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진 1억원 수수설, 불거진 검찰 암투설
- 1800만원, 떡값이냐 뇌물이냐
- 차기 검찰총장 관련 힘겨루기?
- 수사검사와의 악연
- 신광옥 옥중토로 “신승남이 피해의식에서 나를 죽였다”
“금융감독원이 한스종금에 대한 검사를 마친 뒤 검찰에 고발하기 직전 당시 신수석을 만나 금감원과 검찰에 선처를 요청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골프가방에 든 현금 1억원을 전달했다.”
이 기사는 현 정부에서 대검중수부장, 청와대 민정수석을 거쳐 법무부차관에 이른 ‘검찰 실세’ 신광옥씨를 한순간에 낙마시키는 신호탄이자 결정타였다. 검찰로부터 혐의사실을 확인한 듯한 인상을 풍긴 이 기사는 매우 단호한 어조로 신씨의 사법처리 방침까지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신씨는 관련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진승현에게 단 한푼이라도 받았다면 할복자살하겠다”고 버텼다. 그러나 중앙일보를 비롯한 언론의 집중포화 앞에 그의 ‘결백 주장’은 공허하기만 했다. 여론의 압력에 굴복한 그는 결국 지난해 12월14일 사표를 냈다.
그가 검찰(서울지검 특수1부)에 출두한 것은 12월19일. 그로부터 3일 후인 12월22일, 그는 구속됐다. 구속사유는 수뢰혐의. 그런데 그가 받았다는 뇌물액수는 1억원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돈을 건넨 사람도 바뀌었다. 진씨가 아니라, 민주당 당료 출신으로 진씨 회사의 고문 노릇을 했다는 최택곤씨였다.
검찰에 따르면 신씨는 최씨로부터 진씨 구명 로비와 관련해 2000년 3월∼10월까지 300만원씩 6차례에 걸쳐 모두 1800만원을 받았다. 중앙일보의 특종이 변질되는 순간이자 신씨 구속과정에 대한 의혹이 싹트는 순간이었다.
서울지검 특수1부는 지난해 12월30일 신씨를 특가법상 뇌물 및 알선수뢰 혐의로 기소했다. 수사팀은 보강조사를 통해 몇 가지 혐의를 추가시켰다. 첫째, 최택곤씨로부터 받은 돈이 300만원 더 늘었다. 하지만 이는 진승현씨와는 상관없는 돈이었다. 최씨가 자신의 친척인 예금보험공사 간부의 인사청탁 대가로 건넨 돈이라는 것. 둘째, 건축업자 구아무개씨로부터 해양수산부 국장급의 인사청탁을 받고 500만원을 받은 혐의가 추가됐다.
이렇게 해서 신씨가 받은 뇌물액수는 2600만원으로 늘었다. 그러나 진승현씨와 관련된 뇌물액수는 1800만원에서 더 늘지 않았다. 신씨 변호인단은 중앙일보 보도와 관련해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한편 명예훼손혐의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소송도 냈다.
해가 바뀌어 1월21일, 신씨의 혐의를 가장 먼저 보도한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들은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언론재단이 주는 ‘이 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다음날 서울지방법원에서 신씨에 대한 첫 재판이 열렸다. 법정에 선 신씨는 최씨로부터 한푼도 받지 않았다며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다만 건축업자 구씨로부터 500만원을 받은 사실은 시인했다. 휴가비였다는 것이다.
지난 3월5일 재판부는 신씨에게 징역 1년6월에 추징금 26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대부분 인정했다. 판결문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다음과 같다.
“…피고인이 수수한 금원이 이 사건 각 청탁 알선의 대가로서는 비교적 소액이고, 위 청탁 알선과 관련하여 별다른 부정행위를 저지르지는 아니하였으며…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를 보좌하는 민정수석비서관으로서, 어느 누구보다도 부정부패에 대한 고도의 도덕성이 요구되는 지위에서 오히려 그 지위를 남용하여… 국민에게 크나큰 배신감과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할 것인 바…”
‘사법적 단죄’라기보다는 ‘도덕적 단죄’에 가깝다. 이 ‘도덕적 단죄’를 이끌어낸 일등공신은 검찰이 아니라 언론이었다. 검찰수사보다 언론보도가 앞지르는 사건이 공통적으로 그렇듯 이 사건도 여론재판 성격을 띠었다. “고위공직자 뇌물수수사건에서 구속기준액수는 관례상 3000만원”이라는 특수부검사 출신 최아무개 변호사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신씨 구속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물론 검찰이 원칙과 기준을 지키지 못하고 고위직인사라고 해서 봐주는 것은 큰 문제다. 하지만 여론을 의식해 구속하는 것도 문제다. 신광옥씨 사건은 옷로비사건 당시 구속된 김태정, 박주선씨의 경우와 비슷하다. 법대로만 하면 두 사람의 혐의는 불구속기소 사안이었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여론의 압력에 굴복해 두 사람을 구속했다.”
1심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화백’측도 여론재판에 대한 불만을 나타냈다.
“애초 이 사건은 신씨가 진씨로부터 1억원을 받았다는 혐의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그 얘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난데없이 최택곤씨로부터 돈 받은 것이 문제가 됐다. 액수도 1억원에서 1800만원으로 줄었다. 그것도 한번에 받은 것이 아니라 300만원씩 여러 차례에 걸쳐 받았다는 것이다. 이제는 진승현이 문제가 아니라 도대체 민정수석이 왜 최택곤 같은 사람을 만났느냐는 것이 문제가 돼버렸다. 사안의 본질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처음부터 민정수석의 자세를 문제삼은 것이라면 몰라도 이 정도 혐의로 구속한다는 건 여론재판이나 다름없다.”
변호인측 주장에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판결문만 봐도 그렇다. 비록 유죄가 인정되긴 했지만, 최택곤씨가 신광옥씨에게 건넨 돈이 진승현씨로부터 흘러나온 것이라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이는 돈의 출처나 용처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데도 이유가 있지만, 법정에서 최씨와 진씨 모두 애초 언론이 제기한 의혹과는 다르게 진술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씨는 검찰에서도 그랬지만 법정에 나와서도 시종일관 신씨에게 준 돈의 대가성을 부정했다. 또한 진씨는 최씨를 통해 신씨에게 어떠한 청탁도 한 적이 없고 도움을 받은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정황을 감안할 때, 만약 언론에서 ‘분위기’를 잡지 않았더라면 신씨는 구속을 면했을지도 모른다.
‘신광옥 구속 미스터리’ 추적은 바로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다. “신광옥이 완전히 억울한 희생양이라고는 보지 않는다”는 최변호사 얘기를 좀더 들어보자.
“무리한 수사다. 수사결과로만 보면 신광옥이 받은 돈의 대가성을 입증하기 어렵다. 뇌물사건에서 돈은 한번에 뭉칫돈으로 건너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그렇지 않다. 이것저것 긁어모은 것이 1800만원이다. 300만원을 뇌물로 볼 것인지 떡값으로 볼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사회통념상 청와대 민정수석한테 300만원은 휴가비나 떡값이다. 일반인 기준과 다른 것이다. 만약 청탁 목적이 분명하다면, 교통사고처리 부탁도 아닌데 300만원을 준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 액수에 ‘0’ 하나는 붙어야 하지 않겠나. 게다가 최택곤과 진승현의 진술로 미뤄보면, 그 돈은 진승현의 청탁과 직접 관련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신광옥 구속 미스터리’와 관련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의문은 누가 어떤 목적에서 언론에 정보를 흘려 신씨에 대한 ‘도덕적 단죄’의 분위기를 조성했는지다. 이는 이 사건의 배경 또는 본질을 밝히는 것과 관련이 깊다.
최초 보도매체인 중앙일보 기사를 보면, 취재기자가 적어도 진승현씨의 검찰진술, 즉 진씨가 최택곤씨에게 1억원(최씨가 진씨로부터 받은 돈은 총 1억5972만원)을 줬다는 진술을 확인한 상태에서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만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는 것이 문제였다. ‘진씨가 신광옥씨에게 골프가방에 현금 1억원을 담아 전달했다’는 기사는 오보로 판명됐다.
중앙일보가 특종과 오보의 경계를 넘나들도록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이에 대해 중앙일보는 ‘취재원 보호’ 원칙에 충실하고 있다. 중앙일보 관계자는 언론중재위원회에 나와서도 취재원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 다만 “검사장급 이상 검찰 간부로부터 정보를 입수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수사팀은 중앙일보에 관련기사가 나오기 전 진승현씨로부터 “최택곤한테 1억원을 줬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진씨 진술에 따르면 당시 최씨는 그 돈을 신광옥씨에게 전해주겠다며 가져갔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씨한테 실제로 돈이 건네졌는지는 최씨를 조사하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이에 수사팀은 최씨를 은밀히 불러 조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공교롭게도 수사팀이 최씨를 소환하기로 한 날은 중앙일보에 관련기사가 나온 12월11일이었다고 한다. 이날 저녁 최씨를 부를 예정이었는데, 보도 여파로 최씨가 연락을 끊는 바람에 조사일정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 내에서 진승현씨로부터 신광옥씨 관련 진술이 나온 것을 알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일단 보고선상에 있던 검찰 간부들을 꼽을 수 있다. 순서대로 꼽아보면 서울지검 특수1부장(박영관)-서울지검 3차장검사(박상길, 현 서울지검 남부지청장)-서울지검장(김대웅, 현 광주고검장)-검찰총장(신승남, 지난 1월 사퇴)이다. 이 중 ‘혐의대상’에 오르는 검사장급 이상 검찰간부는 서울지검장, 검찰총장이다. 여기에 직계는 아니지만, 검찰 2인자인 대검차장을 포함시킬 수 있다. 당시 대검차장은 김각영(현 부산고검장)씨였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검사장(서울지검장)한테는 매일 주요 수사상황을 보고하기 때문에, (신광옥씨 혐의도) 당연히 보고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대웅 광주고검장은 이와 관련, “중앙일보 보도 당시엔 서울지검에서 신광옥 법무부차관을 조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신광옥씨 관련 보고를 처음 받은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신승남 전총장은 “법무부차관이 관련된 일인데 총장이 보고를 안 받았다면 이상한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신광옥씨 구속배경을 둘러싼 소문 중 가장 그럴듯한 것은 신승남 전총장과의 갈등설이다. 이는 ‘신광옥 청와대’와 ‘신승남 검찰’의 힘 겨루기로 해석되기도 한다. 2000년 1월, 당시 대검 중수부장이던 신광옥씨는 옷로비사건 수사를 잘 마무리한 ‘공’으로 차관급인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영전한다. 그때 신 전총장은 대검차장이었다.
법조계에 따르면 두 사람은 옷로비사건 수사과정에 박주선(현 민주당 의원) 청와대 법무비서관의 구속과 관련해 갈등을 빚었다. 박씨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신승남 대검차장이 박씨 구속에 신중한 편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광옥씨가 청와대 민정수석이 된 이후 두 사람의 충돌 양상이 바깥에 드러난 대표적인 사건은 지난해 8월의 인천공항유휴지 특혜개발시비사건이다. 당시 신승남씨는 검찰총장이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예하 민정비서관실 소속 국중호 행정관이 이 사건에 연루되자 신광옥 민정수석은 자체조사를 벌였다. 검찰(인천지검) 수사가 시작되기 전 부하직원인 박영수(현 서울지검 2차장검사) 사정비서관을 시켜 국씨의 혐의를 철저히 조사했던 것. 그 결과 국씨의 행동에 특별한 문제점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나자 대통령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고 안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인천지검은 국씨를 긴급체포, 구속 수순을 밟았다. 신수석이 국씨의 긴급체포 사실을 안 것은 하루가 지나서였다. 휴일이라 골프를 치고 있던 그는 연락을 받고 급히 청와대로 들어와 회의를 소집, 대책을 강구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에 따르면 신수석과 신총장, 그리고 이범관 인천지검장 사이엔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국씨가 긴급체포되자, 신수석은 선배인 신총장에게 “이럴 수 있냐”고 항의하면서 ‘공정한 처리’를 부탁했다. ▲신총장은 “인천지검에 맡겨두자”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에 신수석은 사시후배인 이범관(현 서울지검장) 인천지검장에게 전화를 걸어 강력히 항의했다(신총장은 사시 9회, 신수석은 12회, 이지검장은 14회다). ▲이지검장은 신수석에게 ‘여론’을 언급하며 양해를 구했다.
결국 신수석은 부하직원 국씨가 구속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허위보고를 한 셈이 되니 대통령 볼 면목도 없었다. 신수석 주변인사에 따르면 당시 그는 신총장을 많이 원망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갈등설과 연결되는 소문으로는 이런 것도 있다. 지난해 9월19일 신승남 검찰총장은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자신의 친동생인 신승환씨가 600억원대 횡령 및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된 지앤지(G&G) 회장 이용호씨에게 스카우트 비용 등의 명목으로 6666만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신총장은 자신의 동생을 둘러싸고 이씨와의 커넥션 의혹이 제기되자 동생을 직접 불러 이씨와의 돈거래 관계를 추궁해 위와 같은 내용을 듣게 됐다고 설명했다.
신총장의 ‘고해성사’를 두고 이런저런 추측이 돌았다. 그중 거의 ‘정설’로 굳어진 것이 야당에서 동생 문제를 터뜨린다는 첩보를 입수한 신총장이 선수를 쳤다는 소문이다. 그에 따르면 신총장은 당시 자신의 동생 문제를 불거지게 만든 장본인으로 신광옥 법무부차관을 의심했다는 것이다(신총장의 기자간담회가 있기 일주일 전쯤 신광옥씨는 법무부차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다.
신승남 전총장은 자신이 신광옥씨를 구속시킨 장본인이라는 소문에 대해 “내가 왜 일부러 부하를 잡아넣겠냐”며 “오해”라고 말했다. 당시 중앙일보에 신광옥씨 혐의사실이 보도된 경위에 대해서는 “모른다”면서 “비밀은 없다. 언젠가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아울러 수사팀으로부터 신광옥씨 혐의를 처음 보고 받은 시기에 대해서는 “수사와 관련한 사항은 일절 말하지 않는 게 내 원칙”이라며 입을 다물었다.
신광옥씨 구속을 둘러싼 또 하나의 소문은 검찰 내 파워게임설이다. 차기 검찰총장 자리를 놓고 벌어진 힘 겨루기에서 그가 패했다는 시각이다. 소문대로라면 중앙일보에 그의 혐의를 제보한 사람은 그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검찰 간부다. 이와 관련, 전·현직 고검장급 인사 2명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신광옥씨는 유력한 차기 검찰총장 후보 중 한 명이었다. 검찰 안팎에서는 ‘신승남 다음은 신광옥’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지난해 야당이 신승남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안을 국회에 상정하자 여권에서는 신광옥 민정수석을 ‘후임’으로 검토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마지막으로, 수사팀이 직접 중앙일보에 혐의사실을 알려줬을 개연성이다. 앞의 두 소문이 ‘검사장급 이상’이라는 단서를 충족시키는 ‘정치적 해석’이라면, 이것은 순수하게 수사 차원에서 바라본 추측이다.
검찰 내부 사정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진 B변호사의 조심스러운 분석.
“수사팀의 ‘언론 플레이’였을 가능성이 있다. 과거 슬롯머신사건 수사 때 홍준표(현 한나라당 의원) 검사가 차기 검찰총장으로 유력했던 이건개 당시 대전고검장을 잡아들일 때 언론을 활용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수사진행이 어려울 경우, 즉 수사대상자가 상대하기 벅찬 거물이거나 수사에 외압이 작용할 때 ‘언론 플레이’를 한다. 특정언론사에 정보를 흘려 보도되게 함으로써 여론의 힘을 업고 수사에 착수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 아니고는 검찰 실력자인 신광옥씨를 수사하는 게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해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사건 주임검사인 홍만표 검사와 신광옥씨의 악연이다. 옷로비사건이 그 뿌리다. 당시 홍만표 검사는 청와대에 파견돼 근무하고 있었다. 직속상관인 박주선 법무비서관이 옷로비사건에 휘말려 구속될 위기에 처하자 불이익을 무릅쓰고 박비서관의 결백 주장을 뒷받침하는 진술서를 작성해 수사팀에 제출했다.
앞서 말한 대로 옷로비사건 수사는 신광옥 대검 중수부장이 지휘하고 있었다. 당시 홍검사를 비롯한 청와대 파견검사들과 대검수사팀 검사들은 박비서관 구속을 두고 지금도 원수처럼 지낸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날카롭게 대립했다. 당시 청와대 파견검사들은 박비서관의 무죄를 확신하고 있었다(박씨는 지난해 11월 일부 무죄 및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옷로비사건으로 맺어진 신광옥씨와 홍검사의 악연은 이듬해에도 이어진다. 2000년 1월 신씨가 홍검사의 직속상관인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부임한 것이다(박씨 구속으로 청와대 법무비서관 직제는 없어지고 대신 민정수석직이 부활됐다). 뒷날의 소문을 예고라도 하듯 홍검사는 신씨가 부임한 지 한 달도 안 돼 수원지검으로 옮겨갔다. 통상 청와대 파견검사의 임기는 2년이다. 그런데 홍검사는 8개월 만에 청와대를 떠났다. 이를 두고 뒷말이 많았다. 신광옥씨가 구속된 후 검찰과 청와대 주변에서 ‘홍만표가 박주선 복수를 했다’는 얘기가 나온 데는 바로 이런 사정이 있다.
한편 당시 수사팀 고위관계자는 ‘수사팀 제보설’을 부인했다.
“누가 어떤 의도로 언론에 흘렸는지 모르지만―아마도 신광옥씨의 사법처리를 원하는 사람이 그랬겠지만―적어도 수사팀은 아니다. 수사팀이 흘릴 이유가 없다. 언론보도 후 엄청난 부담을 느꼈다. 최택곤이 출두약속을 어기는 등 자칫 수사를 망칠 뻔했다.”