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에 대한 ‘집단 학살극’인가. 아니면 ‘부패와의 전쟁’인가. 조종사 출신 공군 장교들의 반란, 양심선언과 연이은 연행, 구속으로 얼룩진 3월12일은 참으로 숨가쁜 하루였다. 그에 앞서 국군 기무사령부는 3월9일 공군시험평가단 부단장을 역임한 조주형 대령을 군사기밀 누설과 프랑스 닷소사의 한국 에이전트 관계자로부터 여섯 차례에 걸쳐 1100만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했다.
3월12일 오전 10시. 참여연대는 구속되기 직전 조대령의 육성 양심선언 녹음테이프를 공개하면서 차기전투기사업(F-X)과 관련해 국방부 고위층의 미국 전투기(F-15K) 밀어주기 및 외압의혹을 본격 제기했다. 이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같은 날 오후에는 조대령의 후임인 공군평가단 김아무개 대령이 기밀누설 혐의로 기무사에 의해 연행되고 닷소사 에이전트의 김아무개 고문이 같은 혐의로 소환되는 등 공군과 닷소 에이전트에 대한 수사는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외압’인지 ‘뇌물’인지는 논쟁중이다. 조대령 변호인단과 기무사 간에는 이 문제를 두고 한동안 지루한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는 이 사건의 본질이 외압에 의한 불공정한 기종선정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기무사와 국방부는 불법로비와 관련된 뇌물사건으로 몰고 가며 공군과 유럽회사를 압박하고 있다. 특히 조대령이 외압의 당사자로 지목한 조영길 전 합참의장과 최동진 국방부 획득실장은 “조대령의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국방부 대변인을 통해 주장했다. 기무사는 뇌물, 기밀누설 등 공군 관계자들의 개인적 약점을 찾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는 듯싶다. 하지만 조대령이 제기한 외압의혹을 수사한다는 얘기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첫날, 조대령의 비망록과 일기장, 개인 컴퓨터를 기무사가 전격 압수하면서 이 사건의 진실이 파묻힐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더욱이 뇌물 부분이 불거지면서 기무사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 형국이다. 이를 의식한 듯 조대령 변호인단은 조대령의 육성 녹음테이프에 담긴 내용 중 일부만 공개했다. 상황을 봐가며 추가 폭로하겠다는 방침이다.
수사와 관련해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기무사가 조대령 주변을 오랫동안 내사해왔다는 점이다. 상당 기간 조대령과 주변사람들의 통화를 감청한 기록이 수사의 근간이 됐다. F-X사업이 시작된 이래 공군의 핵심 실무자들에 대한 기관의 상시적 감시 및 내사가 꽤 오랫동안 진행돼 왔으리라는 심증을 굳혀주는 대목이다.
이런 의혹의 소용돌이 속에 3월12일 저녁, 필자가 출연한 한 방송사 시사토론 프로에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공군 조종사들의 전화가 쇄도했다. 기무사 수사 탓에 전투기 기종결정이 왜곡될지 모른다는 공군 조종사들의 위기의식이 어느새 집단화, 세력화된 것이다. 이들은 군 내부에서 정상적인 절차로는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12년 전 한국형전투기사업(KFP사업) 당시와 유사하게 공군과 국방부의 정면 충돌이 예견되는 징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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