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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직무유기인가, 과학의 정치공세인가

서울대 김상종 교수의 ‘수돗물 바이러스 전쟁’5년

  • 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정부의 직무유기인가, 과학의 정치공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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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모두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다. 미국 환경청은 1996년 이른바 정보수집법(ICR)을 제정하고 ‘인구 10만 이상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는 정수장에서는 원수와 수돗물을 18개월 동안 세포배양법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실제로 이 규정에 따라 1998년 12월까지 미국 전역에서 조사가 진행됐다. 그 후 새로운 법이 제정되지 않았으므로 세포배양법은 미국 환경청이 채택한 공식적인 바이러스 검출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세포배양법의 한계다. 일반적으로 세포배양법은 바이러스 검출은 가능하지만, 바이러스의 종류를 확인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세포배양법에서는 검출되지 않은 바이러스가 유전자검색법에서는 나오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 때문에 유전자검색법이 더 정확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유전자검색법의 경우 죽은 바이러스와 살아 있는 바이러스를 구분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여기서 미국 환경청이 1993년 발표한 보고서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보고서에는 세포배양법의 한계를 지적하는 문구와 함께 그에 대한 보완책으로 유전자검색법을 개발하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한 미국 미생물학회는 2000년 8월 미국 환경청에 세포배양법과 유전자검색법을 결합한 방법을 공정시험법으로 채택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김교수는 이러한 이유로 유전자검색법의 유용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세포배양법이든 유전자검색법이든 중요한 것은 서울시 수돗물에 살아 있는 바이러스가 들어 있느냐 하는 문제다. 김교수의 바이러스 실험 결과가 언론에 보도된 이후 환경부는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용역조사를 실시했다. 1차 조사는 KIST(한국과학기술원) 박순희 박사(현 식품의약청 제제과장)가, 2차와 3차는 경희대 정용석 교수가 맡았다. 서울시 수돗물의 경우 1차에서 2곳을 조사했는데, 여기서는 바이러스가 나오지 않았다. 2차와 3차에서는 서울시가 조사지역에 포함되지 않았다.

같은 기간 서울시가 의뢰한 용역조사에서도 바이러스는 검출되지 않았다. 연세대 정용 교수팀과 강원도 신영오 교수팀은 1998년 12월부터 2000년 6월까지 총 163회에 걸쳐 바이러스를 조사했다. 그 결과 원수(상수원)에서는 24회 가운데 8건이 검출됐지만, 공정수(59회)와 정수(40회) 그리고 수도꼭지(40회)에서는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다. 서울시 수도기술연구소도 2000년 7월부터 2001년 2월까지 10회에 걸쳐 조사했지만, 수도꼭지에서는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았다.



반면 김교수는 1997년부터 꾸준히 바이러스를 검출해냈다. 그 동안 수돗물 32개를 조사해 20개(62.5%)에서 바이러스를 검출했다.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1999년에 실시한 14차례의 조사결과다. 당시 세포배양법으로는 6곳, 유전자 검색법으로는 9곳에서 바이러스가 나왔다. 김교수는 이것을 근거로 유전자검색법의 상대적 정확성을 주장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극단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바이러스가 수중에서 불균형 분포를 이룬다는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너무나 대비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양측은 서로의 실험결과에 대해 불신을 품고 있으며, 김교수가 최초로 바이러스를 검출한 지 5년이 되도록 지루한 입씨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먼저 환경부와 서울시의 주장을 들어보자. 김명자 환경부 장관은 “미국 환경청이 인증한 방식이 아니면 인정하기 힘들다. 김교수 개인이 한 실험이고, 실험방법도 공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립환경연구원 정현미 연구원도 “김교수의 연구는 자세히 검토하지 못해 신뢰할 수 없다. 김교수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떤 부분에서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연구결과로서만 주목할 뿐”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서울시상수도사업본부 김정우 수질과장 역시 김교수의 실험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에 대해 김교수는 미국 환경청이 제시한 세포배양법을 충실히 따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김교수의 실험일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미국 환경청의 기준과 다소 다른 점도 눈에 띈다. 예를 들면 미국 환경청은 1500리터의 물을 1리터로 농축한 다음 20개의 용기에 나누어 실험하도록 제안하고 있는데, 김교수는 5개로 분리한 경우다. 하지만 이것이 바이러스 검출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수돗물에 바이러스가 없다면, 용기가 몇 개든 관계없이 검출되지 않아야 정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미생물학회 바이러스위원회는 김교수의 연구결과를 8개월 동안 검토한 끝에 공식 인정했다. 작업에 참여했던 이찬희 충북대 교수(미생물학)는 “학생들이 직접 작성한 실험일지까지 모두 조사했다. 김교수가 세포배양법을 통해 바이러스를 검출한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한국미생물학회 박용근 회장(고려대 생명공학과 교수)도 “실험방법에 전혀 하자가 없었다. 김교수의 논문은 바람직하고 의미있는 연구였다. 만일 실험방법에 신뢰성이 없었다면, 미생물학회지에 실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교수 조사의 지역적 특수성

여기서 김교수의 실험결과와 관련해 한 가지 지적하고 넘어갈 점이 있다. 김교수가 1997년부터 채취한 수돗물의 상당 부분은 서울시에서도 취약지역으로 알려진 관악구에 집중돼 있다. 관악구는 서울시 수도관의 끝 부분에 있기 때문에 배수관이나 지하수 등에 의한 오염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고 볼 수 있다.

한나라당과 김교수의 공동조사에서도 이를 입증하는 결과가 나왔다. 정수장과 거리가 가까운 강남지역에 비해 영등포 광진 노원 등 수도관 끝에 위치한 지역은 잔류 염소농도가 낮게 나왔다. 김교수도 이런 지역적 특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취약지구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감정싸움으로 번진 바이러스 논쟁

김교수는 세포배양법과 유전자검색법이 본질적으로 다른데 일부 과학자들이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김교수는 그 근거로 2001년 6월2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경희대 정용석 교수가 답변한 내용을 제시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정교수는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연구원의 2,3차 바이러스 용역조사를 담당한 실무 책임자다. 한나라당 의원이 정교수에게 “세포배양법과 유전자검색법의 실험장비가 다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정교수는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고, 김교수는 “다르다”고 맞섰다고 한다.

2001년 9월10일 환경부 국정감사가 시작되자마자 한나라당 김성조 의원은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하고 이 문제부터 거론했다. 자신이 확인해본 결과 세포배양법과 유전자검색법의 장비가 다른 데도 정교수가 위증했다며 고발 여부를 논의하자고 주장했다. 이에 이윤수 환경노동위원장은 “국정감사 이후에 다루자”고 답했다.

이와 관련 김교수는 “환경부의 용역을 수행한 정교수가 의도적으로 그런 발언을 했다고 본다. 환경부는 세포배양법만을 인정하고 있다. 나는 그것의 한계를 지속적으로 주장했으며, 그것을 입증하는 실험까지 했다. 그런데도 정교수는 세포배양법과 유전자검색법이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왜곡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교수는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상식적으로 세포배양법과 유전자검색법 장비를 모두 갖춰야 한다는 뜻으로 한 얘기다. 그런데도 김교수가 나를 모함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보통 실험실에서 세포배양법 장비를 갖추는 데는 6000만원에서 1억원 가량 든다. 이 상태에서 유전자검색법 장비를 별도로 보강하는 데는 300만원 정도만 추가하면 된다. 고작 300만원이라는 미미한 차이를 갖고 마치 내가 엄청난 ‘음모’라도 꾸민 것처럼 말하는 것은 상식 이하”라고 주장했다.

한편 서울시 수도기술연구소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세포배양법 장비는 27종, 유전자검색법 장비는 10종으로 나와 있다. 수입품이 많아서 환율에 따라 차이가 생길 수 있겠지만, 수도기술연구소가 계산한 금액으로는 세포배양법 장비 2억8000여만원, 유전자검색법 장비는 8000여만원으로 나와 있다(단, 특정 실험실이 기본장비를 얼마나 갖추었느냐에 따라 총액은 줄어들 수 있다).

기자는 바이러스 논쟁을 취재하면서 김교수의 연구에 대한 환경부와 서울시의 불신이 단순히 실험절차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김교수가 정확하게 수돗물을 채취했는지, 실험실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또한 바이러스를 정말 검출한 것인지 믿을 수 없다”는 말까지 했다. 김명자 장관의 다음과 같은 말 속에서도 김교수에 대한 불신을 엿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수돗물에서 바이러스가 나오는 것을 매우 특이한 것으로 간주한다. 바이러스가 나왔다면 실험을 잘못해서 그렇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바이러스는 대부분 염소 소독과정에서 죽는 것으로 알고 있다.”

김장관은 김교수의 ‘검증되지 않은’ 실험실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졌다. 환경부는 1996년 6월 미국 환경청의 파우트 박사를 초청했다. 당시 파우트 박사는 경희대와 강원대를 비롯, 5개 실험실을 둘러보았다. 이때 파우트 박사는 서울대 실험실도 방문하려 했으나, 김교수가 거부한 일이 있다. 김장관은 이때의 일을 두고 “김교수가 검사를 받았더라면 연구의 신뢰성이 더 높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교수의 주장은 다르다. 당시 서울대 실험실은 한국미생물학회의 점검을 받고 있었으며, 파우트 박사가 무슨 목적으로 방문하려는 것인지 의도를 알 수 없었다는 얘기다. 김교수의 말을 더 들어보자.

“실험실은 단순히 몇 시간 둘러보고 검사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우리는 파우트 박사가 무슨 자격으로 남의 나라 실험실을 조사하려는 것인지 그 배경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5개 실험실을 둘러본 파우트 박사가 나중에 국립환경연구원으로 보내온 편지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2001년 9월10일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오세훈 의원은 이 편지를 공개했다.

“저는 시간의 한계 때문에 미국에서 수행되는 절차에 따른 정규 실험평가를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5개 실험실 어느 곳에서도 전체적인 바이러스 실험방법(entire virus method)을 수행하는 것을 관찰할 수 없었습니다.(중략) 따라서 이 평가는 본질적으로 예비적인 것으로 간주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파우트 박사의 방문조사가 실험실의 신뢰성을 높여주었을 거라는 김장관의 주장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짐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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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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