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978년 수도여사대(지금의 세종대) 1학년에 입학해 시작한 학생운동을 1995년 정치권 입문 직전까지 계속했다. 대개 여성들의 경우 대학 졸업이나 결혼을 정점으로 운동을 접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마련이지만 그는 뒤죽박죽 혼돈의 시절을 묵묵히 운동에 헌신했다는 평을 듣는다. 졸업 후 그는 김근태 현 민주당 고문과 운동권 선후배 동료들이 모여 만든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에 가입해 운동을 계속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운동의 극단화를 경계했고, 인간의 숨결이 느껴지는 따뜻한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현실주의자였다.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DJ에 대한 ‘비지(비판적 지지) 그룹’의 대부였던 김근태 상임고문과 같은 길을 걸었던 것도 그의 이 같은 성향 때문이었다.
논리와 삶에 있어서는 치열하지만 그는 그 이상으로 감성적이다. 한마디로 눈물이 많다. 눈물에 관한 에피소드도 적지 않다. 1997년 대선 때 국민회의 당사에 광주민주화운동 유가족들이 몰려온 적이 있다. 비자금사건으로 구속된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두 전직대통령에 대해 김대중 후보가 사면복권을 촉구한 것이 발단이었다. 유가족들은 국민회의 당사를 점거하고 울부짖었다. “내 아들을 살려내라” “김대중이가 이럴 수 있느냐”고 격렬히 항의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박부대변인이 조용히 자리를 떴다. 그가 찾은 곳은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에서 박부대변인은 펑펑 눈물을 흘렸다. 그는 화장실에서 조우한 한 여기자가 “왜 우느냐”고 의아해하자 “아줌마들 얘기가 다 맞잖아”라며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논리와 언변에 강하지만 남 앞에 서지 못하는 ‘무대공포증’도 있다. 누가 놀리면 얼굴이 벌개지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 때문에 국민회의 부대변인으로서 그의 첫발은 고역(苦役)에 가까웠다.
그는 완벽주의자에 가깝다. 작은 일 하나에도 성심(誠心)을 다하는 스타일이다. 명절이나 연말 때 그는 친지들에게 종종 넥타이를 선물하곤 했는데 그가 선물하는 넥타이 포장에는 모두 선물할 사람의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자신이 직접 백화점을 찾아가 선물할 사람을 연상하며 그에 맞는 색깔을 고르는 것이다. 대선 때는 귤과 군고구마, 군밤 등을 사들고 신문사 편집국이나 선거사무실 등을 찾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이지만 그는 이것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박선숙표 군고구마’도 그렇게 유래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참모로서는 몰라도 정치인으로서 그의 앞길이 순탄할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제 42세, 갈길이 창창한 나이다. 그러나 그는 ‘독립’을 준비하지 못했다. 남들은 청와대 근무를 ‘신분상승’을 위한 디딤돌로 생각하는 분위기지만 그는 청와대 근무를 자신의 ‘종착지’처럼 여기며 살았다.
또 DJ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대선 이후에는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혼신을 다하다보니 ‘DJ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깊게 각인됐다. 정권의 초기라면 몰라도 끝물에서 이같은 꼬리표는 앞길에 대한 제약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는 이것을 달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향후 정치인생을 장담하기 어렵다.
그의 능력으로 볼 때 어느 쪽으로든 효용가치가 여전하다고 정치인들은 판단하겠지만 그의 결벽증이 쉽게 다른 정치적 선택을 허용할지도 미지수다. ‘공보전문가’와 ‘참모’로서의 이미지도 장기적으로 ‘정치인 박선숙’의 독립적 위상을 찾아가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DJ와의 인간적 관계가 공보수석으로서 그의 역할에 긍정적인 영향도 미치겠지만 거꾸로 부담이 될 소지도 없지 않다. 대통령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연민 때문에 그가 1997년 대선 때처럼 거리낌없이 직언을 할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다. 흔히들 청와대 공보수석을 대통령의 ‘입’이라고 알고 있지만 입보다 더 중요한 역할은 세간의 여론을 듣고 있는 그대로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귀’일지도 모른다.
박수석은 이제 여성으로서 최초의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에 서있다. 대통령의 입과 귀로서뿐만 아니라 한 조직의 리더로서 ‘선배 비서관’들을 모시고 통솔력과 리더십을 발휘해야만 한다. 말 많고 탈 많은 권부의 중심에서 박수석이 어떤 궤적을 그리며 김대중 정권의 마무리를 깔끔히 해낼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DJ 퇴임 이후 독립된 정치인으로서 그가 ‘홀로서기’에 나설 것인지 여부는 또다른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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