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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40년 만에 털어놓은 군사쿠데타의 숨겨진 진상<4>

청와대 입성 군인들의 일성 “돗자리 깔고 위스키 가져와!”

  • 김준하

청와대 입성 군인들의 일성 “돗자리 깔고 위스키 가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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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대통령은 비서실장과 윤교수의 건의를 받아들여 기자회견 전에 문제의 ‘정정법’을 인준하는 서류에 사인했다. 그뿐 아니라 윤교수의 건의에 따라 최고회의 앞으로 ‘대통령 사임서’까지 제출했다. 대통령은 하야를 결행하면서 어떤 장애물도 제거하고 싶었던 것이다. 오직 가시방석과도 같은 대통령자리에서 물러나고 싶은 일념뿐이었던 것 같다.

정정법은 곧 위력을 발휘해 4369명을 심사대상자로 발표했고, 나중에 그중 1336명에 대해서는 ‘정치를 해도 좋다’고 적격 판정을 내렸다. 나도 정정법에 묶여 버렸다. 신문기자를 하다가 7·29선거에 출마했고 신민당 지구당위원장을 했으며 청와대에서 일한 것이 ‘죄’라는 것이다. 그 후 1, 2차 해금에서도 풀려나지 않았다. 다시는 이 나라에 정정법 같은 악법이 생겨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3월22일 오후 3시. 윤보선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행사였던 하야 기자회견을 청와대 대회견실에서 가졌다. 나는 회견에 앞서 하야성명서를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대통령이 하고 싶었던 얘기가 성명서에 포함돼 있었으므로 기자회견은 간단히 끝날 수 있었다. 대통령은 “이 자리를 그만두게 되니까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어깨가 가뿐하다”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야성명에 다 들어 있다”는 말로 기자들의 질문을 피했다.

대통령의 심중을 충분히 이해한 기자들은 특별히 질문을 하지 않아 기자회견은 간단히 끝났다. 최고회의측에서는 단 한 사람도 배석하지 않았다. 비운의 대통령이라고나 할까, 윤보선씨의 대통령 생활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그는 하야성명에서 “덕이 없는 사람이 국가 원수직에 있었던 19개월 동안 이 나라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 나는 책임을 느낀다”고 말함으로써 5·16 쿠데타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1960년 4월 이승만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1961년 5월 군사혁명이 발생해 두 차례 혁명을 연거푸 겪지 않으면 안 된 이 나라의 불행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나의 재임중 그런 사태가 생긴 것을 더욱 유감스럽게 여긴다”고 말해 5·16에 대한 유감 표명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물러날 결심을 앞당긴 동기는 “구정치인에 대한 정정법이었다”고 분명히 밝힌 다음 “이러한 입법에 반대해온 것은 일부 인사를 두둔하기 위함이 아니요, 오직 이러한 취지의 입법으로 국민의 인화와 단결에 금이 가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고 앞날의 불행을 예고하기도 했다. 끝으로 “대통령을 사임하면서 이 나라의 번영과 국민생활의 평화를 기원한다”고 말을 맺었다. 회견을 마친 대통령은 곧바로 가족들과 함께 청와대를 떠나 안국동 자택으로 향했다. 다사다난했으며 한 많았던 윤대통령의 ‘청와대 생활’은 이렇게 끝이 났다.

술시중 드는 청와대 비서관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자 초상집 같은 공허감과 적막이 청와대에 흘렀다. 나는 책상을 정리하고 사표를 썼다. 한시도 이 근처에 머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난 지 세 시간이 지났을까. 바깥이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느닷없이 지프 행렬이 청와대 정문으로 밀어닥쳤다. 나는 비서실장과 몇몇 비서와 함께 나란히 현관에 서서 그들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 의장을 선두로 해서 ‘혁명 주체’들이 경호원들과 함께 현관으로 몰려들어왔다. 5·16 아침이 연상됐다. 현관에 들어서자 그중 한 사람이 “이봐. 위스키 있어?” 하고 우리를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그것이 청와대 입성 제 일성이었다. 1960년대 우리나라에는 외제 위스키가 흔하지 않았지만 빈번이 외국손님을 맞이해야 하는 청와대에는 귀한 위스키가 항상 준비돼 있었다. 위스키를 찾은 그 장교는 청와대 사정에 밝은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그들은 5·16 아침 박의장이 대통령과 처음으로 면담했던 소회의실로 우르르 들어갔다. 빈 방에서 잡담을 하다가 그중 한 사람이 총무비서를 불렀다.

“이봐 비서관. 돗자리를 몇 장 구해 오라구.” “바깥 잔디 위에 돗자리를 깔고 술상을 준비하라구.” 명령조로 말하는 장교를 바라보면서 나는 기가 찼다. 적지를 점령한 승전장교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돗자리를 구하려고 수선을 떤 끝에 외제 위스키가 곁들인 돗자리 술상이 준비됐다. 술상이 차려진 그 자리는 오늘 아침까지 윤대통령이 산책을 하고 건강 관리를 하기 위해 줄넘기를 하던 장소이기도 했다. 나는 그들이 술 마시고 희희낙락하는 꼴을 보고 있을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어 청와대 안에 있던 관사로 귀가해 버렸다.

다음날 아침 술자리 시중을 든 비서들에게 물어보니 박정희 의장을 비롯한 혁명 주체들이 자정 가까이 술잔을 기울이며 청와대 점령을 자축했다는 것이다. 바로 전날 대통령이 하야의 뜻을 밝히자 “지금은 그만둘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년 여름 민정이양 때까지만이라도 도와주십시오”라고 간청하던 박정희 의장의 모습이 새삼 머리에 떠올랐다. 박의장이 최고회의에서 정식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추대되어 국민에게 선서를 하고 나서 당당하게 청와대에 입성했더라면 얼마나 보기가 좋았을까? 국가원수로서 체통도 서지 않았을까?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돗자리 파티가 격에 맞는 일이었을까? 차라리 하루를 기다렸다가 외국 사신들도 불러놓고 ‘대통령 권한대행 축하파티를 벌였더라면…’ 하는 생각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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