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8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기자실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서울대 김상종 교수(52·미생물학)가 한나라당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과 함께 서울시 수돗물에서 바이러스를 검출했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교수가 고문으로 있는 시민단체 ‘환경과 공해연구소’와 한나라당이 8월28일부터 9월5일까지 서울시내 12곳의 수돗물을 조사한 결과 1곳(서초구 한강시민공원 반포지구)에서 바이러스가 나왔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김교수의 현재 신분이다. 김교수는 1998년부터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국토환경과학기술분과위원으로 활동해왔다. 대통령을 자문하는 사람이 야당의 돈으로 공동조사를 벌이고, 야당 당사에서 정권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은 언뜻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2001년 6월25일. 김교수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증인으로 출석했다. 환경부가 5월2일 “전국의 10만t 이하 정수장 31군데 수계를 조사한 결과, 수돗물(4곳)과 정수(3곳)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밝히자 국회는 진상조사에 들어갔고, 서울시 수돗물에서 수년째 바이러스를 검출한 김교수를 증인으로 채택한 것이다.
이 무렵 한상진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은 김교수에게 “정책기획위원이 국회에 출석해서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으냐”며 만류했다고 김교수는 말한다. 두 사람은 10여 년 전부터 사회 참여에 적극적인 서울대 교수들의 모임 ‘사회정의연구실현모임(사연실)’에서 함께 활동해왔으며, 한위원장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 김교수를 정책기획위원으로 추천한 바 있다.
이런 까닭에 김교수는 한때 국회 출석을 놓고 망설였다고 한다. 고심 끝에 김교수는 한위원장에게 “바이러스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으로서 나가야겠다. 정치적 문제를 떠나 과학적 사실을 얘기하겠다”는 뜻을 전달했고, 한위원장은 “꼭 그렇게 해야 한다면, 정책기획위원직을 사퇴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김교수는 말한다. 결국 김교수는 사표를 제출했다.
김교수는 정책기획위원직을 그만두고 국회에 출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3년 동안 입이 아프게 바이러스 문제의 심각성을 얘기했는데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정부가 무능하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민생문제에 무관심한 정권에서 자문위원을 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국민이 더 불쌍해지기 전에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생각에서 증언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위원장은 “김교수가 정책기획위원직을 사임한 적이 없다. 왜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당시 김교수는 도덕적 딜레마를 겪고 있었다. 국회에 나가면 여야의 공방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러면 어떤 파장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김교수는 지금도 정책기획위원이다”고 밝혔다.
결국 김교수는 사표를 냈다는 것이고, 한위원장은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는 얘기인 셈이다. 이 때문에 9월10일 환경부 국정감사장에서는 또 한 차례의 ‘해프닝’이 벌어졌다. 민주당 신계륜 의원이 증인으로 출석한 김교수에게 “지금도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입니까?”라고 묻자 김교수는 “사표를 제출했지만, 저도 위원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신의원은 김교수의 애매한 답변을 다그쳤다.
1993년부터 바이러스 조사
김상종 교수가 수돗물 바이러스 연구를 시작한 계기는 1993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교수가 지도교수로 참여한 서울대 미생물연구팀은 서울시 수돗물에서 기준치의 50배를 초과하는 대장균을 검출했다. 이때부터 김교수는 수돗물에 병원성 미생물도 들어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마침 바이러스로 인한 수인성 질환이 유행하는 것을 보고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1997년 10월24일 김교수는 전북대에서 열린 한국미생물학회에 참석해 서울시 수돗물에서 바이러스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11월4일 김교수의 연구결과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졌다. 김교수는 서울시 수돗물에서 검출한 에코 바이러스와 콕사키 바이러스는 무균성 뇌수막염 환자의 척수와 배설물에서 나온 것과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김교수의 연구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당시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장이 서울대에 보낸 질의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전문가의 확실한 검증 없이 언론기관에 보도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선량한 시민들에게 수돗물에 대한 불안과 불신감을 키우고, 국가이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1997년 11월11일)
한편 환경부의 반응은 두 가지 기류로 나타났다. 하나는 상수원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될 수 있어도 정수과정에 염소 소독을 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김교수가 검출한 바이러스는 소량이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다는 논리도 등장했다.
곁가지를 떼고 살펴보면 김교수와 환경부·서울시가 수년간 벌여온 논쟁의 핵심은 실험방법론이다. 김교수는 미국환경청(EPA)이 공인하는 세포배양법(Cell Culture Method·동물세포에 수돗물 시료를 접종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세포병변현상’을 통해 감염성 바이러스의 존재 여부를 판정하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주장하지만, 환경부와 서울시는 “김교수가 실험방법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김교수가 지금까지 바이러스 검출을 위해 활용한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세포배양법이고, 다른 하나는 유전자검색법(Polymerase Chain Reaction·바이러스의 유전자인 DNA나 RNA가 존재하는 것을 확인하여 수돗물에 바이러스가 오염돼 있는지를 판정하는 방법)이다. 김교수는 두 가지 방법을 다 써야만 정확한 바이러스 판정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반면 환경부와 서울시는 “유전자검색법은 민감하지만 미국 환경청이 공인한 방법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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