 이런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드는 사업비 규모는 엄청나다. 그런데 1994년까지만 해도 정부는 보험사 설립 후 5년까지 사업비 상각을 이연(移延)시켜줬다. 사업비를 물 쓰듯 해도 5년 동안은 손익에 반영되지 않고 자산으로 처리됐기 때문에 신설·지방 보험사들은 능력 이상으로 점포를 확장하고 영업인력을 뽑아 과당경쟁을 벌였다. 막대한 초기 사업비 지출은 헤어나기 힘든 ‘원초적 부실’로 이어져 경영난을 가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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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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