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호

생각하는 속도의 차이가 승패를 가른다

  • 김화성 <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차장 > mars@donga.com

    입력2004-11-08 17: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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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과 노골을 결정하는 것은 불과 0.1초다. 공격수와 수비수는 공을 사이에 두고 치밀한 두뇌게임을 벌여야 하고, 먼저 판단하고 빠르게 움직인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한국축구는 신체의 스피드 싸움에 강하지만, 두뇌의 속도전에서는 절대 약세를 보이고 있다. 월드컵 16강진출이 험난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난 축구공이 내 몸에 닿을 때 느낌은 그 어떤 것이든지 다 좋다. 공이 내 발의 중심(Sweet Spot)에 맞을 때의 가벼운 느낌, 중심을 벗어났을 때의 저린 느낌, 토킥 때 발끝이 공을 파고드는 느낌, 힐킥 때 발뒤꿈치의 뼈로 공을 찌르는 느낌, 그 충격을 가슴 전체로 맛보는 가슴 트래핑의 느낌, 가슴 트래핑 반발을 세게 해 동료에게 패스할 때의 느낌, 발바닥으로 공을 굴릴 때의 그 간질간질 황홀한 느낌, 작게 바운드되는 공을 걷어올려 높이 띄울 때의 구름같이 가벼운 느낌, 터치라인을 타고 앞으로 드리블해 나아갈 때의 자랑스런 느낌, 흐르는 공을 다리나 머리로 일단 멈추게 한 뒤 다시 다른 방향으로 공의 힘을 돌릴 때의 느낌, 바운드된 공에 맞춰 자기도 뛰어올라 그 공에 가볍게 발을 대며 함께 내려올 때의 느낌, 죽을 힘을 다해 달리면서 무의식적으로 공을 건드리며 드리블할 때의 쾌감…. 난 내가 좋아하는 이런 것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축구선수가 된 것이 정말로 행복하다.”

    -디에고 마라도나

    특징 1: 경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뭔가 보여줄 것 같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몰려다닌다. 마치 유럽식 압박축구인 양 우리로 하여금 잔뜩 기대감을 갖게 한다.

    특징 2: 10∼15분 사이에 어이없게 선취골을 내준다. 그리고 곧 만회하겠다는 듯 바싹 추격한다. 전반 내내 미친 듯이 뛰어다닌다.

    특징 3: 볼 점유율은 높고 골 결정력은 낮다. 너도 나도 좋은 슛 찬스를 번번이 놓친다. 꼭 슈팅 연습하는 것 같다. 어쩌다 걸린 결정적인 슛도 골대에 맞거나 얼떨결에 상대 발에 걸리거나…. 아무튼 골운도 안 따른다.



    특징 4: 분수령이 되는 중요한 경기가 끝나면 운동장에 그냥 주저앉아 일어설 줄을 모른다. 경기 내내 목이 터져라 응원한 응원단에게 인사라도 하면 좋을텐데….

    특징 5: 그렇게 중요한 경기 다 지고 나서 마지막 경기에서는 ‘저 팀이 과연 한국대표팀 맞는가’ 하고 눈을 씻고 볼 정도로 잘 한다. 예선 탈락이 확정되면 그때부터 전혀 다른 팀인 양 최고의 경기를 펼친다.

    -www.soccero.com 축구유머방에서



    현대축구는 숨막히는 속도전


    21세기는 ‘속도’의 시대다. 빠르지 않으면 죽는다. ‘속도’는 이미 선악의 개념을 떠나 현실이다. 잠시 한눈 팔다보면 세상은 어느새 전혀 딴세상이 되어 있다. 경영도 마찬가지다. 느려터진 비즈니스는 더 이상 고객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빌 게이츠는 이젠 ‘디지털 신경망’을 가진 기업만이 살아남는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현대 경영’은 인간의 신경체계만큼 빠르지 않으면 망한다는 이야기다. 빨리 판단하고 빨리 결정해야 한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는 것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다리를 건널건지 말건지 순식간에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인간의 신경체계는 빛보다도 빠르다. 빌 게이츠는 이를 ‘생각의 속도’라고 규정한다. 인간의 ‘생각하는 속도’만큼 기업의 ‘정보처리 속도’가 빨라야 된다는 뜻이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현대축구는 ‘속도전쟁’이다. 빠르지 않으면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써먹을 시간이 없다. 그렇다고 달리기만 빨라서는 안된다. ‘생각의 속도’가 빨라야 한다. 공이 어디로 갈건지 미리 예상하고 있으면 상대보다 훨씬 빠르게 그 공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세계에서 100m를 가장 빠르게 달리는 사나이는 미국의 모리스 그린이다. 그는 100m를 9초79에 뛴다. 그린은 스타트가 빠르기로 유명하다. 2001년 8월 에드먼턴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9초82로 우승할 때 그의 100m 출발반응시간은 0.132초였다. 출발반응시간이란 출발신호가 난 후 뛰쳐나갈 때까지 걸린 시간을 말한다. 인간은 의학적으로 아무리 빨라도 출발반응시간이 1000분의 100초 즉 0.1 초 이하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단거리 출발 때 출발반응시간이 0.1초 이하인 선수가 있으면 즉시 실격으로 처리된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규정에 ‘1000분의 100초 이하’로 표현된 것은 사진판독기의 시간이 1000분의 1단위로 표시되기 때문이다. 단거리 육상선수가 아닌 다른 운동선수들의 출발반응시간은 0.15초 정도면 우수한 것으로 친다. 보통 축구선수들의 100m 달리기 속도는 12초대. 만약 공을 받기 전에 그 공이 어디로 갈 것인지 알고 있다면 상대보다 0.15초 빨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0.15초는 100m를 12초로 달리는 축구선수가 상대보다 1.24m를 앞서 달릴 수 있다는 뜻이다. 페널티에어리어 안에서의 1.24m는 곧바로 ‘노마크 찬스’로 연결된다. 여기에 무게중심을 앞쪽으로 향하고 있는 공격수와 자기 골대를 등지고 있다가(무게중심이 발뒤꿈치에 있는) 몸을 돌려 공격수를 막아야 하는 수비수의 순간 스타트스피드는 그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원래부터 똑같이 출발하더라도 수비수가 불리한 법인데 수비수가 ‘생각의 속도’마저 느리다면 그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지난 1월24일 북중미골드컵 한국과 미국의 경기에서 한국이 ‘미국의 마라도나’로 불리는 랜던 도노번(20)에게 첫 골을 먹은 것이나 최진철이 2선에 있다 뛰쳐나오는 도노번을 막다가 퇴장당한 것은 바로 그 ‘생각의 속도’에서 뒤진 탓이다. 2선에 있는 반대편 선수가 돌아나갈 것이라는 것을 최진철이 예상하고 있었다면 도노번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생각의 속도’가 늦어 도노번을 놓친 최진철은 결국 뒤에서 잡아챌 수밖에 없었다. 최진철은 출발반응시간 0.15초만큼의 거리인 딱 1m 정도가 늦었다. 탄력이 좋은 비슬리(20)에게 먹은 두번째 골도 커닝햄(25)의 크로스패스로 이뤄졌다.

    1대3으로 패한 코스타리카전에서도 우리 수비 뒷공간으로 파고드는 완초페에게 찔러주는 후방의 스루패스에 당한 것이다. 한국 수비수들은 자기가 마크하고 있는 상대 이외의 반대편 공격수의 움직임이나 공의 예상 흐름에 대한 ‘생각의 속도’가 너무 늦다. 한국팀을 울린 미국 도노번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전반 초반이 지나면서 한국이 지난해 12월8일 서귀포 경기에서와 같은 수비 포메이션을 쓰는 걸 보고 오프사이드 트랩 돌파를 시도했는데 성공했다. 만약 한국이 늘 같은 방식을 쓴다면 앞으로도 충분히 뚫을 수 있다”

    그동안 한국팀에서 가장 취약한 위치는 중앙수비수였다. 세계적으로도 중앙수비수는 키가 최소한 185㎝ 이상은 돼야 하며 노련하고 빨라야 된다. 또한 상대 공격수에 못지않은 순발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생각의 속도’에서도 가장 뛰어나야 한다.

    한국은 그동안 콤팩트축구에 맞는 중앙수비수를 찾기 위해 프로축구 전남구단의 브라질 용병 마시엘의 귀화까지 검토했다. 결국 현재는 송종국과 유상철을 교대로 세우며 비교적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미국과 같이 그다지 키가 크지 않은 팀과의 경기에는 송종국이 중앙수비수로 나서는 것이 괜찮겠지만 폴란드와 같이 힘이 좋고 장신인 팀과 붙었을 때는 유상철이 중앙수비수로 나서는 게 합리적이다. 이런 면에서 홍명보의 센터백 기용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홍명보는 노련하지만 순발력이나 체력이 떨어진다. 또 상대 공격수보다 발도 느리다. 후반에 조커로 투입해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용하면 어떨까 싶다. 홍명보의 센터백 기용에 대해서 펠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내가 지난해 컨페드컵에서 한국선수들에 대해 느낀 한 가지 좋은 점은 그들이 빨리 배운다는 것이다. 그들은 매 게임 빠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프랑스에 0-5패, 멕시코에 2-1승, 호주에 1-0승. 그들은 패싱능력과 집중력, 심지어 슈팅까지도 경기를 할수록 향상되었다. 하지만 난 그들이 홍명보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

    그는 한국팀의 주장이며 많은 국제경험을 갖고 있다. 그는 지난 10년간 월드컵 본선무대에서도 활약했다. 하지만 나는 홍명보가 한국팀의 수비를 지휘하는 선수로서 적당한지에 대해서는 의아해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난 한국대표팀 선수 대부분이 때때로 그에게 너무 많이 의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 모두가 한국팀의 수비문제를 마치 홍명보 혼자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팀은 다른 형태의 수비 시스템을 실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히딩크도 “다양한 루트의 공격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미드필드와 수비라인의 거리를 최대한 줄이는 ‘콤팩트 사커’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홍명보가 그랬던 것처럼 한 선수로 하여금 앞에 있는 둘 또는 세 명의 수비수보다 30야드 뒤로 처진 위치에서 최종 수비를 하게 하는 리베로 시스템은 현대축구와 맞지 않는다. 이런 시스템으로는 창조적인 미드필드 플레이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더 이상 홍명보를 중심으로 하는 리베로 시스템을 쓰지 않겠다는 말이다.

    축구는 결국 어떻게 아군의 공격과 수비의 숫자를 최대한 빨리 늘리는가의 문제다. 만약 선수 11명이 동시에 수비수가 되었다가 순식간에 11명이 동시에 공격수가 된다면 그 팀은 세계 최강이 될 것이다. 이것이 현대축구가 추구하는 토털사커다. 모두가 공격수이고 동시에 수비수이기도 하다. 폭 25∼30m의 좁은 미드필드에서 처절한 백병전을 치른 뒤 스피드와 힘과 기술로 적의 최후방 전선을 무너뜨린 뒤 골문으로 돌진하는 형식이다. 그렇다고 미드필드에서 너무 압박만을 강조해 백병전에만 신경쓰다 보면 거의 모든 선수가 공이 있는 방향으로 쏠려 ‘동네축구’가 된다.

    그러다 보면 일정한 간격이 유지되지 않고 뒤쪽에 빈 공간이 생기게 된다. 한순간에 뚫려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압박을 하면서도 일정한 폭을 유지해야 한다. 플랫 포백, 즉 4명의 수비수가 유기적으로 물막이댐처럼 한몸처럼 움직여야 하고, 4명의 미드필더들도 일차 물막이댐 역할을 한몸처럼 해줘야 한다.

    그래서 축구는 TV로 보면 재미가 떨어진다. TV 카메라는 언제나 ‘공 중심’이다. 사실 재미있는 것은 공을 가지고 있는 선수보다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은 선수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 하는 것이다. 운동장에 가면 한눈에 선수들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상대의 최종 물막이 댐(포백 혹은 스리백)을 무너뜨리기 위해 아군의 공격수들이 일제히 침투하는 루트는 참으로 다양하고 스릴만점이다. 이런 면에서 공격수나 공격형 미드필더들이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는 상대 저지선을 뚫기 위해서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갖춰야 한다.

    축구선수는 한 경기에서 얼마나 뛸까. 한국선수들은 왜 제때 힘을 쓰지 못하고 ‘헛심’을 많이 쓸까. 이것도 ‘생각의 속도’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생각의 속도’를 높이는 데는 ‘경기 경험’과 축구의 일반적인 통계를 염두에 두고 경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 ‘생각의 속도’가 빠르면 아무래도 ‘헛심’을 덜 쓰게 된다.

    1982년 위더스가 영국의 프로축구 선수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축구경기에서 한 선수가 90분간 움직이는 총거리는 1만1600m다. 이중 조깅은 45%로 약 5200m, 걷기가 26%로 약 3000m, 보통 달리기가 13%로 약 1500m, 뒤로 뛰거나 걷기가 8%로 약 920m다. 정작 있는 힘을 다해 달린 것은 6%로 약 700m에 불과했다. 이밖에 옆으로 걷기가 3%인 약 345m.

    한편 1976년 레일리의 연구에 따르면 한 선수가 90분 경기중 5∼6초마다 한번씩 빨리 달리거나 방향전환의 동작을 했으며 이중 에너지 소비가 가장 많은 보통속도 달리기나 전력질주한 거리는 30초마다 15∼20m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선수가 쉬는 경우는 위더스가 ‘90분 경기중 16분 동안 공이 데드볼 상태’인 것으로 조사했고, 레일리는 ‘90분 경기중 11∼120초 간격으로 쉰다’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경기시간 90분중 20∼30%인 18∼27분 정도를 빠른 방향전환이나 비교적 빠른 속도로 달린다. 물론 포지션에 따라 차이가 있다. 보통 4-4-2 전형에서 4명의 수비수는 8∼10㎞, 투톱은 12㎞, 미드필더는 13㎞ 정도를 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15∼20m를 30초마다 전력으로 질주해 그 거리가 약 700m쯤 된다는 것이다.

    15m씩 달렸다면 46회를 젖먹던 힘을 다해 달렸고, 20m씩 달렸다면 35회를 전력질주했다는 말이 된다. 골드컵대회때 한국의 이천수가 15m 거리를 5초 안에 통과하는 체력테스트에서 20분 동안 168회를 반복해 ‘체력왕’이 됐다. 그 뒤는 송종국과 박지성. 나머지 선수들은 10여 분을 견디지 못했다. 그만큼 체력적으로 준비가 안됐다는 얘기다.

    그러니 당연히 부상선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따금 TV에 확대돼 보이는 이천수, 송종국, 박지성의 장딴지 근육은 굵지 않지만 몸집에 비해 매우 잘 발달돼 있다. 바로 여기에서 이들의 빼어난 순간근력이 나온다. 이들의 앞뒤쪽 종아리 근육도 유심히 살펴보라. 다른 선수들과 다르다. 아버지 차범근 감독의 다리를 물려받은 차두리의 허벅지 근육과는 또 다르다. 차두리의 허벅지 근육은 터보엔진같이 폭발적인 드리블을 자랑하는 호나우두의 허벅지와 비슷하다. 힘이 좋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축구선수는 단거리선수와 같다. 마라톤선수의 근육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마라톤 선수들의 근육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로 말라 있다. 그러나 단거리 선수들의 근육은 울퉁불퉁 역도선수들 못지않다. 바로 단거리선수들의 ‘속근(速筋)’과 장거리선수들의 ‘지근(遲筋)’의 차이다. 육식동물인 호랑이, 사자, 표범 등은 울퉁불퉁한 속근이 발달돼 있다. 풀을 찾아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 사슴, 얼룩말 등은 지근이 발달했다. 그래서 아무리 힘좋은 호랑이나 사자도 사슴을 쫓다가 1㎞ 정도가 넘으면 포기한다. 지근이 발달돼 있지 않아 쉽게 지치기 때문이다.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면 속근이 발달해 근육이 순간적으로 큰 힘을 발휘하기 좋은 형태로 변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 오랫동안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지구력은 상대적으로 약해진다. 반면에 조깅 등 유산소트레이닝 훈련을 중점적으로 하면 작고 섬세한 근육들이 발달해 지구력이 좋아진다. 그러나 이 경우 한순간 강력한 힘을 분출하는 데는 불리하다. 결국 스피드와 지구력을 동시에 갖춘다는 것은 인체 구조상 어렵게 돼 있다. 그래서 육상에서도 중거리선수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단거리선수나 마찬가지인 축구선수지만 자기 포지션에 따라 훈련도 조금씩 달라져야 한다. 가령 순발력이 필요한 골키퍼는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속근을 키우는 게 좋다. 가장 많이 뛰어야 하는 미드필더 박지성, 이천수, 송종국 등은 울퉁불퉁한 속근과 섬세한 지근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현재 이들의 장딴지 근육이 차두리의 그것보다 커 보이지 않은 것은 속근과 지근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1984년부터 2년간 잉글랜드, 서독, 이탈리아, 프랑스, 폴란드 등 8개국의 A매치 경기내용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총 148골 중 75%가 골포스트로부터 9.15m 이내에서 이뤄졌다. 이중 공격측의 오른쪽에서 연결된 것이 76%이고, 왼쪽에서 연결된 것은 24%에 불과했다. 또한 148골 중 오른발슛 55%, 왼발슛 33%, 헤딩슛 12%로 나타났다. 게다가 눈에 띄는 것은 경기가 일단 중단되었다가 재개되었을 때의 골 득점이 40∼50%나 된다는 것. 또한 골 득점의 66%가 지상으로부터 66㎝ 이내의 낮은 부분으로 통과했다. 전체 득점의 80%가 골포스트 중간(122㎝) 아래로 통과했고, 단지 4%만이 244㎝ 높이의 골대 183㎝ 위로 통과했다. 약 35%의 골이 골키퍼의 오른쪽으로, 39%가 왼쪽으로 들어갔으며, 26%가 골문의 중앙부근으로 통과했다. 득점할 때까지의 패스는 3회 이하가 90%를 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유럽팀과 경기할 때 주의할 점을 쉽게 추려낼 수 있다. 첫째, 유럽팀들의 득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중장거리 미사일 슛보다는 페널티에어리어 안에서의 짧은 슛이 대부분이다. 둘째, 대부분의 골들은 공격측의 왼쪽보다는 오른쪽에서 연결된 것이다. 그러므로 센터백과 왼쪽백은 그 침투루트를 늘 염두에 둬야 한다. 그리고 왼발보다는 오른발을 잘 쓰는 선수가 많다. 셋째, 골키퍼는 공중볼보다는 골포스트 중간 아래로 오는 오른발슛을 조심하라. 넷째, 경기가 일단 끊겼을 때는 딴생각이나 한눈 팔지 말고 더욱 집중력을 높여라. 다섯째, 상대가 득점할 때까지의 패스는 한두 번에 걸친 스루패스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역대월드컵에서 득점을 누가 많이 했는가를 비교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94미국월드컵에서 미드필더가 득점한 경우는 24.8%(35골)에 불과했다. 그러나 4년 뒤인 98프랑스월드컵에서는 그 비율이 34.5%(59골)로 높아졌다. 대신 스트라이커의 득점비중은 66.7%(94골)에서 54.4%(93골)로 낮아졌다. 한마디로 일차 방어선을 치고 있는 상대의 오프사이드 함정을 피하기 위해 2선에서 침투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말이다. 이것은 한방에 찔러주는 스루패스가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마 2선인 미드필더의 득점은 2002한일월드컵에서 더 많아질 것이다. 현대축구에서 스트라이커는 ‘페인팅 카드’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수비수 입장에서는 상대의 진정한 저격수가 누구인지 그 ‘허허실실 전법’에 늘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축구 경기에서의 득점 경향은 이것과는 다소 다르다. 인천대 김규완(운동역학), 신원태(운동생리학)교수팀은 94미국월드컵-98프랑스월드컵과 95한국아디다스컵프로축구-98후반기 한국 프로축구의 득점유형을 비교한 논문에서 “98프랑스월드컵에서는 개인기(코너킥 프리킥 등 세트플레이, 패스·어시스트, 단독드리블 등)에 의존한 득점이 68%에 이르는 반면 98후반기 한국 프로축구에서는 41%에 불과했다. 이와 반대로 한국 프로경기에서는 스피드와 조직플레이에 의존하는 측면 연결과 상대편 수비실책에 따른 득점이 42.6%로 프랑스월드컵의 21.6%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한국선수들은 예나 지금이나 센터링(크로스)에만 의존한다는 말이다. 그만큼 공격루트가 다양하거나 창조적이지 못하고 으레 발빠른 서정원 등을 이용해 센터링을 올리게 한 뒤 헤딩이나 슈팅으로 공을 넣는 방식이다. 수비하는 입장에서 보면 측면의 센터링만 잘 막으면 한국 공격의 반은 막아내는 셈이다. 오죽하면 “20년 동안 한국팀의 공격전술은 측면돌파 후 센터링뿐”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축구는 단순하지만 자유분방하다? 아니다. 축구는 각기 다른 기술과 생각을 가진 22명이 온갖 변화를 다 일으키는 이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운동이다. 예측불가능하다. 그래서 선수들 스스로가 ‘생각하는 축구’를 하지 않으면 지게 돼 있다. ‘생각하는 축구’란 ‘생각의 속도’가 빠른 축구다. 강압적인 훈련방식과 권위주의적인 조직문화는 선수들의 생각을 위축시킨다. 몸을 굳게 한다.

    한국군대에서 하는 축구를 우스갯소리로 ‘군대스리가’라고 한다. 아마 대한민국 ‘군대스리가’ 축구는 세계에서 가장 억세고 ‘생각이 없는 축구’일 것이다. 물론 ‘군대스리가’의 목적은 강인한 전투력을 배양하는 데 있으므로 그 자체로는 성공이다. 그러나 한국대표팀의 축구는 달라야 한다.

    히딩크와 같이 네덜란드인인 한국유소년대표팀 감독 브람은 “한국유소년들은 자기 앞에 있는 공을 쳐다보기에 바쁘다. 발 앞의 공보다는 주위를 살펴야 하는 것을 모른다. 눈을 들어 주위 동료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얘기를 통해서 서로의 의사를 전달해야만 다음 위치로 이동할 수 있다. 이 점이 축구에서 의사소통이 중요한 이유”라고 말한다. 혼자 차는 공은 축구경기가 아니다. 다른 사람과 생각을 공유해야만 비로소 축구가 될 수 있다.

    마라도나는 말한다.

    “내가 마라도나인 것은 기술이 아니라 주위의 움직임을 늘 손바닥 보듯이 환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누구누구는 어디에 있다고 하는 식으로 목적을 가지고 주위를 보고 있으면 매우 판단하기 쉽다. 주위의 상황을 알 수 있으면 난데없이 나한테 공이 날아와도 곧바로 비어 있는 동료에게 패스할 수 있다. 나같이 집중 밀착마크를 당하는 공격수는 공을 가지고 있기보다는 논스톱 패스를 보내는 것이 훨씬 실용적이다. 관중들은 나의 뒤꿈치 패스나 아웃사이드를 이용한 논스톱 패스에 감탄하지만 늘 주위 상황을 알고 있다면 그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무엇이든 재미가 있어야 상상력이 커진다. 억지로 시키면 ‘기계’가 된다. 축구도 어릴 때부터 재미있게 해야 한다. 무조건 이기기만 하는 축구는 이제 그만둬야 한다. 히딩크는 “열다섯 살 아래 학생들한테는 생리적으로 근력강화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계 어느 나라의 아이들이나 모두 공차기를 좋아한다. 승부에 집착하지 말고 즐겁게 많은 경기를 하도록 하는 것이 나중에 큰 도움이 된다. 알통을 키우기보다는 전술훈련을 통해 머리를 쓰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이들을 때릴 경우 지나치게 위축되거나 한 가지에 집착하게 돼 균형감을 잃고 창의성이 없어진다”며 한국의 유소년지도자들에게 제발 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러시아 니폼니시 감독 수제자를 자처하는 전북 현대의 조윤환 감독은 “억지를 써서 1-0으로 이기기보다 0-1로 지더라도 재미있는 경기를 하는 게 낫다. 난 감독 앞에서 무조건 기는 한국선수들의 경직된 축구문화가 가장 싫다. 초등학교 때부터 몽둥이 들고 설치는 감독 밑에서 자란 선수들이니까 감독이 오죽 무서울까. 감독들도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선수를 가둬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선수들이 좀더 자유롭게 훈련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축구팬은 “난 한국선수들의 경기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것이 있다. 게임 중간에 경기장 밖을 자주 쳐다보는 것이다. 특히 경기에 지고 있을 때 더 그렇다. 경기에 열중하기보다는 경기가 끝난 후 듣게 될 비난에 신경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기본적으로 자율적이지 못한 우리의 축구문화에 원인이 있다”고 개탄했다.

    축구는 노동이 아니다. 축구는 재미있는 ‘상상력 게임’이다. ‘생각의 스포츠’다. 누가 ‘생각의 속도’가 더 빠르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근육의 힘’은 그 다음의 문제다. 한국축구는 빠르다. 그 속도로 수십년 동안 ‘아시아의 호랑이’로 군림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아시아권에서만 그렇다. 이제 그 추억과 한국축구가 쌓아올린 ‘수십년의 영광’은 추억일 뿐이다. 추억은 늘 아름답다. 추억은 늘 ‘황소의 되새김질처럼 느릿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제 그 추억과 헤어져야 할 때가 왔다. 슈∼웃 골인. ‘군대스리가’는 가라.

    1994년과 1998년 월드컵에 연속으로 출전해 미국축구의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는 랄라스는 한술 더 뜬다.

    “한국축구는 빠르지만 생각이 없다. 즉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다.”

    1월31일 한국과 코스타리카의 경기를 본 미국기자 리지 마호니도 “코스타리카는 지능적인 팀이다. 개인기가 뛰어나고 경기의 완급을 조절할 줄 안다. 미드필드에서 순간적으로 침투하고 찬스를 살릴 능력이 있다. 이에 비해 한국선수들은 차고 달리고 점프하면서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열심히 뛰기만 했지 실속이 없었다. 한국과 코스타리카 선수들의 차이점은 ‘생각하는 축구’를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였다”고 지적했다.

    월드컵 본선무대를 밟는 팀들은 전술이 수시로 변한다. 선수들도 평소 즐겨 쓰던 침투 경로나 특유의 몸짓 페인팅과 전혀 다르게 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생각’이 필요하다. 축구에선 경기중 작전타임이 없다. 그러니 벤치에 앉아 고함이나 신호로 감독이 작전지시를 하는 데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결국 경기를 하고 있는 선수들이 스스로 깨닫는 수밖에 없다. 빨리 상대의 수를 읽고 거기에 맞춰 ‘생각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히딩크는 단언한다.

    “세계 선진축구는 많은 것들을 바꾸고 또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 그것을 한마디로 확실하게 정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것 하나는 ‘속도’라는 것이다. 가령 세계 3강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아르헨티나, 잉글랜드가 기량 전술 체력 등이 동일하다면 그 승부처는 역시 ‘속도’다. 지금 유럽팀들의 경기를 보면 90분 내내 숨쉴 틈도 없이 경기가 진행된다. 빠른 것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러므로 현대축구에서는 11명 모두가 뛰고 또 뛰어야 한다. 경기장의 어느 위치에서든 우리편 숫자가 상대편 숫자보다 많으려면 그만큼 선수들이 많이 그리고 빨리 뛰어다녀야 한다. 더구나 이제 축구는 전세계적인 비즈니스가 됐다. 관중들에게 더욱 빠르고 더욱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관중들이 몰려든다. 느려터진 축구, 맥빠진 축구를 누가 보러 오겠는가? 빠르다는 것,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뭔가 플레이가 벌어진다는 것 자체가 축구의 매력이고 관중을 동원하는 힘이다.”

    여기서 히딩크가 말하는 스피드는 물론 100m 기록이 아니다. 드리블스피드와 순간스피드가 빨라야 된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고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공의 패스 속도가 낮고 강하고 빨라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2초 이상의 체공시간이 긴 코너킥은 퇴출돼야 한다. 그리고 그 패스가 끊기지 않아야 하며 예측불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유럽축구경기는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빠르다. 선수들도 빠르고 공도 빠르다. 썰물과 밀물이 수시로 번갈아 이뤄진다.

    한국선수들도 언뜻 보면 굉장히 빠르다. 그러나 공은 느리다. 더구나 패스가 쉽게 끊긴다. 사람이 아무리 빨라도 공보다 빠를 수는 없다. 히딩크가 온 이후 한국축구도 이런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팀과 비교하면 아직 멀었다. 사람의 빠르기는 그들과 비슷할지 모르지만 패스하는 ‘공의 속도’는 느리기 짝이 없다. 패스가 길고 그 경로를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단조롭다.

    일본에서 해설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재일동포 이국수씨는 “한국팀은 ‘생각의 속도’가 없다. 축구를 발로만 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한국축구는 빠르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지난해 컨페드컵 프랑스전을 보면 전혀 빠르지 않다. 공을 잡을 때나 잡기 전이나 선수는 항상 생각해야 한다. 한국선수들을 일본에서 직접 지도해 봤지만 기본적으로는 일본선수들보다 훨씬 뛰어난 점이 많다. 이젠 유소년선수 때부터 축구선수들을 골 넣는 기능인이 아니라 교양과 품위 그리고 생각의 능력을 함께 지닌 사람으로 키워야 한국축구가 발전할 것”이라고 말한다.

    차범근 전월드컵대표팀 감독도 지적한다.

    “한국선수들의 기술은 매우 정적으로 훈련돼 있다. 상대를 제치고 페인팅을 하고 드리블을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수준 높은 축구에서는 속도가 없이는 개인기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없다. 공을 향해 두세 명 혹은 서너 명씩 빠르게 압박해오는 상황에서 공을 가진 선수가 개인기를 부린다면 부상밖에 돌아오는 것이 없다. 실제로 원터치 투터치 이상 공을 소유할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빠른 상황에서의 정확성이 더욱 중요하다. 거기다 한국에서 개인기가 좋다는 선수들의 가장 큰 단점은 수비임무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류선수들은 공을 죽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공은 ‘죽은 돌멩이’가 아니고 생물이다. 그래서 잘하는 선수들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공이 펄펄 살아 구르도록’ 놔둔다. 그리고 원터치 투터치로 툭툭 ‘공의 길’만 마음먹은 대로 바꿔준다. 한국선수들은 차감독 말마따나 본능적으로 ‘정적’이다. 가만히 서서 받은 뒤 또 가만히 서 있는 동료에게 패스한다. 그리고 대부분 공을 일단 죽인다. 그리고 나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패스한다. 그런 경우 십중팔구 상대에게 공을 뺏긴다. 공을 죽여놓고 풀어가느냐, 아니면 살려놓고 플레이하느냐는 속도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공을 생물처럼 다루려면 그만큼 ‘생각의 속도’가 빨라야 한다.

    ‘생각의 속도’에 대해 마라도나가 재미있는 지적을 했다. 마라도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유럽축구는 사람이 공을 지배하고 있는데 반해 남미축구는 사람과 공이 대등하다. 유럽축구에서 게임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고, 공은 그 게임의 도구일 뿐이다. 그러나 남미축구에서는 이기기 위한 전략은 있어도 플레이 스타일에는 제한이 없다. 공을 어떻게 다루든 그것은 선수 마음대로이며 득점만 올리면 무엇을 어떻게 하든 상관없다. 유럽축구에서 게임은 공을 자기 발 밑에 놓았을 때부터 시작된다. 여러가지 플레이는 자기가 공을 컨트롤할 수 있을 때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선수들은 공을 가장 다루기 쉬운 자신의 발 밑에 가지고 있으려고 한다.

    그러나 남미에서 게임의 흐름은 공을 ‘키핑’하고 있는 선수의 형편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공을 둘러싸고 움직이는 전체로써 형성된다. 그러므로 공이 떠 있든 발 밑에 있든 패스할 때 패스해야 하며 슛을 때릴 때는 반드시 슛을 때려야만 한다.”

    물론 요즘엔 유럽선수들도 마라도나의 말처럼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만큼 유럽과 남미의 축구 스타일은 점점 더 닮은 꼴이 돼가고 있다. 마라도나가 뛰던 1980년대와 비교할 때 현대축구는 그만큼 ‘생각의 속도’에서 빨라졌다.

    선진축구를 온몸으로 경험한 한국선수들의 생각은 어떨까.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 활약하고 있는 안정환(AC페루지아)의 말을 들어보자.

    “이탈리아 세리에A 경기는 우선 엄청나게 빠르다. 쉬는 선수가 하나도 없다. 볼이 살아 움직이면서 물결처럼 움직이는 경기 흐름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몸싸움을 하지 않고 수비에 가담하지 않으면 선수로 취급하지 않는다. 항상 준비된 상태(생각을 미리 하고 있어야)에서 미리 방향전환을 하거나 움직이지 않으면 볼이 안 온다. 상대 수비수를 제친 것 같았는데 어느새 발이 내 앞에 와 있고 패스가 제대로 됐다 싶은데 상대에게 걸릴 때가 많다. 개인기가 뛰어난 선수도 웬만해선 치고 들어갈 수가 없다. 그래서 개인기보다는 조직력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적절한 파울로 상대의 공격흐름을 끊는 것도 기술이다.

    연습경기 한 게임이 한국에서 프로 3경기를 뛴 것 같았다. 한 경기에 몸무게가 3∼4㎏ 이상 빠졌다. 이탈리아에선 선수가 최고다. 그만큼 책임도 크다. 한국에서는 감독이 시키는 대로만 했는데…. 한국선수들은 감독을 비롯해 주위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는데 그래서는 발전이 없다. 한국축구는 템포가 느리고 유기적인 플레이에 문제가 있다. 체력도 더 길러야 하고 특히 생각하는 플레이를 해야 한다.”

    이탈리아의 한 축구기자도 “안정환은 이탈리아 축구에 더 적응해야 한다. 테크닉은 갖추었으나 이탈리아식의 밀고 당기는 스타일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일본의 나카타도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엄청나게 빠른 이탈리아 축구에 적응하고 완전한 공격형 미드필더가 되기 위해서는 팀전술을 제대로 익혀 호흡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생각의 속도’가 느리다는 뜻이다. 독일 브레멘에서 잠시 뛴 적이 있는 이동국은 “벤치에 앉아서 볼 때는 분데스리가 실력이 저 정도밖에 안되나 싶었다. 그러나 막상 함께 뛰어보니 보통 때는 느리지만 볼을 가지고 있을 때는 훨씬 빠르다는 것을 느꼈다. 웬만해서는 파울도 잘 불지 않고 실전처럼 훈련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체력이나 기술에서 그들에게 별로 뒤질 것 없는 이동국도 ‘움직임’ 즉 공간창조 부족이라는 결정적 약점으로 인해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동국이 벤치에서 볼 때 독일축구가 느리다고 느낀 것은 공이 움직일 때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지 못한 탓이다.

    한국프로축구 K리그에서 뛰는 용병들의 눈도 매섭다. 울산현대의 브라질 용병 파울링뇨는 “브라질축구는 터치를 많이 하는(쇼트패스와 드리블) 스타일이다. 한국은 많이 뛰고 체력 위주의 경기를 한다. 또 때때로 몹시 거칠기도 하다. 한국축구는 지금보다 더욱 경제적(꼭 필요할 때만 뛰고 쓸데없는 움직임을 줄여 ‘생각의 속도’를 활용하는)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와 월드컵예선에서 맞붙을 폴란드 대표선수들의 생각도 대체로 비슷하다. 한국프로팀과 경기를 가진 적이 있다는 폴란드대표 공격수 봉크는 “한국팀은 빠르고 조직력이 좋지만 우리와 경기를 가진 프로팀 선수들은 하루종일 말도 하지 않고 오직 뛰기만 했다. 성실한 훈련자세는 좋지만 선수간의 대화부족은 팀워크를 키우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폴란드의 최전방 공격수 올리사데베도 “녹화테이프를 통해 한국팀의 경기를 여러 차례 보았는데 선수들이 너무 많이 뛰더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한마디로 한국선수들은 창조성, 즉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생각의 속도’에서 자기들보다 한수 아래라는 얘기다.

    그래서 히딩크는 한국프로축구를 ‘슬로 사커’이자 ‘워킹게임’이라고 부른다. 한국의 K리그 수준이 이탈리아 스페인 잉글랜드 독일 프랑스 등 유럽 빅리그와는 어림도 없고 그 한 단계 아래인 네덜란드 벨기에 오스트리아 등의 마이너리그와 그 아래 단계의 중간쯤으로 본다. 그만큼 ‘속도’에서 차이가 난다. 공과 사람이 빠르고 경기의 속도도 엄청나다. 경기의 흐름을 빠르게 하려면 불필요한 횡패스를 줄이고 종패스와 스루패스를 늘려야 한다. 물론 이렇게 되면 선수들의 체력소모는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대축구는 토털사커다. 토털축구의 기본은 체력이다. 체력이 안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히딩크 감독도 당연히 빠른 종패스(Vertical)를 요구한다. 그리고 모든 선수들이 빠르게 움직여 공간을 만들 것을 주문한다. 그러나 한국팀은 이게 잘 안 된다. 횡패스와 백패스가 많다. 다른 선수들이 움직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공간은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 자기편이 공을 잡는 순간 선수들이 모두 움직여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가만히 서 있는 선수가 하나라도 있으면 안된다. 그렇다고 무조건 뛰기만 해서도 안된다. 생각하면서 뛰어야 한다.

    축구경기에서의 빠르기란 머리로 생각한 것을 얼마나 빨리 발로 옮기냐는 것이다. 공간을 만드는 것은 곧 창조다. 이것은 팀원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감독이 주입해서 될 일이 아니다. 히딩크는 선수가 죽어라 뛰어도 아무 생각 없이 뛰면 가차없이 ‘게으르다(Lazy)’고 질책한다. 생각을 안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생각의 속도’가 빠르다고 그 팀의 경기속도가 빠른 것은 아니다. 공을 다루는 기본기가 충실해야 ‘빠른 생각’을 ‘발’과 ‘공’에 연결할 수 있다.

    마라도나의 키는 164㎝에 불과하다. 100m 기록도 12초대로 축구선수로서는 보통수준이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말대로 열에 아홉은 공을 왼발로 차는 왼발잡이다. 그런데도 그는 양발을 자유자재로 쓰는 ‘축구황제’ 펠레와 나란히 ‘축구천재’로 꼽힌다. 자기보다 머리 두개 정도 더 큰 선수들 사이를 유유히 헤엄쳐 나간다.

    마라도나는 말한다.

    “키 작은 게 왜 문제가 되는가. 키가 작으면 중심이 낮아 태클에 걸려 균형을 잃더라도 곧 일어나서 드리블을 계속할 수 있다. 또한 100m 달리기라면 모를까, 20∼30m를 지그재그로 달리는 데는 보폭이 작은 내가 보폭이 큰 키 큰 선수들보다 훨씬 유리하다. 장신들과 몸싸움할 때도 무게중심이 낮은 내가 상대방의 몸을 뜨게 할 수 있어 그들에게 질 이유가 없다. 더구나 난 점프력이 70㎝ 정도 되므로 키가 180㎝에 점프력이 50㎝인 선수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상대 골문 앞에서 헤딩할 때도 순발력이 좋은 내가 그들보다 먼저 날아오는 공에 대해 좋은 위치로 달려들어갈 수 있다.”

    잉글랜드의 원더보이 마이클 오언도 “난 작은 키(174㎝)를 결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난 어릴 때 작은 키로 인해 수없이 부딪치고 넘어졌지만 그로 인해 강한 태클에도 견딜 수 있게 단련됐다. 작지만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어린 선수는 성장해 감에 따라 키가 커지고 힘도 세어지지만 어렸을 때부터 키가 크고 힘이 좋았던 선수들은 성장함에 따라 기술이 떨어진다. 난 100m 이상의 장거리에는 별로 자신이 없다. 그러나 30∼50m 달리기에서는 다른 어떤 선수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마라도나는 공을 쉽게 찬다. 다리의 백스윙 없이 발목의 스냅으로만 상대 뒤로 들어가는 스루패스를 천연덕스럽게 잘도 해낸다. 어떤 때는 그 발목 스냅만으로 슛을 때리는 경우도 있다. 한국선수들이 다리를 한껏 뒤로 제쳤다가 하는 슈팅과 비교해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만큼 마라도나의 슛은 상대 수비수들에게 시간을 주지 않는다. 더군다나 정확하기까지 하다. 한국선수들은 단순히 어릴 때부터 단련된 근육의 힘으로 ‘아주 세게’라는 생각을 가지고 슛을 한다. 엄청난 ‘홈런슈팅’이 되거나 뒤땅을 차 힘없이 굴러가는 공이 되는 게 당연하다. 어쩌다 잘 맞은 슈팅도 다리의 백스윙 동작이 커서 그동안에 이미 달려온 상대 수비수에 걸린다. 슈팅타임도 너무 늦다.

    마라도나의 드리블을 보면 한국선수들의 약점을 알 수 있다. 마라도나는 결코 발이 빠르지 않다. 그러나 드리블을 할 때는 정말 빠르다. 그것은 그가 ‘속도’를 너무나 잘 이용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마라도나는 드리블할 때 빠른 속도로 달리지 않는다. 그는 공과 함께 천천히, 그러나 속도에 수시로 변화를 주면서 드리블한다. 마치 미국 프로야구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투수 그레그 매덕스가 시속 140㎞ 정도의 공을 가지고 20승 이상을 올리는 ‘체인지 업’을 보는 것 같다. 거의 멈춰있는 상태에서 돌연 속도를 올리거나 최고 스피드로 가다가 갑자기 멈춰 수비수가 따라 멈추도록 만든 뒤 질풍같이 그 사이를 빠져나가는 식이다. 마라도나는 그 현란한 ‘체인지 업’으로 수비수를 곧잘 골탕 먹인다. 그뿐인가. 마라도나는 상대 수비수의 몸과 늘 반대방향으로 움직인다. 이것은 거의 본능적이다. 끊임없이 지그재그로 움직이면서 몸의 중심을 자유자재로 바꾼다. 오른쪽 어깨를 열어 상대 수비수의 중심이 그쪽으로 쏠리도록 한 뒤 왼쪽으로 치고 나간다. 상대의 중심을 뺏는 데는 정말 천재적이다.

    오죽하면 차범근 감독도 “마라도나의 플레이는 기술이나 묘기라기보다는 차라리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재롱같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 결승전 서독과 아르헨티나의 경기에서 서독은 마라도나를 당시 바이에른 뮌헨에서 플레이메이커로 뛰던 마트이스에게 맡겼다. 사실 마트이스는 90분 동안 한 선수를 쫓아다니기엔 너무 아까운 선수다. 그는 화려하게 돌파하고 골도 넣을 수 있는 기술과 슈팅력이 있으며 서독대표팀에서 코너킥과 프리킥을 도맡아 찬 선수다.

    그러나 이날 마트이스는 마라도나의 그림자였지 선수가 아니었다. 프리킥도 코너킥도 그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오직 마라도나 옆에만 붙어다녔다. 그럼에도 마라도나는 왼발로 볼을 받아 돌면서 오른발로 뛰어들어가던 동료의 발 앞에 정확히 공을 찔러줬다. 난 이걸 보면서 같은 선수로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을까.

    그럼 한국선수들은 어떨까. 굳이 드리블이랄 것도 없다. 이영표의 드리블이 으뜸이라고 하지만 양쪽 어깨가 다 열려 있는 경우가 많다. 드리블은 ‘몸의 중심뺏기 싸움’인데도 어지러운 발놀림으로 상대를 속이기 위한 페인팅에 치중한다. 드리블할 때 대부분의 한국선수들은 몸의 중심이 앞에 쏠려 있다. 그것은 드리블이 직선적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스피드를 이용해 상대를 제치고 나가려니 자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지그재그로 드리블하다가는 대부분 넘어지기 일쑤다.

    마라도나는 왜 힘을 하나도 안들이고 쉽게 공을 차는 것처럼 보일까. 그것은 공을 정확히 자신의 발목 부근의 중심(Sweet Spot)에 맞추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테니스나 배드민턴을 칠 때 라켓을 가볍게 공이나 셔틀콕에 대기만 했는데도 공이 정확하고 강하게 날아가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테니스 공이나 셔틀콕이 라켓의 ‘스위트 스폿’에 맞았기 때문이다. 어떤 구기운동이든지 공이 몸이나 라켓의 중심에 맞으면 힘이 하나도 안든다. 그러면서 공은 빠르고 정확하게 날아간다.

    축구선수의 스위트 스폿(어릴 때 공차는 습관에 따라 조금씩 다르고 패스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은 대부분 스파이크 끈을 맨 곳에서 약간 위쪽인 발목 부근이다. 마라도나는 거의 대부분의 공을 바로 왼발의 이 부분, 발목스냅을 이용해 툭툭 찬다.

    한국선수들은 어떨까. 왜 ‘똥볼 슈팅’이 많을까. 왜 스위트 스폿에 잘 맞추지 못할까. 패스를 정확히 받았으면 한번에 슈팅할 수 있는 데도 왜 그러지 못해 ‘슈팅타임’을 잃어버리고 말까. 국내신문에 축구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는 아일랜드인 스위니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실제 축구경기에서 한 선수가 몇 번이나 100m를 달릴까. 선수들은 한경기에서 단지 몇m를 수시로 뛸 뿐이다. 만약 어떤 선수의 예측력이 좋다면 그는 이런 달리기에서 늘 이길 것이다. 축구경기장의 스피드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이다. 이탈리아나 스페인 프로리그 선수들은 공을 받을 때 가장 먼저 정확한 위치를 잡는다. 그들은 처음 공을 받을 때 아주 정확하게 공을 다룬다. 그런 상황에선 상대가 태클을 할 수 없다. 만약 처음 공을 받을 때 그 공이 발에서 조금만 떨어졌다면 당장 태클을 당할 것이다.

    시드니올림픽에서 한국이 0-3으로 패한 스페인전을 보자. 스페인선수들은 빠르고 정확한 패스를 하면서 매우 느리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국선수들은 공을 다루는 면에서 분명히 한수 아래였다. 물론 두 팀 선수들을 트랙으로 데려가 100m 달리기 경주를 한다면 차이가 거의 없을 것이다. 예측력과 기술은 어렸을 때 배워야 하는 기술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유소년축구 선수들이 공 다루는 연습을 많이 하고 달리기 연습을 줄여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선수들은 공을 스위트 스폿에 맞추지 못해 빨리 패스해야 할 상황에서 우물대느라 그 기회를 잃고 있다. 한국선수들은 결정적인 슈팅기회나 패싱타임 때 허둥대다 그 기회를 잃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경험 부족 탓도 있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공을 정확히 다루지 못해서 일어난 경우가 더 많다. 기본기가 부족해 어쩌다 ‘생각의 속도’가 빠르더라도 그 빠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건국대에서 황선홍, 유상철, 이영표를 키운 정종덕 감독은 “이번 월드컵에 참가하는 팀 중 기본기가 100점 만점인 팀은 프랑스 브라질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정도이다. 아마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40점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바로 여기에 한국이 유럽팀에 맥을 못추는 이유가 있다. 고종수의 예를 들어보자. 고종수는 지난해 컨페드컵에서 프랑스나 멕시코처럼 빠른 패싱게임을 하는 팀을 상대로 지나치게 볼을 끌다가 공을 자주 빼앗겼다. 한국팀의 수비형 미드필더나 플레이메이커로 종종 나서는 박지성도 공을 끄는 습관 때문에 상대에게 곧잘 공을 빼앗긴다. 공을 끈다는 것은 ‘생각의 속도’가 느리거나 ‘기본기·체력 부족’에서 비롯된다. 한국팀의 문제는 바로 이 ‘생각의 속도’와 ‘기본기 부족’인 것이다.

    이것은 세계 1위인 프랑스선수들과 비교해보면 금방 드러난다. 프랑스의 중앙수비수 드사이나 사이드백 사뇰 리자라쥐 등은 공격에 가담했다가도 볼이 차단되면 즉각 수비라인으로 돌아와 위기에 대비한다. 이것은 엄청난 체력과 생각의 속도를 필요로 한다.

    홍명보를 보자. 그는 공격지원이나 수비조율(생각의 속도)에서는 매우 높은 수준에 올라있는 선수이지만 체력에서 훨씬 우위에 있는 프랑스의 공격수 아넬카를 만나자 위험지역에서 반칙을 범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팀이 기본기-체력- 생각의 속도가 뛰어난 체코나 프랑스에 왜 0-5로 졌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럼 축구 포지션 중 어느 자리가 가장 ‘생각의 속도’가 빨라야 될까. 그것은 바로 축구 포메이션에서 ‘백두대간’이라 할 수 있는 ‘센터라인’이다. 센터라인은 한마디로 우리 몸의 ‘등뼈’라고 할 수 있다. 각부문의 ‘포지션 리더’, 즉 지휘자이기도 하다. 골문을 지키는 골키퍼-수비를 총 지휘하는 센터백, 수비와 공격을 연결하는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의 시발점인 공격형 미드필더, 최전방 센터포워드가 바로 이들이다. 이들은 우선 체격이 좌우 날개들보다 일반적으로 크다. 그리고 체력과 기본기가 좋을 뿐만 아니라 노련하고 ‘생각의 속도’가 빠르다. 수비형 미드필더나 센터백, 골키퍼는 A매치 경험이 상대적으로 많고 대체로 노장이다.

    프랑스의 센터라인을 보면 왜 프랑스가 세계최강인지 금방 고개가 끄덕여진다. 바르테즈(GK)-드사이(센터백)-비에이라(수비형 미드필더)-지단(공격형 미드필더)-앙리 혹은 트레제게(센터포워드)로 이어지는 프랑스의 ‘등뼈’는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하다. 우선 키와 몸무게부터 보자. 골키퍼 바르테즈 183㎝ 76㎏, 센터백 드사이 185㎝ 85㎏-수비형 미드필더 비에이라 191㎝ 81㎏-공격형 미드필더 지단 185㎝ 78㎏-센터포워드 앙리 188㎝ 83㎏. 평균 신장 186.4㎝에 몸무게 84.6㎏.

    프랑스월드컵 우승의 주역 골키퍼 바르테즈는 말할 것 없고 ‘우람한 바위’로 불리는 센터백 드사이는 아무리 다급해도 공을 무작정 걷어내는 법이 없다. 곧바로 공격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공을 처리한다. 상대의 거센 공격을 막아내는 ‘4명의 물막이댐’ 한가운데에서 수비진을 지휘하며 ‘저승사자’처럼 눈을 부릅뜨고 서 있다. 대인방어 능력, 고공 장악력, 과감한 태클, 정확한 위치선정 등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다.

    98프랑스월드컵 결승전을 앞두고 드사이는 “호나우두가 전방에서 볼을 가지고 돌아서는 것만 저지한다면 파울 없이도 그를 막을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센터백은 수비의 핵이다. 그가 무너지면 댐의 중앙이 터진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왼쪽 백(리자라쥐 169㎝)이나 오른쪽 백(튀랑 185㎝)도 중요하지만 센터백만큼은 아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비에이라는 어떤가. 수비형 미드필더는 4명의 허리진 중 가장 아래에 위치해 1차로 상대 공격수 침투를 강한 몸싸움으로 끊어야 한다. 또한 좌우 백이 뚫렸을 때 재빠르게 커버플레이에 나서야 한다. 수비형 미드필더는 앵커(Anchor)맨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만큼 상대의 공격을 ‘닻을 내리듯이’ 끊어주고 또한 공격의 시작도 그가 ‘닻을 올리면서’ 시작된다. 앵커맨은 원래 육상 400m 릴레이 최종주자를 말한다. 릴레이에서 최종주자는 한마디로 ‘해결사’다. 한국은 박지성이나 이영표, 김남일이 이 자리에 곧잘 기용된다. 비에이라는 이런 면에서 거의 완벽하다. 그는 이런 기본적인 것 외에 공을 잡아 플레이메이커인 지단이나 최전방 앙리에게 정확하게 연결한다. 또 때로는 직접 강력한 슈팅까지 날린다. 비에이라가 중장거리 슛을 날릴 때는 마치 농구에서 포인트가드가 골 밑에 있는 동료에게 패스할 것처럼 하다가 그냥 질풍같이 자신이 골 밑으로 대시해 드라이브인 슛을 하는 것과 같다. 비에이라는 코너킥 때 장신(191㎝)을 이용한 헤딩으로 종종 골도 잡아낸다.

    플레이메이커 지단은 더 이상 말할 필요조차 없다. 현란한 개인기와 넓은 시야, 폭발적인 슈팅 등 거의 완벽하다. 상대 수비는 자로 잰 듯한 정확한 지단의 스루패스 때문에 섣불리 다른 공격수를 떼어놓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강력한 중거리 슈팅력을 가지고 있는 지단에게 공간을 내줄 수도 없다. 또한 최전방 센터포워드 앙리는 프랑스팀의 꽃이다. 실수가 거의 없다. 이들이 모여 프랑스 축구는 ‘아트사커’가 된다.

    한국팀의 ‘백두대간’은 어느 정도일까. 골드컵에서 미국과 대결했을 때의 포메이션을 기준으로 살펴보자. 골키퍼 이운재(182㎝)-센터백 유상철(184㎝)-수비형 미드필더 송종국(175㎝)-플레이메이커 이천수(168㎝)-센터포워드 최용수(184㎝). 평균키 178.6㎝로 프랑스보다 높이에서 7.8㎝나 낮다. 게다가 한국엔 마땅한 플레이메이커가 없으며 단번에 끝내줄 수 있는 골잡이도 없다.

    우리와 월드컵에서 맞붙을 폴란드의 센터라인은 무시무시하다. 골키퍼 두데크(186㎝)-센터백 하이토(189㎝)-수비형 미드필더 체프스키(182㎝)-플레이메이커 크라우즈니(198㎝)-센터포워드 올리사데베(180㎝). 평균키가 187㎝로 한국보다 8.4㎝나 클 뿐더러 수비를 지휘하는 센터백 하이토와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하는 크라우즈니는 장신에다 발재간도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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